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는 다르지만 과학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그러면서 난이도가 좀 되는) 책 두 권을 한데 묶는다. 무의식의 저널(엄브라) 시리즈로 나온 <과학의 유령>(인간사랑, 2016)과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젊은 과학의 전선>(아카넷, 2016)이다.

 

 

'엄브라' 시리즈는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인간사랑, 2008) 이후 띄엄띄엄 나오고 있는데, 원 잡지가 그렇게 나오는 게 아니라, 한국어판이 일인 번역의 결과라서다. <과학의 유령>은 <전쟁은 없다>(2011), <검은 신>(2013)에 이어서 넷째 권으로 나온 책이 된다. 정신분석 계열의 잡지답게 이번에도 슬라보예 지젝과 알랭 바디우 등이 필자로 참여했다.

 

따로 책소개가 올라오지 않아서 목차만 참고할 수 있을 뿐인데, 지젝의 글은 '라깡, 문화연구와 인지주의 사이'란 제목이고, 바디우의 글은 '프레게/프레게 사용법'이다. 번역만으로는 해독이 불가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원문도 참조해서 보는 게 좋겠다(그런 생각으로 있다 보니 아직 앞에 나온 책들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지만). 필자 중에 지젝과 같은 슬로베니아 철학자 '미란 보조빅'은 '미란 보조비치'라고 표기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암흑지점>(도서출판b, 2004)을 비롯해서 국내에 이미 그렇게 소개돼 있다.

 

 

라투르의 책은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사월의책, 2012)에 이어서 오랜만에 소개된다. 그래봐야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갈무리, 2009)까지 포함해서 세 권밖에 되지 않지만. 학술명저번역총서의 하나로 나온 이번 책의 부제는 '테크노사이언스와 행위자 - 연결망의 구축'이다. 책의 모양새와 부제가 전문 학술서다운 티를 완연하게 드러낸다.

"라투르가 1987년 저술한 책으로 과학과 기술,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련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으며, 이제 과학기술학은 물론 사회과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라투르는 ‘행위자-연결망 이론’ 틀을 본격적으로 정립하고 있는데, 오늘날 이 이론이 과학기술학을 넘어서 사회학, 인류학, 경영학, 심리학 등에도 그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관련 학자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된다."

 

과학사회학 내지 과학기술학 분야의 책으로 분류되는 듯한데, 이 분야의 책은 <과학인문학 편지>을 감수를 맡았던 김환석 교수의 책들이 가이드가 된다. 미리 좀 참고한 다음에 라투르의 책으로 넘어가는 게 좋을 듯싶다...

 

16.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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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주말 오후에 '이주의 책'을 고른다. 선풍기만으로는 버틸 수가 없어서 수시로 에어컨을 켜면서 방콕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알라딘도 더위를 먹었는지 계속 검색 에러가 난다). 책은 분야를 정하지 않고 눈에 띄는 대로 골랐다. <태양을 멈춘 사람들>(궁리, 2016)을 타이틀북으로 고른 건 물론 날씨 때문인데, 분야로는 과학사 쪽 책이다.

 

 

저자는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의 남영 교수이고,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를 제목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한다. 대학가의 인기 강의로 소문이 나서 책으로 기획된 듯싶고, <태양을 멈춘 사람들>은 그 첫 권이다. 주로 지동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지동설 혁명의 입문자용 책과 고급 연구서들 사이의 중간 연결고리가 될 만한 내용을 담았다. 과학이론만이 아니라 지동설 혁명 시기의 내밀한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서, 감정이입하며 흥미롭게 읽어가는 과정에서 과학의 실제 맥락을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두번째 책은 팀 마샬의 <지리의 힘>(사이, 2016)이다.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가 부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터키 특파원과 스카이 뉴스 외교 부문 에디터와 BBC 기자로도 일하는 등 25년 이상 30개 이상의 분쟁 지역을 직접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국제 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온 저자가 '지리라는 렌즈'를 통해 세계를 조망한 책이다." 세계 여행은 세계 지도를 펴놓고 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겐 꽤 쏠쏠한 가이드북이 될 수 있겠다.

