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의는 물론 전공학회와도 거리를 두고 지내다 보니 학술서를 손에 들 일이 아주 드물어졌다. 관심이 가는 책들은 구해놓는 편이지만 좀처럼 읽을 여유를 내기 어려울 뿐더러 외서 같은 경우도 (학술서라서) 너무 비싸서 '그림의 책'으로 보관함에만 넣어두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눈에 띄니까 몇 권은 페이퍼로 갈무리해놓는다.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 연구총서'로 나오는 책들과 한국외대의 '세미오시스 번역총서' 책들이다.

 

 

불어문화권 총서로 이번에 나온 책은(아무래도 주로 아프리카 지역을 다룬다) <카빌리 베르베르 문화사전>(사회평론아카데미, 2016)이다. '알제리 소수민족의 삶과 역사'가 부제. 사전인 만큼 분량도 두툼하다.

"알제리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거꾸로 프랑스에 유무형의 영향을 미쳤고, 지중해의 수많은 민족들이 로마와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사라져갔음에도 지금까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바로 카빌리 베르베르인들이다. 우리에게 익숙하게는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의 혈통이며, 알베르 카뮈를 포함한 여러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지역이다."

카뮈를 포함한 여러 프랑스 작가들 가운데 카뮈만 떠오르는지라(누가 또 있는지?) <이방인> 등의 작품을 염두에 두게 되는데, 아무려나 그 배경이 되는 지역과 혈통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책. 이 총서에는 그밖에도 국내 연구자들이 쓴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사회평론아카데미, 2014)와 엘렌 달메다 토포르의 <아프리카: 열일곱 개의 편견>(한울, 2010)이 포함돼 있다. 출간 간격으로 보아 잊을 만하면 한권씩 나오는 편이다. 직접 구입하긴 어려워도 도서관에 있다면 대출해서 주루룩 넘겨보고 싶은 책들이다.

 

 

'세미오시스 번역총서'는 '세미오시스 연구총서'와 짝을 이루는데, 번역총서에 더 눈길이 간 것은 러시아의 언어철학자 알렉산드르 포테브냐의 <사고와 언어>(외대출판부 지식출판원, 2016)이 포함돼 있어서다. 이번에 코르넬리스 드발의 <퍼스 철학의 이해>와 같이 나왔는데, 1권은 2013년에 나온 <퍼스 기호학의 이해>였다. '세미오시스'라는 총서명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주로 기호학 분야의 책들이 연구총서와 번역총서를 구성하고 있다. 그래도 당장 관심이 가는 건 <사고와 언어>.

"저자는 슬라브 제 민족 언어 창작물의 실증적 사례를 통해 언어의 의미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내적 형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언어학과 시학과 심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통학문적인 관점에서의 언어현상 연구를 주창하고 있다. 저자는 언어가 기존의 사고와 새로운 지각 사이의 매개 활동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사고와 언어>에서 개진된 사상은 이후 언어의 대화적 본성을 주장하게 될 후대 철학가들에게 사상적 모델을 제시했다." 

오래 전에 읽은 기억으로는 포테브냐의 언어철학이 러시아 형식주의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잊은 지 오래다.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해선 기본서이면서 고명한 연구서인(영어권 최초의 연구서이자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빅토르 어얼리치의 <러시아 형식주의>(문학과지성사)도 절판된 지 오래 되었군. 이런 책들과 씨름하던 게 어즈버,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16.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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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 다 가기 전에 '이주의 책'을 고른다. 타이틀북은 닐 포크너의 <좌파 세계사>(엑스오북스, 2016)다. "좌파의 시각에서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들여다 본 책이다. 전 세계적으로 좌파의 세계관이 부각되고 있는 지금, 영국의 좌파 역사학자 닐 포크너 교수는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21세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시대가 득세한 현시점까지 방대한 역사를 다룬다."

 

 

두번째 책은 베른트 슈퇴버의 <한국전쟁>(여문책, 2016). 저자는 독일 포츠담대학의 역사학부 교수다. 냉전사가 전문분야로 보이는데, 독어권에서 나온 단행본 저작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베른트 슈퇴버는 이 전쟁이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3년이나 지속된 비극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무자비하고 가혹하게 진행되었는지를 국제사의 시각에서 조망한다." 부제는 '냉전시대 최초의 열전'.

