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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 / 산돼지 ㅣ 지만지 한국희곡선집
김우진 지음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평점 :
‘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과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알려진 김우진의 희곡이다. 둘이 연인 사이는 결코 아니었다고 하던데 같은 날 같은 배에서 사라졌으니 이야기가 많을만도 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둘은 사람들에게 연인이자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여러 장르의 소재로 활용되었고, 그 중에서 난 이종석, 신혜선 주연의 드라마 <사의 찬미>를 좋아한다.
집안과 자아실현 사이에서 고뇌하는 지식인. 집에 돈이 많다한들 원하는 글을 쓸 수 없고, 독립을 위해 애쓸 수 없고,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살 수 없는 삶에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다른 상황이지만 같은 처지인 윤심덕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그럴 법 했더랬다.
연인이 아니라 하고 같이 자살할 이유를 모르겠다지만, 이 책을 읽으니 어쩌면 정말 자살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파>는 마치 <성 앙투안느의 유혹>의 일부를 보는 듯 했다. 결론은 완전히 다르지만, 자신 안의 갈등이 넘쳐 흐른다. 원하는대로 살 수 없게 하면서 왜 낳았을까. 그렇다면 ‘비비’처럼 삶을 스스로 꾸려가도록 해야 하겠지만 ‘시인’은 그러지 못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와 저 멀리 있는 ‘이상’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흔들리다 ‘난파’를 선택한다.
<산돼지>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 <난파>에서의 ‘비비’는 허상이지만, 여기 ‘정숙’은 살아있다. ‘원봉’은 ‘정숙’과 더 넓고 새로운 세계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1막과 2막에서는 산돼지처럼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지만 ‘원봉’은 집돼지마냥 본성을 누르고 갇혀 있다. 심지어 출생의 비밀도 있다. 출생의 비밀마저 알게 된 ‘원봉’은 3막에서 산돼지 탈을 받아들이며 돌아 온 ‘정숙’과 <봄 잔디밭 위에>를 낭송한다. 지식인인 ‘원봉’이 ‘정숙’을 깨우치고, ‘영순’도 깨우치고 다들 사회라는 한계 속에서도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옛글이 참 읽기 어렵다.
詩人(시인) 하지만 내게도 그럴 힘이 잇슬가요. 비비 잇구말구요. 손톱 끈는 것보다두 더 힘업시 어머니와 離緣(이연)만 해 버리면 詩人(시인) 해 보리다. 하지만 난 詩人(시인)얘요. 保險(보험)統計書(통계서)는 몰음니다. 讓渡證書(양도증서) 맨들쥴도 몰으고, 나는 過去(과거)를, 꿈을, 버릴 수 업슴니 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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