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미셸 투르니에의 책을 몇권 주문했는데, 그중 하나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예담, 2011)이다. 여러 차례 나왔던 책인데, 역자는 같지만 매번 제목과 표지가 달라지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처음 나온 판본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한뜻,1998)이고, 소장본이기도 하다. 하지만 손 닿는 곳에 없기에, 또 다시 읽어볼 마음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주문한 것. '110가지 개념' 같은 말이 제목에 빠져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제목은 아니다. 같은 책이 <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북라인, 2000)으로 한번 탈바꿈했을 때도 너무 분칠한 제목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제는 담백하게 그냥 <생각의 거울>이고, 그렇게 나온 적이 있다. <생각의 거울>(북라인, 2003). 표지도 담백한 게 그중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 또한 절판되고, 새로 나온 것이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그래서 '오래된 새책'이다. 

 

 

 

아침에 같이 주문한 책은 투르니에의 산문집 <외면일기>(현대문학, 2004)와 독서노트 <흡혈귀의 비상>(현대문학, 2002)이다. 전자는 올해 10쇄를 찍었으니 꾸준히 나가는 책이고, 후자는 아직 1쇄도 빠지지 않았다. <흡혈귀의 비상>은 개인적으론 러시아본도 갖고 있는 책이다. 언젠가는 이런 종류의 '독서노트'도 써보면 좋겠다는 꿈을 갖게 한다. '흡혈귀의 비상'이라고 부르는 투르니에의 독서론은 이렇다(뒷표지에 실린 것으로 <짧은 글 긴 침묵>으로부터의 인용이다).

 

 

작가가 한 권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얼굴도 모르는 남녀 군중들 속으로 종이로 된 수천 마리의 새를, 바삭 마르고 가벼운, 그리고 뜨거운 피에 굶주린 새떼를 날려보내는 것이다. 이 새들은 세상에 흩어진 독자들을 찾아간다. 이 새가 마침내 독자의 가슴에 내려앉으면 그의 체온과 꿈을 빨아들여 부풀어오론다. 이렇게 하여 책은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환상이 분간할 수 없게 뒤섞여서 들끊는 상상의 세계로 꽃피어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독서가 끝나고 바닥까지 다 해석되어 독자의 손에서 벗어난 책은 또 다른 사람이 또다시 찾아와 그 내용을 가득한 것으로 잉태시켜주기를 기다린다. 이렇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기회를 가진 책이라면 그것은 마치 무한한 수의 암탉을 차례로 도장 찍어주는 수탉처럼 손에서 손으로 전해질 것이다.

12. 0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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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일과처럼 책을 검색하고 주문하는데, 검색만 되고 주문은 안 되는 책들이 있다. 절판된 책, '사라진 책들'이다. 지난주에는 파크 호넌의 <셰익스피어 평전>(북폴리오, 2003)과 한국셰익스피어학회에서 엮은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동인, 2005)이 절판돼 유감스러웠는데(놀랍게도 셰익스피어에 대한 만족할 만한 두께의 평전이 없다!), 이번주에는 세르반테스의 나라 스페인이 문제다. 스페인의 역사를 다룬 책들을 찾았는데, 레이몬드 카 등의 <스페인사>(까치, 2006)와 존 엘리엇의 <스페인 제국사 1469-1716>(까치, 2000)이 모두 절판된 상태다.

 

 

20세기 스페인사 쪽으론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교양인, 2009)이 나와있기에 얼마간 '카바'가 되지만, 스페인 제국의 전성기를 다룬 역사책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건 유감스럽다. 스페인 여행서가 드물지 않게 나오는 데 반해 정작 역사서가 '전멸'에 가깝다는 건 기이한 일이다(국내 독자층이 그만큼 얇고 빈약하다는 뜻일까?).

 

 

국내서로 포르투갈과 같이 다룬 <스페인/포르투갈사>(대한교과서, 2005)을 겨우 꼽아보려고 했지만 도서관에서 보니 내용이 빈약한 편이고 이마저도 품절 상태다. 중국 CCTV의 '대국굴기' 시리즈 가운데 <강대국의 조건 - 포르투갈/스페인>이 유일한 자료라고 하면 좀 남세스럽다. 국내 저자의 <스페인 제국과 무적함대의 흥망>(랜드앤마린, 2011)이 눈에 띄지만 전문가의 책은 아니다. 스페인제국 전성기에 대해서는 주경철 교수의 <대항해시대>(서울대출판부, 2008) 같은 책을 아쉬운 대로 참조하는 수밖에 없겠다.

