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 (리커버 에디션)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삶은 어떠해야 할까.

 

내가 그동안 읽은 책들은 대부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란 질문을 던지고, 작가 나름대로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물론 내가 그 답을 잘 찾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지만.

 

나치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렸다.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또 다른 평범한 삶을 파괴하고, 온화한 웃음으로 가족을 돌보던 가장이 직장에서는 무고한 생명들을 가스실로 던져 넣는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도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과 그들에게 협력하며 떵떵거리던 이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나치 전범들에게 시효가 없는 유럽 국가들의 원칙에 따라 비시 정권 아래에서 '활약'한 모리스 파퐁의 재판이 열린다.

 

모리스 파퐁은 친나치 정권인 비시 정권 시절, 많은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자이다. 그는 자신은 그저 시키는대로 하던 공무원일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악은 평범하다고 한나 아렌트가 그러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재판은 교사이자 어릿광대인 아버지를 둔 '나'를 불러 온다.

 

언제나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나'는 가스똥 삼촌에게 이야기를 듣는다. 그 시절, 젊고 무모했던 아버지와 삼촌의 이야기를. 나치가 저지른 만행이 얼마나 많은 삶들을 부수고 찢고 묻어버렸는지. 그리고 용감하다 생각했던 일들이 가져 온 끔찍한 결과를.

 

반쯤은 호기로 레지스탕스에 들어 간 아버지와 삼촌은 두에 역의 변압기를 폭파하는 일을 맡았다. 그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훌륭하게 그 일을 해냈다. 하지만 당시 범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인질들을 처형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져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범인인 그들이 인질로 잡혀간다. 프랑스 헌병대가 응원하는 축구팀을 이겼다는 이유로 헌병대가 그들을 나치에게 넘긴 것이다. 아버지와 삼촌 외에 두 사람이 더해져 네 사람이 인질로 잡혀 산 채로 묻히게 될 구덩이 속에서 며칠을 굶주림과 두려움에 떨었다. 사실, 진범인 아버지와 삼촌이 자백하면 나머지 두 사람은 풀려날 것이었지만, 아버지와 삼촌은 그러지 않았다.

 

구덩이를 지키던 독일군 병사, 베른은 오히려 적이었지만 인간적이었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을 위해 우스꽝스러운 짓을 해서 두려움을 덜어 주었고, 먹을 것을 몰래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제비뽑기를 해서 제일 먼저 죽을 사람을 정하라는 나치의 말을 따르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나는 자네들이 진짜 범인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중요한 것은 독일군의 계략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거야. 가장 좋은 방법은 독일군에게 자네들 전부를 죽이라고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죽이지 못하게 하는 거야. 자네들 스스로 희생양을 선택한다면 반인륜적 선택을 하도록 한 그들의 논리에 덩달아 춤추는 꼴이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도리어 그들의 논리가 정당하고, 그들은 자네들에게 동정을 베푼 셈이 되는 거란 말일세.(pp. 79-80)

어찌됐든 그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죽음이 구해 준 삶들... 적과 아군, 피아의 구분이란 없었다. 삶은 언제나 혼자였고, 또 언제나 모두였다.

 

책 말미에 '나'는 피고의 이름은 기억 나지 않지만, 피해자의 이름은 기억하고 싶다고 한다. 모리스 파퐁이든 이완용이든 그들은 모두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들은 그들이 꺾어버린 수많은 생명들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그랬듯 '나' 역시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난하지도 않고, 교사라는 지위와 명예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어울리지 않는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과거 베른이 자신에게 준 위로를, 죽음이 부른 삶이 자신에게 준 기회를 다른 이들에게 건네며, 그는 그에게 주어진 삶을 처절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포기하지도 외면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서 말이다. 

 

삶은... 꼭 행복하지만은 않다. 삶이 꼭 행복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선택에 따라 자신의 삶을 숭고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 어릿광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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