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스크랩해놓은 기사인데, 몇 자 보태서 '방주'에 올려둔다. 지난주 언론의 북리뷰들에서 가장 눈에 띈 책은 프랑스의 (신)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황금부엉이, 2006)와 철학자 조중걸씨의 <열정적 고전 읽기> 완간 소식이었다. 두 권(<고전읽기>는 10권짜리이지만) 다 아직 실물을 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전자는 다음달 '사회적 독서'의 목록으로 올려놓을까 생각중이고(따라서 자세한 페이퍼는 2월에 쓰게 될 듯하다), 후자는 한두 권 정도 견본삼아 읽어볼 생각이다. 논술대비용 고전읽기야 차고 넘치다 못해 범람하는 수준이지만, 조중걸판의 특징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과 맞물린다. 기사의 내용대로라면, 저자는 도올 김용옥 이래의 '걸물'이라 할 만하다. 10권짜리 '액면'을 다 펴 보였으니 인터뷰에서 내비친 그의 고성이 허언만은 아니겠다(그는 말로만 떠는 게 아니라 실물을 보여준 셈이므로). 이러한 제도권 바깥의 목소리를 접하며 더불어 기대하게 되는 것은 제도권 '안'의 목소리이다. 한번 겨뤄보자고 청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한국일보(07. 01. 06) 고전을 다 읽으면 세상이 모조리 보인다

꽃자주색 띠지(책 표지에 두른 광고지)에, 그 빛깔보다 더 선정적인 문구(‘생각의 폐활량을 높여라!- 논술 달인을 위한 비밀 레시피’)를 단, 한 철학자의 고전 안내서 10권이 완간됐다. 국내에 적(籍)도 없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철학자 조중걸(50)씨가, 한 두 분야도 아니고 철학 사회 역사 예술 과학 등 서양 지성사의 돌올한 고전들을 모조리 섭렵하고 썼다는 <열정적 고전읽기>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은 영국 학자 키토의 <그리스인>부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 윌리스 퍼거슨의 <르네상스>, 앙드레 모루아의 <영국사>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를 소개하는 역사편. ‘폴리스’의 성격과 의미를 뒤지는 첫 텍스트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양대 젖줄인 ‘부르주아 혁명(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나아가는, 요컨대 ‘서구 정치사의 흐름’을 되밟아 가게끔 ‘기획’된 책이다. 각각의 고전들이 서구 정치사의 어떤 구비에 있으며, 또 어떤 경로로 흘러가는지 목차만으로도 감을 잡도록 짜여졌다는 의미다. ‘기획’은 개별 텍스트의 구성에서도 엿보인다.

고전이 탄생한 시대적ㆍ지성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전문과 고전 원문(주요 부분 발췌), 원문 번역문, 해설이 각 장을 구성하는데, 장의 꼬리는 다음 장의 머리에 닿아있다. 그 구성이 역사뿐 아니라 철학 사회 예술 과학으로 거미줄처럼 네트워크화한다. 고전으로 훑는 서양 지성사의 개론서이면서, (저자가 의도한 바) 고전을 건져올릴 그물이 되게 한다는, 부분과 전체의 조화로서의 ‘기획’이다. 저자는 부분(책)은 전체(세상)와의 조화로 읽혀야 한다고 말했다. “책도 시대의 소산인 만큼 그 시대의 맥락, 패러다임과 세계관의 연관과 이해 속에서 시대의 일부로 읽혀야 합니다.”

서울대 사범대 인문사회계열 77학번. 재학 1년2개월 만에 입대해 82년 제대. 1개월 뒤 프랑스문화원 유학시험에 합격해 그 해 프랑스파리3대학(소르본) 유학. “스승으로 만나 친구로 헤어진”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서양예술사와 서양철학을 전공. 미국 예일대로 건너가 문학사와 수리철학으로 2개의 석사학위, 미술사 음악사 수리철학으로 3개의 박사학위를 획득. 그 해 나이 만 32세.

다수의 논문과 몇 권의 대학 교재(영문)를 썼고, 캐나다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아카데미의 한계를 깨닫고 귀국, 강단과 거리를 둔 채 집필에 전념(*생계는 누가 돌보는 것인지? 독신인가?). 미 랜덤하우스와 계약한,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예술 철학 역사가 어우러질 ‘메타피지컬 인터프리테이션’ 예술사(전10권)를 집필중이다.

저자는 이런 ‘장황한’ 이력의 나열을 불편해 할 것이다. “‘Publish or Perish!(책으로 말하라, 아니면 사라져라!)’ 학위나 경력 따위는 학문 장사꾼에게나 필요한 겁니다.” 대학에 대한, 대학교수에 대한 그의 독설은 거침없다. “한 전직 교수가 ‘50년간 글을 쓴 나도 서울대 논술에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죠? 그 논술문제가 ‘데카르트 자아관과 현대사회의 자아관을 비교하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걸 못 쓴다니…. 무식하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도 됐던 인문학자의 서글픈 고백입니다.” 그게 지금 우리 교수들의 대체적인 수준이라는 말도 했다(*한 '전직 교수'란 이어령 선생을 말한다. 저자의 배포를 짐작하게 한다. 한데, 이어령 선생은 책으로 치자면 저자보다 20배는 더 많이 써내지 않았나?).

