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서 정확한 듯 현혹시키는 기법을 옹호했던 달리는 바로 이때문에 1929년의 그의 에세이 사진의 사실」에서 대물렌즈를 찬양하며, 이 "완벽하고 정확한 기계장치"는 "피로를 느낄 줄 모르고 속눈썹이 없는 투명한 눈의 시각"(=렌즈)으로 최고의 순수함과 시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모든 것, 움직이는 세상의 움직이는 모든 것은 신의 품 안에 있다.
그러므로 포기하고 즐겨라. 그리고 남들의 것을 탐내지 마라.

이 시의 힘이 매우 강해서 그는 부유함과 이전의 음란한 생활을 버리는 과정을 시작했고, 가족과 재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가장으로 남아 있으면서기도하고 자선을 베풀었다. 이런 아버지와 유사한 정신으로, 그의 아들타고르는 셔더가에서 있었던 일을 경험한 후에 ‘포기하고 기뻐하도록 마음을습관화하는 것을 실천했다. 타고르의 도식에 따르면, 우리는 인생의 셋째단계를 시작할 때 그런 풀어버림과 포기가 삶의 표준이 되게 하기 시작한다. - P226

서양에서는 사람들이 평생 열심히 일한 후에 늙어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을 때, 인생의 후반기가 점점 더 죽음과 갈등을 빚고 싸우는 시기가 되었다.
스위스의 시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삶의 기술이란 죽음과 친구가 되는 기술이라고 여겼고, 잘 알려진 것처럼 타고르는 죽음이란 단지 새벽이가까워질 때 등잔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옥스퍼드 대학 강연에서 그는 죽음이란 오직 우리가 그것을 손님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잊었기 때문에정복자로서 오는 진리라고 말했다.
- P228

얘야, 너희를 사랑스럽게 부르는 게 누군지 모르니?
왜 그렇게 무서워하니?
죽음이란 네가 삶이라 부르는 것의 다른 이름일 뿐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란다.
이리 와서 죽음을 껴안아주렴!
이리 와서 죽음의 손을 잡아주렴!
(타고르, 〈끝없는 죽음)) - P236

진실한 그리스도교 기도에는 항상 (카시아누스의 ‘고요한 마음‘, 머튼의 ‘명료함‘등) 마음챙김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헌신에 기반한 종교이므로 가슴챙김의 헌신적 사랑으로 단순한 알아차림을 보완해야만 한다. 사실 그리스도교 기도는 마음챙김을 넘어서는 마음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슴챙김‘이라는 말을 그리스도교 기도의 중심 개념으로계속 사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마음챙김, 혹은 그보다 가슴챙김‘은 그리스도와 성령과 아버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관계를 중심에 두는 기도 형태다. - P247

따라서 기도, 마음챙김, 관상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부가 장치‘가 아니라 사실상 그리스도인의 삶에 정체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도(그리스도교적 마음챙김)는 종종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하는것이다. 기도는 반대 방향의 소용돌이이고 모순의 표식이며 ‘요나의 표징‘
이다.
그리스도교를 마음챙김하는 활동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마음챙김 방법을 도입할 수 있지만, 항상 십자가형을 당하고 부활한 구루 예수의 사랑을 중심에 둔 ‘행동하는 관상‘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 P248

나를 창조해주신 것과 구속해주신 것, 특별한 선물로 받은 은혜들을 기억하고, 우리 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일을 하셨으며 또 주님이 …나에게 얼마나 많이 주셨는지 숙고한다. …
하나님께서 물질의 원소에게 존재를 주시고, 식물에게는 자라게 하시고, 동물에게 감각을, 사람에게 사고력을 주시면서,모든 피조물 안에 머물고 계시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생기를 주시고, 감각을 주시고, 이해하게 하시면서…
크게 감동하여 봉헌하는 사람으로서 말한다. ‘가지소서, 주님,그리고 받으소서. 저의 모든 자유와 기억과 지성과 의지를, 제가 가진 것과 제게 있는 모든 것을.
제게는 당신의 사랑과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넉넉합니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영신 수련」 98쪽) - P2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은 일상의 체험 세계에서는 합쳐질 수 없는 것들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물고기가 하늘에, 마네킹이 광장에 등장하고, 인간 · 동물 · 기계가 혼합된 형상이 묘사되고, 기괴한 식물이 꿀꺽 삼키는 비행기들이 그려진다. 이러한 종류의 결합은 수없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대담하게 연출되어, 시적이거나 해학적이거나 극적이거나 당혹스런 효과를 자아낸다.
- P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통은 당신을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역설적이게도 고통의 원인은 형상과의 동일화이지만, 그 고통이 형상과의 동일화를 무너뜨린다. 고통의 많은 부분은 에고에 원인이 있지만, 결국에는 고통이 에고를 부순다. 단, 고통에 의식적으로 깨어있을 때만 그 일이 가능하다. ... 에고의 많은 잘못된 가정 중 하나, 많은 망상 중 하나는 "나는 고통받지 않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 이런 생각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다. 고통은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의식의 진화와 에고의 불태움이 그것이다. ... 깨어 있는 의식으로 고통을 경험할 때,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고통의 불꽃은 의식의 빛이 된다. ... 고통을 초월하려면 고통에게 먼저 "예"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것이 진리다. - P144

