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고전'으로 꼽을 만한 책이 여럿이다 보니 마치 '이주의 저자'처럼 됐다. 디킨스와 피츠제럴드는 군말이 필요 없고,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문학과지성사, 2014)도 재출간됐다. 51년생이지만 스페인어권의 대표적 문학상들을 휩쓸며 고전 반열에 들어간 작가다.

 

 

 

먼저 디킨스. 그의 대표 장편 가운데 하나인 <작은 도릿>(한국문화사, 2014)이 번역돼 나왔다. 디킨스 전공으로 <어려운 시절>(창비, 2009)의 역자인 장남수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1857년작. 영국에선 BBC에서 드라마로도 제작했다(하긴 디킨스의 작품 대부분이 영화화되거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이번 번역본은 명저번역의 일환으로 출간된 거라 책값이 좀 비싼 게 흠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올 봄과 여름에 디킨스의 작품 몇 편을 강의차 읽을 계획이어서 바로 손에 넣었다. 디킨스에 대해선 앞으로 몇 차례 더 다루게 될 것이다(19세기 작가들 가운데서는 디킨스와 발자크를 읽는 게 올해 계획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와 함께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밤은 부드러워>(시공사, 2014)가 번역돼 나왔다. 1934년작. 기존 번역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계분학전집판으로 나오길 고대하던 작품이다. 어떤 소설인가.

1934년, 9년의 집필 기간, 17번의 개고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발표된 네 번째 장편 <밤은 부드러워>는 그 자신 '나의 신앙고백'이라 일컬을 정도로 작가의 많은 것이 투영된 작품이다. 소설가이자 피츠제럴드 번역가로도 이름이 높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대한 개츠비>가 잘 만들어진 걸작이라면 <밤은 부드러워>에는 피츠제럴드라는 인간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고 평한 바 있다.

미국문학 강의 때 새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하며 목록에서 뺐었는데, 이 작품 역시 강의에서 다뤄보고 싶다. 그럴 만한 여건은 갖춰진 셈이고.

 



끝으로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1994). "독일의 유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서평가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비견되는 작가'라고 평했으며, 스페인 비평상, 로물로 가예고스 상, 페미나 국제문학상, 임팩 더블린 문학상, 넬리 작스 문학상, 몬델로 문학상, 유럽문학상 등 유럽의 문학상을 싹쓸이한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작품"이다. 세계 유수 작가와 비평가들의 높은 평판 때문에라도 읽어볼 욕심이 나는 소설이다.

 

 

그가 수상한 문학상 가운데 로물로 가예고스 상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수여하는 상으로, "남미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며 문학성과 실험성이 뛰어난 작품에게 주어지는데, 역대 수상작가들을 보면 이 상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카를로스 푸엔테스,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등이 이 상을 수상했으며, 국내에도 소개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과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 역시 이 상 수상작이다." 우연찮게도 이번 봄 강의목록에 <백년의 고독>과 <야만스러운 탐정들>도 올라와 있다. 같은 급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도장을 찍어둘 만하다...

 

14.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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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휴가중이던 지난주에 나왔지만 '이주의 발견'으로 적는다. 데이비드 벨로스의 <내 귀에 바벨 피시>(메멘토, 2014). 제목만으로 어떤 책인지 짐작하긴 어려운데, '번역이 하는 모든 일에 관하여'가 부제다. 번역론이자 번역에 관한 성찰, 번역에 관한 에세이 등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책이다.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의 관심은 번역 이론이나 번역 기술보다 ‘번역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다. 번역가이자 전기 작가인 저자 데이비드 벨로스(David Bellos)는 언어학, 철학, 인류학의 풍부한 교양 위에서 사전, 기계 번역, 성서 번역, 국제법, 뉘른베르크 재판, EU와 동시통역의 탄생, 문학작품 번역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날렵한 재치와 풍성한 입담으로 풀어나간다. 언어, 말, 번역에 대한 신선하고도 유익한 이야기로 우리가 몰랐던 번역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은, 번역이라는 주제로 흥미롭고 진기한 문화사 한 상을 차려낸다.     

 

 

책은 초면이지만 알고 보니 저자와는 구면이다. 데이비드 벨로스가 카뮈의 영역본 선집에 공역자로 참여했고, 내가 그 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조르주 페렉과 이스마일 카다레의 책을 여러 권 옮겼고 로맹 가리에 대한 전기도 썼다(로맹 가리의 전기는 국내에 한 권 소개돼 있지만 한 권 더 나와도 좋지 않을까).