유학 초기, ‘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교양에의 갈증과 소외감에 고전을 읽었고, 그 고전 읽기의 노하우를 책에 담았다고 그는 말했다. 이 안내서만 읽으면 어떻겠느냐는 에두른 질문에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봐도 아마추어는 주인공의 운명(스토리)에만 관심을 쏟지만, 진정한 딜레탕트는 운명의 전개양식을 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원수의 딸을 사랑하게 됐다’와 ‘증오의 가지에 사랑이 싹텄다’가 같을 수 없지요.”

암벽 등반을 즐기고 플라이낚시광(狂)이라 6~8월은 캐나다에서 산다는 철학자. “인문학은 병적인 행복을 정상적인 불행으로 만드는 학문”이라며 세속의 기쁨을 멀리하라고 말하는 학자. 돈과 상을 마다하고 지적 희열과 자유 속에 침잠하고 있다는 러시아의 수학 천재 페렐만을 연상시키는 그는, 만 40살이 된 기자에게도 “공부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말했다.(최윤필 기자)

07. 01. 06. - 07.

P.S. 검색해보니까 조중걸씨는 심산 스쿨에서 서양미술사 강의를 올해 진행할 계획이며, 기사에서 언급된 대로 서양미술사 전반에 대한 그의 해석(철학적 해석)을 담은 원서를 조만간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아놀드 하우저를 넘어설 만한 대작을 기획하고 있다는데, 저자의 포부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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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07 22:32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대단한 학력이군요. 다양하게 또 많게.

로쟈 2007-01-07 22:39   좋아요 0 | URL
세 개의 박사학위논문을 동시에 썼다는 게 믿기진 않지만, 사실이라면 대단하긴 합니다(우리 시스템상으론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석사논문 등을 제출해야/혹은 시험에 통과해야 박사학위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에).

biosculp 2007-01-10 17:20   좋아요 0 | URL
서점에서 책 보았을때 뭔 또 애들 상대 논술책인가 하고 들쳐보지도 않았었는데 다시 봐야겠군요.
심산에 인터뷰한내용이 있더군요.
http://www.simsanschool.com/bbs/zboard.php?id=board1&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4

로쟈 2007-01-11 00:41   좋아요 0 | URL
저는 '예술' 파트만 구입했는데, 아예 참고서 매장에 가 있더군요. 번역도 안된 책들을 정말로 (논술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것인지, 컨셉은 아무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논술교사들에게는 유익해 보이는 책입니다...
 
미셸 푸코,죽음의 빛
자네트 콜롱벨 지음 / 인간사랑 / 199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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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에 몇 자 적어둔 게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책을 완독하지 않았기에 리뷰랄 것도 없지만, 완독할 수 없는 이유는 대고 있으므로 정상은 참작될 수 있겠다...

책머리에 실린 들뢰즈의 말. "내가 사랑하는 한 저자에 관해서만 말한다는 내 이상은, 그를 슬프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며, 그가 더 이상 대상이 될 수 없도록, 사람들이 그와 동일시 되지 않도록 충분히 그를 생각하는 것이리라." 이 정도면 대단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프롤로그인 '여정과 추억'은 아주 사적인 성격을 지닌 부분이어서 프랑스 지성사에 '과도한' 관심을 가진 독자가 아니라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푸코에 대한 번역 전기 중에서 가장 읽을 만한 것이라면 디디에 에리봉의 것을 꼽겠다. 그리고 읽은 것은 1장 "불확실성과 유한성". 정독해야 할 만큼 무게 있는 내용도 아니고 정확한 번역도 아니어서 대충 훑어본다. 번역이 부정확하다는 것은, 먼저 "(...) 경기장 안에 나 혼자 있음을 알았을 때 다시금 푸코가 현재해 있었다."(51) '현재[現在]하다'와 '있다'를 나란히 병치시켜 놓는 것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푸코가 곁에 있었다" 정도의 뜻이지 싶다.



그리고 <말과 사물>에 나오는 벨라스케즈의 그림 '시녀들(Les Menines)'를 '귀족의 딸들'(78)이라고 번역해 놓은 것. 역자가 <말과 사물> 읽지 않았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러니 번역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사랑'에서 나온 프랑스 철학 관련서들의 번역이 대체로 믿을 만하지 못하다. 역자 선정과 교정 등에서 좀더 많은 주의가 기울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다음으로, 나에게 유의미한 부분. "어떤 말들은 생각할 수 없다. 시간성에 대하여 잘 몰랐던 고전주의 시대의 '삶'이란 말처럼. 각 시대는 여러 상이한 영역에서의 교응을 필요로 한다."(77) 이건 푸코와의 관련 없이도 흥미를 끄는 내용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삶'이라, 생각할 수 없는! 그리고 푸코의 말 인용. "생각하는 내가, 나의 사고의 내가 내가 생각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되려면, 또 나의 사고가 내가 아닌 어떤 것이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나는 무엇이어야만 하는가?"(90) 이건 <말과 사물>의 "코기토와 사고되지 않은 것(Le Cogito et l'impense)"에 나오는 부분이다.

