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 움직이는 세상의 움직이는 모든 것은 신의 품 안에 있다. 그러므로 포기하고 즐겨라. 그리고 남들의 것을 탐내지 마라.
이 시의 힘이 매우 강해서 그는 부유함과 이전의 음란한 생활을 버리는 과정을 시작했고, 가족과 재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가장으로 남아 있으면서기도하고 자선을 베풀었다. 이런 아버지와 유사한 정신으로, 그의 아들타고르는 셔더가에서 있었던 일을 경험한 후에 ‘포기하고 기뻐하도록 마음을습관화하는 것을 실천했다. 타고르의 도식에 따르면, 우리는 인생의 셋째단계를 시작할 때 그런 풀어버림과 포기가 삶의 표준이 되게 하기 시작한다. - P226
서양에서는 사람들이 평생 열심히 일한 후에 늙어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을 때, 인생의 후반기가 점점 더 죽음과 갈등을 빚고 싸우는 시기가 되었다. 스위스의 시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삶의 기술이란 죽음과 친구가 되는 기술이라고 여겼고, 잘 알려진 것처럼 타고르는 죽음이란 단지 새벽이가까워질 때 등잔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옥스퍼드 대학 강연에서 그는 죽음이란 오직 우리가 그것을 손님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잊었기 때문에정복자로서 오는 진리라고 말했다. - P228
얘야, 너희를 사랑스럽게 부르는 게 누군지 모르니? 왜 그렇게 무서워하니? 죽음이란 네가 삶이라 부르는 것의 다른 이름일 뿐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란다. 이리 와서 죽음을 껴안아주렴! 이리 와서 죽음의 손을 잡아주렴! (타고르, 〈끝없는 죽음)) - P236
진실한 그리스도교 기도에는 항상 (카시아누스의 ‘고요한 마음‘, 머튼의 ‘명료함‘등) 마음챙김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헌신에 기반한 종교이므로 가슴챙김의 헌신적 사랑으로 단순한 알아차림을 보완해야만 한다. 사실 그리스도교 기도는 마음챙김을 넘어서는 마음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슴챙김‘이라는 말을 그리스도교 기도의 중심 개념으로계속 사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마음챙김, 혹은 그보다 가슴챙김‘은 그리스도와 성령과 아버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관계를 중심에 두는 기도 형태다. - P247
따라서 기도, 마음챙김, 관상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부가 장치‘가 아니라 사실상 그리스도인의 삶에 정체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도(그리스도교적 마음챙김)는 종종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하는것이다. 기도는 반대 방향의 소용돌이이고 모순의 표식이며 ‘요나의 표징‘ 이다. 그리스도교를 마음챙김하는 활동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마음챙김 방법을 도입할 수 있지만, 항상 십자가형을 당하고 부활한 구루 예수의 사랑을 중심에 둔 ‘행동하는 관상‘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 P248
나를 창조해주신 것과 구속해주신 것, 특별한 선물로 받은 은혜들을 기억하고, 우리 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일을 하셨으며 또 주님이 …나에게 얼마나 많이 주셨는지 숙고한다. … 하나님께서 물질의 원소에게 존재를 주시고, 식물에게는 자라게 하시고, 동물에게 감각을, 사람에게 사고력을 주시면서,모든 피조물 안에 머물고 계시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생기를 주시고, 감각을 주시고, 이해하게 하시면서… 크게 감동하여 봉헌하는 사람으로서 말한다. ‘가지소서, 주님,그리고 받으소서. 저의 모든 자유와 기억과 지성과 의지를, 제가 가진 것과 제게 있는 모든 것을. 제게는 당신의 사랑과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넉넉합니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영신 수련」 98쪽)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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