 

 

세번째는 박노자의 <주식회사 대한민국>(한겨레출판, 2016)이다.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부제.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롭고 근본적인 성찰을 이어온 박노자 교수는 이와 같은 '헬조선'에 대해 분석한다. 헬조선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럼에도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네번째는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로 나온 <일본병>(에이케이, 2016). "장기화된 불황, 실업자 증가, 연금제도 파탄, 저출산.고령화의 진행, 산업경쟁력과 과학기술의 후퇴, 격차와 빈곤의 가속화 등 아베노믹스로 인해 일본 경제는 장기 쇠퇴로 접어들었고, 심지어 '일본병'이라고까지 불리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 '일본병'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시도한 책인데, 소개대로 "현재 일본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한국 사회에도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해줄 것이다." 

 

 

끝으로 다섯번째는 김용민의 <한국 개신교와 정치>(소명출판, 2016)다. '개신교 정교 분리 원칙의 변용 과정'이 부제. 학술서 전문출판사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저자의 학위논문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 종교(교회)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문제의식은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휴먼큐브, 2013)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팟빵의 '김용민 브리핑' 애청자로서 한권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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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세계사- 네안데르탈인에서 신자유주의까지
닐 포크너 지음, 이윤정 옮김 / 엑스오북스 / 2016년 6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2016년 06월 19일에 저장
품절

한국전쟁- 냉전시대 최초의 열전
베른트 슈퇴버 지음, 황은미 옮김, 한성훈 해제 / 여문책 / 2016년 6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2016년 06월 19일에 저장
절판

주식회사 대한민국-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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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6월 19일에 저장

일본병- 장기 쇠퇴의 다이내믹스
가네코 마사루.고다마 다쓰히코 지음, 김준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6월
8,900원 → 8,01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6년 06월 1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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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두 사람의 이탈리아 남자와 한 명의 미국 여자다. 직업으로는 작가, 기자, 물리학자. 먼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이탈리아 '현대소설계의 대부' 조르조 바사니(1916-2000). '인문서가에 꽂힌 작가들' 시리즈로 선집이 출간되는데, 일차분으로 나온 것이 세 권이고 세 권이 더 예정돼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태생이지만 주로 북부 도시 페라라에서 성장기를 보냈고(두 도시는 서로 인근에 있다) 페라라가 바사니 문학의 바탕이 된다고(또다른 원천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대표작이 그래서 '페라라 연작'이라 한다. 선집 1권으로 나온 첫 소설집 <성벽 안에서>(문학동네, 2016)의 부제도 '페라라의 다섯 이야기'다. 그밖에 1958년작으로 모라비아나 제발트 같은 작가들이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꼽은 <금테안경>, 1962년작으로 바사니의 대표 걸작이라는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등이 이번에 같이 나왔다. 겸사겸사 내년에는 이탈리아 현대문학에 대한 강의도 기획해봐야겠다.

 

 

두번째 저자도 이탈리아 남자다. 베네치아 태생의 저널리스트이자 저술가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1962년생이다. <책공장 베니치아>(책세상, 2016)로 지난해 처음 소개되었는데, <돈의 발명>(책세상, 2015)을 거쳐서 이번에는 이탈리아 음식의 세계를 다룬 <맛의 천재>(책세상, 2016)까지 번역되었다. 부제는 '이탈리아, 맛의 역사를 쓰다'.

"피자, 파스타, 에스프레소, 모짜렐라, 티라미수 등 이미 우리의 식문화 깊숙이 자리 잡은 이탈리아 음식들의 기원과 변천사, 그리고 성공 스토리를 담은 <맛의 천재>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베테랑 저널리스트의 집요한 취재란 어떤 것인지 그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탈리아의 경제 일간지 「Il Sole 24 Ore」에 연재한 음식 칼럼이 단초가 되어 출간된 <맛의 천재>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보편성을 획득한 음식들의 탄생 비화와 성공 비결을 들려주는데, 과거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생생하게 소환하기 위해 문학, 미술, 영화, 광고 등 온갖 장르의 문화 콘텐츠가 동원된다."

