[eBook] 위험한 시간 여행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내가 나로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내가 살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 만약 내 기억이 조작되거나 잘못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나인걸까?


이 소설은 9.11 테러 이후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된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과학 기술도 제법 많이 발달한 듯 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종이책을 보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종이책을 안 볼 수 있나. 물론 나도 이 책을 이북으로 보긴 했지만, 그래도 당연히 종이책이 있어야 눈도 안 피곤하고 집중도 잘 되는데... 내 머리로 다운로드 할 게 아니라면 당연히 종이책이 있어야지!!


피부색으로 등급을 만들어 사람을 나누고, 행동이나 생각을 정해주고, 소수의 누군가에게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들이 만연하다. 질문을 하는 학생은 위험한 인물이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사람은 요주의 인물이 되며, 삭제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 단지 규칙에 대해 질문했다는 이유로.


NAS-23년 고등학교 졸업식 대표로 고별사를  하게 된 아드리안 스트롤은 리허설 때 교장이든 친오빠든 누군가의 고발로 국토보아국에 잡혀 간다. 그녀를 체포하기 위해서는 동급생들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 투표는 거수로 이루어졌다. 반역적 언사와 권위에 대한 도전 혐의로 잡혀가는 것을 승인한다면 찬성에 손을 들면 된다.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아주 공정하게 말이다. 처음에는 손을 들지 않다가도 국토 보안국 규율부에서 나온 담당관들이 노려보기 시작하자 모두가 손을 든다. 이 곳에서 그들의 눈 밖에 나면 영원히 낮은 보수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아드리안은 잡혀 온 다른 아이들과 함께 정신적 고문을 받다가 추방령을 당한다. 추방지는 1959년 미국 위스콘신의 웨인스코샤 주립대학, 제 9구역으로 불리는 곳이다. 세상에, 시간을 거슬러 사람을 보내다니... 정말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알량한 내 지식으로는 1959년에는 웜홀 같은 게 없었을테니 그 시간대로 과연 죄인들이나 직원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다른 가설을 떠올렸다. 어차피 지금 그들이 사는 세상은 모든 것이 전자와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니까, 머리에 칩 같은 걸 심어서 가상 세계로 보내는 것인데 그 가상 세계가 바로 1959년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과연 이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는 끝까지 읽어도 알 수 없었다. 


1959년에서 메리 엘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 아드리안은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말도 해서는 안 되고, 역사에 관여해서도 안 된다. 물론 통제된 역사를 배운 그녀가 이 시대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이 곳에서 심리학, 한창 유명세를 떨치던 스키너의 이론을 접하면서 안 그래도 자아가 강하던 그녀는 더 더욱 논리적으로 생각할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가족과 헤어지고, 어린 나이에 같이 잡혀 온 한 학생의 죽음을 목격한 경험은 그녀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순응하게 만들었다. 국가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은 그 개인의 독립성과 인간성을 말살하기 충분했다.


이 곳에서 조용히 살려던 아드리안은 심리학 조교인 울프만은 만나게 되고, 같은 추방자 신세였던 그들은 외롭고 고독한 추방 생활을 함께 하며 시간을 버틴다. 울프만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시간 여행이란 불가능하며 모든 것은 가상 세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기 위해 계획을 짜지만, 천둥 소리와 작고 검은 박쥐 같은 새에 의해 공중분해 되고 만다.


이 곳에 유배된 사람은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울프만도 있었고, 아드리안의 삼촌인 토비아스도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사실일까? 번개에 맞은 건지 쓰러져 있다 구조된 아드리안은 아니, 메리 엘렌은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녀의 기억은 메리 엘렌의 것인지, 아드리안의 것인지, 아니면 그저 미쳐버린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찰나의 죽음은 그녀의 원래 세상에서 그녀가 '삭제'되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그녀의 망상일까. 토비 삼촌의 등장은 도대체 무얼 말하는 걸까. 과연 그들은 돌아갈 수 있을까. 


아드리안은, 메리 엘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과연 나는 누구일까.

행복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안도감이 행복이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추방자에게 안도감은 극도의 행복을 가져다준다.(175/372) - P175

때로 심문자가 자리를 고쳐앉을 때면 눈이 부신 조명 밑을 벗어나 저쪽으로 얼굴이 넘어가기도 했는데 그 때 나는 정말 아주 잠깐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 얼굴은 버스 안에서 마주칠 법한 이웃처럼 너무나 평범했다.(37/372) - P37

자아란
기능적으로 통합된 반응체제를 대변하는 기제일 뿐이다.
-스키너, <과학과 인간 행동> (3/372) -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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