 

 

세번째 책은 도현신의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서해문집, 2016). 전작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서해문집, 2013)에 뒤이은 책으로 '잊혀지는 신앙과 사라진 신들의 역사'가 부제다. "수메르와 바빌론 신앙, 미트라교, 조로아스터교, 만주족 신앙, 네스토리우스교 등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그 존재가 미약해진 종교들을 모았다." 저자는 종교학자는 아니고 역사교양서 저술가다.

 

 

네번째 책은 심재훈의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푸른역사, 2016). 저자는 중국 고대사 전공으로 <중국 고대국가의 형성>(학연문화사, 2006) 등의 번역서도 갖고 있다. "저자는 한국 전근대 이해에 필수적인 고대 중국 연구의 소홀함과 학문적 불균형을 안타까운 논조로 짚는다. 책의 많은 부분이 고대 중국사가로서 저자의 중국사에 대한 인식과 성찰이다. 책에서 저자는 동아시아 세계의 토대를 마련한 중국 고대 문명이 중국만의 것일 필요는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갑골문과 금문, 죽간 등 출토문헌을 다양한 각도에서 소개하고, 중요 자료를 중심으로 화수분 같은 중국 고대 문명의 세계로 안내한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김영사, 2016). 지난해 나온 <로버트 라이시의 1대 99를 넘어>(김영사, 2015)의 연장선상에 놓인 책으로 '상위 1%의 독주를 멈추게 하는 법'이 부제다. 저자는 경제 관료의 경험을 갖고 있는 진보 성향의 정치경제학자. 이번 책에서는 "이른바 ‘경제 내셔널리즘’이 발생하는 근본원인은 직업 안정성이 축소되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동시에 임금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줄어들기 때문이며, 그 중심에는 경제와 정부를 장악하는 비중을 점점 더 확대하고 있는 대기업, 거대 은행, 부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와 소득을 독점한 상위 1%와 이러한 현상들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고 무엇을 예고하는지 비교 분석하고, 자본주의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선택 사항들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저자 라이시는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로 끝난 최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고 한다. 그의 관점을 가늠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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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멈춘 사람들
남영 지음 / 궁리 / 2016년 8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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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힘-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8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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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잊혀지는 신앙과 사라진 신들의 역사
도현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8월
13,900원 → 12,51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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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심재훈 지음 / 푸른역사 / 2016년 8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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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신세계 아카데미 센텀시티에서 9월 2일(금)에 톨스토이와 체호프의 작품에 대한 강의를 진행한다. 안내 책자(브로셔)를 받아 보니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라고 돼 있다. 1강은 11시에서 12시 20분까지, 2강은 12시 40분에서 2시까지다. 러시아 문학 쪽 강의를 제안 받고 두 작가의 중단편을 골랐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1강 9월 2일A_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2강 9월 2일B_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16. 08. 05.

 

P.S. 일정이 맞으면 저녁에는 인디고에서도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오랜만에 부산 바다를 보고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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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의 소설가를 '이주의 저자'로 고른다. 김탁환, 김숨, 최수철. 먼저 세월호 문제를 다룬 김탁환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거짓말이다>(북스피어, 2016). 지난해 발표한 <목격자들>(민음사, 2015)이 '조운선 침몰 사건'을 다루면서 우연찮게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정면승부를 걸었다.

 

"데뷔 20주년을 맞아 작가 김탁환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2014년 한국에서 벌어진 대형 해난 사고를 목격한 작가는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구상에서 출간까지 최소한 3년은 집중한다는 원칙을 깨고, 시계 제로의 심해로 내려가야만 했던 민간 잠수사에 관해 이야기한다. 애당초 그들은 왜, 누구 하나 오라고 한 적 없는 맹골수도에 자발적으로 내려갔을까. 맹골수도에서 병원을 거쳐 법정까지 이들 잠수사들에게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깊고 차가운 바다 밑 좁고 어두운 선실 안으로 생명줄 하나에 의지해 내려갔던 나경수는 지금 누구의 꿈을 꾸는가. 작가 김탁환은 이를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풀어간다."

'사회파 미스터리'가 결코 일본문학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결연한 작가의 태도도 읽힌다. 시도 자체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지난 봄에 <L의 운동화>(문학과지성사, 2016)를 발표했던 작가 김숨도 또 한 권의 장편을 펴냈다. <한 명>(현대문학, 2016). 이번에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국내 주요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평단과 독자의 고른 호평을 받아온 작가 김숨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 지난 30여 년간의 위안부 문제를 이슈화하는 동시에 그간 한국문학이 잘 다루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인 문학의 장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피해를 증언할 수 있는 할머니들이 아무도 남아 계시지 않는 시기가 올 것이므로 소설을 통해 그런 점에 경각심을 가지게 하고 싶고, 그것이 문학의 도리라 생각한다'며 집필 동기를 밝힌 작가는 300여 개에 이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들을 재구성하여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한 서사를 완성시켰다."