자기 자식이 자신을 필요로 하기를비라는 욕구를 내려놓지 못한다. 심지어는 아이가 마흔 살이 되어도 부모는 "무엇이 너를 위해 가장 좋은지 내가 안다." 라는 관념을 내려놓을 수 없다. 부모라는 역할을 강박적으로 계속해서 연기하고 있으며, 따라서 진정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할로 자신의 존재를 정의 내리는 부모는 부모임이 중단되었을 때 정체성을잃게 되는 것을 무의식중에 두려워한다. 성인이 된 자식의 행동을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욕구가 좌절되면, 보통은 그렇게되지만, 그들은 자식을 비난하거나 불인정하고 자식이 죄책감을느끼게 만들려고 한다. 이 모두가 부모로서의 역할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시도이다. 표면적으로는 자식을 염려하는것처럼 보이며 또 본인도 그렇게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역할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에고가 지배하는 모든동기는 때로는 에고가 작용하는 본인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영리하게 변장을 하고 있지만, 자기 강화와 자기 이익을 위한것이 대부분이다.
부모 역할과 동일화되어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을 통해더 완전해지려고 한다. 자신이 끊임없이 느끼는 결핍감을 채우기위해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는 에고의 욕구가 이제는 자식을 향한다.  - P139

일단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해 오고 있었는지 알게 되면 그것의무익함도 보게 되며, 그무의식적인 패턴은 저절로 막을 내린다. 알아차림은 변화를 위한 가장 큰 촉매이다.
- P140

에고의 방식은 아무리 오래 계속된 것일지라도 당신이 그것들에 내면적으로 대항하지 않으면 거의 기적적으로 소멸될 때가 있다. 대항은 에고에게 다시 살아나는 힘을 줄 뿐이다. 하지만 비록 그들의 에고적 방식이소멸되지 않는다 해도 부모의 행동에 하나하나 반응할 필요 없이,
즉 그것을 그들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받아들일 수 있다.
- P141

오직 형상 너머의 ‘존재‘ 자원에서만 두 사람은 동등하다. 자신 안에서 형상 없는 차원을 발견할때만 그 관계에 진정한 사랑이 있을 수 있다. 이 ‘존재‘가 당신이며시간을 초월한 ‘있음‘이다. 그 ‘존재‘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그 자신을 알아볼 때, 이 경우는 아이 안에서 알아볼 때,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즉 자신의 존재를 부모가 알아본다고느낀다.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때 그 다른 사람의 ‘다름‘은 순전히 인간적인 영역, 형상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환상임이 밝혀진다. 모든 아이 안에 있는 사랑에대한 갈망은 형상 차원뿐 아니라 존재 차원에서도 부모가 자신을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갈망이다. 부모가 인간 차원에서만 아이를존중하고 존재 차원을 소홀히 한다면, 아이는 그 관계가 불충분하며 절대적으로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져 있다고 감지할 것이다.
아이의 내면에 고통이 쌓이고, 때로는 무의식중에 부모를 원망할것이다. "왜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거야?" 아이의 고통과 원망은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당신의 ‘존재‘를 알아볼 때, 그 알아봄이 두 사람을 통해이 세상 속에 더 많은 ‘존재‘의 차원을 끌어들인다. 그것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사랑이다. - P148

어떤 상황에서는 역할과 동일화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것, 그것이 우리들 각자가 이곳에서 배워야 할 삶의 예술이고 가장 중요한 배움이다. 만약 어떤 행동이 자신의 역할 정체성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고 따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다만 행동 자체를위한 것이라면, 그때 무엇을 행하든 간에 당신은 매우 강력해진다. 모든 역할은 허구의 자아의식이며,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이 개인적이 된다. 그럼으로써 마음이 만들어 낸 ‘작은 나‘와 그것이 연기하는 역할에 의해 오염되고 왜곡된다. - P149

"나는 언젠가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에고이다. 에고로부터의 자유는 사실 큰 일이아니라, 아주 작은 일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은 정말로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깨어 있는 ‘바라봄‘이다.

선에서는 "진리를 추구하지 말라. 다만 자신의 의견을 소중히여기는 마음을 멈추라."라고 말한다. 무슨 의미인가? 마음과의 동일화를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마음 너머의 ‘나는 누구인가가 저절로 모습을 나타낸다.
- P1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행의 주요 원인은 결코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당신의생각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을 알아차려야 한다. 생각을 상황으로부터 분리시켜이 한다. 상황은 언제나 중립적이며, 언제나있는 그대로이다. 반대편에는 상황이나 사실이 있고, 이쪽에는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대신, 사실과 함께 머물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나는 망했어."는 하나의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당신을 한정 짓고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통장에 달랑 500원밖에 남아 있지 않아."는 하나의 사실이다. 사실과 대면하면 반드시 힘이 솟아난다. 대부분 당신이 생각하는 것들이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알아차려야 한다. 생각과 감정 사이의 연결을 보아야 한다. 생각과감정이 되는 대신, 그것들의 배후에 있는 알아차림이 되어야 한다.
행복을 찾아다녀서는 안 된다. 찾아다닌다면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찾아다닌다는 것은 행복의 안티테제(헤겔의 변증법에서, 첫째 단계를 부정하는 둘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교묘히 달아나지만,
불행으로부터의 자유는 지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대신 있는 그대로와 마주함으로써 가능하다. 불행은 진정한 행복의 원천인 심신의 조화와 내적 평화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숨겨 버린다.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