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07호)의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당초 '세대' 문제를 다루려고 했지만 고른 책들의 초점이 '나이'여서 주제는 '중년 이후의 삶'으로 귀결됐다.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책들을 둘러본 기회였다...

 

 

 

책&(12년 6월호) 중년 이후의 삶

 

‘인생의 사계’라는 말이 있다. 우리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대략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의 네 시기를 일컫는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자연의 사계는 봄, 가을이 점점 짧아지는 쪽으로 가는 듯싶지만, 인생의 사계는 가을과 겨울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청춘이 짧은 건 그대로이지만, ‘고령화 사회’란 말이 가리키듯이 노년은 유례없이 길어지고 있다. 물론 의학의 발달과 생활여건의 향상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난 건 좋은 일이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청춘만 연장하는 기술은 갖고 있지 않다. 그렇게 늘어난 인생의 가을과 겨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과제를 던져주는가.

 

우에다 오사무의 <남자 나이 45세>(더난출판, 2012)는 45세를 문제적인 나이로 지목한다. 육체연령이 젊어졌기 때문에 45세면 과거의 36세 정도이지만 커리어상으로는 옛날의 55세에 해당하는 나이다. 육체적으로는 아직 한창이지만 요즘의 풍조로는 은퇴를 요구받는 일도 흔하다. 40-50대 정년을 뜻하는 ‘사오정’의 현실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 ‘험난한 현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45세가 되어서 갑자기 닥친 현실에 어쩔 줄 몰라 허둥대지 않도록” 미리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물론 준비할 사항은 많다. 하지만 ‘신용과 건강은 최대의 자산이다’ 같은 흔한 충고를 제외하면 ‘45세부터 다시 시작하는 평생공부법’ 같은 제안이 눈길을 끈다.

 

경영컨설턴트답게 저자는 인문고전을 읽으라는 말을 입에 담지는 않는다. 대신에 먹고 살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같은 실속 있는 공부를 권한다. 저자는 46세에 법학전문대학원에 다시 입학하여 변호사 자격을 딴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공부에서도 목표를 명확히 하고 최단경로를 찾으라고 충고한다. 독서의 경우에도 다양한 독서 대신에 그가 권장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구축하기 위한 독서다. 목적의식을 갖고서 책을 선택하되 한권을 읽고 나면 첫 번째 책과 다른 관점에서 쓰인 책을 읽어서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책을 읽었다는 사실보다는 얼마만큼 나의 것으로 소화했느냐가 관건이다. 45세 중년을 위한 사회적 환경이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더라도 빈틈없는 준비를 통해서 80-90세까지 만족하는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르고트 캐스만의 <젊은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작은책방, 2012)은 중년 여성을 위한 조언을 담은 책이다. ‘여성용’이 따로 필요한 것은 같은 중년이라고 해도 남성과 여성이 부닥치게 되는 문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여자 나이 50세’인데, 남자들이 50세 이후에도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반면에 일반적으로 여자가 50대에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다. 대신에 50대 여성은 대부분 결혼한 자녀의 아이를 돌보거나 나이 든 부모를 간병하는 일을 떠맡으면서 자신의 노년도 준비해야 한다. 노년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것은 혼자 사는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혼이나 남편과의 사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중년 여성은 혼자 사는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홀로 사는 삶이 고독한 삶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혼자 있지 않으면서도 고독한 것과 고독을 느끼지 않으면서 혼자 있는 것. 당연히 바람직한 것은 혼자 있더라도 고독하지 않은 삶이다. 홀로일 때 우리는 자기 자신과 더 깊이 대면하며 더 안정되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체험담이다. 물론 오래된 우정을 잘 가꾸어나가는 것은 중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충고도 저자는 잊지 않는다. 덧붙여 여성신학자이자 목사로서 저자는 인생 중반에 오히려 ‘담대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남은 인생길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풀 죽어 의기소침하게 사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 길을 잘못 걸어가는 것이다.”
 
루이스 월퍼트의 <당신 참 좋아보이네요!>(알키, 2011)는 80대의 노(老)생물학자가 쓴 노년의 인생론이다. 벨기에의 한 연구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반적인 예상과 다르게 인생의 행복도가 가장 놓은 나이가 80대였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가장 심한 40대가 최저점을 찍은 것과는 다르게 80대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여생을 살기에 그렇다는 분석이다. 물론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노년이라면 사정은 좀 다를 수밖에 없다. 생물학적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스트레스를 피하고 꾸준한 운동과 건강식단을 통해서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는 것이 ‘웰에이징(well-aging)’에서 중요하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건강을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대로 “노년의 비극은 늙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젊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늙음에 대한 거부로서 안티에이징(anti-aging)은 노년의 행복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다. 지금 자신의 나이에 맞게 잘 살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럴 때 들을 수 있는 말이 “참 좋아 보이세요!”이다.