 

이탈리아 음식에 관한 책은 당연히 많이 나와 있다. 엘레나 코스튜코비치의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부터가 내가 기억하는 책인데(추천사를 쓴 인연이 있다) 어느 샌가 절판됐군. 같은 책을 감수를 보기도 한 박찬일 셰프의 책은 여러 차례 개정돼 나왔다.

 

 

지난해 말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사이언스북스, 2015)가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버드대학의 물리학자 리사 랜들의 신작이 또 번역돼 나왔다. <암흑 물질과 공룡>(사이언스북스, 2016).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데, 부제는 '우주를 지배하는 제5의 힘'이다.

"저자 리사 랜들은 탐색 방법조차 아직 분명치 않은 암흑 물질과 수천만 년 전에 갑자기 일어난 공룡 멸종의 수수께끼를 하나로 엮으면서 우주의 역사와 생명과 인류의 역사에 감춰진 충격적인 비밀에 도전한다. 저자는 독특하고도 광범위한 관점으로 암흑 물질을 지구의 역사와 연결 짓는다. 지구의 운명이 우주의 조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며,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한 우주 속 우리의 존재가 사실은 아주 취약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보여 주며 우주의 기막힌 사연 밑에 깔린 우리 세상의 과학을 설명하고 있다."

구분하자면, 겨울용과 여름용인 것일까. 올여름 과학 독서의 필수 아이템으로 꼽을 만하다...

 

16.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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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류학자 두 사람을 다룬 전기(듀오그라피)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현암사, 2016)를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걸출한 인류학자로서 두 사람의 이름이나 대표작을 들어본 독자도 있을 테고, 더 나아가 두 사람이 동성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질 법한 책이지만, 최근 고조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도 읽어봄직하다. 부제는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의 사랑과 학문'.  

 

 

두 사람의 전기는 별도로 나온 적이 있다. 그런데, 둘다 미드의 책이다. 그 자신의 자서전 <마거릿 미드 자서전>(범우사, 1999)과 베네딕트에 대한 전기 <루스 베네딕트>(연암서가, 2008). 제3자가 쓴 평전으로서 이번에 나온 책과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겠다.

"20세기 초, 남성중심적이었던 문화인류학 분야에서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두 사람의 삶과 이론을 밝혀내어 문화적 담론으로서 조명한다. 저자 로이스 배너가 이 책의 주된 목표로 꼽는 것은 ‘젠더의 지리학’이 두 사람의 삶에 미친 영향을 기술하는 것이다. 젠더의 지리학이란 두 사람이 정치적, 사회적, 직업적, 가족적, 개인적 인생의 과정에서 헤쳐나간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지형을 뜻한다. 저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서신과 서류철을 총망라한 최초의 평전을 엮어냈고, 최근 수십 년간 출간된 레즈비언 역사와 퀴어 이론서도 폭넓게 활용했다. 두 사람의 흥미진진하고 다면적인 인생 그리고 연구 업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여성 학자로서 받은 불평등한 대우를 결국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간다."

제목에는 미드가 베네딕트보다 앞세워져 있어서 연배가 위인 걸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제자다. 사제지간이자 동료였고 또 연인이기도 했던 것. 루스 베네딕트가 1887년생이고(1948년 몰), 마거릿 미드는 1901년생이다(1978년 몰).  

 

 

루스 베네딕트의 대표작은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 <국화와 칼>이고, 자신의 문화인류학적 입장을 보여주는 책으로 <문화의 패턴>이 있다. 그밖에 <일본인의 행동패턴> 같은 책이 국내에 소개된 상태다.

 

 

그리고 '인류학의 어머니'로도 호명되는 미드의 책으론 <세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과 <사모아의 청소년> 등이 대표 저작으로 번역돼 있다.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를 읽고서 두 사람의 학문 세계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면 연이어 읽어볼 만하다...

 

16.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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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출판문화(606호)에 실은 '이현우의 책읽는 세상'을 옮겨놓는다(지면의 오탈자는 바로잡았다). 오구라 기조의 <새로 읽는 논어>(교유서가, 2016)를 읽은 소감을 일부 적었다. 기대 이상의 자극으로 던져주는 책인데, 공자와 <논어>를 보는 시각으로는 내가 읽은 범위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새롭다(덕분에 공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핵심은 맹자와 주자도 공자를 잘못 읽었다는 것. 주자의 <논어집주>를 신주 모시듯 해온 이땅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견해다(이수태의 <공자의 발견>(바오, 2015)도 부제는 '탈주자(脫朱子) 논어학'이다). 그래서 희귀하며 계발적이다. 저자의 책이 더 번역되면 좋겠다.  

