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의 이야기 중국 신화 - 하 - 신들의 사랑과 멀고 낯선 세계
김선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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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이야기 중국 신화 - 상>에서 천지가 만들어지고, 세상이 시작하고, 인간이 만들어지고, 홍수가 인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등을 이야기 했다면, 하권에서는 대지모신에서 하급신으로 격하된 여신들과 보다 인간적인 신들과 황금시대를 열었던 요, 순, 우왕의 이야기들을 다룬다.


열 개의 해 중 아홉 개를 활로 쏘아 세상을 지독한 열기로부터 구한 예는 천제의 아들들을 죽여버린 죄로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다. 예는 천제에게 버림받아 우울하던 차에 곤륜산에 있는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얻으러 간다. 불사약을 얻어 기다리다보면 천제의 화가 풀려 하늘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의 부인인 항아는 괜히 예를 따라와 고향인 하늘로 가지도 못한 채 땅에서 지내는 생활이 싫었다. 예는 땅에서 명예라도 얻었지만 항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불사약을 혼자 다 먹고 신이 되어 하늘로 돌아갈 생각을 했는데 막상 혼자 불사약을 먹고 나니 천제에게 혼이 날까 겁이 나서 잠시 달에 숨기로 했다가 두꺼비로 변하고 만다.


하백의 부인인 복비(낙빈)의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와는 달리 치우나 하백이 동이 계통의 신이라 그런가 중국 신화에서는 별로 좋게 나오지 않는다. 하백 역시 우리에게는 위대한 신이지만, 여기서는 바람둥이에 질투쟁이로 나온다. 부인인 복비가 예랑 좋아지내는 걸 보고 화가 나서 분탕질을 치다가 천제에게 혼이 나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예는 복비랑 바람도 났는데 항아가 없어서 슬퍼하다 난폭해졌고 결국 제자인 봉몽의 몽둥이에 맞아 죽는다.


후예와 현처의 이야기는 마치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어떤 이유든 남편과 아이를 죽인 남자와 가족이 되는 건 끔찍한 일일테다. 그래서 현처와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복수를 한다. 서글프게도 복수는 정당화될 수 없으니, 결국 현처와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둘 다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신인지 인간인지 너무나 인간 같은 신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위대한 신이었으나 결국 남신에게 밀려난 신들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여와는 사람을 만들고 구멍난 하늘을 메우는 등 단독이자 위대한 신이었는데, 한나라 무제 이후 단독으로 나서지 못하게 된다. 특히 하늘을 메우는 건 태초에 하늘이 완전하지 못하였기에 여와가 오색돌로 하늘을 고친 것인데, 한나라 이후에는 남신인 전욱과 공공이 싸우다가 공공이 부주산을 들이받아 하늘에 구멍이 나서 여와가 하늘을 메웠다는 이야기로 바뀌고 만다. 즉, 단독자가 아닌 남신들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보조신의 역할로 격하된 것이다. 


서왕모 역시 서방 황야의 무시무시한 신이었다. 하늘의 형벌과 전염병 등 재앙을 관장했기에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는 전설을 가진 신이었다. 그런 서왕모는 나중에 주 목왕과 사랑을 나누는 여신으로 전락하고 만다. <목천자전>에 나오는 서왕모가 남긴 노래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여인의 애정 표현에 그치고 만다.


"흰 구름 하늘에 떠 있고 산 언덕 절로 솟아 있습니다.