 

 

번역가의 번역란이란 점에서는 최근에 나온 이디스 그로스먼의 <번역 예찬>(현암사, 2014)도 떠올리게 한다. 그로스먼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가르시아 마르케스, 바르가스 요사의 여러 작품을 영어로 옮긴 번역자다. 개인적으론 그로스먼 역시 <번역 예찬>과 만나기 전에 영어본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통해서 먼저 접한 바 있다.  

 

 

 

번역에 관한 좀더 이론적인 책으론 윤성우, 이향 교수의 <번역학과 번역철학>(한국외대출판부, 2013)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다. 두 저자가 공역한 앙트완 베르만의 <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시련>(철학과현실사, 2009), <번역과 문자>(철학과현실사, 2011) 등도 번역에 대한 이론적, 철학적 관심을 가진 독자에게 필독서다.

 

주섬주섬 사모은 번역학 관련서도 여럿 더 되는데, 정리해놓질 못해서 어느 구석에서 찾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 번역 문제에 대한 정리는 나중으로 미루는 수밖에 없겠다. 일단은 <내 귀에 바벨 피시>부터 읽고서...

 

14. 01. 23.

 

 

P.S. 아, 제목의 '바벨 피시'는 뭐냐고? "이 책의 표제에 쓰인 ‘바벨 피시’는 코믹 SF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작고 노랗고 거머리같이 생긴 물고기다. 이 물고기는 귀에 집어넣으면 어떤 언어라도 즉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통역기다." 그러고 보니, 이 두꺼운 책도 구입해놓고 아직 펼쳐보지 못하고 있구나. '은하수 여행'을 떠나려면 며칠간의 휴가로는 어림도 없을 테니 당분간은 '그림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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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민주(통권 10호)의 '삶과 문학' 코너에 실린 인터뷰를 일부 옮겨놓는다. 이 코너를 맡고 있는 문학평론가 정여울 씨가 제안을 해와서 연초에 동대 근처 카페에서 가졌던 인터뷰다. 전문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블로그(http://blog.kdemo.or.kr/1183)에서도 읽을 수 있다(인터뷰 중에 나오는 <생애 바깥에서>란 시집 제목은 <생의 바깥에서>의 오기다).   

 

 

 

민주(2013년 겨울호)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요구, 그것이 민주주의의 희망이다

 

(...)

 

정여울: 올해 경향신문에서 뽑은 ‘뉴 파워라이터’ 20인에 선정되셨는데, 그 인터뷰에서 ‘나는 문학극대주의자다’라는 표현을 쓰셨더라구요.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이현우: ‘문학은 자고로 시와 소설, 희곡이지’ 이런 식으로 딱 정해진 장르와 분과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문학 극소주의자라면, 역사도 철학도 넓은 의미의 문학이라고 보는 것이 문학극대주의자이지요. 저는 모든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평을 쓰는 것도 문학의 일부이지요. 문학을 공부하면서 문학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문학적 지식에 대한 궁금증이 늘어갔어요. 우리는 문학에 대해 뭘 알 수 있는지, 어떤 작품, 어떤 작가에 대해서 안다고 할 때 뭘 알고 있는지를 밝혀야 할 것 같았어요. 문학이 무엇을 알려주는가에 대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로쟈 버전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문학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인식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하는 책을 써보고 싶어요. 문학극대주의자이기 때문에 문학이 전부로 보이고 모든 것이 다 문학으로 보여요. 문학은 제가 아는 것들 중에서는 가장 커다란 무엇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것만이 문학이다’라고 주장하는 문학주의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죠.

 

정여울: ‘내가 아는 것들 중에서는 문학이 가장 크다’라는 표현이 문득 뭉클합니다. 과학보다도, 철학보다도, 역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문학이 크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러시아 문학이 바로 그런 문학극대주의자의 유토피아를 실현시켜주는 것이겠지요?(웃음)

 

 

 

이현우: 그렇죠. ‘문학과 정치’, ‘문학과 사회’, 이런 식으로 나눌 필요가 없어져요. 모든 것이 문학이니까요. 문학극대주의자의 망상이지요(웃음). 러시아 문학이 바로 그래요. 문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망상보다 더 큰 망상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바로 그것이 제가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톨스토이는 합리주의자이면서 문학극대주의자는 아니지요. 제가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바로 이 문학극대주의자의 과대망상증 계보를 잇지요.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문학이에요. 그리고 문학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증도 도스토예프스키다운 것이지요. 문학은 문학으로서만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는 건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쪽이구요. 그래서 톨스토이는 문학을 끝내 버릴 수 있었던 거예요. 톨스토이는 문학이 자기가 원한 것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버릴 수 있었던 거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곳에서 문학을 보았기 때문에 문학으로 인류를 구원하려 했던 거죠.