 

 

 

출판문화(16년 6월) 논어의 재해석

 

동양 고전으로 <논어>만큼 유명하며 많이 읽히는 책은 달리 없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가 특히 그러한 듯싶은데, 고전 읽기 강좌라면 으레 <논어> 읽기를 출발점으로 하며 <논어>에 대한 이해가 동양사상, 혹은 중국사상에 대한 이해의 기본으로 간주된다. 한때 중국에서는 공자와 유교에 대한 비판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적도 있지만 한국에서 공자는 성인의 지위를 잃어본 적이 없고 <논어>는 경전의 자리에서 내쳐진 적이 없다. 물론 ‘공자왈’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건 아니어서 한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은 있지만 말이다.


공자와 마찬가지로 <논어>에 대한 이미지도 두 가지로 양분되는 듯싶다. 절대적인 존숭과 경탄의 대상이거나 구닥다리 같은 구시대적 인물과 낡은 사상의 대명사이거나. 즉 선생이거나 꼰대거나. 그 사이의 태도도 가능할까? 다수의 <논어> 번역본과 주석서를 읽고 때로 서평도 쓴 적이 있는 만큼 나는 <논어>를 고전으로서 예우해온 편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논어>를 열심히 읽었다고 할 수도 없다. <논어>에 대한 나의 독서는 언제나 발췌독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읽을 시간이 없다거나 재미가 없다거나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이유에서다. <논어>를 읽어도 안 읽은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그 이유니까.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에 차이가 없다는 건 무슨 말인가. 그건 <논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여 아직도 그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논어>의 미스터리인데, 일단 ‘어록’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논어>는 굉장히 쉬운 한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약간의 한문학적 지식을 갖고 있으면 일반인도 해석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쉽게 읽히는 문장들이 여전히 모호하거나 자주 모순적인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란 구절만 하더라도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익힌다는 말인지 모호하다. 게다가 '시’(時)라는 말의 뜻이 ‘때에 따라’인지 ‘때때로’인지 아니면 ‘계속’인지, 확정해서 말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의 견해가 그렇듯 다르기 때문이다. ‘위정’편에 나오는 ‘공호이단, 사해야이’(攻乎異端, 斯害也已)란 구절도 “이단을 전공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다”라고 읽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이단을 공격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이다”로 새기기도 한다. 정반대의 해석이 양립가능하다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까?


또 ‘자한’ 편에는 “나는 여색을 좋아하듯이 덕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대목의 색(色)을 여색으로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겉모습에 치중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여색’과 ‘겉모습’이 반대말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의미가 완전히 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런 식이면 <논어>는 읽어도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을 맛보기 어렵다. 뭔가 개운치 않은 뒷맛이 계속 남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논어>에 대한 온전한 독서는 미래의 일로 미뤄두고 있었는데, 예기치 않게도 <논어>를 읽는 눈을 새로 뜨게 해주는 책과 만났다. 오구라 기조의 <새로 읽는 논어>(교유서가)다. <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제이앤씨)란 소책자가 지난해에 나오긴 했으나 그것도 따로 검색해서 알게 된 사실이고 우리에겐 생소한 저자다. 일본에도 공자와 <논어>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은 권위자들이 없지 않다. 시라카와 시즈카나 미야자키 이치사다 등이 국내에는 소개된 바 있다. 오구라 기조는 그런 대가급은 아니지만 흥미롭게도 한국에 8년간 살았던 적이 있는 ‘지한파’다.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 적을 두고 공부한 8년간의 수학 경험 때문에 책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그는 일본과 한국 ‘사이’를 체험했고 이 체험이 <새로 읽는 논어>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오구라 기조의 <논어> 해석에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그 ‘사이’다. 일단 그는 공자의 세계관을 생명철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아주 대범한 구도를 제시하는데, 그가 보기에 동아시아에는 생명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대립해왔다. 바로 ‘애니미즘’과 ‘범령론’이고, 이 가운데 ‘애니미즘’을 대표하는 사상가가 바로 공자라는 것이다. 그가 정의하는 범령론은 “세계 혹은 우주가 하나의 영(spirit) 혹은 영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스피노자의 범신론도 범령론에 속하고, 동양에서는 우주 전체가 하나의 기로 되어 있다고 보는 도가나 유가의 기(氣)사상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공자는 “생명을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특정한 공동체나 감성을 공유하는 집단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보는 독특한 생명관을 갖고 있었다. 이를 일컬어 저자는 ‘애니미즘’이라고 부르는데, 통상적인 의미의 애니미즘과는 구별되기에 소울리즘(soulism)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생명이라는 것이 혼(soul)과 혼(soul) ‘사이’에서 문득 드러나는 것이라고 보는 세계관을 가리킨다.