 

 

사실 세르반테스만 하더라도 그 명성에 걸맞은 평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대표작인 <돈키호테>는 물론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모범소설1,2>(오늘의책, 2003)과 <사랑의 모험>(바다출판사, 2000)은 절판된 상태다(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의 모험>만 갖고 있다). 빈곤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스페인사>나 <스페인 제국사> 모두 번역은 김원중 교수의 손을 거쳤는데(<사기>의 번역자 김원중 교수와는 동명이인이다), 그나마 현재 참고로 읽을 수 있는 건 김 교수가 옮긴 <코르테스의 멕시코 제국 정복기1,2>(나남, 2009)와 <스페인 제국사>의 저자가 엮은 <히스패닉 세계>(새물결, 2003) 등이다. 아무래도 중남미(라틴) 쪽으로 한발을 걸쳐야 더 조명을 받고 책도 수명이 길어지는 모양이다.

 

 

그나마 스페인의 노벨상 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의 작품들은 (다시) 번역돼 다행이지만, 스페인의 대표적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와 미겔 데 우나무노도 사정이 별로 좋지는 않다.

 

 

스페인 문학사도 세 종 정도 나와 있었지만 현재는 절판됐거나 절판돼 가는 상황.  

 

 

스페인 문학사 관련서로 국내 전공교수들의 책들이 몇권 나와 있지만 일차적으론 전공자들을 위한 책이다. 교양 독서거리가 될 만한 스페인사와 스페인 문학사 책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유감의 말을 좀 적었다...

 

12. 0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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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테리 이글턴의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이앤비플러스, 2012)가 개인적인 선호다. 1981년에 나왔으니 무려 30년전 책이다. '청년 이글턴'의 저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얇은 두께의 원서를 구한 것도 꽤 오래전인데, 이제 펼쳐볼 여건이 된 것 같다(물론 찾는 건 별개의 문제다). 벤야민 선집과 관련서들이 이전보다 훨씬 풍족해졌으니 말이다. 주초에야 배송받은 푸코의 재번역 <말과 사물>(민음사, 2012)도 뒷북이지만 올려놓는다. 거기에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길, 2012)도 기억에 다시 번역된 책이다.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쇼와 모더니즘까지를 다룬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소명출판, 2012)는 '벤야민 테마'의 책이기에 골랐다. '수도'와 '모더니티'가 키워드이니까(벤야민에겐 물론 파리였다). 그리고 문강형준의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이매지, 2012)는 '문화비평'이란 범주 때문에 고른 책이다. 밀물처럼 들이닥쳤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문화비평 분야의 전사로 이택광과 함께 거명할 수 있는 이름이 생겨서 반갑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
테리 이글턴 지음, 김정아 옮김 / 이앤비플러스 / 2012년 2월
23,000원 → 23,000원(0%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2012년 03월 17일에 저장
절판

말과 사물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민음사 / 2012년 2월
28,000원 → 26,600원(5%할인) / 마일리지 840원(3%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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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
카를 슈미트 지음, 나종석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2년 03월 17일에 저장
품절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쇼와 모더니즘까지
엘리스 K. 팁튼 외 엮음, 이상우 외 옮김 / 소명출판 / 2012년 2월
27,000원 → 24,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50원(5% 적립)
2012년 03월 1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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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 토요판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몇 곳의 조사를 교정했다). 최근에 <햄릿>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어서 <햄릿>(동인, 2007)에 대해 적었다. 제1사절판(1603) 번역본이다.