<거짓말>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자 하는 태도가 반갑다. 최근 한국문학의 달라진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중견작가 최수철도 신작 소설집을 펴냈다. <포로들의 춤>(문학과지성사, 2016). 한국전쟁 시기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다뤘다고 한다(시인 김수영이 그곳에 수용돼 있었다). 

"1981년 단편 '맹점'으로 등단한 이래, 의식을 추적하는 집요한 언어와 무수하고 치밀한 감각의 연쇄가 낳은 감각의 무정부 상태를 그린 작품 세계로 현대 한국 소설사에 뚜렷한 족적을 새겨온 작가 최수철의 여섯번째 소설집. 작가가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겨울에 걸쳐 발표한 중편소설 3편을 묶은 연작소설집으로, 그 복판에는 한국 역사상 가장 깊고 오랜 상흔으로 기록된 한국전쟁, 그 전쟁 안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치러야 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다." 

침대와 의자를 다룬 이전 장편소설들과는 좀 결이 다른 소설집일 듯하다. 35년 경력 작가의 원숙한 기량과 경륜이 기대된다...

 

16.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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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내가 제목을 정한 게 아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강의에서 다루게 되면서 그제 읽은 책이 <한강, 채식주의자 깊게 읽기>(더스토리, 2016)였을 따름. 물론 고전이 아닌 특정 작품에 대한 논문집이 따로 나오는 건 전례가 드문 일이고, 이 경우에는 <채식주의자>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에 편승하려는 속 보이는 기획의 산물인 게 뻔하다. 그럼에도 나름 '성실한' 강사답게 수강자를 대신해서 읽는 셈치고 읽었다. <채식주의자>를 다룬 다섯 편의 평문/논문 모음인데, 네 편은 어설프거나 내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이었고, 한 편 정도만 읽을 만했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채식주의자>란 작품 자체가 내게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어설픈 작품이라는 점. 맨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후광을 달게 된 작품에 대해서 냉담하게 말하는 건 자칫 누워서 침뱉기가 될 수 있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시적인 이미지나 문체가 부분적으로 강한 인상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말이 되는 이야기를 쓰는 데에서 산문작가의 본분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작품에서 나는 그런 작가를 발견하기 어렵다. 리얼리티가 현저하게 부족하다고 여겨져서다. 억지스러운 구석이 많다는 얘기다. 김연수 작가의 품평을 흉내내자면 "개연성은 있으나 핍진성이 부족하다."

 

이 작품에 대한 불만은 한 시간 내내 떠들 수 있지만, 그냥 한 대목만 지적하자면, 주인공 영혜의 트라우마적 기억에 자리한 흰 개 이야기만 하더라도 그렇다. 집에서 키우던 멀쩡한 개가 어떻게 하다 주인집 어린 딸(영혜)을 물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자초지종이 얘기가 안 돼 있어서 모를 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그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내달려서 입에 거품을 물고 죽게 만든 다음(달리다 죽은 개가 고기가 부드럽다는 게 이유다) 마을 사람들까지 불러서 온 가족이 개고기를 포식했다는 에피소드다('흰 개'도 보신탕으로 먹나? 드문 일이지 싶다).아홉 살짜리 주인집 딸을 물어뜯은 개라면 '미친 개'이고, 미친 개라면 보신탕으로 먹는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은가. 해서 어떻게 해서 다리를 물어뜯겼는지 설명이 좀 필요한데, 작가는, 그리고 영혜는 말줄임표로 대신한다.

 

"......내 다리를 물어뜯은 개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묶이고 있어."

