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문학의 빛나는 재능, 비톨트 곰브로비치 읽기가 해를 넘겼다. 일정이 지연돼 지난달에 <페르디두르케>(1937)를 읽고 이달에 <포르노그라피아>(1960)와 <코스모스>(1965)를 읽게 되었다. 미성숙의 반란이라는 <페르디두르케>의 주제의식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가 관건. 출발점이 되는 단편집 <미성숙한 시절의 회고록>(나중에 <바카카이>로 증보되었다)도 번역되면 좋겠다. 영어판 해설을 수잔 손택(민음사 표기는 손태그)이 썼는데, 손택의 대표작(<해석에 반대하여>가 <해석에 반하여>로 다시 나왔다) 제목을 비틀자면 곰브로비치의 문학은 (미성숙을 억압하는 모든 것의 이름으로서) ‘형식에 반하여‘라고 요약해도 좋겠다.

벌레와 곤충들이 하루 종일 먹이를 찾는다면, 우리는 온종일 형식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스타일과 삶의 유형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싸우기도 한다. 전차를 타고 가든 차를 몰고 가든, 재미있게 즐기든 휴식을 취하든 아니면 일을 하든, 우리는 언제나 형식을 찾고 그 형식 때문에 괴로워한다. 형식에 몸을 숙이거나 아니면 강제로 범하고 부러뜨려 버리거나, 아니면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게끔 몸을 내맡긴다. 아멘. 오! 형식의 힘이여! 나라들도 형식 때문에 죽는다.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형식은 우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어떤 것을 우리 안에 솟아오르게 만든다. 이것을 모르고는결코 어리석음, 악, 살인을 설명할 수 없다. 바로 형식이 우리로 하여금 가장 파렴치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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