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죽음의 유예라면
모든 독서는 죽음을 이기는 독서
클라이브 제임스는 백혈병과 비장하게 싸우고
나는 식도염과 헐겁게 싸울지라도
(찾아보면 더 나올지 몰라)
나는 전우애를 느낀다
한 글자를 읽을 때 하나의 세포를 잃어가도
제임스는 투항하지 않는다
죽음을 이기는 독서는 병상의 독서이자
참호 속의 독서
예의를 아는 총알이여
이 페이지를 마저 읽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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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0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에 길도 내야하고
죽음과 싸워 이기고
열일하는 독서 맞네요.
제겐
시간을 이기는
시간을 버티게 하는
독서~

로쟈 2018-06-05 17:04   좋아요 1 | URL
네 열일합니다.~

로제트50 2018-06-0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열대, 코스모스, 율리시즈,
빈 서판은 읽고 죽으리라!
- 남편 왈, ˝책 더 사야겠다!˝ ~

로쟈 2018-06-05 17:04   좋아요 0 | URL
네 더 욕심을내셔도.~

로제트50 2018-06-05 17:11   좋아요 0 | URL
네*^^* 쌤이 오래오래
많이 소개해주셔요~~

가명 2018-06-1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책이 죽음까지 이기게 해 줄까요...

로쟈 2018-06-13 00:01   좋아요 0 | URL
죽음을 유예하는 독서죠.
 

밤, 거리, 가로등, 약국
그렇게 시작하는 러시아시가 있어
시는 그렇게 쓰는 건가 싶어
밤, 거리, 가로등, 약국이라고
나도 적어 보지만
약국은 언제 시가 되려는지
여름밤 가로등은 창백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거리엔 차들만 오고간다
눈 오는 밤거리여야 했던가
순서를 바꿔야 했는지도
눈 오는 밤거리에 창백한 가로등 하나
약국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그래 조금 나은 듯싶다
내친 김에 눈보라를 넣어보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거리에
가로등도 불빛을 잃어가고
나는 약국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
그게 아니면
밤, 거리, 가로등, 약국에 대해서
나는 무얼 쓸 수 있을까
나는 약국으로 가야 한다
나는 약국으로 가는 중이다
나는 약국에 갈 수 없는 것일까
약국에서는 왜 시를 팔지 않는가
약국은 왜 시가 되지 않는가
약국이 뭐기에
왜 시비냐고
여기가 약국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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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0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먹는 약국인가요?
약국에서 ‘시‘라는 약이라도 팔아야 할듯~ㅎ

로쟈 2018-06-05 17:05   좋아요 0 | URL
약국이란 단어는 시가 잘 안 돼요. 그래서 써본.

하임 2019-02-1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게 쓰는 댓글이네요. 이런 저런 글 읽다가 예전에 써본 시 하나 올려봅니다 ^^

한 약방에서

크기는 안방만 할까
꾸운 누룽지의 노르께함이 방 안 가득 비추어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다

사방이 흰 벽으로 가로막힌 곳에서
멀거니 사람을 기다리기보다
노른자 없는 쌍화탕 한 병
이웃들과 기울이는 이 곳이 좋다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
이렇게 아픈 사람만 보니
우리나라가 약국(弱國)이 맞구나

내가 이렇게 아파도
동네에 믿을 구석 하나 있는 게
옆 동네 사는 자식 하나보다 좋다
 

어제도 내일도 모르는 풀꽃에게
이건 손짓발짓으로도 안 되네
어제도 소용없고 내일도 소용없어라
풀꽃은 무얼 믿는가
지금 여기가 풀꽃의 신앙이라네
햇살 아래 풀꽃이 막 기지개를 켜네
손과 발을 쭉 뻗고 고개를 처드네
물과 바람도 덩달아 오늘뿐이네
어제도 내일도 잊고 풀꽃 생각뿐이네
모르는 게 힘이지
풀꽃은 막무가내로 살고 사랑하고 배우고
레오 버스카글리아처럼
무얼 배우는지는 들어본 적 없지만
나는 풀꽃을 응원하지
사랑하는 풀꽃이 이름없는 풀꽃으로 성장하길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냥 풀꽃이지만
풀꽃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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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5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늦게 핀 봄꽃들이 여름꽃 행세하고
구름 낀 오늘 햇볕은 잠시 봄볕

