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의 시 ‘갈까마귀’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이 소설은 현대 추리소설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던 장르인 퍼즐미스터리에 도전하고 있다. 《레이븐 블랙》은 던컨 로리 대거 상을 수상하면서 퍼즐미스터리의 부활을 화려하게 알렸다. 고립된 섬 마을, 하얀 눈, 갈까마귀 떼,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이 독자에게 한판 두뇌싸움을 걸어온다.


영국 서북단의 셰틀랜드 제도. 새해 첫날 한밤중, 눈이 잔뜩 쌓인 밤에 두 여학생이 지능이 낮은 한 노인의 오두막집에 새해인사차 찾아간다.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않은 집. 마을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갈까마귀 한 마리와 살아가는 노인. 며칠 뒤 노인의 집 근처 눈밭에서 그중 한 여학생이 시체로 발견되고, 시체 주변에는 갈까마귀 떼가 무리지어 떠돈다.  


눈이 시리도록 희디흰 눈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갈까마귀 떼. 그리고 피보다 진한 선홍색 목도리. 너무도 순박한 시골마을 이웃사람들과, 그들 사이를 떠돌고 있는 조용한 살인자.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고립된 섬. 광대하게 펼쳐진 눈밭 위에는 시체로 다가간 발자국도 멀어진 발자국도 찍혀져 있지 않고, 오직 공포와 의심과 고통에 찬 비명만이 빈 들판 위를 맴돈다. 사람들은 모두 노인에게 혐의를 두지만 의심과 두려움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데…….


현대 추리소설이 오랫동안 잊어버린 본격적인 퍼즐미스터리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숨죽이며 몽환적인 살인여행을 즐긴 끝에 신음과 찬사를 동시에 터뜨리게 되는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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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3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재미있을거 같아요. 왠지 이런 분위기 좋아해요! >..<

물만두 2007-06-03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기대중입니다^^

jedai2000 2007-06-0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퍼즐!!!

2007-06-04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6-0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재밌겠죠^^
속삭이신님 네이~ 감사합니다^^

모1 2007-06-0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겉표지보고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새가 떠올랐어요.

물만두 2007-06-04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 헉...
 
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가 직접 “마지막 장은 절대로 먼저 읽지 마십시오.”라고 책이 나오자 인터뷰에서 밝혔던 작품이다. 그는 그 마지막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한다. 처음을 읽고 마지막 장을 읽어볼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뒷 표지에 이 말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참고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작가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숙명(宿命)”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지막은 절대 성급하게 보면 안 된다. 이 책의 묘미를 떨어트리는 후회하는 일이 될 것이다. 부디 작가의 말을 유념하고 읽으시길.

 

어린 시절 병원에서만 있던 그 여인에 대한 추억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유사쿠는 경찰이 되고 큰 기업의 아들인 아키히코는 아버지의 뒤를 잇지 않고 의사가 되어 뇌신경을 연구하는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 같은 기연은 유사쿠가 사랑한 여인 미사코가 아키히코의 아내가 되어 그들이 만나게 만든다.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이런 삼각의 구도를 멜로가 아닌 미스터리라는 틀 안에서 멋지게 녹여 내며 작가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로 독자를 초대한다.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부잣집 도련님을 이번에야 말로 사건으로 이겨보겠다고 열의를 보이며 독화살 살인 사건에 뛰어든 유사쿠는 그 이면에 감추어진 아키히코의 숨겨 놓은 비밀을 밝혀내려 애를 쓰고 아키히코는 그 비밀을 숨기며 철벽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낸다. 그 알리바이를 무너트리고 독화살의 범인을 찾는 것이 하나의 드러난 사건이라면 유사쿠가 아버지의 유언처럼 간직한 미해결 사건을 조사하려는 과거의 사건은 드러나지 않은 이 작품의 진짜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의 조사 과정과 정교한 미스터리적 장치들, 사회성 짙은 과거의 밝혀지는 모습들 속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우리는 들을 수 있다.

 