 

정여울: 저도 사실 그 ‘과대망상증 계보’가 참 좋아요. 아직도 문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증에 계속 빠져 살아가지요(웃음).

 

이현우: 톨스토이는 영혼의 구원이라는 걸 소설에서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건 문학의 임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자신이 쓴 위대한 작품들도 말년에는 다 ‘쓰레기’라고 부정할 수 있었던 거예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학이 뭔가 거창한 소명을 떠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위대한 예술은 톨스토이에게 의미가 없었지요.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은 문학이 아니라 사상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작가고 톨스토이는 거대한 작가라는 말이 있어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학이라는 것 자체를 위대하게 만드는 작가라면, 톨스토이에게 문학은 너무 ‘작은 것’이었고 그 이상의 뭔가 원대한 이상을 꿈꾼 사람이었던 거죠.

 

정여울: 이 위대한 작가와 거대한 작가가 한 나라에서 났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내심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중한 만큼 톨스토이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품은 이상은 ‘구원’이라는 거대한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 무기가 ‘문학’인지 문학이 아닌지는 조금 작은 문제라는 생각도 들어요. 문학이 인류를 구원하는 대단한 소명을 다 하지 못할 때 문학을 버리는 것은 가라타니 고진과도 비슷하네요.

 

이현우: 그렇죠.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이야기하면서 톨스토이를 언급하기도 해요. 소설이라는 예술 형식이 인류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들에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을 때 문학을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었던 거죠. 더 이상 문학으로 세상을 치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쓴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작품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수 있는 작가가 바로 톨스토이였던 거죠.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이 그런 중요한 일을 ‘안 하고’ 있으니까 버린 거고, 톨스토이는 아예 문학은 그런 중요한 일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버린 거죠.

 

정여울: 박사논문에서는 푸쉬킨과 레르몬토프를 다루셨는데요. 푸쉬킨이 선생님의 문학관에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인지요.

 

이현우: 푸쉬킨은 기본값이예요. 푸쉬킨은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좋아’, ‘나는 투르게네프가 좋아’라는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지요. 푸쉬킨은 러시아 문학의 수원(水原)이고 러시아 문학의 전부예요. 러시아는 푸쉬킨 공동체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국민문학의 힘이에요. 푸쉬킨은 러시아 근대문학의 출발점이면서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이지요. 국민문학이라는 것의 개념 자체가 흥미로워요. 물론 국민문학이라는 개념도 판타지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분열이나 모순을 봉합시켜줄 수 있는 판타지라는 점에서 소중하지요.

 

정여울: 푸쉬킨은 기본값이다,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 문학은 푸쉬킨 공동체다, 이 모든 말들이 무척 의미심장하게 들리는데요. 공동체의 분열과 사회모순을 통합할 수 있는 것이 푸쉬킨 식의 국민문학이라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작품들이 그런 국민문학의 수원(水原)에 속할 수 있을까요.

 

 

 

이현우: 옛날에는 국민문학의 계보로 이광수의 <무정> 같은 작품을 떠올렸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춘향전>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춘향전>에는 사회적 모순이 응축되어 있죠. 그 모순 때문에 사회가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봉합하려는 흔적을 담고 있어요. 양반층의 요구와 천민층의 요구가 결합되어서 묘하게 화해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양반집 규수처럼 수절하겠다고 버티는 춘향이는 그리스 비극의 안티고네를 닮았죠. 자신의 비참한 상황에서도 양반과 대등하게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변사또는 권력층에 기대는 악의 무리 중 한 명이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양반, 선한 양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몽룡을 차별화하기 위한 설정이 아닐까 싶어요. 양반도 천민의 편을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양반도 천민도 둘 다 만족시키려는 것이에요. 자아가 초자아와 이드 사이를 중재하는 것처럼 국민문학은 하층계급과 상층 계급을 화해시키고 있어요. 푸쉬킨의 <대위의 딸>도 그렇지요. 민중의 편만 들어주지도 않고 귀족의 편만 들어주지도 않아요. 국민국가라는 판타지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바로 이 통합의 환상, 푸시킨적 판타지이지요. 그건 민주공화국이라는 환상이기도 하구요.