시간은 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아
가끔은 쏟아진 물을 되담는 시간

지난 세기의 첫사랑도 아직 풋풋한 사랑
그건 심하다 싶어
아직 한 권의 책도 내지 않았던 시절
내년이면 만 십년이 되겠네

아마도 십년 전 이맘때 종로에서
노총각 편집자들과 맥주 마시던 기억
갓 마흔에도 나는 한권의 책도 없었구나
저자도 아니었구나
대신에 나는 굉장한 책을 쓸 거라고

한 아이가 태어날 때
모두가 마음껏 소망을 빌었지
아직 똥도 한번 싸보지 못한 아이에게
건강과 행복을 빌었지
모두가 그런 아이였지

열권 넘게 책을 썼네
아직도 열권 넘게 남아 있네
나는 굉장한 책을 쓸 수 있을까
아이에게 물어보네
너는 무엇을 알게 되었니

지난 세기의 첫사랑도
공장에 다닐 거라던 첫사랑도
어쩌면 할머니가 되었을 시간
열여섯 살 그 모습으로만
나는 기억하네

우리 인생의 나이는 몇 살인가
영정 사진의 나이가 우리의 나이인가
기억 못할 순간의 나이가
오래도록 기억될 나이인가
봄꽃 같았던 그 시절의 나이인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
거리낌이 없던 마음도
지금은 현자의 마음을 닮아서
똥과 오줌을 가리지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고
여름에는 폭설이 내리지 않지
그래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대 입술에 되담을 수 있다면

첫울음을 터트리고
첫사랑에 설레고
첫 책을 내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그날도 저녁 광화문 거리에는
오늘처럼 꼭 이런 산들바람이 불고

무엇이 지나가고 무엇이 되돌아오는지
늦게 핀 봄꽃들은 알까
살갗을 간지르는 바람만 몇 걸음 앞서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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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6-04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ime in a bottle.
로쟈님 시에 여러번 등장하는 투명유리병. 뭐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세월의 덧없음...시상의 주요 흐름이리라는 짐작이...불현듯.

로쟈 2018-06-05 00:01   좋아요 0 | URL
병속의 시간은 덧없음은 아니고 시간을 보존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행기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보니 어진간한 여행서에는 둔감하게 된다. 그러는 중에 한수 가르쳐주마라고 등장한 고수 같은 이가 후지와라 신야다. 후지와라의 트레이드 마크는 ‘방랑‘. <인도 방랑>과 <티베트 방랑>을 예전에 구한 듯한데(4년 전에 이사를 하면서는 소장도서라는 사실이 무의미해졌다) 이번에 방랑 결정판인 양 <동양 방랑>(작가정신)이 출간되었다.

˝압도적인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글과 사진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여행서의 전설이 된 <인도방랑>, <티베트방랑>의 저자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방랑>. 제23회 마이니치예술상을 받은 <동양방랑>은 작가이자 사진가, 사상가, 평론가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해온 후지와라 신야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동양의 전모를 파악하고자 길을 나선 400여 일간의 기록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인도, 티베트, 미얀마, 태국, 중국, 홍콩,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기록한 이 책은 사람 사는 세상의 거짓 없는 모습을 좀 더 적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작가 나름의 육체적, 정신적 훈련의 결과물이다.˝

저자의 방랑을 흉내내볼 형편이 전혀 아닌지라 그의 방랑이 나의 방랑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군가 이런 방랑기를 남겼다는 사실 자체가 위안이 된다. 어줍잖은 여행길이 뭔가 허전한 독자라면 후지와라의 방랑기로 내실을 채워볼 수 있을 것이다. 후지와라와 함께 동양의 냄새를(향기가 아니다) 독하게 맡아보아도 좋을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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