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시인의 부음을 들었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시인의 투병 소식은 전해져왔지만 그럼에도 죽음은 갑작스럽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그리고 시인의 마지막 시집에서 시 한편을 옮겨놓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향신문(07. 01. 03) ‘날 이미지의 詩’ 오규원 시인 별세

‘날(生) 이미지의 시’를 추구해온 시인 오규원씨(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2일 오후 5시10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폐기종으로 강원 영월, 경기 양평 등지에서 요양생활을 하던 고인은 최근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입원했다.

1941년 경남 삼랑진에서 태어난 고인은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68년 ‘현대문학’에 시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돼 등단했다. 첫 시집 ‘분명한 사건’(1971)부터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1987),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에 이르기까지 10여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고인은 인식과 관념을 언어로 구상화한 초기시, 자본주의의 허위성·상업성을 비판하는 해체시를 거쳐 90년대 초반부터 시인의 직관에 닿는 사물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긴 ‘날 이미지의 시’를 주창해 시단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날 이미지’란 사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순수한 존재의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수법. 김수영 문학과지성사 주간은 “‘날 이미지’라는 개념은 철학적인 깊은 고민을 거쳐 나왔다”면서 “치열한 시적 방법론을 통해 자신만의 투명한 언어를 보여준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시론에도 관심이 많아 ‘현실과 극기’ ‘언어와 삶’ 등의 시론집을 내기도 했다.

83년부터 2002년까지 20년간 서울예대에 재직했던 고인은 세심하고 자상한 스승으로도 많은 존경을 받았다. 신경숙 장석남 하성란 강영숙 천운영 강영숙 박형준 등 제자 문인 46명이 그와의 추억과 인연을 회고한 ‘문학을 꿈꾸는 시절’(2002)을 회갑 기념문집으로 냈다. 시인 장석남씨는 “선생님은 엄하면서도 제자들의 성격을 파악해 거기에 맞게 지도해 주셨다”며 “한참 연락이 없다가도 당신이 먼저 전화로 안부를 묻는 등 자상한 스승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현대문학상·이산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학 부문(2003)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유족으로는 방송작가인 부인 김옥영씨와 2남1녀가 있다.(한윤정기자)

어제 내린 눈이 어제에 있지 않고

오늘 위에 쌓여 있습니다

눈은 그래도 여전히 희고 부드럽고

개나리 울타리 근처에서 찍히는

새의 발자국에는 깊이가 생기고 있습니다

어제의 새들은 그러나 발자국만

오늘 위에 있고 몸은

어제 위의 눈에서 거닐고 있습니다

작은 돌들은 아직도 여기에

있었다거나 있다거나 하지 않고

나무들은 모두 눈을 뚫고 서서

잎 하나 없는 가지를 가지의 허공과

허공의 가지 사이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문학과지성사)에서

07. 02. 03.

 

 

 

 

P.S. 시인의 삶은 이제 그의 시들이 대신하게 됐다. 시인이 남겨놓은 시의 가지를 '가지의 허공과 허공의 가지 사이에' 집어넣는 일은 우리의 몫이고. 해서, 그의 시집 대부분을 갖고 있어서 따로 사두지 않았던 <시전집>도 구해놓아야겠다. <오규원 깊이 읽기>는 어디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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