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공지다. 창비학당의 여름방학 맞이 브런치 특강에 참여하게 되었다. 방학맞이라고 돼 있지만 강의는 방학이 끝날 무렵인(심지어 끝난 뒤인) 8월 20일과 27일 양일에 진행된다. 나는 8월 20일 오후 1시-2시 30분'정치철학 입문: 플라톤에서 마이클 샌델까지'를 주제로 강의한다. 장소는 망원동의 창비사옥이다. 전체 특강 일정은 아래와 같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16. 0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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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좀 일찍 고른다. 주말에 고른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다. 인문 저자 3인인데, 먼저 강유원의 '고전 연속 강의' 시리의 하나로 <철학 고전 강의>(라티오, 2016)가 출간되었다. <역사 고전 강의> 이후 4년만이다.  

 

"고전적인 의미의 철학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전통적으로 추구해온 고도의 추상적 사유들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주요 철학자들의 저작들에서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저자는 철학의 전 영역이 아니라 전통적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다루고 있다.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모든 분야를 공부할 수 없으므로, 전통적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다룸으로써 철학의 전 영역으로 나아가는 기본적인 원리를 터득하려는 것이다. 헤시오도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은 고대의 사상가들에서 시작하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데카르트, 칸트, 헤겔에서 이러한 시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검토한다."

인문 독자들이 오래 기다렸을 책인데, 강의의 템포에 맞추자면 일년 독서 거리로 고려해봄 직하다. 시리즈에 포함돼 있는지 모르겠지만 <문학 고전 강의>가 다음 차례일까.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와 번역을 진행해온 윤여일이 매듭을 짓는 성과로서 <동아시아 담론>(돌베개, 2016)을 펴냈다. 부제가 '1990 ~ 2000년대 한국사상계의 한 단면'인데, "1990년대 초반의 탈냉전기부터 2000년대 중반의 참여정부기까지, 국내에 동아시아 담론이 어떤 방식으로 유입됐고 분화되면서 변화를 겪어왔는지 지식사회학의 각도에서 분석한" 책이다. 바탕이 된 건 지난해 발표한 박사학위논문이라고. 동아시아 담론을 사상의 번역이란 측면에서 다룬 전작들, <사상의 원점>(창비, 2014)과 <사상의 번역>(현암사, 2014)에 잇대어 읽어봐도 좋겠다.

 

 

저자가 대화와 교류, 번역의 주된 대상으로 삼고 있는 중국 학자 쑨거의 책들도 내친 김에 다시 호명해놓는다.

 

 

끝으로, 일본의 비평가이자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의 신작이 번역돼 나왔다. <제국의 구조>(도서출판b, 2016). 당초 지난 겨울에 나오는 걸로 들었지만 출간이 조금 늦어졌다. 예상할 수 있지만 <세계사의 구조> 서플먼트의 하나다.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 이후 그것을 보충하는 형태의 책을 세 권 펴냈다. <자연과 인간>, <철학의 기원>,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제국의 구조>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구조>는 <세계사의 구조>를 완성시키는 책이다."

지난 겨울 <세계사의 구조>에 대해 강의하면서 <제국의 구조>가 출간되면 좀더 자세한 이해가 가능할 거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는데, 이제 확인해볼 수 있게 돼 반갑다. 일독하고 나서 여차하면 하반기 강의에서도 다루고 싶다... 

 

16.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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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재런 러니어의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열린책들, 2016)를 고른다. 저자는 <디지털 휴머니즘>(에이콘출판, 2011)으로 먼저 소개됐던 컴퓨터 과학자이자 철학자(에다 시각예술가, 작곡가, 영화감독 그리고 저술가)다. 이 분야에서는 '구루'로 꼽히는 인물이라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빅데이터를 가공하여 돈을 버는 세이렌 서버가 인간의 삶과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보여준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어떻게 네크워크를 장악하고 막대한 돈을 벌게 되었을까. 경제가 점차 기술과 정보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게 중산층의 몰락과 관계가 있을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정보 경제'를 어떻게 바꾸어야만 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실리콘 밸리의 선지자' 재런 러니어의 답은, 기계의 들러리가 아닌 가치의 주인으로서 인간 존재를 돌아보게 한다."