또 푸코가 한 대담에서 한 말. "삶은 죽게 마련이기 때문에 예술작품이어야 하며..." 이건 니체의 미학주의와 관련하여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앨런 맥길의 <극단의 예언자들>(새물결)에서 푸코에 대한 부분을 참조해야겠다. 끝으로 재미있는 건 앙겔로플로스('안젤로포울로스'로 번역 돼 있다)의 영화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Le Pas suspendu de la cigogne)>에 관해서 언급되고 있다는 점.(113)

책은 반납했다. 너무도 프랑스적인 책이다. 푸코를 읽는 일도 버겁지만 그걸 '프랑스적'으로 읽을 만한 여유를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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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6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놔키스트 2007-01-0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이 엉망인 건 잘 알겠습니다만.. '프랑스적'이라는 의미는 썩 잘 모르겠군요..^^

로쟈 2007-01-0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짤막하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서두의 '여정과 추억' 같은 대목이 제겐 좀 이질적이었습니다. 기억에 그 나라 사람들의 회고담 같은 식이라. '그러니까 제가 프랑스적이라고 한 건 저자가 푸코를 다루는 시각을 가리킵니다. 푸코의 생각 자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국어학을 공부하시는 어느 분이 소쉬르 관련 문헌들에 대해서 조언을 구해오셨다. 아마도 이번에 <일반언어학 강의>가 재간된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조언은 '서평꾼'이 아닌 언어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에게 구하여 마땅한 것일 테다. 그럼에도 정중히 마다하지 못한 것은 그간에 이런저런 아는 체를 많이 해온 탓에 무작정 발뺌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듯하기 때문이다. 해서 궁여지책으로 예전에 써둔 걸 옮겨놓는다. 원래는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라캉182님이 소개한 내용에 몇 글자 더 보탠 글이기에 필자는 두 사람으로 해야겠지만('비평고원'은 어제 언론의 '직격탄'을 맞고 신입회원이 600여명 가까이 늘어났다. 나도 즐찾이 16명 늘어나긴 했지만 비할 바는 아니겠다. 한겨레의 힘(?)을 보여주는 일례일 텐데 후유증(?)은 없으려나 걱정된다), 일단은 임의로 올려둔다. 이미지는 이번에 새로 붙인 것이다. 

 

 

 



1. 그의 저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샤를르 발리, 알베르 세쉬에 편집, 최승언 역(민음사, 1990 초판)(샤를르 발리(Bally)는 (불어식으로) '바이이'라고도 표기됩니다.) 오원교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형설출판사)도 번역돼 나왔는데, 역시나 도서관에 의존해야 할 듯싶고(*민음사판은 이번에 다시 나왔다),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에 대해 경악한 얘기는 제가 다른 글에서 썼습니다.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에는 서두에 마우로 교수의 강의 주석본도 곧 번역돼 나오는 것으로 예고돼 있는데, 12년이 지나도록 아직 안 나오고 있습니다...

 

 

  




2. 입문서
조더선 컬러, <소쉬르>, 이종인 역(시공사, 1998). 조나단 컬러는 영미권에 소쉬르와 구조주의를 처음 소개한 이로서(<구조주의 시학>이 대표작) 신뢰할 만한 비평가입니다(<바르트>와 <문학이론>도 그의 책이다). 우리말 번역서는 이 책의 증보판을 옮긴 것인데,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서는 소쉬르 입문서로서 많이들 추천하는 책입니다...

C. 샌더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김현권 역(도서출판 만남, 1996)는 말 그대로 일반언어학 강의의 주요 개념들을 정리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김현권 교수의 번역. 저는 이 책으로 <일반언어학 강의> 읽기를 때웠었는데, 요즘 다시 소쉬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르트도 그랬지만, 저도 랑그 연구자로서의 소쉬르보다는 랑가주 연구자로서의 소쉬르에 더 흥미를 갖게 됩니다. 랑가주 연구자로서의 소쉬르에 대해서 그래도 가장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은 마루야마 게이자부로의 <존재와 언어>(민음사, 2002)입니다. 원제는 '생명과 과잉'이고, 저자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소쉬를 연구자의 한 사람입니다. 1장은 그런가보다 했는데, 2장부터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단행본 연구서
요하네스 페르, <소쉬르 언어학과 기호학 사이>, 최용호 역(인간사랑, 2002) 저도 아직 구입하진 않았지만(2만원!) 서점에서 몇 번 들춰보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언어학자이면서 (퍼스와 더불어) 현대 기호학의 창시자인 소쉬르를 다루고 있습니다(*퍼스의 기호학에 대해서는 <퍼스의 기호사상>(민음사, 2006)을 참조할 수 있고요).

김현권 외 편역, <비판과 수용:언어학사적 관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연구 제1권)>(도서출판 역락, 2002) 마침 오늘 산 책이네요. 제목대로 소쉬르에 대한 그간의 비판(1부)과 각국의 수용(2부)에 대한 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2부에는 일본과 한국에서의 소쉬르 수용에 관한 장들도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페르디낭 드 소쉬르 여구> 총서는 4권으로 기획돼 있는데, 2권은 "비교역사언어학: <논고>를 중심으로"이고, 3권은 "일반언어학: 일반어어학 이론, 문헌비판적 연구"이며 4권은 "기호학: 아나그람, 전설, 기호학, 철학 등"입니다. 제가 제일 기대하는 건 역시나 4권입니다.

