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참여했었던 남자들은 훈장을 보여주며, 승리자와 영웅으로 떠받들어 주는 그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여자들은 평범한 여자의 생활이라도 누리고 살아가려면 전쟁에 참여했었던 과거를 침묵하고, 훈장을 숨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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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츠를 시장에 내다팔고 구두를 샀지. 처음으로 원피스를 입었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거울 앞에 서서도 내가 나를 못 알아보겠는 거야. 4년 동안 바지를 벗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부상당한 몸이라고 누구한테 털어놓겠어? 말했다가, 나중에 직장도 못 구하면 어떡하라고결혼은? 우리는 물고기처럼 입을 다물었어. 전선에 나가 싸웠다는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지. 하지만 우리끼리는 계속 연락하며 지냈어.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사람들은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기시작했지. 30년이 지나서야. 모임에 초대도 하고 ・・・・・・ 처음에 우리는 과거를 숨기며 살았어. 훈장도 내놓지 못했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분하고 억울했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전선에서는 남자들이 우리를 존중했고 항상 보호해줬는데. 그런데 이 평온한 세상에서는 남자들의 그런 모습을 더이상 볼 수가 없는 거야. 퇴각하다가 땅바닥에 누워 쉴 때면 우리에게 자기들 외투를 벗어주고 본인들은 얇디얇은 군복만 입고 버티던 남자들이었는데, ‘우리 소녀병사들 우리 소녀병사들부터 덮어줘야지.… 그러면서. 어디선가 솜이나 붕대 조각 같은 것을 구해와서 가만히 ‘자, 받아, 필요할 거야..….‘라며 건네주기도 했어. 수하리 하나라도 있으면 같이 나눠 먹었지. 전선에서 남자들은 따뜻하고 선량했어. 다른 모습은 본 적이 없어. 그런 건 아예 알지도 못했지.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차라리 아무 말 않겠어. 아무 말도·· 무엇이 우리의 추억을 훼방 놓는 줄 알아? 그 추억들을 견딜 수가 없다는 점이야... - P221
지금은 전쟁박물관에서 자주 초청을 받아 ・・・・・・ 답사여행을 이끌어달라는 요청을 해오지. 그래, 지금은 그래. 40년이나 지난 지금은 장장 40년만에! 얼마 전에 젊은 이탈리아인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했어. 꼬치꼬치 한참을 묻더군. ‘어떤 의사한테 치료를 받았나요?‘ ‘어떻게 아팠나요?‘ 이상하게도 그들은 내가 정신과 의사한테 상담은 받았는지 어땠는지, 궁금해하더라고. 그리고 내가 무슨 꿈을 꾸는지도 ‘전쟁에 대한 꿈을꾸시나요?‘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서 싸운 러시아 여인이 그들에겐 수수께끼인 게지. 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전장에서 부상자들을 구해내고 상처를 돌보는 것도 모자라 직접 총을 쏘고 폭탄을 터뜨렸을까.. 남자들을 서슴없이 죽이고………… 또 ‘결혼은 했느냐‘고 묻더라고. 내가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는 눈치였어. 혼자일 거라고 웃었지. ‘다들 전쟁에서 트로피를 가져왔지만 나는 남편을 데려왔죠. 딸도 있어요. 지금은 손자들이 자라고 있지요. 당신한테 사랑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 지금은 못하겠어, 마음이 그래. 다음에 할게………… 당연히 사랑도 있었지! 암, 있었고말고! 사랑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살아남을 사람이? 우리 대대장이 나한테 반해서는……… 전쟁 내내 나를 보호하고 다른 사람은 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지. 제대하고는 병원에서 나를 찾았어. 그때 고백을 하더군・・・ 뭐, 사랑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또 와, 꼭 다시 와 내 둘째 딸 하자고 나는 당연히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어. 아이들을 좋아하거든. 하지만 딸 하나밖에 못 얻었어...딸 하나...건강도 안 좋았고 그럴 여력도 안 됐으니까.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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