 

12. 06. 13.

 

 

P.S. 인생의 사계를 모두 다룬 교과서적인 책은 심리학자 대니얼 레빈슨의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이대출판부, 2003)과 <여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2004)이다. 책은 원고를 쓴 이후에야 생각이 나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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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에 낸 책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단독저서는 이주에 나온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현암사, 2012)와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오월의봄, 2012), 두 권이고, 공저는 <대한민국 청소년에게2>(바이북스, 2012) 한 권이다. 그리고 인터뷰집으로 장동석의 <살아있는 도서관>(현암사, 2012)과 정윤희 등의 <행복한 서재>(출판저널, 2012)에도 '로쟈와의 인터뷰'가 한 꼭지씩 들어가 있다. 각각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와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가 나왔을 때 가졌던 인터뷰이다. 로쟈의 말과 글을 다 모은 리스트인 셈이다. 연말 결산 때는 저서만으로 리스트를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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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로쟈의 책읽기 2010-2012
이현우 지음 / 현암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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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세계명작을 고쳐 읽고 다시 쓰는 즐거움
이현우 지음 / 오월의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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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소년에게 2- 개념 청소년 되기 프로젝트 - 불온한 십대가 세상을 바꾼다
강수돌 외 지음 / 바이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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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도서관- 천천히 오래도록 책과 공부를 탐한 한국의 지성 23인, 그 앎과 삶의 여정
장동석 지음 / 현암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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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980호)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분량상 기사에서 빠진 한 문장을 채워놓고 비문 하나를 바로잡았다). 담비사 모요의 <죽은 원조>(알마, 2012)가 지난주에 고른 책이었다. 지난번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 리뷰까지 이번 서평집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현암사, 2012)에 들어갔으니까 이 리뷰부터는 다음 서평집에 포함되겠다(2년후쯤?). 담비사 모요는 하버드대학의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제자로 <미국이 파산하는 날>(중앙북스, 2011)을 통해 먼저 소개된 바 있다. 퍼거슨은 책의 추천사를 쓰고 있기도 하다.

 

 

 

주간경향(02. 06. 19) 아프리카의 빈곤을 부추긴 원조정책

 

1985년 7월 13일 전세계 15억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라이드 에이드(Live Aid)’ 콘서트가 개최됐다. 아일랜드 가수 밥 겔도프가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해 기획한 자선공연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도 그 시청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여느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팝음악을 즐겨듣던 10대였는지라 쟁쟁한 팝스타들이 출연했던 콘서트 놓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선공연이라는 명분도 훌륭하지 않은가. 하지만 선의가 언제나 좋은 결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잠비아 출신의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의 <죽은 원조>(알마)는 그 ‘라이브 에이드’의 이면에 대해서, 원조의 어두운 진실에 대해서 폭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책의 원제는 ‘데드 에이드(Dead Aid)’. 물론 ‘라이브 에이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역설적이지만 저자는 ‘살아있는 원조’의 대안으로 ‘죽은 원조’를 제시한다. 원조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원조를 없애는 것이 ‘죽은 원조’ 전략이다. 왜 원조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원조에 중독된 아프리카의 현실이 마약 중독자의 처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원조에서 벗어나는 일이 당장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테지만 원조 의존적인 아프리카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0년대보다 낮아져 있고, 하루 1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체 7억 인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다.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전세계에서 빈민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다. 평균수명은 세계 최저이며 문맹률은 가장 높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아프리카대륙의 50% 가량이 비민주적 체제하에 놓여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프리카의 자연적 조건 탓인가? 아니면, 아프리카인들이 특별히 무능하고 그 지도자들이 선천적으로 더 타락하기 쉬운 때문인가? 저자는 의외의 답을 제시한다. 모두가 원조 때문이다.


