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번역본에서 셰익스피어 강의 장면 묘사다. 젊은 학생들의 존재가 열강의 필수조건임을 알려준다. 우리의 청춘기에도 그런 강의들이 있었다(그런 강의들 탓에 나도 아직까지 문학강의를 하고 있다)...

오, 나는 느낄 수 있었지요. 그는 자신의 열정을 위해 우리의 열정이, 스스로를 소진시키기 위해 우리의 열기가, 기쁨의 환희속에 청춘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우리 젊은이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열중하는 자신의 손으로 더욱 격렬해진 리듬에스스로 도취된 타악기 연주자처럼, 그의 연설은 뜨거운 말 가운데서 점점 더 훌륭하게, 점점 더 열띠게, 점점 더 다채롭게 비상했습니다. 우리가 더 깊은 침묵에 잠길수록, (우리의 숨소리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멎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표현은 한층 고조되고 긴장되어 찬양의 소리처럼 드높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말에 완전히 귀를기울인 상태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 그 사람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넘쳐흐르는 감정의 흐름 속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괴테의 셰익스피어론을 언급하면서 그가 강의를 끝마치자 우리의 흥분은 두 조각으로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지친 모습으로 책상에 몸을 기댔습니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신경질적으로 떨리는 미세한 경련으로 가득했으며, 두 눈에는 감정이 용솟음쳐 흐르는 희열이 타올랐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지금 막 격렬한 포옹 상태에서 빠져나온 여인 같았습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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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 대표 중편(노벨레) 가운데 하나인 <감정의 혼란>에서 주인공 화자인 롤란트 교수가 어린 청년 시절 강의실에서 만난 ‘선생‘의 셰익스피어 강의를 재현한 대목이다. 존 월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에서 주인공 농과대 학생 스토너가 문학에 눈을 뜬(혹은 귀가 열린) 계기가 된 것도 영문학 교수의 셰익스피어 강의였다. 돌아보면 그렇게 운명을 바꾸거나 결정짓는 강의(만남)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잉글랜드의 우상들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죠.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여왕이며, 셰익스피어이며, 셰익스피어 시대 작가들이니까요. 이전의 모든 것은 준비일 뿐이며, 이후의 모든 것은 이처럼 진정하고 대담한 무한성으로의 도약을 어설프게 흉내낸 데 지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시대에는, 느껴보세요. 직접 느껴보세요. 젊은이 여러분, 이 시대에는 세상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청춘이 약동해요. 어떤 현상이나 어떤 인간을 인식하려면 오로지 그 불같은 형태를, 그 열정을 살펴야 하는 법이에요. 모든 정신은 피에서, 모든 사상은 열정에서, 모든 열정은 열광에서 솟구치니까요- 그러니 셰익스피어와 그 시대 작가들에 먼저 주목하세요. 이들은 젊은이 여러분을 진정으로 젊게 만들 거예요! 열광이 먼저고 노력은 그다음이에요. 먼저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가장 숭고한 인물이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참고서인 셰익스피어에 열광한 다음 어구를 공부하세요!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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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리의 <21가지 제언>(2018)은 트럼기 1기 때 출간됐었다. 돌이켜보면 브렉시트 사태와 트럼프 당선이 2016년에 일어난 일이고 징후적이었다. 이후 10년이 지났고 21세기 포퓰리즘의 반란은 무력하거나 더 나쁜 쪽으로 향하는 듯싶다. 최악의 상황을 면하고 재기에 나선 우리(한국)의 사례가 그나마 희망이라고 해야 할까(K-민주주의). 포퓰리즘이 시대의 질환이라면 하라리는 처방으로서 유효하다는 것을 3부작을 다시 읽으며 확인한다. 반전의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이제 대중은 자신이 사회와 무관해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자신에게 남은 정치권력을 사용하는 데 필사적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부상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혁명과는 반대되는 궤도의 사례를 보여준것일 수 있다. 러시아, 중국,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킨 것은 경제에서는 핵심적이었으나 정치권력은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었던 반면, 2016년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은 아직 정치권력은 누리고있지만 자신의 경제 가치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많은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취에 반대하는 것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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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강의가 해를 넘겨 내일 종강한다. 최근작 <넥석스> 읽기로 시작해서 인류 3부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피엔스><호모 데우스><21가지 제언>을 다시 읽었다. 지난 10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고로 가장 많이 읽혔을 걸로 추정되는) 인문서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주목의 가치가 있다. 토론거리가 될 만한 주장과 제언도 풍부하다. 21세기적 사유의 한 브랜드라 할 만하다. 새로운 초인간 계급의 등장과 함께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냉전 종식 이후의 지배적 합의)의 붕괴를 예견 내지 경고하는 <호모 데우스>의 한 대목을 옮긴다.

특별한 육체적·정서적·지적 능력을 가진 초인간이 출현해도 자유주의적 믿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초인간들이 보통의 사피엔스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무슨일이 일어날까? 초인간이 하등한 사피엔스 좀도둑의 경험을 담은소설을 지루해하고, 평범한 사피엔스는 초인간의 정사에 관한 멜로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20세기 인간의 거대한 프로젝트(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하는 것)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풍요, 건강, 평화의 보편적 표준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21세기의 새로운 프로젝트(불멸, 행복, 신성을 얻는 것) 역시 포부는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의 목표는 기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능가하는 것이라서, 새로운 초인간 계급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초인간들은 자유주의의 근본바탕을 포기하고 보통 인간을 19세기 유럽인이 아프리카인을 대한 것처럼 대할 것이다.
-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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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문학의 빛나는 재능, 비톨트 곰브로비치 읽기가 해를 넘겼다. 일정이 지연돼 지난달에 <페르디두르케>(1937)를 읽고 이달에 <포르노그라피아>(1960)와 <코스모스>(1965)를 읽게 되었다. 미성숙의 반란이라는 <페르디두르케>의 주제의식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가 관건. 출발점이 되는 단편집 <미성숙한 시절의 회고록>(나중에 <바카카이>로 증보되었다)도 번역되면 좋겠다. 영어판 해설을 수잔 손택(민음사 표기는 손태그)이 썼는데, 손택의 대표작(<해석에 반대하여>가 <해석에 반하여>로 다시 나왔다) 제목을 비틀자면 곰브로비치의 문학은 (미성숙을 억압하는 모든 것의 이름으로서) ‘형식에 반하여‘라고 요약해도 좋겠다.

벌레와 곤충들이 하루 종일 먹이를 찾는다면, 우리는 온종일 형식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스타일과 삶의 유형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싸우기도 한다. 전차를 타고 가든 차를 몰고 가든, 재미있게 즐기든 휴식을 취하든 아니면 일을 하든, 우리는 언제나 형식을 찾고 그 형식 때문에 괴로워한다. 형식에 몸을 숙이거나 아니면 강제로 범하고 부러뜨려 버리거나, 아니면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게끔 몸을 내맡긴다. 아멘.
오! 형식의 힘이여! 나라들도 형식 때문에 죽는다.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형식은 우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어떤 것을 우리 안에 솟아오르게 만든다. 이것을 모르고는결코 어리석음, 악, 살인을 설명할 수 없다. 바로 형식이 우리로 하여금 가장 파렴치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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