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책이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책장에 꽂힌 책과 바닥에 쌓인 책 가운데 당장(최소 2년간) 보지 않을 책이라는 명목으로 1-2천권을 빼내는 게 목적인데, 끈으로 묶어서 나르는 방식이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이런 이사를 1년에 두번씩 해야 히는 게 장서가의 비운이다(장서가의 즐거움은 이런 책이사의 괴로움에 의해 상쇄된다. 고작 몇 푼어치의 즐거움이 남지 않을까 싶다).

책들을 선별하며 빼내던 중에 김경집의 <고전, 어떻게 읽을까?>와 <청춘의 고전>까지 발견했다. 눈에 띈 것은 이번주에 <다시 읽은 고전>(학교도서관저널)이 출긴돼 조금 훑어보았기 때문이다. 부제가 ‘인문학자 김경집의 고전 새롭게 읽기2‘이다. 2016년에 나온 <고전, 어떻게 읽을까?>의 뒤를 잇는 책이어서 ‘2‘가 붙었다(저자는 3부작을 기획했다니 한권이 더 남았다).

‘다시 읽는 책‘이 고전에 대한 정의이으로 ‘다시 읽은 고전‘이란 제목 자체는 중복의 의미가 있다. 세계문학 고전들을 강의하면서 내가 매번 ‘세계문학 다시 읽기‘라고 제목을 붙이는 것과 같다. 저자는 문하과 인문, 두 분아로 나누어서 과거에 읽은 고전을 되읽은 소감을 적어놓았다. 문학의 경우엔 2/3 가량이 나도 강의에서 다룬 작품들이라 소감을 비교해가며 읽어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독자라도 이 고전들이 어째서 다시 읽어볼 만한 책들인지 가능해볼 수 있겠다.

시간과 에너지가 뒷받침된다면 이렇게 찾은 책들을 한데 모아놓고 싶지만 오전 몇 시간의 작업으로 벌써 기진한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리는 고작 이런 페이퍼를 통해서 세 권을 모아놓는 것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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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23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제 종강한 프랑스문학 강의에서 마지막에 다룬 작가는 로맹 가리다. 국내에 다수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 다작의 작가이면서 두 차례 공쿠르상을 수상한 이력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한 작가에게 한번 주어지는 상을 두 번 수상한 것은 로맹 가리가 아닌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이를 철저히(혹은 요령 좋게) 숨겼기 때문이다. 


로맹 가리에 대한 강의는 이번이 세번째였는데 앞선 두 번의 강의에서는 <그로칼랭>(1974)과 <자기 앞의 생>(1975), 그리고 자전소설 <새벽의 약속>(1960)을 읽었고 이번 강의에서는 데뷔작 <유럽의 교육>(1945)과 공쿠르상 수상작 <하늘의 뿌리>(1956)를 읽었다.

한 작가를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한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함께 주로 작품들 간의 관계 혹은 이행 경로에 관심을 둔다. 로맹 가리의 경우라면 주요작인 <유럽의 교육>에서 <하늘의 뿌리>로의 이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하늘의 뿌리>에서 <새벽의 약속>으로의 이행은 얼마나 필연적인가, 더불어 <그로칼랭>을 전후로 한, 로맹 가리에서 에밀 아자르로의 이행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이 관심거리가 된다. 
















이 가운데서 첫번째 <유럽의 교육>에서 <하늘의 뿌리>로의 이행은 그 사이에 발표된 작품들이 소개되지 않아서(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주로 후기작에 집중돼 있다)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연스레 두번째 주제로 넘어가는데 <하늘의 뿌리> 이후에 또다른 대표작 <새벽의 약속>을 발표하기 전에 로맹 가리는 영어로 <레이디 L>(1958)을 발표한다. <새벽의 약속>이 그의 어머니에 대한 소설이라면(카뮈와 함께 로맹 가리는 대표적인 ‘엄마 아들‘ 작가다) <레이디 L>은 첫번째 아내 레슬리 블랜치를 모델로 한 소설이다(알려진 대로 여배우 진 세버그가 그의 두번째 아내다). 로맹 가리는 이 영어 소설을 직접 불어로 옮긴 개정판을 1963년에 발표한다. 그래서 <레이디 L>은 <새벽의 약속>의 앞에 있기도 하고 뒤에 있기도 한 작품이다.

나의 가정은 <하늘의 뿌리>가 로맹 가리의 전기 문학의 결산이고 <레이디L>이나 <새벽의 약속>부터는 다른 주제 혹은 다른 사이클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지는 확인해봐야 알 수 있는데 <레이디 L>이 품절이어서 일이 좀 번거롭게 되었다. 소장도서인지도 불분명하다. 그래서 ‘레이디 L을 찾아서‘란 제목을 붙인 것. 내일과 모레 또 책이사를 하게 돼 한바탕 전쟁을 치를 예정인데 어쩌다 ‘전쟁고아‘ 만나듯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관계 혹은 그 이행의 문제는 핵심적이면서 복잡한 문제이고 견적도 많이 나온다. 본격적인 작가론을 쓸 작정을 해야 달려들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중에 <그로칼랭>과 <자기 앞의 생> 등을 다시 읽게 되면 고려해보려고 한다. 매주 거의 열명의 작가들과 씨름하는 나로선 한 작가에게 하루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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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2-23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알고계실수 있지만 <자기앞의생>이 이번에 연극으로 올라갑니다. 기회가 된다면 연극보고 선생님 강의 듣고 싶네요^^

로쟈 2019-02-23 21:50   좋아요 0 | URL
네, 공연은 보게 될지 아직 미지수네요. 이탈리아에 다녀와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지난가을과 이번겨울 미국문학 강의에서 포크너를 다시 읽으며 다룬 작품은 <성역>(1931)과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1930), 그리고 <곰>(1942) 등이다. 언젠가 적었지만 <곰>은 독립된 중편이 아니라(별도로 단편으로 발표된 적은 있다) 장편 <모세여 내려가라>의 한 장이기에 이 장편이 완역되어야 한다(역자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해설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댜).