 

정여울: 아, 그럼 러시아 문학이 푸쉬킨 공동체라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춘향전 공동체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푸시킨과 연결시키니까 춘향전이 훨씬 깊이 있는 텍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춘향전>은 어쩌면 봉건사회 안에서 민주주의의 테마를 태동시킨 집단무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는생각도 들어요.
 
이현우: <춘향전>에 여러 가지 판본이 있지만 춘향이 ‘양반의 서녀’라는 입장과 ‘천기 출신’이라는 입장, 크게 두 가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어요. 성참판의 서녀 성춘향보다는 월매의 딸 천기 출신의 춘향이 훨씬 더 래디컬한 버전이죠. 서녀 신분보다는 천기 신분이 훨씬 더 급진적이고 도발적이고, 더 도전적인 문제제기예요. 이건 거의 세계문학 수준이죠. 성춘향이라는 것은 뭔가 저항의 가능성을 거세시키고, 춘향을 좀 더 양반 쪽에 가깝게 순치시킨 버전이지요. 춘향의 고결한 태도나 수절의 의지를 그냥 핏줄로 해결해버리면, 절반은 양반의 피를 타고났다고 하면, 이것은 양반 쪽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버전이니까요. 하지만 천기 버전의 <춘향전>은 세계문학사의 고전이 될 만해요. 아래로부터의 문학이거든요. 그것보다 더 분명하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것을 말한 텍스트는 고전문학에서는 거의 없어요. 한국문학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텍스트죠.

 

정여울: 그럼 오늘 우리의 대화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춘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정리해도 되겠네요(웃음).

 

이현우: 홍길동만 해도 율도국이라는 별도의 유토피아를 정해서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도피해서 인정을 받는 것이지요. 춘향은 체제 내에서 인정을 받아요. 임금이 이몽룡과의 결혼을 허락하고 정경부인으로 봉했다는 것이니까 ‘저 세계’가 아닌 ‘이 세계’ 안에서 천민의 존재가 처음으로 인정받는 거예요. 춘향전의 판본이 이렇게 엄청나게 범람하는 것도 민중들이 보였을 어떤 열광의 흔적이라고 봐요.

 

(...)

 

14.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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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다른, 2014)란 제목만으로는 눈에 띄지 않는 특별한 인터뷰집이 출간됐다.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는 부제로도 충분하지 않다. 핵심은 '파리 리뷰 인터뷰'다. 미국의 저명한 문학잡지 '파리 리뷰'와 가진 인터뷰 모음집이어서 '파리 리뷰 인터뷰'다.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작가들의 인터뷰만 모은 걸로 생각했는데, '파리 리뷰 인터뷰1'라고 돼 있는 걸로 보아 시리즈로 나온다는 의미다. 자세히 보니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도서출판 다른에서는 국내 문예창작학과 대학생들과의 설문을 통해 「파리 리뷰」에서 인터뷰한 250여 명의 소설가들 중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작가 36인'을 선정했고, 이중 12인의 이야기를 <작가란 무엇인가>로 묶어냈다.

그럼, 두 권 정도는 더 나온다는 얘기인가? 그러길 기대한다. 찾아보니 영어판으론 피카도르출판사에서 네 권짜리 선집이 나온 바 있다.

 

 

선집은 피카도르에서만 나온 건 아니고, 모던라이브러리에서는 '작업실의 작가들'이란 타이틀로 몇 권의 인터뷰 선집을 묶어낸 바 있다. 국내에서 처음 나왔던 파리 리뷰 인터뷰집의 저본으로 추정되는 책이다.

 

 

안정효 선생의 번역으로 나왔던 <나의 삶, 나의 문학>(책세상, 1989)가 바로 첫 번역본이었다(<11인의 위대한 작가들>(책세상, 1997)로 다시 나오기도 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다). '20세기 대표작가들과의 대화'라는 부제하에 11명의 인터뷰를 싣고 있는데, 그 명단은 아래와 같다.