이런 소개만으로는 감을 잡기 어려운데, "기술, 디지털화, 〈빅데이터〉의 유익함에 대한 반대 견해를 제시하며, 도발적이고 논쟁적이다."(워싱턴 포스트) 같은 추천사가 그래도 참고가 된다. '디지털 자본주의'가 불가피한 현실이 된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심지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돌아보게 한다니 일독할 만하다.

 

 

더불어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플래닛, 2013)의 저자 캐서린 헤일스의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아카넷, 2016)도 눈길을 끈다.  

"캐서린 헤일스는 20세기 말인 1999년에 나온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듀크 대학의 영문학 교수다. 화학 석사와 영문학 박사 학위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독특한 학력의 문학 비평가이자 인문학자인 헤일스는 이 책에서 20세기 중후반에 발전한 사이버네틱스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탈체현된 포스트휴먼 판본을 비판했다. 6년 후인 2005년 헤일스는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를 출간하면서, 앞의 책에서 다루었던 자유주의적 휴머니즘 주체와 포스트휴먼 간의 상호작용은 이미 20세기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기 시작했다고, 21세기에 들어선 현재 논쟁의 초점은 자유주의 휴머니즘의 전통과 포스트휴먼 사이의 긴장보다는 지능형 기계와 함께 계속 진화해 나가는 포스트휴먼의 각기 다른 판본들에 맞추어지고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

영문학자이면서 포스트휴먼 이론의 선구자라는 점이 이채로운데, 이 책 역시 '포스트휴먼 총서'의 하나로 출간되었다. 2005년이면 벌써 오래됐다는 느낌을 주기까지 하지만 어쩌면 지금 더 실감나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문한 책을 기다리는 중이다...

 

16. 7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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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로는 두 달 전에 나온 책이지만 리 빌링스의 <50억년 동안의 고독>(어마마마, 2016)을 '이주의 과학서'로 고른다. 휴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이 어딜까, 궁리하다가 '이거다!' 싶어서 손에 든 책이다. '외계 생명체와 새로운 지구를 찾아가는 길'이 부제. 따로 갈 데도,숨을 데도 없지만, 기분으론 '50억년'을 가늠해본다. 소개로는 "외계 지적 생명체와 태양계외행성 탐색 분야의 선구자적인 천문학자와 행성과학자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그들과의 밀착 인터뷰를 통하여 지구와 닮은 별을 찾으려는 노력, 즉 '태양계외행성 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명하는 책이다."

 

 

비슷한 분야의 책으로 예전에 손에 들었던 책은 앨런 라이트먼의 <엑시덴털 유니버스>(다산초당, 2016)다. 이론서가 아니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저자는 우주를 향한 우리의 갈망, 즉 ‘우주 본능’에 답을 주기 위해 우주를 자신의 삶과 연결 지어 풀어나간다. 우주의 대칭성과 인간 삶 속 대칭들을 비교하며 인간이 대칭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안에 그 속성이 내재하기 때문이라 말하고,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우리 삶은 열역학 제2법칙으로 인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우주의 특성과 똑같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리고 지난달에 나온 책으로는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의 <소행성 적인가 친구인가>(갈매나무, 2016). "소행성의 위협과 그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인류의 기술들, 그리고 소행성이 인류에 가져올 새로운 기회를 꼼꼼하게 담은 과학 다큐멘터리 같은 책." 먼저 나왔던 <지금 지구에 소행성이 돌진해 온다면>(갈매나무, 2014)의 속편 격인 듯. 소행성이라고 하니까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멜랑콜리아>도 떠오른다. 소행성과의 충돌을 소재로 한 영화이고, 영화속 소행성의 이름이 멜랑콜리아다. 소행성과의 충돌은 물론 지구 종말을 뜻하지만, 영화에서 우울증 환자인 주인공에게는 그 종말이 역설적으로 환희의 경험이다.

