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시에서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야생의 포유류인고양이는 때때로 문명의 시간을 허덕이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특별한 영감으로 디가오곤 하는데요, 고양이의 아름다운 사대와 심세한 몸짓, 그리고그들의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이 가신 신비로운 아우라는, 문명과 사회라는안정적 체계를 거스르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로 걸어 나가는 예민한 예술가들의 행보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P140

농부일지 농부의 아내일지 모를 그 누군가의 무게를 토해내고 난 뒤 비로소 조용히 쉬고 있는 구두의 모습은 일종의 초상화처럼 고유한 존재감을 발합니다. 그리고 이 고단한 사물을 통해 누군가의 초상화를 마주하는 것 이상으로 삶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작은 정물화 앞에서, 그것도 어디 한 곳 예쁜 구석조차 없는 낡은 구두 앞에서 이렇게 길게머무르며 우리네 고단한 삶에 대해 사색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합니다.
예술가는 늘 한자리에 있는 사물과 풍경에 존재감을 심어주고 그것으로부터 삶의 의미가 새어 나올 수 있도록 틈을 벌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화가만의 노동, 처절한 관찰과 사색을 통해 말 없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조용한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죠.
- P146

우리가 만나는 그림 속 소녀의 생명력은 사진 같은 생생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이 작품에 생명력을 심어 놓은 것은 평범한 듯보이는 일상 속에서 아름다운 빛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 화가가 기다린 시간들입니다. 그 느리고 끈기 있는 붓질이 작은 화면에 고스란히 안착되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이름 모를 소녀의 빛나는 자태와, 그녀와 눈 맞추며 캔버스 앞에 있었을 페르메이르의 즐거운 기다림과 인내가 그림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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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멋있지도 않고 매력적인 구석 또한 발견할 수 없는교황의 초상화가 막 완성되었을 때 이노센트 10세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Troppo Vero!(너무 사실적이야!)"라고 말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절대 부정할 수 없는, 더 추하지도 더 미화되지도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 사실성에 감동한 것이죠. 교황은 그 이후 벨라스케스의 최고 후원자가 되었고 그를 열렬히 지지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교황은 어쩌면 늘 자신을 두려워하고 비위나 맞추려 드는 주변 사람들보다 자신이 고용한 이 초상화가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진정성을 더 진하게 느꼈을지 모릅니다.
- P92

어떤 작가에게나 창작은 모종의 비밀스러운 과정을 거쳐이루어지죠. 온몸이 근질근질할 만치 표현해 내고 싶은 대상이 나타났을 때작가는 자신만의 작업장으로 숨어들어 갑니다. 홀로 틀어박혀 세상에 없던것을 빚어내는 순수한 몰입의 순간, 그것은 화가 스스로의 존재마저도 잊게할 만큼 매혹적이었던 대상에게 바치는 열정이라 할 수 있죠.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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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들은 예수의 말이 현실에서는 무력하고 그 무력이 언젠가는 폭로되리란 것으로 결론지었다. 예수는 결국 사랑밖에는 이야기 하질 않았다. 사람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사랑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사랑이이 현실세계에서 얼마나 무력한가를 지도자인 랍비들은 오랜 세월 동안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들은 그저 예수에 대한 환멸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자극시키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다.
- P194

"고통당하고 있는 병자를 고쳐 주고 싶었어도 못 고친 예수 쪽이오히려 우리들에게는 친근감마저 느끼게 되는 걸요. 능력 있는 예수는 나에게는 손에 미치지 않는 먼 존재처럼 생각돼요……." - P196

"어째 자넨 그 쥐씨에게 그리도 흥미가 끓는 거지?"
나와 일생 동안 매일 함께 살아왔다 해도 마음에 흔적을 안 남긴상대가 있는가 하면 오직 단 한 번뿐인 만남인데도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남기는 인간도 있다. 그리고 또 그 때는 그것을 안 느꼈다가도그 뒤로 한참 잊고 있다가 오랜 세월 뒤 갑자기 궁금해지는 자가 있다. 쥐수도사는 지금 내게 그런 작용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 울어부은 것 같은 눈을 한 빈약한 수도사를.…….
"묘한 생각인데."
나는 차창을 손가락으로 쓸며 중얼댔다.
"이 나이가 되니 예수를 따랐던 열두 명의 훌륭한 제자들보다도 예수를 버리고 간 제자들 쪽에 더 신경이 간단 말야. 결국 쥐수도사나 나나 그 실패작의 제자와 비슷해선가………. 자네는 어때?" - P203