 

소설에는 이탤릭체로 표기된 영혜의 진술에서 서두가 말줄임표로 시작하는 유일한 대목이다. 나는 이런 처리가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거두절미 스타일? 그것도 아니다. 핵심을 빼먹은 것이니까. 개한테 물렸기에 아이는 "그 개의 꼬리털을 태워 종아리의 상처에 붙이고, 그 위로 붕대를 친친 감고" 대문간에 나가 그 개가 학대받다 죽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꼿꼿하게 서서 지켜본다. "번쩍이는 녀석의 눈과 마주칠 때마다 난 더욱 눈을 부릅떠." 아무리 개에 물렸다고 하더라도 피를 토해 내면서 죽어가는 개의 모습을 보면 연민을 느낄 법도 하지만 아이(영혜)는 그렇지 않았다(이미 어릴 때부터 독한 성격이었다는 얘긴가?). 그 개를 재료로 만든 보신탕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다 비웠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죽은 개의 두 눈을 기억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그런데 성인이 되고 결혼 5년차 주부까지 된 영혜가 갑자기 그때의 기억을 상기하면서 그 폭력성에 진저리치며 채식주의자가 된다? 납득이 가지 않는 연결이고 설명이다.

 

이 대목은 유려한 번역으로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도 잘 이해를 못한 성싶다. 원작과 그의 번역을 비교한 한 기사에서도 지적한 것이지만,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라는 문장을 데보라는 "He says he heard somewhere that driving a dog to keep running until the point of death is considered a milder punishment."라고 옮겼다. '더 부드럽다'를 'a milder punishment'(더 가벼운 벌)로 오역한 것. 아마도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몰라서 고기가 더 연해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하긴 이해해도 문제다. 얼마나 잔혹하면서 엽기적인 응징인가! 아니면, 영어권 독자들이 느낄 법한 혐오감을 고려하여 일부러 잘못 옮긴 것인지도.

 

여하튼 이런 대목과 영혜의 꿈, 그리고 그녀의 극히 돌발적인 육식 거부 행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작가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냥 강렬한 이미지를 몇 개 던져놓으면 자연스레 서사가 이어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듯싶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는 매우 미진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는 법이며, 그런 독자는 심지어 작가가 (시가 아닌) '산문정신'을 제대로 견지하고 있는지 의심까지 하게 된다. 문득 작가가 쓴 산문집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그래서 찾아봤다. 에세이로 분류되는 한강의 책은 세 권 검색되는데, <내 인생의 영화>(씨네21북스, 2015)는 필자들이 한 꼭지씩 쓴 글모음집이니까 제외하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 2007)와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 2009) 두 권이고 모두 절판된 상태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좋아하는 노래에 사연을 덧붙인 책이라고 하니까 제쳐놓으면, 첫 산문집의 개정판으로 나온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그나마 정체가 궁금한 책이다. 하지만 이 또한 '여행산문'이어서 본격적인 산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내가 염두에 둔 건 동갑내기 작가(같은 70년생이다)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마음의숲, 2012)이나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 내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문학동네, 2016) 같은 책의 한강 버전이다. 그가 이런 류의 책을 쓸 수 있을까, 궁금해진 것. 내기를 건다면, 나는 어렵겠다는 쪽이다.

 

 

이전에 읽은 기억이 없어서, 그리고 구매 기록도 없어서 첫 작품집 <여수의 사랑>과 <채식주의자> 바로 이후에 쓴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를 어제 주문해서 받았다. <여수의 사랑>은 '문학과 지성 소설 명작선'에 포함돼 있는데, 이건 최인훈의 <광장/구운몽>, 그리고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 어깨를 나란히한다는 뜻이다. 과연 그런가는 이 참에 읽어봐야 알겠지만 <바람이 분다, 가라>는 그냥 액면만으로 기대를 꺾게 만들었다. 소설이 아니라 단상집 같은 모양새여서다. 나는 지면을 빼곡히 채우는 게 일단 '산문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시처럼 듬성듬성 흩뿌려져 있는 게 아니라. 그래서 소설에서 별다른 이유 없는 행갈이의 남발을 혐오한다. <흰>이라는 책을 '한강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단상집' 정도 아닌가?

 

올해의 가장 핫한 작가에 대해 유감의 말을 적게 돼 나도 유감스럽지만, 어떤 사안에서건 소수의견은 있는 법이다. <채식주의자>가 어째서 좋은 작품인지 누군가 나를 설득해주면 좋겠다...

 

16.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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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b0414 2024-10-16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이상자 아닌가 ?

hsmgd71 2025-01-04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hb0414 거기 적어놓은 그 말이, 바로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