인간의 인생이 이렇게도 얽힐 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실로 무시무시하고 마지막은 이것이 진짜 미스터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를 외치게 만든다. 인간이라는 미스터리 말이다. 그리고 숙명에 대한 미스터리이기도 하고. 인간의 숙명이란 어떤 것일까? 비록 원하지 않았더라도 해야만 하는 길로 들어서게 만들고 사람들이 할 일을 준비하는 것이 바로 숙명이다. 다 읽고 난 뒤 유사쿠가 경찰이 된 것도 아키히코가 의사가 된 것도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조종당하는 느낌이라는 미사코의 기이한 인연까지 모두 숙명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게 된다. 과거를 살아가는 유사쿠의 모습과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아키히코의 모습의 대비는 그대로 이 작품의 사건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 주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교하게 짜여 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미스터리를 읽다가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슬프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는 인간 드라마를 본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 한 장면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계속 여운이 남아 마치 자막이 내려가는 동안 정지된 필름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것으로 작가가 미스터리라는 소재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것을 담아내려고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 이 작품을 보지 않는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를 안다고 그의 작품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며 비로소 작가에게는 인간과 그 인간이 간직한 비밀이라는 것이 미스터리의 바탕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미스터리가 약간 허술하기도 하고 미스터리가 아닌 것 같은 작품들도 미스터리로 등장하고 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미스터리였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제 그의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 것 같다. 그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은 이 작품이 너무 늦게 번역된 탓도 있고 내 아둔함 탓도 있지만 그만큼 작가가 다방면에 여러 소재를 뛰어나게 사용했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가 새삼 다시 보인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비밀이란 없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해 미스터리를 끊임없이 파헤치는 것 또한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므로 비밀이란 미스터리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향하는 작품의 “숙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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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6-02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찜해 놓은 책 중에 하나랍니다. ^ ^.

물만두 2007-06-02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아주 재미있습니다^^

sayonara 2007-07-26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간일이 90년도라... 이걸 읽어 말어...
"서재가 음산해졌어요.".. -_-;
 

와카타케 나나미의 ‘매력적이고 전설적인’ 데뷔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ぼくのミステリな日常』은 1991년에 발표된 와카타케 나나미의 데뷔작이다. 데뷔작이라기에는 놀라울 정도의 필치에 탄탄하고 다채로운 이야기의 힘을 인정받아, 발표 이듬해인 1992년, 일본 출판사 다카라지마샤에서 주관하여 선정하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このミステリがすごい!)’ 베스트10 중 6위에 선정되었다.
익명 작가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편지 세 통에 이어,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사보에 다달이 실린 ‘익명 작가에 의한 연작 단편소설’ 열두 편, 그리고 열두 편의 이야기에 숨겨진 의외의 진상을 밝히는 '조금 긴 듯한 편집후기'와 '마지막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열두 편의 이야기에는 매월호의 차례도 곁들여져 있다.
책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전설적인 데뷔작이라니 대단히 끌린다.
책 표지의 밖을 보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저 여인은 사실 또 다른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미스터리한 일상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제목의 울림이 심상치 않다.

시마다 소지의 미타라이가 돌아왔다.
그런데 너무 간격이 크다.
언제 스웨덴으로 간 것인지...
외국에서 펼쳐지는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모래의 여자>, <불타버린 지도>와 함께 아베 코보의 '실종 3부작'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얼굴을 잃어버린 남자가 얼굴의 타인과의 소통으로 생각하고 가면을 만들어 쓰면서 벌어지는 심리를
묘사하는 작품이다.
실종이라니 어떤 실종일까?
인간이 어떤 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제목부터 3부작이라는 말까지 나를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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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06-0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의 여자도 읽어야 하는뎅 ㅜ.ㅡ

물만두 2007-06-0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읽고 알려주세요~

Mephistopheles 2007-06-0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나의 미스테리한 일상 표지 귀퉁이의 검은 고양이가 시선을 끄는군요..^^

물만두 2007-06-0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예리하십니다^^
 
도시탐험가들 모중석 스릴러 클럽 8
데이비드 모렐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하루 밤 사이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미스터리 그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고 독자들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도시에 버려진 폐건물들을 탐험하는 자들이 있다. 일명 크리퍼스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취미 활동으로 그런 건물들에 몰래 잠입해서 보고 사진만 찍고 나온다. 과거가 담긴 그 어떤 것도 건드리지 않은 채.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라 이들은 공공연히 움직이지 않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다닌다.

 

이 밤, 3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유서 깊은 호텔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잡지사 기자 발렌저가 취재차 동행하기로 했다. 그들은 대학 교수 콩클린과 그의 제자들로 여러 번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밤 9시 드디어 그들은 목표한 건물로 잠입을 한다.

 

그곳은 많은 이들의 과거를 간직하고 주인 또한 독특했던 패러건 호텔이다. 1900년대 초의 분위기를 1960년대 문을 닫을 때까지 간직했던 곳이다. 그들은 들어서자마자 기묘한 쥐들, 뒷다리가 세 개 달린 알비뇨 고양이를 만나지만 호텔에 들어가서는 더욱 놀란다. 그곳에는 마치 주인들이 나갔을 때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견하는 가방 속 죽은 원숭이와 그 주인의 사연들을 호텔 주인의 기록을 통해 알게 된다. 거기에는 끔찍한 사건도 기록되어 있다. 한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이렇게 탐사를 하던 중 이들은 그들을 뒤따라온 세 악당에 의해 위기를 맞게 된다. 그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옛날 마피아가 숨겨 놓았다는 금화를 찾을 수 있다는 미끼를 던지고 금화를 찾으며 시간을 번다. 하지만 더 큰 위험은 그 뒤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몰랐다. 마치 층마다 방마다 계단마다 그들이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부비트랩이 설치된 것을 건드린 것처럼 독자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과거를 들추는 것이 아니라고. 과거가 현재와 만났을 때 그것이 어떤 충돌을 일으켜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낼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호텔의 방방 마다 사연이 가득한 것이 마치 우리들의 삶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나의 문을 열면 아름다운 사랑이 등장하고 또 하나의 문을 열면 가슴 아픈 이별이 등장하고 열린 문으로 그냥 걸어 들어가는 것과 닫힌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는 것에 따르는 감정의 충돌은 마치 봐서는 안 되는 것은 보지 말고 지나가라는 무언의 압력같이 느껴진다.