강의를 마치며 몇 가지 소감을 적자면, 먼저 포크너의 작품이 더 번역돼야 한다는 것(이건 이미 했던 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미 나와있는 번역본들도 다시 번역되면 좋겠다는 것.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와 <곰> 등은 복수의 번역본이 나와있지만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 일급의 번역자가 옮긴 포크너는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확인해보고 싶다.

또 한가지는 초심자를 위한 포크너가 있느냐는 것. 비유컨대 포크너는 경사가 완만한 바다가 아니라 바로 깊어지는 바다다(우리식으로는 서해가 아니라 동해에 가깝다). 그런 바다에서 초심자가 수영하기 어려운 것처럼 초급 독자가 포크너의 바다에 곧장 뛰어드는 것도 무리로 여겨진다. 포크너의 작품을 강의에서 다룰 때마다 ‘어려운‘ 말들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해명이다. 그럼에도 문학 독자라면 그의 작품들에 끌리지 않기도 어렵다.

현재 번역된 포크너의 작품들은 단편을 제외하면 모두 강의에서 읽었다.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도 새 번역본이 좀 나와주어야겠다. 만약 나오지 않는다면? 그럼 뭐 읽은 책을 읽고 또 읽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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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2-23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을 벌기 위해 성역을 썼다라는 작가의 말이 작품을 평가절하시키기는 커녕 포크너를 더 대단한 작가로 만든 말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설명의 결과이기는 하지만요ㅋㅋ
에크리에 대한 쌤의 글은 저희 단톡에서 또다시 돌려보며 웃었습니다~^^

로쟈 2019-02-23 21:51   좋아요 0 | URL
덕분에 저도 글감을 얻었습니다.^^

종이달 2022-05-2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제목은 오타가 아니다. ‘읽기 위하여‘가 아니리 ‘읽히기 위하여‘다. 백화점 겨울학기 강의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라캉의 <에크리>가 화제가 되었는데(일차적으로는 두께와 가격 때문에), 한 분이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고 하셨다. 이 경우 ‘읽기 위하여‘와 ‘모셔 두려고‘와는 구매 동기가 다른데, 특히 자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란다. 가령 싫어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고 ˝다 읽고 나면 보자!˝라고 인사하는 것(굉장히 제한적일 테지만 시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려도 좋은 책이 <에크리>다).

조금 응용하자면 <에크리> 외에 두 권의 <세미나>도 그런 용도에 값하겠다. 내가 읽으려는 책이 아니라 그들에게 읽히려는 책. 싫어하는 사람에게 읽힌다고 했으니 적들에게 읽힌다고 해도 되겠다. 관점을 바꾸면 책의 의의도 달라진다. 읽으려고 하면 암담하지만 적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라면 이만한 책이 있을까. 이 경우 어줍잖은 해설서들은 적을 이롭게 하기에 필히 피해야 한다(적들이 모르게 하라!). 원저인 불어본이나 영역본을 추천하는 것까지는 괜찮다(어차피 프랑스인들도 못 읽는다는 불어본이니까).

오늘 한겨레의 기사를 읽으니 <에크리>는 초판 1000부를 찍었다고 한다. 유효독자를 감안한 것이면서 번역의 수정을 대비한 것이리라. 명절 선물용 소갈비 한짝이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그에 준하는 선물로 몇 권 구입해놓아도 좋겠다. 나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해서 한권만 구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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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과학서로 꼽을 만한 마이클 셔머의 <천국의 발명>(아르테)에 대해서도 짧은 서평을 읽었다. 저자의 전작이나 이력을 생각하면 ‘사후세계, 영생, 유토피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라는 부제에서 저자의 의도와 결론까지도 가늠이 되는 책. 물론 독서의 즐거움은 직접 읽어봐야 얻게 되지만.

˝정말로 천국이 있다면 가기 싫다는 사람이 있을까? 종교가 있든 없든 사람들은 여전히 사후 세계의 존재를, 그리고 가급적 현실보다 나은 사후 세계를 바란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과학적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 박사는 이런 인간의 사후 세계에 대한 강박관념을 과학적으로 탐구한다. 그러면서 인문과 과학, 진중함과 날카로움, 유머러스함을 시종 넘나들며 ‘죽음 뒤에 그곳’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삶의 목적을 이뤄야 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셔머는 과학잡지 ‘스켑틱‘을 창간한 대표적 ‘과학적 회의주의자‘다(‘과학적‘이란 말이 붙는 건 ‘철학적 회의주의자‘를 의식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스켑틱‘은 몇년 전부터 한국판도 나오고 있다. 대체로 종교적 맹신이 아직 과도하게 판을 치는 한국사회에서 합리적 회의주의의 자세는 그 자체로 미덕이 된다. 꾸준히 번역되는 편이지만 많이 읽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는 셔머의 책들에 응원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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