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vs 남자 - 정혜신의 심리평전 1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안되는 일이 없으면서 정작 되는 일도 없는 나라, 우리 나라의 기묘함을 잘 나타낸 표현이다. 전세계가 놀랄만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불가능이 없는 우리에게 IMF도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희생양이된 가난한 사람들의 핏값은 어디로 갔는지, IMF를 탈출한 우리 서민의 삶은 더욱 힘겨워지고 있다.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많으면서도 빚더미에 앉아있고, 공부를 가장 많이 시키면서도 학문적인 업적은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자화상은 정말 신비하다. 이 책은 그 나라에서 이름 꽤나 날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신비한 소용돌이 속에서 성공한 이들의 뒷모습을 벗겨내서 그 위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조바심과 열등감, 집착과 상처들을 비춰준다. 그렇게 이 나라의 신비를 까밝힌다. 그 성공의 거대함만큼이나 커다란 그늘을. 이성과 자유는 당연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도 그것만큼 현실에서 찾기 어려운 것도 없다. 위에 언급한 것과 뭔가 관련이 있는 듯한 이 신비를 들여다 보면, 자유롭고 이성적이라는 의식의 그늘 깊숙한 곳에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우리를 움켜쥐고 있고, 자유로운 선택이 실은 그 힘에 붙들린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나도 이해할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다른 나'가 내 안에 숨어있음을 발견하는 당혹감.

그렇게 이성의 시야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 우리의 알몸을 비춰볼 때, 그 신비는 조금씩 벗겨지고, 다른 나와 나 자신을 용서하게 하는 자유를 맛보게 된다. 이것이 무의식에 이름을 붙이는 심리학의 의미일게다. 이 책은 이런 이름붙이기를 통해서, 모순이 가득한 이 사회에서 욕망의 정상에 오른 이들의 무의식을 벗겨내고, 그 알몸 위에 우리의 자화상을 비춰주고자 한다. 우리와 그 속에서 함께 휩쓸려가고 있는 나에 대한 이해와 위로, 자유를 안겨주길 바라면서.

이 책의 매력은 이를 재치있는 비교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점이다. 비교는 서로 다른 것을 마주세움으로써 그 다름을 통해 더더욱 분명한 이해를 제공한다. 특히 비교의 의외성은 깨달음에 매력적인 재미까지 더해준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것 간의 비교나 너무나 비슷해서 차이를 알아보기 어려운 비교가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생명과 생존', '죽음과 주검' 등은 비슷하면서도 근본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어서 중요한 깨달음을 제공하는 쌍들이다. 하나만 풀어보면 생명과 생존은 공히 살아있음을 가리키지만, 생명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타자를 살려내는 논리이고, 생존은 타자를 밟고 자신만이 살아남으려는 논리이다.

저자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한 쌍의 인물을 마주세우고, 그들 안에서 뜻밖의 유사점을 찾아낸다. 예를 들면 김영삼과 김어준은 연관성을 찾기 힘든 인물쌍이지만 그 둘 사이에서 자기 중심성이라는 유사성을 찾아낸다. 그리곤 그 유사한 점 사이에 세밀한 차이를 보여준다. 즉, 김영삼의 자기중심성이 자기의식이 결여되고 타자를 단순히 욕망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나르시시즘적 성향의 독선이지만 김어준의 그것은 자신을 잘 알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타자의 독선도 그대로 인정해주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자기중심성이 자기인식의 경계선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비교를 안전하게 웃고즐기는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멈칫 생각해보게 한다. 이런 천재적인 방식의 위험성은 비교가 구별과 차별 사이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다름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구별'과 다름에 가치를 부여하고 어느 한 쪽을 매도하는 '차별'. 심리학이 치료를 위한 것일 때는 분명 차별이 아닌 구별에 기초한 자기인식과 이를 통한 자유와 성숙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경계선에서 차별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저자가 그 인물의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도 없다. 결국 그 인물들은 어떤 가치 판단을 위한 성격화characterizing의 도구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정죄의 위험성을 조심하면서 그녀의 화술이 그려주는 신선하고 매력적인 거울을 몰래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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