프랑수와 가데, <소쉬르와 언어과학>, 김용숙 역(동문선, 2001). 라캉 182님이 "소쉬르 연구의 결정판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큰 연구서..김성도 교수가 자주 인용한 저자. 부담없는 가격과 두께! 내용은 두께에 반비례할 수도 있음!"라고 상찬하셨는데, 저로선 너무 비싸보이는 책이어서(!) 소쉬르 '쇼핑'을 나간 오늘도 사지 않았습니다...

 

 

  

  


김방한, <소쉬르>(민음사, 1998). 작고한 김방한 교수는 우리나라 1세대 언어학자입니다. 제자인 김현권 교수와 방통대의 언어학 강의를 맡기도 하셨고, 그 강의를 TV에서 몇 본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일반언어학 강의>를 평이하게 해설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2차 일반언어학 강의'가 발췌지만 부록으로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김방한 교수에 대해서는 그의 자서전 <한 언어학자의 회상>(민음사, 1996)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김성도,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한길사, 1999). 고대 김성도 교수는 외대 최용호 교수와 함께 본토에서 소쉬르를 전공한 '전문가'입니다(*김현권 교수는 국내에서 소쉬르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아직까지는 국내 소쉬르 연구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을 거 같군요. 한길사에 다니던 후배의 부탁으로 이 책을 절반쯤 읽고 서평을 쓴 바 있습니다...

김현권 외, <소쉬르의 현대적 이해를 위하여>(박이정, 1998). 국내 소쉬를 학자들의 논문과 번역모음입니다. 아마도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 모양인데, 그 결과를 묶어낸 책입니다. 오래전에 산 책인데,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듯하군요...

로이 해리스,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고석주 역(도서출판 보고사, 1999) 라캉182님에 의하면, "저자 Roy Harris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1983년 영역과 주석을 출판한 저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부담은 없어서 사두긴 했는데, 아직 읽지는 않은 책입니다.

미셀 아리베, <언어학과 정신분석학:프로이드, 소쉬르, 옐름슬레우, 라깡을 중심으로>, 최용호 역(인간사랑, 1992) 아리베는 최용호 교수의 지도교수입니다. 최교수가 유학중에 번역한 책인데, 한동안 미뤄두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최교수는 <라캉의 재탄생>(창작과비평사, 2002)에 '라캉과 소쉬르'란 논문을 싣고 있기도 합니다.

 

 

 

 


루이 옐름슬레우, <랑가쥬 이론 서설>, 김용숙/김혜련 역(동문선, 2000) 흔히 '언어이론 서설'로 알려진 책인데, 주의할 것은 이때의 언어가 '랑그'가 아니라 '랑가주'란 것입니다. 불어에서는 이 둘을 구별하는데, 영어나 독어, 그리고 우리말에도 이 둘은 명확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냥 랑그/랑가주를 언어/언어활동 정도로 옮기고 있습니다. 크리스테바의 <언어, 그 미지의 것>(민음사, 1997)도 원제는 '랑가주, 그 미지의 것'입니다. 어쨌든 엘름슬레우의 이 책은 얇지만, 그레마스가 '이 한권의 책!'으로 꼽은 책입니다(*그레마스의 책과 연구서로는 <의미에 관하여>와 <구조에서 감성으로>가 있다).

 

 

 

 


에밀 벤베니스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1, 2>, 황경자 역(민음사, 1993) 한불문화출판에서도 김현권 교수의 번역으로 1권이 번역돼 나왔었는데, 현재는 절판됐습니다. 적어도 구조주의에 대해서 말하려면, 소쉬르와 야콥슨 그리고 벤베니스트를 읽어야 합니다. 참고로 벤베니스트는 A. 메이예의 제자이고, 메이예는 바로 소쉬르의 제자입니다. 메이예의 책으론 <일반언어학과 역사언어학>, 김현권 역(어문학사, 1997)이 번역돼 있습니다.

벤베니스트, <인도 유럽사회의 제도 문화 어휘연구 1,2>, 김현권 역(아르케, 1999) 작년에 맘먹고(!) 산 책중의 하나입니다(*러시아어본도 구했다). 사실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고 고급 교양서 정도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인데, 그냥 '사전'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군요.

앙투안 아르노/클로드 랑슬로, <일반이성문법>, 한문희 역(민음사, 2000) 얇은 책이지만, 저도 아직 사지는 않은 책입니다. 참고로 언어학 관련서 중에서 욕심이 나는 책은 훔볼트 관련서들입니다. 그의 책들과 그에 관한 책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한번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혹시 읽으신 분이 있다면, 정보를 주시길...)

4. 영어
<초보자를 위한 소쉬르('Saussure for Beginners)>, W.Terrence Gordon, Abbe Lubell, Writers & Readers, 1996.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데리다가 한 얘기들은 실제로 소쉬르도 다 한 얘기다라는 지적이 들어 있습니다. 평이하기 때문에 번역 소개되면 좋을 거 같군요. 단, '정치적인' 소쉬르 얘기는 없습니다.

Saussure and Contemporary Culture

'Saussure and Contemporary Culture', Francoise Gadet, trans. Gregory Elliott. 라캉182님 덕분에 알게 된 책이군요.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책은 정말 많고도 많습니다(하지만, 없는 책들은 더 많습니다!).

