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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최재천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삶은 어떤 형태로든 결국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걸 일깨워준 인생의 가장 소중한 두 생명, 아내와 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고백으로 따듯한 생명의 이야기들의 빗장을 연다. 그리고 '알면 사랑한다'는 신념을 품고서 동물들을 알면 알수록 그들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은 그렇게 밖으로 향한 시선으로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면 우리 자신도 더 사랑하게 될 거라는 기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처음에는 동물세계의 뜻밖의 모습과 그에 비교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공감이 기대를 채워줬다. 하지만 읽을수록 놀라움에 대해서는 둔감해가고, 동물과 인간을 비교하는 것이 억지스럽고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졌다. 저자도 동물의 모습을 근거로 인간과 그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것이 자연주의적 오류임을 알지만, 인간이라는 위선의 탈을 벗고 지극히 동물적으로 살아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울화가 치밀어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이에 공감했지만 부정적인 느낌은 점점 짙어졌다.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문제들 대부분은 그런 접근법이 아니어도 이미 문제로 인식된 것들이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 문제들에 대한 뚜렷한 주장이나 비판도 찾기 어려웠다.
이런 부정적인 느낌은 책을 읽어가다가 오랜동안 잊고 있던 시선과 마주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눈맞춤은 저자가 생명을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을 그대로 전하려 했고, 바로 그 相生의 시선으로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려 했을 뿐이었음을, 그리고 그래서 똑 떨어지는 결론이나 맹렬한 비판으로 인간을 훈계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건 바로 어릴적 함께 뛰놀던, '쫑'이라 불리던 개의 그 깊이 모를 검고 따듯한 눈빛과의 재회였다. 그리곤 아버님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정원에 아침 일찍 물을 준 후에 쫑과 함께 앉아 바라보던 꽃과 풀들의 잔잔한 춤사위와 평화, 그리고 사춘기 시절 미칠 듯 답답한 가슴을 그대로 품어줬던 바위산을 바라보던 시선이 되살아났다. 문득 떠오른 쫑의 검은 눈망울은 그렇게 내 시선 속에서 하나로 녹아있던 세계에 대한 상실을 비춰 주었다.
이런 상실은 다른 존재들을 폄하하는 인간의 미숙함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우린 학교에서 모든 생명들은 인간보다 질적으로 낮은 존재로, 단지 관찰하고 분석해서 이용하는 대상으로만 보도록 교육받는다. 그렇게 타자를 낮춰야만 자신이 높아지고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고 보는 미숙함에 붙들리게 만다. 모든 동물은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폄하되어, 마치 모든 행동이 정해진 로봇처럼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따듯한 눈맞춤을 잃어버린 후에는 주변의 생명들과의 사이에 문명이라는 높고 단단한 벽을 쌓아버린다. 그 안쪽 높은 곳에 자리한 서울 시내의 야경은 정말 매력적이지만 날이 밝고 그 욕망의 불꽃이 꺼진 새벽에 드러나는 서울의 알몸은 몸의 구석구석에 기계와 콘크리트를 박아놓은 괴물이다. 바로 그 문명의 벽 안에서 우린 이런 주검에 무감각해져 가고, 생명을 갉아먹으며 자라나기만 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단절과 상실의 벽에 작은 균열을 만든다. 그리고 그 틈새로 본능이라는 단순한 기계적인 조건반사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힘이 생명 안에서 춤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만히 생명을 바라보면 헌혈하는 박쥐, 거짓말하는 동물, 어미의 죽음을 추억하는 동물 등 나름의 언어와 사고, 희생과 동려애, 합리성과 진보성이 발견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오랜 시간동안 상생해온 생명의 논리가 동물들의 삶에서 그 아름다운 비밀을 드러낸다. 단순히 약육강식의 생존의 논리만이 존재한다고만 보는 그런 편견어린 시선에 균열을 만들어 잃어버린 시선의 빈자리를 일깨워 준다.
우리의 목소리를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면 모든 생명들 속에 담겨있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 아름다움에 우리의 얼굴을 비춰보면서 성숙해 갈 수 있음을 그렇게 전해 들었다. 그리고 어릴적 나를 포근히 지켜봐준 주변의 모든 생명들의 소중한 눈길, 그 따듯한 눈맞춤이 무엇이었는지, 그 소중함을 새삼스레 되뇌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