 

로버트 프로스트
T.S.엘리어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월리엄 포크너
어네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네루다
아이삭 바셰비스 싱거
아더 밀러
소울 벨로우
월리엄 개스
해롤드 핀터

 

개인적으로는 파스테르나크의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고, 강의시간에 종종 인용하기도 한다. 이번에 나온 <작가란 무엇인가>에 실린 12명의 작가는 에코, 파묵, 하루키, 오스터, 매큐언, 로스, 쿤데라, 카버, 마르케스, 헤밍웨이, 포크너, 포스터 등이다. 헤밍웨이와 포크너가 겹치는 걸로 보이는데, 이어질 선집들에서 다시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파리 리뷰>를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모두 가지고 있다. 여기에 게재된 인터뷰를 엮어 책으로 펴낸다면 더없이 훌륭한 책이 될 것이다." 그 '더없이 훌륭한 책'이 이번에 나온 걸로 보면 되겠다...

 

14.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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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이틀 늦게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전주의 책'이라고 해야 할까. 타이틀은 알랭 바디우의 책 <세기>(이학사, 2014)를 풀어서 적었다. 바디우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세기'가 '20세기'이며, 그가 본 20세기의 가장 큰 특징은 '실재에 대한 열정'이다.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에 인용된 문구를 통해서 처음 접하고 영어본 <세기>를 구해놓은 기억이 난다. 이제 편하게 한국어본으로도 읽어볼 수 있게 됐다.

 

바디우에 따르면 20세기를 지배했던 진정한 열정은 결코 상상적인 것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열정도, 메시아적 열정도 아니었다. 지난 세기를 지배했던 그 무시시한 열정은, 19세기의 예언주의와 반대로, 실재에 대한 열정, 즉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참된 것"을 활기 있게 하기 위한 열정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바로 이 열정을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또 이를 통해 지난 세기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판단을 시도해보기 위해, 실재에 대한 열정, 의지, 욕구 등을 담은 여러 자료를 찾아 탁월하게 분석한다.

두번째 책은 에즈라 보걸의 <덩샤오핑 평전>(민음사, 2014)이다. 마오주의자였던 바디우와 짝을 맞추자면 <마오쩌둥 평전>이 더 어울리겠지만, 덩샤오핑 역시 덩샤오핑과 함께 지난 세기 중국의 건설자다. '현대 중국의 건설자'란 부제가 무안하지 않게 말이다. "세계적인 동아시아 전문가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학교 명예교수는 정부 인사, 당 역사 연구자, 가족, 주변 인물 등과의 인터뷰와 최근에 공개되거나 발굴된 각종 문서 등 방대한 자료를 통해 덩샤오핑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그의 생애와 맞물린 중국의 전환기를 세밀히 그려 낸다."

 

 

세번째 책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KH사업단에서 엮은 <사회인문학과의 대화>(에코리브르, 2013). 사회인문학총서의 네번째 책으로 "국내외 학자 일곱 명의 사유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회와의 만남 속에서 기존의 인문학적 사유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독자적인 사유의 틀을 일구어내고자 애써 온 사회인문학자의 삶을 잘 보여준다." 사회인문학의 실제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어림해볼 수 있을 듯싶다.

 

네번째 책은 홍윤철의 <질병의 탄생>(사이, 2014)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가 오늘날 현대인이 앓고 있는 수많은 질병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또 우리는 어떤 이유 때문에 과거 선조들보다 훨씬 더 질병에 잘 걸리는지를 수백만 년 전의 수렵채집 시대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를 통해 그 원인을 파악하려 한 독특한 문명사 책이다." 조지 윌리엄스의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사이언스북스, 1999)와 내용이 다른지 궁금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

 

 

끝으로 전방위 인문학자 박홍규 교수의 <독서독인>(인물과사상사, 2014). '독서는 인간을 어떻게 단련시키는가'란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독서는 인간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단련시켰으며, 책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과 만나느냐에 따라 권력자가 될 수도 있고, 반권력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독서는 한 영혼을 단련시키면서도 세상을 혁명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박홍규 교수의 독서론으로 읽어도 되겠다. 모르고 지나쳤는데, 저자의 인생론으로 <서른 이후, 문득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경향미디어, 2011)도 수년 전에 나왔다. 매일같이 신간을 검색해보는 나도 모르게 출간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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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알랭 바디우 지음, 박정태 옮김 / 이학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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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평전- 현대 중국의 건설자
에즈라 보걸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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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문학과의 대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사업단 엮음 / 에코리브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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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질병의 탄생- 우리는 왜, 어떻게 질병에 걸리는가
홍윤철 지음 / 사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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