 

 

한겨레(12. 03. 16) 햄릿 엄마의 근친상간 그것이 문제로다

 

세계문학의 대명사가 셰익스피어라면, <햄릿>은 셰익스피어 문학의 대명사다. <햄릿>만큼 널리 알려지고 그만큼 많이 읽히는 작품도 드물다. 놀라운 건 그만큼 난해한 작품도 드물다는 점이다. 이 난해함은 주로 부왕의 죽음에 대한 햄릿의 복수가 어째서 지연되는지 모호하기 때문에 빚어진다. 그래서 ‘복수극’보다는 ‘복수 지연극’으로 분류하는 게 더 적합하다. 이렇게 복수가 지연되기에 종결이 늦춰지고 극의 분량도 당연히 길어진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분량이 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무리 걸작이라고 해도 너무 긴 거 아닌가란 의문이 제기될 정도다. 전막을 그대로 공연하면 4시간이 넘어가는데, 이것은 셰익스피어 시대 연극의 통상적인 상연시간의 두배에 가깝다. 자연스레 갖게 되는 질문. 정말 그대로 공연됐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햄릿> 판본사가 그걸 말해준다.

 

 


<햄릿>은 통상 1604년에 출간된 제2사절판과 사후에 나온 제1이절판을 절충하여 편집한다. 문제는 가장 먼저 1603년에 나온 제1사절판이다. 이것은 셰익스피어가 썼을 자필원고를 짧게 줄여 재구성했거나 출연 배우 몇 명이 기억을 되살려 만든 공연본이라는 게 학자들의 생각이다. 놀랍게도 이 판본의 분량은 다른 판본들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공연시간도 2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순회공연용’이었을 것으로도 추정되지만, 많은 오자와 함께 중요한 독백들이 생략돼 오랫동안 ‘저질 사절판’으로 평가절하돼 왔다. 다수의 <햄릿> 번역본들이 출간돼 있지만 이 제1사절판의 번역은 한 종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이 ‘짧은 <햄릿>’의 미덕이 배우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간추린 <햄릿>’이기도 하다면 <햄릿>의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판본들과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5막의 구성 대신에 17장으로 구성된 이 판본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더 젊어진 햄릿의 나이와 함께 어머니 거트리드(다른 판본에서는 ‘거트루드’)의 태도다. 아버지가 죽자 곧바로 숙부와 재혼한 어머니의 침소에 찾아간 햄릿은 어머니의 행실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아들 햄릿의 계획이 무엇이든 돕겠다고 맹세하는 거트리드의 모습은 다른 판본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면이다.

 



물론 모든 판본들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부왕 햄릿과 숙부 클로디어스에 대한 비교다. 첫번째 독백에서부터 햄릿은 두 사람을 비교한다. “내 아버지의 동생? 전혀 닮지도 않았어, 나와 헤라클레스가 다른 것보다도 훨씬 더.” 즉 숙부가 아버지와 닮았다면 나는 헤라클레스겠다, 라는 식이다. 어머니의 침소 장면에서도 햄릿은 다시금 두 사람을 들먹인다. 군신 마르스와도 같았던 부왕의 모습과 “살인자, 강간범에 딱 어울릴 상판대기”의 숙부가 비교대상이라도 되느냐는 게 햄릿의 불만이다. 그래서 다그친다. “거지발싸개 같은 왕 때문에 진짜 군주의 풍모를 지닌 분을 저버려요?”

 



곧 햄릿에게 난해하기 짝이 없는 수수께끼는 어머니의 욕망이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남자 중의 남자’ 대신에 고작 ‘사형집행인’ 같은 얼굴의 남자와 근친상간의 쾌락에 빠진 것일까. 이 물음이 풀리지 않는다면 <햄릿> 또한 막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12.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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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오늘 낮까지도 감기 때문에 썩 좋은 컨디션이 아니어서 오후 늦게 고육지책으로 보낸 원고이다. 읽고 있는 책 중의 하나인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궁리, 2012)에서 칼럼의 꼬투리를 잡았다.

 

 

 

경향신문(12. 03. 15) [문화와 세상]독서가 기본과 상식인 사회로

 

2012년은 정부가 정한 ‘독서의 해’이다. 책을 읽고 평하거나 책에 대해 강의하는 일이 주업이기에 나로선 환영해야 마땅하지만 ‘독서의 해’란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묘했다. ‘선의’야 명확하다.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서 책을 읽자는 캠페인까지 벌이겠는가. 그럴 만큼 한국인은 책을 안 읽기로 유명하다. 지난 2010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 30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한국인의 독서량은 한 달 평균 1권 정도인데, 그것도 학생들의 독서량이 성인 독서량을 보충해주어서 그렇다. 성인만 기준으로 하자면 한 달에 책 한권도 읽지 않는 게 우리의 독서문화다.