부유한 국가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각 정부에 차관이나 증여의 형태로 대규모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원조다. 그런데 어째서 이 원조가 아프리카의 발전을 가로막은 장애물이 되었나? 발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 경제의 재건을 위해 원조금을 제공한 마셜플랜이었다. 마셜플랜의 성공이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도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고, 아프리카가 최적의 후보지였다. 냉전체제하에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고수하려는 패권국가들의 대결의식도 원조 경쟁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런 원조가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이었다면? 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1970년대 이후 3000억 달러 이상의 원조금이 아프리카대륙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인력 개발에서 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저자는 특히 원조가 권력자들의 부패를 가장 많이 ‘원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해외 원조의 유입은 국민들에 대한 정부의 재정 의존도를 낮추기 때문에 중산층과 시민사회를 약화시킨다. 그리고 원조 재화를 획득하기 위한 분쟁을 촉발함으로써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심지어는 내전의 잠재적 원인을 제공한다. 그러니 모든 원조가 실패작은 아니었지만, 저자가 보기에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는 분명 실패작이다. 애초에 전혀 다른 조건과 환경에 놓인 아프리카대륙 국가들에게 마셜플랜과 같은 모델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서방식 민주주의가 아프리카 경제의 구제책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에 불과하다.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의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간과한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사례 외에도 피노체트의 칠레와 후지모리의 페루는 민주주의 없이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곧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지만 거꾸로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는 원조로부터의 출구 전략이 절실하다. 라이브 에이드의 전자기타 소리보다 더 강하게 귓전을 때리는 “원조에 반대한다!”는 절규를 들으며 아프리카의 현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12. 06. 12.

 

P.S. 마감에 쫓겨 급하게 쓰는 와중에 번역도 한 대목을 확인하느라 원고가 더 지체됐었다. 서두에서 저자가 오늘날 아프리카 현황에 대해 정리해주는 곳이다.  

"하루에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350만 명이 넘는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전 세계에서 빈민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전 세계 빈민의 약 50퍼센트가 이곳에 몰려 있다."(30쪽)

뭔가 문제인가? '350만 명'이란 숫자다. 너무 적은 숫자여서 아마존에서 원문을 확인해보니 'over half of the 700 million'을  그렇게 잘못 옮긴 거였다. 7억의 절반 이상이니까 '350만 명'이 아니라 '3억 5천만 명' 이상이어야 한다.

 

 

 

한편, 책을 읽은 뒤에 그 여파로 주문한 책은 중국의 아프리카 공략을 다룬 <차이나프리카>(에코리브르, 2009)와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후마니타스, 2008), <지속가능한 민주주의>(한울, 2001), <민주주의와 시장>(한울, 2010) 등 아담 쉐보르스키의 민주주의에 관한 책들이다(<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구입했던 듯싶은데 소재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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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오월의봄, 2012)와 함께 이번주에 나오는 서평집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현암사, 2012)의 표지를 올려놓는다.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에 이어지는 두번째 서평집이고 제목은 그런 의미를 담았다. 이번주 목요일 저녁쯤이나 나는 책을 받아보게 될 듯싶다...

 

 

12.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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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에는 빼놓았지만 이주에 나온 '서프라이즈'는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시공사, 2012)이다. 브로흐의 작품으론 대표작 <몽유병자들>(열린책들, 2009)이 번역돼 있는데(초역은 1992년에 현대소설사에서 나왔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말로만 전해지던 또 다른 대표작이다. 베르길리우스는 물론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저자 베르길리우스다. 간략한 작품소개는 이렇다.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과 더불어 20세기 유럽 문학을 선도한 작가로 평가받는 헤르만 블로흐의 대표작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삶과 죽음, 예술과 인생의 관계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황제의 생일 축연을 위해 그리스로 향했던 여행을 접고 항구도시 브룬디시움으로 돌아온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대표작이자 로마 그 자체라 평가되는 <아이네이스>를 불태울 것을 결심한다. 아니, 그래야 함을 깨닫는다. 동료 시인 루키우스와 프로티우스는 작품의 탁월함을 들어 이를 제지하려 하고, 황제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이 상징하는 인간의 과업 자체를 부정하는 처사라며 반대 의견을 펼친다. 그들과의 논쟁을 통해, 이 로마의 대시인은 죽어 사라지고 마는 인간이 과연 창조라는 과업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 지상에서의 삶과 인식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되짚어 나간다.

소개를 보니,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한 차례 번역된 적이 있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범한출판사, 1984)으로 나왔고 독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 김주연 교수가 옮긴 것이었다. 이번에 제자인 신혜양 교수와 함께 다시 번역해 펴낸 것. 여하튼 미뤄놓은 <아이네이스>의 독서까지 자극하는 출간이다. '세트'로 묶어서 읽어도 좋겠다(내년에 강의 목록에도 넣어봐야겠다). 오늘 책을 주문하면서 영역본도 같이 주문했다(영역본 <몽유병자들>까지 포함해서).

 

 

참고로 브로흐의 <몽유병자들>과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에 대한 비평은 블랑쇼의 <도래할 책>(그린비, 2011)에서 읽을 수 있다...

 

12.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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