 

 

 




덧붙임: 서정철 교수의 <기호에서 텍스트로>(민음사, 1998)는 평이한 구조주의/기호학 입문서이다. 소쉬르에서부터 옐름슬레우, 바르트, 그레마스 등에 이르는 언어학/기호학 사상을 해설하고 하고 있는 책이다. 서교수의 후속작으로는 <인문학과 소설텍스트의 해석>(민음사, 2002)가 있다. 여타 구조주의/기호학 참고문헌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03. 01. 30./ 07.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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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06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언론의 힘은 대단해요. 저는 여기 로쟈님이 올리신 글 보고 가입했습니다. 아프락사스와는 다른 제 인터넷 필명으로. ^^

승주나무 2007-01-0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소쉬르를 비공개로 수배하고 있었는데, 여기 다 있군요. 저도 아프 님과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7-01-06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색이 주저인데 일반언어학 강의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에 의존해보려했으나..책이 너무 70년대스러워서...

2007-01-06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06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츠님/ 2006년판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열매 2007-01-06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재번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민음사나 한길사가 이전에 나왔던 책들을 적절히 윤문해서 근래에 만드는 고전 시리즈에 적절히 끼워 넣고 있는데, <일반언어학 강의> 역시 그러한 듯 합니다. 재번역을 했으면 응당 재번역에 대한 역자의 노고가 담긴 '개역판 역자 서문'이 있어야 할 듯 한데, 없습니다. 민음사의 '현대사상의 모험'이 거의 '대우 학술총서'나 '이데아총서'의 윤문판이고, 한길사의 '그레이트북스'의 몇몇은 '오늘의 사상신서'에서 윤문한 것입니다. 재판을 찍으며 번역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재번역 하지 않은 체 가격만 어마어마하게 부풀리는-하드커버 씌우기, 자간 벌리기, 글자크기 키우기,표지 쌈박하게 만들기 등- 메이저 인문학 출판사들의 몰염치함와 몰상식이 너무 끔찍합니다.

로쟈 2007-01-06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번역이 아닌 건 알겠는데, 제가 이전에 넌센스라고 생각했던 오역들이 교정됐는지가 궁금한 것이죠. 역자로서도 망신스러운 오역들인데...

비로그인 2007-01-06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감사합니다.. 몰랐네요 ;; 민음사 책이군요.. 발터밴야민의 문예이론 을 읽고 좀 실망한 출판사인데.. 2000년도에 쇄를 거듭해서 찍은 책인데.. 난데 없는 80년대식 '읍니다' .. 놀랐습니다.

바나나도넛 2007-01-0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선택은 더욱 괴롭겠군요.

김주원 2007-01-1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번역서가 얼만큼 개선이 되었는지, 혹 읽어보신 분 답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별다를 게 없다면 살 이유가 없는데. 짧은 불어로 힘들게 읽어서, 읽을만한 한국어 번역본이 있으면 좋겠는데..

로쟈 2007-01-1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답글을 안 달아놓으시네요. 방학이라 저도 학교에 뜸하게 가는데, 시간이 나면 한번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새 번역본이 도서관에 들어오면). 조만간은 힘들겠지만.^^;
 

인사동에 들렀다가 종각역 지하의 반디앤루니스에 처음 들러보았다. 역시나 익숙한 매장이 아니어서 책들을 둘러보는 일도 좀 어색했는데 인문서 신간 매장에서 우연히 애니 스타브라카키스의 <라캉과 정치>(은행나무, 2006)가 출간된 걸 보았다. 이미 지난번에 숀 호머의 <라캉 읽기>가 출간되었을 때 근간으로 예고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빨리 출간될 줄은 몰랐다. 사실 원서 자체는 지난 1999년에 나온 것이므로 번역/소개 자체가 발빠르게 이루어진 건 아니지만(저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라캉의 정신분석>도 바로 나오는 것일까?).

 

 

 

 

<라캉과 정치>라고 옮겨졌지만, 역자의 해명대로 원제는 '라캉과 정치적인 것(Lacan and the political)'이며, 작년에 나온 폴 패튼의 <들뢰즈와 정치>(태학사, 2005)와 같은 시리즈의 책이다(참고로, 원저는 188쪽 분량이지만 국역본은 459쪽이다. 2배 이상 부풀려진 셈인데 그나마 가격마저 부담스러운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현재까지는 이 두 권만 소개됐지만, 루틀리지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이 시리즈에는 이미 <푸코와 정치>, <데리다와 정치>, <니체와 정치>, <하이데거와 정치>, <레비나스와 정치> 등 여러 권이 출간 목록에 올라와 있는 상태이다(나도 몇 권을 더 갖고 있다). 시리즈의 공동편집자는 <싹트는 생명>(산해, 2005)의 저자인 워윅대학의 키스 안셀-피어슨과 에섹스대학의 사이먼 크리칠리 교수이다. 각각 니체-들뢰즈, 데리다-레비나스 전문가로서 유명하다.

 

<라캉과 정치>의 저자인 야니 스타브라카키스 또한 에섹스대학 출신으로 급진적 민주주의론으로 유명한 어네스토 라클라우의 제자이다('Essex' 를 국역본의 필자소개에서는 '에식스'라고 표기했는데, 원래 발음이 그러한 것인가, 아니면 '에섹스'의 '어감' 때문인가? 뒷표지에도 '슬보예 지젝'을 '슬보예 지젝"이라고 오기했는데, 이것도 발음 때문일까?). 이름이 좀 희한한 것은 그리스 출신이어서이다(왜 있잖은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같은 이름). 

