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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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립감은 소중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마치 햇볕에 달궈진 모래밭을 밟았던 아까의 낮처럼 몸이 따뜻해지는느낌이었다. 그렇게 따뜻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별이 된다는 것은 아닐까. 측정할 수 없는 정도의 열기를 갖게되어 눈부시게 밝아진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유나에게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는데  텐트의  천장을  보고  있던  유나가  고개를 돌리지는 않고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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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케를 발견했다 테이크아웃 19
최정화 지음, 이빈소연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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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이란 왜 그토록 심약할까. 인간들의 눈에는 왜 인간밖에 보이지 않고, 더 자주 자신과 같은 종의 인간밖에 보이지 않고, 또 더러 자기 가족 외에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가끔은 자기 자신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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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기는 사람. 정확히 뭘 이기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국화는 냉정하고 무심하니까 얼마든지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노아 선배는 그 말이 뭐가 그렇게 감동적인지 얼굴을 두손으로 가리며 뭐 그런 말이 있냐, 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다 해. 선배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느리게 걸으면서 나는 걔가 이기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해, 라고 다시 말했다. 그래서 나는 걔가 이기는 사람이 되라고 응원해, 정말 확실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생각해, 거기에는 아무런 의심이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앞으로 걔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예상해, 그것은 어떤 오류의 가능성 없이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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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아룬다티 로이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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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소설을 통해 알게 된 아룬다티 로이는, 더이상 소설가라는 한정된 영역이 아닌 그 이상의 역량을 갖추고 있는 작가였었다.
자본주의의 허상을 인도 자국민의 냉철한 눈을 통해 설파한 이 책은, 그저 먼나라의 일로만 들어왔던 인도의 문제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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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아룬다티 로이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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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들이 개방되던 1980년대 후반 무렵, 인도의 자유중의적 페미니스트운동은 비정부기구들에 주도권을 빼앗겼다.이 비정부기구들 중 다수는 성소수자 인권, 가정폭력, 에이즈, 그리고 성노동자 인권 문제에서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게도 자유주의적 페미니스트운동은 새로운 경제정책들에 대항하는 전선에 서지 않았다.
여성이야말로 그로부터 가장 큰 고초를 겪고 있음에도 말이다.재단들은 기금 출연을 주무름으로써 "정치적" 활동의 허용 범위를
제약하는 데 대체로 성공을 거두어왔다. 이제 무엇이 여성의 "문제들"이고 무엇은 그렇지 않은가를 판정하는 기준은 자금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들의 신념이다.
또한 여성운동의 비정부기구화는 서구 자유주의 페미니즘(그것이 페미니즘 중 가장 자금 사정이 좋은 브랜드이기때문에)을 페미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분파로 만들었다. 늘그렇듯 그 전투의 전장은 여성의 신체다. 한쪽 끝은 보톡스를, 다른 쪽 끝은 부르카를 붙들고 늘어진다. (보톡스 그리고 부르카, 이중으로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진 상황처럼,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여성들에게서 강제로 부르카를 벗기려 한다면, 이는 그 여자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옷을 벗기는 것이다.그것은 모욕인 동시에 문화적 제국주의의 행위가 된다. 여성의 부르카를 강제로 벗기는 것은 강제로 입히는 것과 똑같이 잘못이다. 중요한 것은 부르카가 아니다. 강제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을 떠나 이런 식으로 젠더를 보면 젠더는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장신구와 복식들의 전투가 되고 만다. 그 덕분에 2001년에 이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 정부는 서구 페미니스트 자유주의 단체들을 도덕적 방패로 내세울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당시(그리고 지금도) 탈레반 치하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데이지커터를 떨어뜨리는 게 그 해결책이 될 수야 없지 않은가.

하지만 경제 개혁을 강제로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어도, 아무리 자유시장 "민주주의"를 들어앉히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타국을 군사적으로 점령했어도, 자본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고, 그 드러난 위기는 아직 빙산의 일각 수준이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따라서 단언컨대 부르주아지는 결국 제 무덤을 팔 운명이다. 부르주아지의 실패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똑같이 필연이다."
마르크스의 시각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지속적인 공격을 받아왔다. 공장들은 문을 닫고, 일자리들은 증발하고, 노동조합은 와해되었다. 유구한 세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원들이 서로 맞서 싸우게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다. 인도에서 그것은 힌두 대 무슬림, 힌두 대 기독교, 달리트 대 아디바시, 카스트 대 카스트, 지역 대 지역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서로 맞서 싸우고 있다. 중국에서는 수없이 많은 파업과 소요들이 일어나고 있다. 인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부유한 기업들의 가는 길을 막아서려고 투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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