지난주에 나온 책 가운데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읽다 보니 한 사회의 윤리적 수준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그것을 측정하는 척도 문제다. 지젝은 성문화될 필요도 없는 원칙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인가 아닌가를 척도로 들었다. 예컨대 중국의 식당에는 “바닥에 침을 뱉지 마시오. 음식을 버리지 마시오”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의 식당에는 그런 게 없다.

 

어떤 차이인가? 그런 정도의 기본 에티켓은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한쪽에 있다면, 다른 쪽에는 비록 상식일지라도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켜야 하는 사회가 있다. 당연히 지켜지는 상식이라면 강요받을 필요가 없으며 굳이 덕목으로 치켜세울 이유도 없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 한 사회의 ‘윤리적 표준’이다.

 

모든 사회는 각자의 윤리적 표준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수준이다. 지젝은 ‘정상적인 사회’의 수준을 이렇게 말한다. 만약에 누군가가 “강간을 하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그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사회가 아니라 “정신 나갔어?”라며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라고. 예의를 차려서 대응할 가치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대꾸하지 않는 것이 수준을 깎아내리지 않는 행동이고 품위를 지키는 처신이다. 물론 식당 바닥에 침을 뱉지 않는다고 해서, 강간범과는 상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높은 수준의 윤리적 표준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정치의 윤리적 표준은 무엇일까. 총선을 앞둔 각 정당의 후보자 공천작업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의 공천취소 사례가 눈길을 끈다. 강남갑과 강남을에 내정됐던 박상일, 이영조 후보의 공천이 두 사람의 역사관이 구설에 오르면서 전격적으로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영조 후보는 2010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시절 발표한 영어논문에서 제주 4·3사건과 5·18민주화운동을 ‘폭동’과 ‘반란’이라고 표현한 게 문제가 됐고, 박상일 후보는 자신의 책에서 항일독립군을 ‘소규모 테러단체’라고 기술한 게 문제가 됐다.

잠시나마 놀라운 것은 이런 공천취소 사유가 현 이명박 정부에서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사안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현 정부에 들어서 우리 사회의 윤리적 표준은 추락할 대로 추락한 상태다. 여론과 민심에는 귀를 틀어막고 ‘고소영’ 인사와 회전문 인사로 시종일관했던 ‘가카’의 스타일과 매번 위법과 탈법 시비로 얼룩졌던 지난 4년간의 인사청문회 장면을 돌이켜보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독서의 해’를 선정하는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는 독서가 기본과 상식인 사회, 그래서 굳이 “제발 책을 좀 읽으시오”라고 광고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마찬가지로 논쟁거리도 되지 않을 일이 논쟁이 되는 사회보다는 그런 일이 아예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사회가 더 낫다. 우리 사회의 표준을 좀 더 높여보는 것은 어떨까.

12. 03. 15.

 

 

P.S. 아직 완독한 건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북한에 관한 대목이다. 북한 영화에 대한 지식과 북한 관련서에 대한 지젝의 독서가 놀라운데, 그는 <불가사리>(1985)와 <한 녀학생의 일기>(2006) 같은 영화 외에도 김정일의 영화론 <영화의 기술에 대하여>(2001)까지 참조한다(북한에 대해서 정작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무슨 책인가 싶어 찾아봤더니 알라딘에선 뜨지 않는다. 이 책에 대한 지젝의 평은 이렇다.

저는 김정일이 쓴 <영화의 기술에 대하여>란 책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이는 정치적인 구호들을 상투적인 일상어들과 혼용하여 아주 훌륭하게 기술한 책입니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이 얼마나 큰 영감을 주었는지, 혹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등과 같은 정치적인 맥락에서 글을 쓰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지극히 상식적으로 실질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요. 영화를 제작하기 전, 시간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배우들을 잘 훈련시켜야 한다는 등의 정보도 함께 있어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저는 정치적인 구호들을 통상적인 말들과 섞어놓은 책을 좋아하거든요.(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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