 길은 아득히 멀어 산과 물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그대 죽지 말고 다시 돌아오시기를." (p.116)


<산해경>에 나오는 서왕모는 표범 꼬리에 호랑이 이빨을 갖고 있으며 봉두난발에 비녀를 꽂고 괴성을 지르는 신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도 모호하며 사는 곳도 일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모호함 때문에 서왕모가 본래 중원 지역의 신이 아니라 서쪽 지역 민족들이 숭배하던 신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p.114) 서북부 지역에 살던 민족의 신이던 서왕모가 교류를 통해 중원으로 들어와 중국을 휘어잡는 여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왕모는 점점 그 위상이 변해간다. 쓰촨 지역에서 나온 화상석을 보면 서왕모는 언제나 화상석의 상층부 중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후한 시기에 이르면 서왕모가 있던 자리에 동왕공이 있고 서왕모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한 때 곤륜산의 신선 세계에서 하늘의 형벌과 재앙을 관장하던 신이 주 목왕이나 한무제를 만날 때는 아름다운 여신이나 천상의 왕모로 변했다가 나중에는 동왕공의 배우자로 전락하고 만다.  


민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마조는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중국 민간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여신이라고 한다. 마조는 바다에 나간 사람들을 돌보아주는 바다의 여신인데, 송나라 이후 여러 왕조의 왕들이 그녀에게 많은 작위를 내려주었다. 바다를 통해 무역을 하면서 해운을 중시하게 된 나라들에게 민간이 숭배하는 바다의 여신을 인정해주는 것은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다스리기 편한 장치였을테다. 2014년 내가 마카오에 갔을 때, '아마 사원'에 갔는데 아마 여신이 마카오에서 가장 유명한 신이고 마카오의 신이라고 하는 설명을 읽었다. 그 아마 여신이 바로 마조 여신이다.마카오란 말이 마조 여신의 집이란 뜻이라고. 


한나라 때 중원 지배 체제를 상징하는 '황제'를 중심으로 한 신화 체계가 확립되면서 의도적으로 사라진 신들이 있다. 천제 제준이 그러한데 <산해경> 이후의 문헌에서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 신화를 읽다보면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고, 여와나 서왕모처럼 성격이 변하는 신들도 많고, 무엇보다 신들이 너무 인간 같은 경우가 많다. 신화를 역사로 편집하다 보니 일어나는 일들인 것 같은데, 신비로움과 다채로움이 사라져 아쉽다. 중국 각 민족의 시조를 낳은 어머니를 모두 제곡의 아내로 삼아 후손들을 모두 제곡의 후손으로 만드는 것 역시 그러하다. 제곡의 아내 중 강원은 후직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주 민족의 시조다. 둘째 부인인 간적은 설을 낳았는데 그는 은 민족의 시조다. 주와 은은 민족 계통이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편집된 신화에서 둘은 아버지가 같아 버린다.


물론 이 민족의 시조를 낳은 어머니들은 위대한 여신에서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이자 열녀로 강등된 건 말할 것도 없다.   


만주족 신화 중에 <우처구우러번>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에서는 '천궁대전'이라고 불린다는데, 원래 만주어로 '신들의 이야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인공인 '아부카허허(아부카는 하늘, 허허는 어머니라는 뜻이다.)'는 하늘의 여신인데, 그의 몸에서 땅의 여신인 '바나무허허'와 별들의 여신인 '와러두허허'가 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여자도 만들고 새, 짐승, 곤충을 만들고 남자도 만들었다. 아부카허허는 자신의 살 일부를 떼내어 여신 오친을 만들었는데 오친은 바나무허허에게 돌을 맞아 양성을 지닌 괴물로 변한 뒤 예루리 대신이 되었다. 


예루리는 어둠을 퍼뜨리는 악신이다. 아부카허허와 예루리의 싸움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나는데, 결국 여러 신의 도움으로 아부카허허가 이긴다. 예루리는 아홉 개의 머리 중 다섯 개의 머리에 있는 눈이 뽑힌 채 어둠으로 도망쳤다. 그 때부터 빛과 불을 무서워했다고 하며, 하얼빈의 쑹화강에서 열리는 빙등 축제가 이 신화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예루리는 인간 내면에 깃든 악의 화신이기도 하지만 그 곳의 겨울이 인간이 살아가기 힘든 혹독한 날씨라 그것을 형상화한 신이기도 하여 그의 힘이 그토록 강력한 것이라고. 


