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이제사 알게 되었다. 그저 옛날 용어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도 눈에 띄거니와 책의 서문은 의미심장한 말이 많다.
밑줄을 긋다 보니 오늘도 밑줄 도배판이다.

임신중지의 합법화 이면에는 많은 사안들이 얽히고 설켜 합당한 여성들의 선택이 되기 위한 최종안이 되려면 아직도 험난함이 산재해 있다.
특히나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이 ‘태아적 모성‘이란 단어를 내세울 때는 임신한 여성 또는 임신하지 않은 여성들은 갑자기 할말을 잃게 만든다. 태아를 저버리는 또는 모성을 저버리는 무책임감을 나쁜 엄마로 몰아가니, 이것이 바로 ‘죄책감‘과 ‘수치심‘의 감정으로 교묘하게 규범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다.
부정적인 단어의 굴레에 얽매일 필요 없이
‘아이를 갖지 않을‘ 권리는 곧, ‘아이를 가질 권리 그리고 출산을 조절할 권리, 낳은 아이를 잘 기를 권리‘로 고쳐 고려되어야 함을 지적한 문구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이를 셋 낳아 어느 정도 다 키워 가고 있는 현재의 아이들 엄마인 나도 예전에 아이들이 많이 어렸을 때, 생리가 뜸하여 혹시 또 임신한 건가? 덜컥 겁이 났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이 셋 키우는 것도 아득한데 아이 넷을 키운다는 건 별개로 그저 눈 앞이 캄캄하였다. 다행히 아이 셋에 그쳐 낳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그때 네째를 임신 했었더라면 아마도 임신중지의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 생각에 미치게 되면, 늘 뒤따라오는 약간의 죄책감이 일곤 하여 기분이 썩 좋질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주변에 그런 일을 겪어 슬픔을 느끼는 사람도 지켜본터라 더욱 기분이 가라앉게 되는데, 서문을 읽으면서 조금씩 그런 죄책감을 떨쳐 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란 기대감이 인다.
더 읽어봐야 할 책, 그래서 공부가 될 책,
이번 달에도 그러한 책이 분명하다.

임신중지의 범죄화는 정치적이고 입법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법은 임신중지의 실제 실행 여부를 결정짓는다.
앞서 말했듯이 임신중지 관련 법은 모성 이환율羅患率(병에 걸리는비율) 및 사망률과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 다른 한편, 임신중지 관련 법이 상대적으로 자유화된 국가에서는 법이나 그 법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여성이 임신중지에 접근하는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 대체로 임신중지 법은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가 등장하기 전에 생겨났다.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는,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을 막아 자궁벽을 허무는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과 자궁을 확장해 임신을 막는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을함께 사용한다. 두 약물은 임신 9주까지에 해당하는 초기 임신에 1~3일 간격으로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때 이뤄지는인공유산은 언뜻 생리혈이 많이 나올 때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론상으로 여성은 임신 초기,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를 위해 일반의에게 처방전을 얻어 동네 약사에게 약을 받고 원할 때 복용할 수 있다.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 여성들은 차츰 이런 방식으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술을 통한 임신중지만 가능하거나 ‘뒷마당 임신중지‘(자가 임신중지를 일컬으며 암암리에 행해진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 옮긴이)를 우려한 법적 제약이 있는 곳에서는 승인된 의사만 임신중지를 실행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P16

진정한 선택이 가능하려면 임신중지를 합당한 선택으로 인정하고, 임신한 여성이 더 이상 임신상태를 지속하고 싶지 않을때 일상에서 문제없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임신중지가 통계상 평범한 일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규범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다. - P18

임신중지의 문화는 관련법이 만들어지는 데 바탕이 되기도 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단단히 매어 주는 도덕적·사회적 코드는 임신중지의 범죄화를 뒷받침한다. 모성과 결혼에 따라붙는 ‘정절‘이라는 엄격한 규범 내에서, 여성이 임신중지를 - P19

바란다는 것은 혼외 성관계나, 기혼 여성일 경우 모성에 대한 거부를 나타냈다. 임신중지에 대한 바람은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실제로는 널리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1970년대 전환기를 맞아 임신중지를 의료화한 나라들에서는 젠더화된 이런저런 권력관계 때문에, 임신중지 여부를 당사자 여성이 아닌 의사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실렸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법은 여성을 감정적이고 성급하고 나쁜 선택을 할 잠재성이 있는 존재로 여겨, 가부장적 가르침과 권위·지식 그리고 (남성의 속성인) 합리성을 갖춘 의사들의 관리 아래 두었다.  - P20

