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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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희생양.이 말만큼 그녀의 상황을 잘 설명하는 말이 달리 있을까.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한 소녀가 그녀가 가진 지위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프랑스인이 아닌 오스트리아인이라는 이유로 혁명의 희생양으로 사라졌다. 역사의 비극적 드라마로 남은 이 사건에서 진실이나 운명은 확실히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혁명가들이, 혹은 역사가들이, 왕권옹호자들이 얼마나 그녀를 왜곡시켜 놓았는지, 좀 화가 날 지경이다. 도대체 그녀의 잘못은 무엇인가.

영리하지만 공부와는 담을 쌓은 놀기 좋아하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인물과 결혼한다. 소심하고 사교성과 결단력이 부족한 루이 16세는 그저 공무원이 딱인데, 어쩌다 왕이 되었는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기 위해서이지 않나 싶을 정도다. 더구나 결혼하고 8년간 '고자'이지 않았나. 덕분에 욕구불만에 시달린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갈망을 사치와 향락으로 달랠 수 밖에 없었으니, 운명이란 고약하기 그지없다. 그 8년이란 세월이 그녀의 이미지를 만들어 버렸다. 사치스럽고, 놀기 좋아하는 경박한 왕비로 말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루이 14세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더 사치스러웠을 것 같진 않다. 그 유명한 목걸이 사건만 해도 그녀가 돈을 쓴 건 아니니까. 물론 트리아농성에 들어간 돈이 무시무시하긴 하지만, 프랑스 왕실 뿐 아니라 귀족들 대부분의 재산을 거덜낸 루이 14세에 비할까. 그러나 그는 프랑스의 왕이자 남자였기에 그 사치가 눈감아졌다. 왕권을 강화한 위대한 왕으로 태양왕으로 불리지 않나. 베르사유 짓는데 든 돈이 얼마였는데...

8년 후 수술을 받은 루이 16세와의 합방으로 아이를 낳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놀랍도록 정숙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되자 안달이 난 건 다음 왕위를 노리던 왕위 계승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루이 16세의 삼촌인 오를레앙 공은 교묘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미지를 더럽히기 시작한다. 물론 사치를 좋아한 그녀의 탓도 있지만, 그녀가 즐긴 사치에 비해 엄청나게 부풀려진 거짓된 이미지로 군중들에게 인식되어 목걸이 사건과 같은 엄청난 사기극이 연출되고, 빵을 달라는 군중들의 요청에 고기를 먹으라고 했다는 둥 이상한 루머가 돌게 된다. 혁명이 발발했을 때 왕가의 부패나 심각하게 어려운 경제는 모두 마리 앙투아네트 때문이 되어 버렸고, 곳곳에 그녀에 대한 추악한 염문이 뿌려졌다.

정말 제대로 치사한 수법이었다. 포르노그라피로 그녀를 매도한 것은. 프랑스가 생긴 이래 모든 왕들이 정부를 거느렸고, 죽기 직전 그렇게도 좋아하던 그녀들을 버렸다. 루이 15세만 하더라도 대놓고 며느리더러 자신이 아끼는 정부인 뒤바리 부인과 인사하라고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나. 그런데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사랑을 키웠던 페르센과의 로맨스나 있지도 않은 그녀의 애인들에 관한 이야기로 그녀를 더럽히다니. 심지어 아들을 성추행 했다는 주장으로 그녀를 모욕했는데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그녀는 창녀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루이 16세는 왕으로서 단두대에 올랐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더러운 오스트리아 계집으로 단두대에 올랐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처럼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다면, 지금의 프랑스는, 유럽은 많이 달라져 있겠지. 혹은 루이 16세가 결단력이 있었다거나. 그녀의 불행은 그녀 자신에게도 있었지만, 그녀의 남편과 프랑스 사회에도 있었다. 결단력이 없어 아무것도 결정짓지 못하여 혁명을 막지도, 자신의 목숨을 구하지도 못한 루이 16세의 우유부단함과 여성의 정치 참여를 철저히 거부한 프랑스 사회에 말이다. 기회는 여러 번 주어졌으나 애꿏게도 역사는 그녀를 혁명의 도화선으로 선택했다. 그것이 그녀의 운명이자 역할이었다면 차라리 좀 더 명예롭게 사그라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녀가 자신의 위치에 대한 책임감을 지나치게 늦게 깨달았기에 그녀는 그저 혁명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시대에는 영웅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폴레옹의 자리를 그녀가 대신 차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건만, 역사는 그녀 대신 나폴레옹을 선택했다. 그저 베르사유의 장미로 칭해지는 그녀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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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2007-09-1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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