 

 

<멜랑콜리아>도 다시 볼까 싶지만, 마침 <님포매니악>을 다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2편을 본 게 작년이었던 것 같다. 아직 보지 못한 <안티크라이스트>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대로, 아니면 여유를 쥐어짜서 봐야겠다. 생각해보니, 이 영화들 모두에 샬롯 갱스부르가 주연으로 나온다. 라스 폰 트리에의 뮤즈인 것인가. <50억년 동안의 고독>에서 동떨어진 얘기 같지만, 아래와 같은 포스터를 보고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은 독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이 영화를 꼭 권한다는 건 아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라는 걸 알고 보면 된다...

 

 

16.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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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안드레아 울프의 <자연의 발명>(생각의힘, 2016)을 고른다. 부제가 '잊혀진 영웅 알렉산더 폰 훔볼트'이다. 훔볼트라는 이름에서 독일의 자연과학자 혹은 지리학자를 떠올릴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동시대인들은 '나폴레옹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나이'라고 여겼다니까 우리에게도 '잊혀진 영웅'이 맞다. 사실 훔볼트란 이름은 내게도 언어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를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알고 보니 둘은 형제이고 빌헬름(1767-1835)이 형, 알렉산더(1769-1859)가 동생이다. 요컨대 '어느 훔볼트'인지 확인해야 하는 것(베를린의 훔볼트 대학은 누굴 기념하여 세워진 것일까? 둘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존재는 재작년에 나온 울리 쿨케의 <훔볼트의 대륙>(을유문화사, 2014) 덕분에 알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책을 구입하고 나서 곧 이사를 하는 바람에 책의 소재를 알 수 없다.

 

 

독서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해 여름 베를린 여행중 훔볼트대학에 들어섰을 때 뭔가 생각나는 게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내게 훔볼트는 언어학자 빌헬름이었다. 찾아보니 틀린 건 아니다. 빌헬름 폰 훔볼트가 베를린대학 설립에 크게 기여했고, 이 대학이 나중에 훔볼트대학으로 개칭되었다는군.   

 

 

아무튼 형 빌헬름 폰 훔볼트의 책, 혹은 그에 관한 책도 몇 권 갖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훔볼트란 이름을 알렉산더에게 내주어야 할 것 같다. 그에게로 관심이 이동한 탓이다. 게다가 이번에 소개된 전기가 꽤 수작이다.

"아마존.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코스타 어워드 전기 부문 수상작.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발자취를 따르는 환상적인 여행 속에서, 이 잊혀진 영웅을 재조명한다. 훔볼트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했으며, 시대를 너무나 앞서 나갔던 그의 아이디어는 오늘날에는 누가 제시했는지 모를 정도로 상식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훔볼트는 자연을 상호연결된 전체로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급진적이었던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자연’을 발명한 것이다." 

 

겸사겸사 원서와 함께 두 형제의 학문세계를 모두 다룬 김미연의 <훔볼트 형제의 통섭>(역락, 2014)도 주문했다. <식물지리학 시론 및 열대지역의 자연도>(지만지, 2012)는 장바구니에만. 지리학 공부에까지 나설 건 아니지만, 올 여름의 여행은 훔볼트의 여정을 따라가보는 걸로 대신해볼 참이다.  

 

그의 일생은 여행과 연구로 점철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생애의 상당 기간을 '과학계의 허브' 노릇을 하는 데 할애했다고 한다. 무려 5만 통의 편지를 보내고 그 두 배가 넘는 편지를 받았다고. 18-19세기 학자/작가들의 편지 쓰기는 못 말리는 구석이 있다. "지식은 공유하고, 교환하고, 만인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믿음이었다고 한다(이 대목이 마음에 들어서 사실 이 페이퍼도 적게 되었다). 그는 1829년 11월에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도 방문하여 강연을 했는데,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직접 그 강연을 듣고 매혹되어 이렇게 격찬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매혹적인 음성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왕궁의 대폭포분수에 있는 대리석 사자상이 뿜어내는 물줄기 같다."(345쪽)

 

 

이 구절은 뒷표지에도 실려 있는데, 본문에는 이름이 '알렉산드로 푸시킨'으로 잘못 표기되었다. '알렉산드르'를 '알렉산드로'로. 아마도 역자가 러시아어를 스페인어 비슷하게 상상했던 모양이다...

 

16.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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