라클라우의 제자란 말은 단순한 사실 이상으로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 책은 라캉의 기본적인 개념을 명확하고 완벽하게 설명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현재의 사회-정치 현상 연구에 적용하려는 지금까지의 시도 중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통찰력 있는 시도이다."라는 라클라우의 찬사를 뒷표지에 싣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스타브라카키스는 자신의 스승이자 동료인 라클라우/무페의 급진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라캉 정신분석학의 윤리 속에서 발견하고 있으니 라클라우로서는 어찌 대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 나온 김에 언급하자면, 라클라우와 무페의 공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Verso, 2001, 2판)은 적어도 이 책 <라캉과 정치>와 같이 읽거나 미리 읽어두어야 하는 책이다. 책은 지난 1985년에 197쪽 분량으로 초판이 나왔었는데, <라캉과 정치>가 출간된 이후인 지난 2001년에 240쪽 분량의 증보된 2판이 출간됐다. 국역본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터, 1990). 물론 품절됐다. 한때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적인 저작인데, 나는 민주주의론에 관한 책으로 이보다 더 재미있는 책을 읽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물론 내가 읽은 게 몇 안되지만). 어정쩡한 제목이 아닌 제대로 된 제목을 달고 조만간 복간되었으면 한다.

 

 

 

 

정리하자면, <라캉 읽기>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두 권 정도는 <라캉과 정치>보다 먼저 읽어두는 게 좋겠다(예비적인 읽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책읽기가 더뎌질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읽어야 할 책은 지젝의 <이라크>(도서출판b, 2004).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Verso, 1989)을 통해 지젝이 '데뷔'할 때 후견자 역할을 하면서 서문을 써준 이가 라클라우이며 지젝은 당시만 해도 (급진적)민주주의론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했었다.

하지만 이후에 지젝은 점차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게 되며(최근의 영화 <지젝!>에서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내비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창피한 것'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라클라우와의 이론적 동반자 관계가 이론적 긴장관계로 전이된다. 이러한 이론적 긴장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는 대목이 (내가 읽은 한도 내에서는) <이라크>의 2장(원서에서는 부록1)에 포함돼 있다. 그걸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샹탈 무페의 <민주주의의 역설>(인간사랑, 2006)과 발리바르의 <민주주의와 독재>(연구사, 1988)를 참고문헌으로 덧붙일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맥락에서 라클라우-스타브라카키스와 지젝은 이론적 전선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전선'은 라캉의 해석을 둘러썬 전선이다. 라클라우와 함께 지젝이 이 책의 (뒷표지에서) '추천사'를 쓰고 있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라캉과 정치>는 명확하고 체계적이며 이해하기 쉽게 저술되었으며,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정치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즉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급진적 민주주의의 입장을 단호하게 보증해주는 정치적인 것에 관한 이론을 포함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스타브라카키스의 책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쟁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논쟁의 용어들을 재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라클라우와 지젝 간의 '논쟁'으로 다시 이해해보고자 하며, 그래서 제목을 '라클라우-라캉-지젝'이라 붙였다. 여기서는 논쟁의 구도만을 제시할 따름이고 그 내용은 차후에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당장 <이라크>의 국역본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보이지 않는군). 사실 이 구도는 역자가 이 책의 의의를 거론하면서 해설에서 잘 짚어주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지젝의 <이라크>를 통해서 이 책과 지젝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논쟁점은 급진적 민주주의 기획과 정치경제학과 계급 적대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획 사이의 논쟁일 것이며, 라캉의 윤리학과 급진적 민주주의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일 것이다."(430쪽) 책은 "이들간의 논쟁점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이해의 발판을 마련해준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구도이다. 물론 책은 언제나 돌발적인 '발견', 우연한 마주침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책읽기는 정해진 경로만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 '긴장'이 물론 독자의 즐거움인 것이고...

07. 01. 05 - 06.

P.S. 내가 갖고 있는 이 책의 원서는 언젠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손수 복사한 것이다. 이 책에서도 자주 참조되고 있는 라쿠-라바르트와 낭시의 공저 <문자라는 타이틀(The title of the letter)>과 함께 복사해서 (비용절감을 위해) 합본으로 제본했었다. 이 책을 만지고 있자니 어느 해 겨울 도서관의 공기가 느껴진다. 나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 수십 권의 책들을 그렇게 복사하곤 했다(스프링 제본을 해주던 아저씨와 안면이 생길 정도로). 그렇게 다 발품과 손품을 판 책들이라 애착을 가는 것. 어제 복사물 더미에서 책을 찾으니까 '서문' 정도를 읽은 것으로 표시돼 있다.

Cover: Language in Literature

원서를 찾자마자 가장 먼저 들춰본 페이지는 야콥슨의 은유와 환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국역본을 뒤적이다가 "은유와 환유는 그림(야콥슨에 따르면 큐비즘은 환유적인 반면에 사실주의는 은유적이다), 영화, 스토리텔링, 그리고 심리적 과정까지 포함하고 있는 모든 기호학적 체계의 형식 속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150쪽)라고 한 대목이 아무래도 오역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사실주의가 은유적이라니?). 한데, 찾아보니 원서에서도 "according to Jakobson, cubism is metonymically oriented while  realism is metaphorically oriented"(58쪽)라고 돼 있는 게 아닌가. 