"마태가.... "
라고 나는 탄식했다.
"부러진 안경다리를 실로 꿰고 있던 사람인가?"
"왜 그래?"
"그 신부는 어떻게 감히 그럴 수가 있었던 거지 ?"
"왜냐고?"
도다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말을 했다.
"예수의 죽음을 흉내내 본 거겠지."
"그럼 예수의 죽음이 그를 감동케 안했다면… 그는 그런 행위는할 수 없었을 것 아냐."
"그야 그렇지."
"예수의 부활이란 인간이 그러한 사랑의 행위를 이어받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도다가 공손히 끄덕여 준 것이 내게는 의외였다. 그러나 끄덕인 뒤 도다는 천정을 향한 채 생충하게 한마디 뱉었다.
"그렇지만 말야. 그 신부가 죽었는데……… 젊은 사내도 결국 살지 못했잖아. 우리의 현실도 그런 거라구. 변화가 있을 리 없지."
노작 신부가 힘들게 구한 우유를 무라도는 한모금도 안 마시고 결국은 죽고 말았다. 마태 신부가 몸값을 대신해 준 젊은 사내도 결국은 수용소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수용소 안에는 마태 신부 같은 인종과 쥐씨 같은 인종이 있다. 마태형의 인간은 하루에 단 한 번밖에는 나눠 주지 않는 쿠페빵을 지친 이웃에게 몰래 건네 주고는 처형에 걸린 젊은 사내를 구해 주기 위해 희생됐다. 그러나 쥐씨 타입의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러한 흉내를 해낼 수가 없다. 세상에는 예수가 버리고자 하는 인간도 있을 것이다.
- P240

엔도: 동반자인 예수의 발견은 결국 예수가 우리 속에 부활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에또 : 그것이 즉 부활입니까.
엔도 : 네, 무력한 예수가 아니었으면 부활이 있을 수 없었지요. 번창하거나 훌륭한 인물의 부활은 별 의미가 없어요. 이 세상에서 무력한 인간이었기에 부활의 의미가 있고 부활이라는 기독교적인 의미가 있는 거지요. ‘침묵‘ 을 초월하려던 것이 그런데 있었던 겁니다.
손만 잡아 줄 뿐 기적은 행하지 못한 것은 ‘동반자‘ 라서지요.
예수는 언제나 언제든지 신은 우리를 버렸다라고 한탄을 하시고 이 세상 끝날까지도 우리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지요. 그것이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가능해진 겁니다. 결국인간의 영원한 동반자가 된 것이지요. 나는 그 대목을 목청을돋우어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없었으면 무력한 예수를 쓴의미가 없는 거지요.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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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자네는 저 의원들이 말한 대로 민중을 선동한 사실이 있는가?"
"나는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의 비극적인 인생을 내것으로 하여......
그것을 사랑해 온 것뿐이오."
"황제는 오래 못갈 것이라 했다는데?"
"황제보다도 예루살렘보다도 로마보다도 오래오래 존재하는 게 있다고 했을 뿐이오..‘
빌라도는 고개를 흔들었다. 파리가 깃소리를 내면서 벽에 멎어 안움직인다.
"무엇이 로마보다도 오래오래 존재한다는 겐가?‘
"인간의 슬픔을 만진 내 자국."
사나이는 침착한 소리로 중얼댔다.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아파한 그 상처, 그것은 지워지지않을 거라고 했소." - P172

"바라바."
그리고 군중도 거기에 응했다.
"바라바를, 바라바를 주시오."
빌라도는 뒤돌아보며 광대 같은 꼴의 사나이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네. 나는 자네를 버릴 수밖에 없네."
그리고 나서 다시 발코니보다는 어두운 실내로 돌아와서 또다시 작은 목소리로 중얼댔다.
"나는 자네를 버릴 수밖에 없어....…."
그것을 입에 담자 그는 문득 옛날 일이 생각났다. 애지중지 자기를길러준 모친에게도 같은 말을 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나는 한 인간 때문에 뜻하잖은 소동을 피우고 싶진 않아요. 총독의 자릴 지키려니 하는 수 없습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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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날 화가가 자신의 집 창문 너머로 바라본 것은 나이 든 여인의 연약함이나 초라함이 아닙니다. 젊음과 두 다리라는 날개는 잃었을지언정 자신의 세계 안에서 나름의방식으로 날고자 했던 그녀의 강인한 생명력을 화가는 포착했던 게 아닐까요? 크리스티나의 몸짓은 장애와 시련 앞에 무릎 꿇은 좌절이 아니라 허락된생을 살아가는 숭고함이자 희망인 것입니다.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20세기범람하던 미국 유수의 현대 미술을 제치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공감하는 회화로,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당당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이 그림은 많은 이들이 절망적이라 여기는삶을 극복했던 그녀의 특별함을 인정하고자 하는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 앤드류 와이어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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