 

모든 시작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남과 다르고 싶다는 욕심, 물질에 대한 욕심, 관음증과 남과 다른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것들이 이 안에서 하나로 녹아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고 비바람, 천둥, 번개를 치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까지 손에서 땀이 나게 만드는 작품이다. 끝을 보고 나서도 뒷장을 더 넘겨보고 진짜 끝인지 확인하게 만드는 한 밤중에 일어난 끔찍하게 소름끼치는 작품이었다.

 

호러 문학상인 브램 스토커상을 수상했다는 말에 진짜 호러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책 표지에 더욱 기괴한 문구를 적어놔서 흠칫 놀라게 만드는데 그것은 괴기스러운 호러가 아니라 미스터리적인 스릴러다. 책을 덮고 나면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본 느낌이 들 것이다. 여름밤 잠은 안 오고 비까지 내린다면 반드시 이 책을 펼쳐보시길. 공포감이 배가되리라 보장한다. 모르는 곳, 건물에 들어갈때 반드시 뒤를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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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맘, 또또맘 2007-06-0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지 말라면 더 보고싶어지는게 사람 심리인거 같아요. 저만 그런가? 그러고 보면 저도 관음증(ㅋㅋㅋ)이 좀 있는것 같기도 하고. 비오는날 추천도서로 꼽아놓아야 겠네요 ^^:;

물만두 2007-06-0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이맘또또맘님 이 여름 시원하게 보내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비로그인 2007-06-0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 저 이런거 좋아해요. 으실으실 소름이 끼칠거 같은거요..추천누르고 갑니당~~~~ 근데요 물만두님, 님이 추리소설 추천해주셨다는 페이퍼 못찾았어요 =.=;;;;

물만두 2007-06-0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촘너구리님 이 책 재미있어요^^ 그럼 제가 찾아드릴께요.

비로그인 2007-06-01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당~~~물만두님 무 좋아요. 댓글도 금방금방 달아주시구~~ ^^

물만두 2007-06-0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요. 님 서재 페이퍼에 글 남겼습니다^^

BRINY 2007-06-03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끌리는데, 소름 끼치는 작품이라니^^; 무섭네요. 혼자 있을 때는 못보겠어요. 그래도 여름방학때 사보고 싶기도 하고.

물만두 2007-06-03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니님 무섭다기보다는 스릴만점인 작품입니다.^^
 
B컷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9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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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와 뇌물 받고 잘린 전직 형사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 이 작품은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추락한 인생들의 남루한 삶에 대한 악착같은 더부살이를 그리고 있다. 사건은 그들 사이를 공유하며 흐르지만 사건은 그들에게 스쳐 지남의 하나일 뿐이고 주목하게 되는 것은 킬러의 인생과 전직 형사의 인생이다.

 

마치 그들의 인생은 B급 영화처럼 극장에 걸렸다가 블록버스터에 밀려 며칠 못가고 간판을 내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냥 엔딩에서의 컷 하는 감독의 외침에 그제야 만족감을 느끼는 유명배우 대신 그 컷 소리에 놀라 이제 또 어느 영화의 한 자리를 알아보나 하는 엑스트라의 심정을 느끼게 만든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추리소설에 왠 킬러? 무슨 뉴욕에 서울 찍고 중국까지? 이런 생각을 했었다. 모양만 그럴듯하게 갖추고 독자를 뱅뱅 돌게 만드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더욱 마음에 든 것은 마지막까지 완벽한 한 방을 날리는 솜씨가 좋았다.

 

작품 속 인생들은 추락한 인생들이었지만 작가의 작품은 그 추락으로 빛났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로케이션에 힘쓰지 말고 주인공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그런 작품을 만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좋은 영화도 될 것 같다.

 

좋았다. 단편에서는 사실 그다지 매력을 못 느끼던 작가였고 작품 초반은 약간 걱정을 하면서 보기도 했지만 뒤에서 더 빛나는 작품이었다. 이 작가에게 다시 한 번 한국 추리소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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