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소개받아서 열심히 읽었다.  

작가 김민영의 이력도 흥미롭다. 캐릭터나 대사들이 어찌나 '명랑'한지 읽기에 즐거웠다. 들은 바에 의하면(그야 말로 '들은 바에 의하면'이다) 이 소설을 끝으로 출판계나 영화계 쪽과는 더 이상 작업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는데 저간의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고 짐작만 할 뿐이다.  

판타지 소설을 즐겨하지 않는 편인데(어슐리 르귄의 판타지 정도가 그나마 좋다) 이 소설은 거의 1,800여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에도 불구하고 휙휙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1996년도 경에 2012년을 상상했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아쉬운 점은 결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생각을 하게 했다.  

그것은 '윤리'에 대한 것이었는데, 연이어 읽게 된 신형철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김훈의 소설을 고찰한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에서 김훈의 소설과 파시즘적인 것과의 연결에 대한 김훈 자신의 대답, "인류의 역사가 약육강식의 질서로 움직여 왔다는 것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다는 말을 인용한 대목에서, 

그래 ... [팔란티어]의 결말에서 보여준 그 '배후' 세력의 인식에 대해서 적절한 사유는 '인정'할 수는 있지만 '긍정'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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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의 검찰 수사발표를 계기로 어떤 언론에서는 대통령이야 국민투표를 통해서 선출하지만 검찰이나 법조계 인사에 대해서 손댈 수 없는 현 제도에 대해 답답해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즉 '그들(법조계 인사)을 도대체 어떡하면 좋으냐'는 식이다.  

존 그리샴의 소설 [어필]은 마침 그에 대한 적합한 예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미국의 사법제도 및 인사제도에 따라서 직접 투표로 판사를 선출하는 주(州)의 경우 벌어지는 사태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부패한 자본의 무소불위의 파워를 실감하게 한다.  

1인 1표가 아니라 1원(1$) 1표 식이 되는 이 끔찍한 사태 앞에서 캄캄한 절벽을 마주한 느낌을 소설 읽는 내내 받게 된다.  

속수무책.  

존 그리샴은 안일한 엔딩을 택하지 않는다. 독자가 조금이라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결말로 위무하지도 않는다(뭐 쬐끔 그런 사건도 있긴 하지만 ... ) . 결국 정당한 평가와 배상을 요구하는 이들이 철저히 패배할 수밖에 없는 돈과 권력의 무지막지한 전략 날 것을 보여준다. 또, 자본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의 너무나 안일한 인식과 대처는 이 소설에서 힘의 균형을 다소 잃게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또한 그리샴이 택한 의도일 수도 있겠다.  

막장 드라마라는 분명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에 대해 이러저러한 평들을 내놓는 경우를 보는데 이는 단지 드라마만이 아니라 정치, 이 사회와 체제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때론 두려울 때가 있다.  

각자생존, 각개격파 그 속에서 막장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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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꾸준히 읽게 된다. [살인방관자의 심리]는 형사물이 아니다. 본격적인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딱히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인지 출판사(노마드북스)의 장르규정은 "휴머니즘 미스터리 소설"의 새로운 개척이라고 운운했다.  

실린 5편의 단편들을 읽으며 답답하고 힘들었다.  편치 않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첫번째 소설 [진상]은 10여년전에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 잡히면서 드러나는 '진상'을 펼쳐보인다. 

[마음의 지옥]은 주인공이 지닌 과거의 죄와 그로부터 기인하는 자신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까지 믿지 못하면서 겪게 되는 '마음의 지옥'을 그야말로 지옥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저자가 애초에 붙인 제목이던지 편집자가 붙인 것이든 각 제목은 내용에 딱 맞는 의미를 담고 채택된 것이다. 

중년 실업가장, 과거 가담한 사건으로 전과자가 되어 전전하게 되는 삶의 피폐함.  

굳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찌됐든 '가담'하거나 '연루'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선택에 처한 인물들의 고통이 이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 같았다. 

인물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상황에 맞닥뜨려졌을 때 하게 되는 선택에 의해서라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의 캐릭터 설정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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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드릭 포사이드 [어벤저] 

어제, 결국 기획하고 있던 일 하나를 접기로 결정하고 며칠간 긴장하며 만들었던 모든 작업을 스톱한 채 이 책을 읽었다.  

[자칼의 날]의 저자라고 하는데 책은 읽지 못했고 영화는 EBS에서 해줄 때 봤었다.  프레드진네만 감독과 주연 에드워드 폭스,  

1973년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 긴장감이란 지금처럼 초광속 편집이 난무하여 만들어내는 것과는 전혀 질이 다른 클래식한 긴장감으로 사로잡는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구호활동을 하던 리키라는 미국청년이 조란 질리치라는 밀로셰비치가 거느린 민병대 대장에게 처참하게 살해 당한 후 거부였던 그의 외할아버지가 '어벤저'를 고용하여 마침내 체포, 미국으로 들여와 법정에 세우게 한다는 줄거리를 가진 복수 추리물이다.  

미국의 오만함이 거슬리는 부분을 결코 간과할 수 없지만

P.S. 이 때 무슨 일 땜에 쓰다가 말았을까? 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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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씨네21'을 사서 꼼꼼히 읽었다. 실로 정말 오랫만에 사보는 잡지였다.  

2009년의 국내외 영화를 총망라하여 소개한 '스페셜 에디션'이었는데 올해 한국영화는 조금씩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 했다. 그러나 한국영화보다 가장 흥미로운 얘기로 나를 끌어들인 영화는 2월 12일에 개봉할 예정인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브레드피트,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였다.  

F.스콧 피츠제럴드의 1922년 발표작이자 그의 나이 스물여섯에 쓴 소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 시작과 함께 오고, 최악의 순간이 마지막에 온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글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떠올렸다고 한다.

피츠제럴드의 원작은 짧지만 강렬하게 슬프다. 원작의 늙은 채 태어나서 어린아이로 죽는 벤자민 버튼의 생을 통한 삶의 슬픔이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촛점으로 하여 표현한 듯 하다. 다운받아서 볼 수도 있는 모양이지만, 개봉을 기다려보겠다.   

씨네21의 소개 중 일부는 이렇다. 이 글에 혹했었다.  

태어날 때는 노인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점점 젊어지는 한 남자가 있다. 벤자민 버튼은 1918년에 태어나 격변의 20세기를 관통하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고 무수한 이들을 만나고 몇번의 운명적인 사랑을 경험한다. 그는 그에 대해 수다스럽게 늘어놓지 않는다. 거꾸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깊어가는 지혜와 젊어지는 육체라는 축복(혹은 무서운 저주)을 묵묵히 감내할 뿐이다.  

"모두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고 있었더라면'이라고 한탄한다. 삶 전반을 이처럼 지름길만 골라 갈 수 있다면 멋지기야 하겠지. 하지만 삶은 지식의 작은 편린들로 이뤄진 축적물이 아니라, 그걸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성숙을 뜻한다."(데이비드 핀처)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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