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창백한 불꽃>(문학동네)이 번역돼 나왔다. 초역은 아니지만 워낙 난해한 작품이어서 예전 번역판은 큰 의미가 없었다. ‘나보코프의 가장 완벽한 소설‘(전기작가 브라이언 보이드의 평이다)을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이제 비로소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지난해 ‘러시아 예술가소설‘을 주제로 강의하면서 나보코프의 <사형장으로의 초대>와 <재능>을 읽었는데 분류하자면 <창백한 불꽃>도 예술가 소설에 해당한다(사실 나보코프의 소설 대다수의 주인공이 예술가이거나 예술가적 속성을 지닌 인물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미국 소설‘이다.

나보코프가 러시아 출신의 망명작가여서 알라딘에서는 <창백한 불꽃>도 러시아문학으로 분류돼 있는데 범주상의 오류다. 나중에 러시아어로 번역됐지만 <롤리타>와 마찬가지로 영어로 쓰인 소설이니 미국문학(내지 영문학)으로 분류해야 맞다(이렇게 말해놓고 나도 일관성을 위해서 이 페이퍼를 ‘러시아 이야기‘로 분류한다). 영어로 쓴 첫 장편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에서 시작해 <롤리타>를 거쳐서 <창백한 불꽃>에 이르는 게 미국작가 나보코프의 여정이다(이런 순서의 강의도 해볼 만하겠다. 더 바란다면 가족사소설로 <아다>가 번역됨직하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 상당수 남아있지만 <창백한 불꽃>이 출간됨으로써 뭔가 매듭이 지어진 느낌이다. <창백한 불꽃>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읽고 강의할 기회를 마련해봐야겠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함께 내게는 이번 봄학기의 도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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