저자가 참조한 책은 야콥슨의 'Essays on Language of Literature"(1998)인데(이건 아테네에서 출간된 책이다! 국역본의 참고문헌에는 'Essay on  Language of Literature'로 탈자가 있다. 한가지 더 꼬집자면 '내어쓰기'를 하지 않은 참고문헌을 어떻게 읽으라는 것인가? 편집자의 기본 혹은 성의가 부족해 보인다), 보다 대중적인 판본은 하버드대출판부에서 나온 'Language in Literature'(1987)이고 우리말로는 <문학 속의 언어학>(문학과지성사, 1989)으로 번역됐었다(완역은 아니다. 이왕 품절된 김에, 완역본이 재출간됐으면 싶다). 보다 구체적으로 거기에 들어 있는 '언어의 두 양상과 실어증의 두 유형'(이 책엔 '언어의 두 가지 측면과 실어증의 두 유형'이라 옮겨진)이란 고명한 논문이 참조 대상이다.

아테네에서 나온 판본에는 뭐라 적혀 있는지 모르겠지만(<문학 속의 언어학> 또한 당장 옆에 있지 않아서 참조할 수 없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무래도 저자가 'surrealism'을 'realism'으로 오기한 듯싶다. 이 상식에도 맞지 않는 내용이 루틀리지의 편집자에게 걸러지지 않았고 국역본의 역자나 편집자에게도 간과된 것. 해서 교정된 번역은 "야콥슨에 따르면 큐비즘은 환유적인 반면에 초현실주의는 은유적이다"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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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1-06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것쯤 빨리 완성해주세염..로쟈님^^ 제목만으로두 벌써 무슨 내용일찌 기대가 되는군용. 라캉과 정치두 몇일전 주문 했으니 내일쯤이면 받아볼수있을것 같구 ^^

로쟈 2007-01-0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우연히 책을 사게 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원서도 다시 찾아놨으니까 시간만 내면 되겠네요. 한데, 견적은 좀 나올 거 같습니다.^^

2007-01-06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0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영화의 자막파일은 제가 갖고 있는데(최종본은 아닙니다. 교정이 더 필요한 대목이 있어서), 이게 프린트아웃이 안됩니다(혹은 제가 못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볼 때는 자막생성파일를 통해서 불러들여 실행해야 하구요. 재미동에 비공식적으로 DVD 카피본을 구할 수 있는지 한번 문의해보시길. 혹은 자막생성파일을 갖고 계시다면 자막은 이메일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2007-01-06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07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디스 2007-01-08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팅만 하다가 첨으로 글을 남기네요...;; 로쟈님 안녕하세요...;;

지젝! (Zizek!, 2005) 영상 파일을 찾고계신 분이 있는 것 같아 올려봅니다. 이 영화 DVD를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토렌트(P2P 방식 파일공유 프로그램, 네이버에서 검색하시면 프로그램 다운방법과 사용방법을 알 수 있을 겁니다)에 영상 파일이 있습니다. 지젝이 쓴 글들과 지젝에 대한 글들 그리고 야니 스타브라카키스의 'Politics and Religion'도 pdf파일로 올라와 있습니다...;;

http://www.torrentz.com/search?q=Zizek%21

2007-01-08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0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보내드렸습니다...

기인 2007-03-05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오옷 라깡 역시, 다시 봐야 겠군요;;

2009-08-25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jiojio0704 2024-11-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고싶어요

2024-11-03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년 한해를 돌이켜볼 때 가장 인상적었던 경험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상반기에 일군의 미술작가들과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었고, 하반기에는 우연히도 일군의 젊은 비평가들과 교우할 기회가 있었다. 평소에 사람들과 대면할 일이 많지 않은 터라 교제의 폭이 넓지 않은데, 작년엔 몰아서 한 10년치의 교제를 나눈 듯하다.

아이의 방학숙제를 겸하여 낮에 인사동거리를 거닐다가 중간에 혼자만 학교로 빠져나왔는데, 돌아오는 전철에서 읽은 기사에서 낯익은 얼굴과 이름을 발견했다. '한국비평의 뉴웨이브' 혹은 '누벨바그'라고 지칭되는 일군의 젊은 비평가들이 최근 2-3년동안 괄목할 만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데(최근 문학평론가 복도훈씨가 수상한 현대문학상 평론부문의 후보자들 대다수가 이 '뉴웨이브'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젊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이다. '2007 문화계 주목 이사람'이란 연재물이 그를 다룬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하지만 그의 실제 비평은 놀랍다. 그 재치있는 문체와 세련된 논리에 맛을 들이면 다시 찾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올 여름엔 첫비평집이 나온다고 하니까 고대해볼 일이다.

한국일보(07. 01. 05) 문학평론가 신형철

약력은 짧다. 본인 말마따나 아직 박사 학위도 없고, 책 한 권 낸 적 없다. 그런데 실하다 싶은 시집, 소설책의 뒷면에는 수월찮게 그의 해설이 실려 있다. 그에게서 해설을 받으려는 시인, 작가가 줄을 섰다는 소문도 들린다. ‘제2의 김현’이라는, 듣는 이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찬사도 들린다. 데뷔 2년도 안 된 신예 문학평론가 신형철(31)씨.