이제 이야기는 하 나라 시대로 넘어간다. 이 때부터의 이야기는 마치 <삼국유사>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거만한 공갑의 이야기나 왕해와 왕항의 이야기 등은 이미 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인간 세상에 가끔 나오는 신들과 그 신들을 이용(?)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땅을 차지하게 된 인간들이 권력 다툼을 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효를 강조하는 등의 이야기를 보면 그 나름의 재미도 있고 교훈도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우 임금이 만들었다는 구정(아홉 개의 솥)은 사실 천하를 제패하는 왕권의 상징물이 아니라 아주 실용적인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 임금이 치수를 위해 구주 즉 중국을 돌아다니며 본 구주의 모든 괴물들을 새겨넣어 백성들이 그 괴물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후대에 오며 의미가 변질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세상 밖의 또 다른 세상을 이야기한다. <산해경>에 나오는 아득하게 먼 곳에 있는 나라들의 이야기 말이다. 특히 장수국 이야기가 웃겼는데, 그 곳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긴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선비가 그곳에서 결혼도 하고 살다가 나라에 큰 일이 생겨 용왕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더니, 용왕이 웃으며 새우에게 속았다고.... 군자들만 사는 나라, 한 쪽 팔만 있는 사람들, 한 쪽 눈만 있는 사람들, 인어, 용, 말의 형상을 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등 가 보지 못한 세계를 이렇게 상상한 걸 보면 '낯선' 곳, '낯선' 사람을 얼마나 궁금해하는지,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알 수 있다.


과학이 발달한 세상에도 상상할 거리들은 많다. 하지만 그 상상이라는 것이 어쩌면 저 먼 고대 사람들보다도 덜 유쾌하고 덜 반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지가 창조되는 걸, 반고라는 신이 세상을 만드는 걸, 여와라는 신이 인간을 만드는 걸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게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유쾌하면서도 반짝이는 상상력이 너무나 존경스럽다. 같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나는 그 별의 죽음을 상상하고, 고대인은 그 별이 빛나기까지 겪어야 한 사랑을 상상한다.  

옷을 홀랑 벗고 꽃 문신에 보라색 아이섀도, 게다가 앞니 두 개가 없는 것이 미인이라니, 그게 무슨 미인이냐고? 그러나 그것이 신화 속의 세상이다. 신화 속에는 다양한 세상이 존재한다. 인간의 영혼이 알록달록하듯이 온 세상 사람들의 문화나 습속, 아름다움의 기준도 그렇게 알록달록하다.

그 아름다운 무지갯빛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가 좋아하는 빛깔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원색의 세상도 파스텔조의 세상도 모두가 세상의 일부라는 것, 그 다양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가슴이 바로 신화를 읽으면서 우리가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 P422

이미 언급했듯이 문신이라는 것도 중원 지역에서 살아가던 한족의 입장에서 보면 야만적인 습속이었겠지만 남방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서운 동물들에게서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보호색과 같은 실용적 목적이나 꽃무늬 문신처럼 아름다움을 위한 목적 등을 가진, 자신들만의 독특한 풍습이었다. 문제는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다수의 문화만이 항상 옳고 우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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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6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2-06-06 14:07   좋아요 0 | URL
사실 신화의 많은 부분들은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잖아요. 지금이야 과학이 발달했으니 그렇다지만, 옛날에 자연현상들을 보면서 저런 이야기들을 상상해낸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싶어요 ㅎㅎㅎ 제주도의 오름들을 보면서 설문대할망이 수수범벅을 먹고 설사를 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제주도 원주민들 대단해요. 지금이야 대소변이 더럽다지만 예전에는 제주도처럼 척박한 땅에 거름이 되는 소중한 것이었잖아요. 거기다가 출산이든 배변이든 몸에서 분출하는 건 거대한 힘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재미있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걸 보면 아,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