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거 앨런 포의 시 ‘갈까마귀’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이 소설은 현대 추리소설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던 장르인 퍼즐미스터리에 도전하고 있다. 《레이븐 블랙》은 던컨 로리 대거 상을 수상하면서 퍼즐미스터리의 부활을 화려하게 알렸다. 고립된 섬 마을, 하얀 눈, 갈까마귀 떼,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이 독자에게 한판 두뇌싸움을 걸어온다.
영국 서북단의 셰틀랜드 제도. 새해 첫날 한밤중, 눈이 잔뜩 쌓인 밤에 두 여학생이 지능이 낮은 한 노인의 오두막집에 새해인사차 찾아간다.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않은 집. 마을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갈까마귀 한 마리와 살아가는 노인. 며칠 뒤 노인의 집 근처 눈밭에서 그중 한 여학생이 시체로 발견되고, 시체 주변에는 갈까마귀 떼가 무리지어 떠돈다.
눈이 시리도록 희디흰 눈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갈까마귀 떼. 그리고 피보다 진한 선홍색 목도리. 너무도 순박한 시골마을 이웃사람들과, 그들 사이를 떠돌고 있는 조용한 살인자.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고립된 섬. 광대하게 펼쳐진 눈밭 위에는 시체로 다가간 발자국도 멀어진 발자국도 찍혀져 있지 않고, 오직 공포와 의심과 고통에 찬 비명만이 빈 들판 위를 맴돈다. 사람들은 모두 노인에게 혐의를 두지만 의심과 두려움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데…….
현대 추리소설이 오랫동안 잊어버린 본격적인 퍼즐미스터리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숨죽이며 몽환적인 살인여행을 즐긴 끝에 신음과 찬사를 동시에 터뜨리게 되는 뛰어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