이런 새로운 개념(용어)들의 타당성은 물론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논어>의 핵심 개념으로서 인(仁)을 저자는 어떻게 해석하는가. <논어>를 진지하게 읽어나가는 독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한데, 사실 <논어>에서 공자는 인에 관해서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통상 인에 관한 공자의 산발적인 발언들을 취합하여 인의 통일적인 의미를 추출해보려고 애쓴 것이 기존의 독법이었다. 하지만 오구라 기조는 이런 관행을 뒤집는다. 공자가 말하는 인이 통일적인 정의나 의미를 결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자의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 인에는 그런 정의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애니미즘(소울리즘)은 우연성이란 관점에서 생명에 접근하기에 무엇이 ‘생명’인지 보편적‧연역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즉 인은 지극히 우연적이면서 우발적인 성격을 갖는다.


흔히 인에 대한 정의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인데, 이 또한 저자가 보기에는 인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가 아니다. 극기복례할 때 거기에 인이라는 생명이 반짝인다는 뜻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생명’이고, 그 ‘사이의 생명’을 드러내기 위한 의지력”이다. 그리고 어진 사람으로서 인자(仁者)란 그러한 ‘사이의 생명’을 드러내기 위한 의지력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실 인(仁)란 한자 자체가 ‘인(人)’과 ‘이(二)’의 합성어이며 본래는 ‘친하다’는 뜻이라 한다. 그 원래적 의미에 따르더라도 인은 ‘두 사람 사이’를 가리키며,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오구라 기조는 인을 ‘사이의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을 내면화하거나 인격화할 때 발생한다. 바로 맹자가 한 일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사상사에서 마음을 내재화한 이는 공자가 아니라 맹자다. 우리가 아는 대로 맹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덕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내면에 선한 도덕적 본성이 내재해 있고 그것이 밖으로 발현된다고 본 것이다. 오구라 기조가 보기에 이것은 공자의 사상이 아니다. 공자의 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이지 개인의 마음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군자 또한 특정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즉 “어떤 사람이 인을 실현할 때 가끔 군자가 되는 것”이어서 공자가 이상으로 여긴 것은 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군자의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극기복례’란 말도 다르게 해석된다. 주자는 극기(克己)를 ‘사욕을 이겨내다’로 해석하고 ‘복례(復禮)’는 ‘천리(天理)로 돌아가다’로 해석했지만, 오구라 기조는 자기 한 사람의 주관성을 극복하고 예라는 공동주관적 공간(사이)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한자의 어의를 좇자면, 인(仁)은 ‘사람들 사이’를 가리키는 ‘인간(人間)’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까. 곧 인간을 그러한 ‘사이적 존재’로 본 것이 공자의 인간관이자 생명관이라는 게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한편 ‘인간’을 일컬어 영어로는 ‘human being’이라고 옮기는데, 그 의미를 살리자면 ‘interhuman’이라고 옮기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이 두 용어를 원용하자면, 맹자는 공자가 말한 ‘인터휴먼’을 ‘휴먼비잉’으로 곡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덧붙이자면,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랑을 ‘둘의 무대’이자 ‘둘의 진리’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인(仁)의 정의에 바로 부합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인을 가르친 공자는 ‘사랑의 철학자’로 다시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구라 기조의 <새로 읽는 논어> 덕분에 도덕군자가 아닌 '사랑의 철학자'로서 공자를 다시 만난다.

 

16.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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