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 17권
혼불을 읽을때 온신경을 곤두세워 읽느라 읽고 나면 절로 기운이 빠진다.
가슴속에 남는 것은 많으나 긴장된 신경들이 갑자기 맥이 풀리니 기운이 절로 빠지는 것같다.
그래서 집중해서 읽는 책들 사이 간간히 좀 쉽고 재미나게 읽히는 책을 부러 찾아 읽게 된다.
이번주 월요일 학교 도서관 도우미 하러 가서 책 정리하다 문득 눈에 띄어 얼른 집어왔다.
책얘기에 대한 책에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사서선생님이 엄청난 일(?)을 시키셨다.
신간서적들 구입목록표대로 왔는지 몇 백권을 한 권,한 권 확인했으며,그림책들 일일이 옮기면서 정리했으며,심지어 그무거운 서가가 옆줄 서가보다 툭 튀어나왔다고 뒤로 좀 밀어야겠다기에 몇 백권의 책이 꽂혀 꿈쩍도 않는 기다란 서가를 힘으로 밀어부치는 작업까지ㅠ. 2월에는 장서점검한다고 한 권씩 일일이 빼서 스캔을 찍었다.몇 주째 일을 거들고 나니 한동안 팔,다리에 근육이 뭉쳐 팔을 들기 힘들정도였다.나는 정말 도서관 사서들은 도서관을 찾는이들에게 책을 소개해주고,틈틈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직업인줄 알고 얼마나 동경하였었는지 모른다.
헌데 도서 도우미 일 년동안 사서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틀을 깨버렸다.
사서는 우아한 직업이 아니고, 그야말로 책 먼지 뒤집어 쓰면서 매일같이 정리하면서 무거운 책 옮기면서 팔힘(?)을 써야하는 직업인 것을 이제사 깨달았다.
나는 고작 일주일에 한 번 가서 도와주고 도망쳐 오는 것이 다이지만 사서선생님은 몇 주동안 작업을 해야하니 많이 힘들어보여 고생 많으시겠다고 말씀드렸더니 2월달은 팔이 너무 아파서 한동안 밤에 잠을 잘 못이루었다고 하셨다.ㅠ
그래도 우리는 사서들 덕분에 잘정리된 좋은책들을 편안하게 앉아서 읽을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야할 것이다.
암튼...사설이 길었는데 팔이 근육이 뭉치게 일을 했었지만 혼자서 신이 났었다.
아이들책 중 한반도의 공룡책, 깨끗한 신간을 몽땅 다 빌려올 수 있었고,또 내가 읽을만한 책 중 가장 호기심이 갈만한 책을 빌려올 수 있다는 즐거움이 도우미 봉사활동을 해줌으로 충분히 보상받을만했기 때문이다.
읽는내내 식사 마친 후 중간에 디저트 먹는 기분으로 술술 읽혀 편안하고 즐거웠다.
작가들의 책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에세이형식으로 짤막하게 적혀 있어 그들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공감가는 부분들도 많았고,책에 대한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들도 많아 어떤 고정관념도 깨준다.
중 마음에 드는 구절들이 있어 적어본다.
나는 내 멋대로 글자들을 바꿔 읽을 뿐만 아니라 건성건성 글자들을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 습관은 짧은 시간에 되도록 많은 책을 읽으려는 욕심에서 시작되었을 거이다.그러다 보니 읽은 책은 많았어도 의미를 되새길 시간은 아예 갖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순간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뻥튀기가 떠올랐다. 와삭,와사삭. 뻥튀기 먹듯 책을 읽고 있는 내모습도 그려졌다.뻥튀기 가루처럼 책에서 떨어진 활자들이 내 옷에 떨어진다.
-하성란(소설가) 정독의 시간중
작가들도 책을 읽을때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사뭇 위안이 되면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구절들이다.뻥튀기를 와사삭 베어 먹을때 옷에 떨어지는 뻥튀기 가루가 활자라니! 상상할수록 더 재미나고 멋진 구절이다.역시 작가는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긴 다르다.
하긴,세상에는 책값보다 싸다고 여겨지는 것도 있다.날마다 우리 밥상에 오르는 갖은 곡식과 채소와 과일은 아직 그것을 가꾼 농사꾼의 땀값과 눈물값에도 미치지 못한다.포장마차 아주머니가 구워내는 국화빵이나 시장 귀퉁이 좌판에 늘어선 자잘한 물건들도 그정성과 쓸모에 견주어 턱없이 싸다.또, 책 한 권 값에 맞먹는 1만원 도 결코 하찮은 돈이라 할 수 없다.어떤 사람들에게는 몇 끼 허기와 갈증을 달래 줄 큰돈이 될 수도 있고,어떤 사람들에게는 며칠 생계를 이어갈 값진 돈이 될 수도 있다.그런 분들 앞에서는 감히 '책값이 싸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다.책 한 권을 보이며 읽어볼 것을 권하기에 '그러면 그책을 빌려달라'고 청하자 고개를 저으며."좋은 책은 빌려주는 게 아닐세.사서 읽어야지.그래야 책이 팔릴 것아닌가.책일 팔리면 출판없이 살고,출판없이 살아야 문화가 살고,문화가 살아야 나라가 사는 법이지." 또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다.즐겨 읽던 책 한 권을 들고 다니다가 버스에 두고 내렸다면서. "처음에는 좀 아까웠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까워 할 일이 아니더라고,누군가 그 책을 주우면 읽어볼 테고,그만큼 그 책이 더 많이 읽힐 게 아닌가.나는 기꺼이 책 한 권을 더 사겠네."
나는 아직 속물이어서 두 분 처럼 크고 높은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누가 책을 빌려 달래면 서슴없이 (또는 마지못해) 빌려주고, 어쩌다 책을 잃어버리고 나면 아까워서 끙끙 앓는다. 또, 나는 아직 책을 '위대한 정신세계의 표상'으로 대접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책도 다른 것과 다름없는 '물건'으로 칠 뿐이다.
하지만 물건치고는 괜찮은 물건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값도 어지간히 싸겠다,쓰면 곧 없어지는 다른 물건과는 달리 한 번 사두면 썩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아서 오래오래 쓸 수 있다.게다가 오래 묵을수록 값어치가 커져서,운이 좋으면 살 때보다 비싼 값으로 되팔수도 있다.이만하면 괜찮은 물건이 아닌가.
-서정오(동화작가) 책값, 그래도 싸다중
나는 개인적으로 책값이 싸다고 생각해본적이 별로 없다.물론 외식비나 옷값등 다른 물건들에 비하면야 훨씬 싼 것은 인정한다.한번씩 구입하는 책장을 고를땐 책 값보다 그것을 담는 책장이 훨씬 비쌀때 그나마 책값은 싼편이구나! 생각해보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딱 한 권만 사고 말 것이 아니잖는가! 식구별로 구입해도 벌써 다 섯 권이 되고,몇 만 원은 훌떡 넘는다.
사고 싶고,사야만 하는 책들은 아직도 수 십 권,수 백 권,수 천 권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돈으로 환산할적엔 책값 싸다는 말에는 쉽게 동의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또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속물일 수밖에 없나보다.
책을 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는 '물건'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한에서는 여적 속물이다.
그래도 내가 구입한 물건중에서는 이책들이 가장 귀한 물건이라고 큰소리칠 수 있고, 책값이 싸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니 그나마 책 좋아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