학자들은 임신중지에 가하는 ‘낙인‘과 이를 ‘끔찍한 일‘로 만드는 과정에 나타나는 규범적 제약을 연구하면서, 임신중지가
‘불쾌한‘부터 ‘혐오스러운‘에 이르는 부정적인 말로 표현될 때가 - P20

압도적으로 많다고 주장했다. 임신중지는 필요한 것으로 여겨질 때조차 피해야 할 것, 여성에게 불가피한 고통을 안기는 것으로 지목되기 일쑤다. 임신중지가 끔찍한 일로 낙인찍힐 때, 모성은 임신에서 문제없이 도출되는 유일한 산물로 그려지며, 다시금 임신중지는 비정상적이고 여성에게 해로운 선택이 되고 만다. 이와 관련한 감정의 목록이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경험이라고들 말하는 ‘괴로움‘과 ‘애통함‘ 같은 특정한 감정이 임신중지를끔찍한 일로 만들며 (2장과 3장 참고), ‘수치‘를 통해 낙인이 내면화된다(4장 참고).
- P21

내가 이 책에서 ‘태아적 모성‘을 말할 때 드는 도식은 이런 내용을 망라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재생산과 결합하고, 모성은 여성의 기준점이 되며, 임신은 어머니가 독립적 개체로서의아이와 맺는 관계라는 것이다.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중요한 건 태아적 모성이 인종·계급 등을 축으로 해 여성을 ‘착하고 책임감 있는 어머니‘와 ‘나쁘고 무책임한 어머니‘로 구별한다는점이다. 그런데 임신중지 여성은 자신이 배태한 배아나 태아의 어머니가 되지 않기를 선택하며, 임신에 대해 주체로서 자기 위치를 주장한다. 따라서 임신중지라는 선택은 태아적 모성이라는규범과 그에 따른 숱한 문화적 산물에 균열을 내려 한다. 그렇기때문에 임신중지가 그토록 논쟁적인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 P28

 장애가 있는 태아에대한 선택적 임신중지는 여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뿐더러 장애차별을 가중시킨다. 또한 어떤 아이가 장애를 면해야 한다는 믿음은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평가 절하할 수 있다. 하지만 태아보다 임신한 여성에게 초점을 두는 임신중지 모델에서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의 돌봄을 주로 맡은 이들이 엄마임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돌봄은 종종 비용이 많이 들고 평생 헌신해야 할 일일 수 있다. 우리는 장애인을 위한 더 나은 지원망을 만드는 일이, 장애가 있는 태아의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여성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리라고 주장함으로써 여성의 선택을 지원할 수 있다. - P29

임신중지의 정당성은 단지 임신상태로만 판가름되는 게 아니다. 캐럴 생어가 지적하듯 "출생이라는 복잡한 사건 외에, 성인 여성의 삶을성인 남성의 삶과 구별짓는 육아의 의무, 즉 모성의 사회적 결과"
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책에서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을 담론적 열망이 투영된 존재로 바라보지만, 그는 물질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여성이 경제·사회적 조건상 양육을 할 수 있을 때라야 임신중지 역시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임신중지의 권리와 더불어 유급 양육 휴가나 국가 양육 보조금등의 조치를 얻기 위한 싸움이 함께 가야 한다.
- P32

임신중지에 대한 규제는 재생산과 관련해 여성의자유를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 중 하나이며, "아이를 갖지 않을"
권리는 "아이를 가질 권리 그리고 출산을 조절할 권리, 낳은 아이를 기를 권리"와 함께 고려돼야 한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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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8-16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은 사랑입니다ㅎㅎㅎ
미국의 상황도 있어서 시기적절한 읽기인것 같아요. 어렵게 얻은 권리를 빼앗긴다는건 정말 화가날것 같은데...
반대자들의 시위모습, 인터뷰할때 험악한 표정보면 요즘 시기에
타인의 몸에 관해 이렇게나 당당하게 침해하는 사안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이 책 읽기 속도를 내 봐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22-08-16 09:14   좋아요 1 | URL
밑줄은 사랑이 맞나요??ㅋㅋㅋ
완전 전 문장이 다 밑줄이어 어떤 밑줄을 골라야 할지 모를 서문이었습니다.
서문이 이렇다면 본 내용은????
밑줄 긋기가 두려워지네요??ㅋㅋㅋ

시위모습이나 기사는 찾아 보진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종종 전해 듣는 소식만으로도 합법화를 위해 오랜 기간 분투해 왔을 그 시간들에는 충분히 공감되고, 많은 생각들을 가지게 됩니다.
여성이라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요^^

맘 잡고 읽기 시작한다면 모든 문장들이 공감되고, 몰랐던 부분들을 많이 알게 되는 책이네요~
어제까지 휴일!
월요일 같은 화요일!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