2005년 봄 계간 <문학동네>로 평론활동을 시작한 그는 독자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래서 종종 비평가의 잡무로 여겨지는 해설을 소중히 끌어안는 평론가다. 최근 시인 남진우 김병호 이병률, 소설가 이기호 오현종 이해경의 작품 해설을 썼으며, 지금도 누군가의 해설을 쓰고 있고, 써야 할 해설도 수북하다.

“해설 좀 그만 쓰고 묵직한 글을 쓰라고 충고하는 선배들도 있어요. 하지만 비평이 활발해져서 좀 더 가까이 독자와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급적 청탁이 들어오는 해설을 모두 쓰려고 합니다.” 그는 “독자들이 해설을 보는 건 뭘 몰라서가 아니라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라고 숫되게 말했다.

“그 첫 대화 상대가 바로 해설이에요. 전 이렇게 읽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독자에게 말을 거는 거죠.” 독자였던 시절 그는, 좋은 시나 소설을 만나면 나중에 먹으려고 아끼는 음식처럼 끝까지 해설을 남겨두었다가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춰봤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문학평론가가 꿈이었어요. 작품을 읽고 나면 늘 평론가들은 어떻게 썼나 궁금해서 찾아 읽었는데 작품보다 비평이 더 좋았던 경우가 훨씬 많았죠.”

그의 글은 해박하면서도 따뜻하다. 평론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기 문체를 가졌다는 평을 듣는 그의 비평은 문장에서 감수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개성적이다. 그래서 ‘제2의 김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모양이라고 물으니,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후폭풍이 두렵다”며 손사래를 쳤다. “제 글이 그나마 덜 딱딱해서 그런 얘기를 하는 듯한데, 김현 선생님은 아직도 전범이고 신화예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죠.”

작가의 단점보다 장점에 주목하는 그는 “좋은 비평은 멋진 비판이 아니라 멋진 칭찬”이라고 말한다. “작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으면 굳이 ‘주례사’를 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장점들을 쓰게 되고, 독자들에게 그걸 말하고 싶어져요. 비판할 점은 눈에 쉽게 보이지만, 장점은 그를 이해해야만 보이는 거니까요.”

근래 보기 드물게 시 비평과 소설 비평을 아우르는 그는 “마치 시 독자, 소설 독자가 따로 있는 것처럼 분화한 비평 풍토가 문학을 크게 조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며 “능력이 되는 한 이 둘을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평단이 너무 국문과 위주라 동시대 외국문학과의 비교와 소통이 거의 없는 것도 비평의 황금기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아직은 당대 한국문학을 따라가기에 벅차 손을 못 대고 있지만 언젠가 ‘하루키론(論)’ 같은 외국 작가론도 써보고 싶어요.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논리적으로 맞서 문학을 옹호할 수 있는 논리를 계발하는 것도 제가 매진해야 할 과제구요. 비평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70, 80년대처럼 그 자체로 작품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비평을 통해 비평 독자들을 확보하고 싶습니다.”(*비록 나는 그게 '논리'의 문제를 넘어선다고 생각하지만.)

올 여름 그는 <몰락의 에티카>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쓴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낼 예정이다.(박선영 기자)

● 내가 본 신형철

신형철이 출현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문단에 퍼졌다. 비평이 지쳐 있고 허덕이기까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어서 그의 출현은 반가운 것이었다. 몇 달 전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의 가방에서 뭔가 삐져나온 것이 있어 뭐냐고 물었더니 주섬주섬 누군가의 제본된 시집 원고를 꺼내 보여 주었다. 쓸 원고에 대해, 비평할 작품에 대해 그냥 원고뭉치가 아닌 직접 제본을 해서 읽는다는 그, 비로소 그가 보였다. 그를 본 것뿐만 아니라 그의 단단한 세계를 보았다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그의 시평을 아끼는 것은, 그 비평이 한 글자 한 글자 아껴서 읽어야 할 정도로 섬세하고 정밀해서 오히려 시를 더 시적이게 하는, 어떤 면에서 몸으로 애정으로 시를 껴안은 채로 뛰어 넘어서는 (비상하는!) 미덕 때문이다. 작가와 비평가, 서로의 가슴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 않을 때 문학은 새로운 의미를 입지 않는가.

신형철의 출현을 환영하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그의 비평이 단연 발랄하고 튀며, 젊고 신선할뿐더러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작가의 작품과 비평가의 시선, 그 사이에 독자의 시각을 배치시키는 재주가 남다른 데다 텍스트를 애정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점 또한 큰 매력인데, 친절하고 맛있기까지 한 그의 비평에서 애정을 넘어선 순정을 보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분명 비평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평론가다. 평론가의 업이 시선으로 문단을 풍요롭게 해 주어야 하며, 진득한 애정으로 문단을 일으켜야 하는 일이라면 신형철 비평의 품격은 오래도록 졸고 있는 문단의 칙칙함을 깨우기에 충분하단 생각이다.(이병률 시인)

07. 01. 15.

 

 

 

 

P.S.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시와 소설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신형철이 최근에 작품해설을 시집/소설집들이다. 모아놓으니까 이미지들만으로도 다채롭고 재기발랄하다. 그의 바람대로 비평의 독자들이 다시 확보/집결될 수 있을까? 젊은 비평가들의 행보를 눈여겨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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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05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누군지 궁금하네요. 글 한번 보고 싶어요.

기인 2007-01-0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오! 형철이형. 역시 대단하네요. :)
퍼갑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