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10호)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인문학자 김영민의 <당신들의 기독교>(글항아리, 2012)가 내가 고른 책이다. 언론에서 많이 다룬 책이어서 중복의 감이 없지 않지만, 여하튼 내가 갖고 있는 책 몇 권 가운데서는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다루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주간경향(13. 01. 22) 한국기독교 어긋남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인문학이란 세속의 어긋남에 대한 관심이기에 그 노동을 ‘어긋냄’이라고 일컫는 인문학자 김영민의 <당신들의 기독교>(글항아리)는 기독교에 대한 어긋냄의 산물이다. <세속의 어긋남과 어긋냄의 인문학>에 적은 그의 표현으로는 “어긋남의 구조를 통새미로 알면서도, 그 두루 아는 것을 죽인 채 외려 모난 일을 찾는 것”이 어긋냄이다. 기독교의 어긋남의 구조에 대해서 통새미로 아는 그이지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한국 기독교의 ‘모난 일’들을 들추며 10명의 신자에 대한 스케치와 함께 인문적 성찰을 포개놓는다.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온전한 사실도 허구도 아니며 취지에 맞게 재구성해 놓았다고 미리 밝히고 있지만, 책을 관통하는 건 구체적인 사례들이 보여주는 리얼리티의 힘이다. 가령 “A는 기독교인이다. 그는 적어도 지난 10년간 한 차례도 주일 대예배에 빠진 적이 없으며, 40대의 문턱을 넘어서면서부터 십일조가 성에 차지 않아 십이조(十二組)를 한 지도 7년째에 접어든다”거나 “B는 기독교인이다. 그녀는 교회 권사직에다 봉사부장까지 맡아 충량하고 열성스럽게 신앙생활을 하는 70대 노파다. 노령에 이르러서도 기세가 등등한 그녀에게는, 젊어 청상(靑孀)이 된 채 남자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궁핍하지만 당당하게 살아온 전력이 온몸에 서슬 퍼렇게 드러난다” 같은 구체적 서술은 현실감을 전달한다. 물론 ‘독실한’ 신자들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목사이면서 대학에서 성서를 강의하는 성서학자이지만 동시에 강남의 룸살롱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소문난 오입쟁이 C 등도 ‘기독교인’이다. 이들이 모여서 얼추 한국 기독교인의 총체적 신앙생활을 구성한다. 저자가 이름 붙인 바로는 ‘당신들의 기독교’다.

무엇을 어긋내고자 하는가. 몇 가지 어긋남의 지점이 있다. 먼저, 사유(공부)의 부재.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공부를 매개로 신앙과 신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얻은 뒤에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학을 동원한다. 신앙의 ‘주체화’에 이르는 노역이 신앙의 알짜이지만 그것이 생략되거나 부족한 것이 ‘당신들의 기독교’다. 그리고 가족주의. 예수의 급진성은 그의 탈가족주의, 곧 “네 가족을 버리고 내게로 오라”는 메시지에 담겨 있지만, “21세기의 한국 개신교회는 예수의 첫닭울이와 같은 메시지를 까마득히 잊은 채” 가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만을 강박적으로 붙들고 있다고 저자는 일갈한다. 거기에 자본과의 결탁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는 대자본의 현실을 돕는 안전망이자 심지어 여리꾼 노릇을 하고, 종교는 자본의 성취와 번영에 대해 뒷북을 치며 축복”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즉 ‘카이사르냐 예수냐’가 아닌 ‘카이사르=예수’가 자본주의 시대 기독교의 정식이 돼버렸다.

‘당신들의 기독교’는 초기 교회와 같은 ‘절실한 약자들로 구성된 희망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적 욕망을 ‘소망’이라 부르면서 사회적 강자와 부자들이 자본제적 세속의 성취와 권리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종교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은 마치 예수를 잡아먹은 허깨비들의 장송곡처럼” 들린다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당신들의 기독교’와 단절할 수 있는 길인가. 저자는 쓰레기통의 파리떼처럼 번성하는 신자가 아니라 제자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자란 “타자성의 소실점을 향해 몸을 끄-을-고 다가서는 검질기고도 슬금한 노력”이다. 그것이 ‘예수의 희망’이다. 물론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이다. 예수의 제자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생활양식의 실천을 오늘날 더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래밭에 숨은 바늘을 돼지 뒷다리로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노릇”이 되었다는 게 저자의 토로다. 하지만 예수의 삶 자체가 그런 불가능한 꿈을 지핀 삶이 아니었던가. 그의 삶과 ‘당신들의 기독교’가 어디에서 어긋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13. 01. 16.

 

 

 

P.S. 최근에는 무함마드와 이슬람 관련서들을 모으면서 덩달아 예수와 기독교에 관한 책에도 눈길을 주게 됐는데, 오늘 탐을 내고 있는 책은 한스 큉의 저작들이다. 특히 방대한 분량의 <그리스도교>(분도출판사, 2002)와 <한스 큉의 이슬람>(시와진실, 2012)이 욕심을 내게 한다. '당신들의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의 본질과 이슬람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절판되기 전에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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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문한 책 중의 하나는 볼테르(1694-1778)의 <캉디드/철학콩트>(동서문화사, 2013)다. 아니, 그동안 봐두었던 볼테르의 책들을 한꺼번에 주문했다. 예전에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정도만이 소개돼 있었지만 요 몇 년간 '철학 콩트'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여럿 더 소개됐다. 개인적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가 탐독한 작품들이기도 해서 러시아어본을 구하기까지 했었다. 루소 선집도 나오고 있는 만큼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볼테르의 철학 콩트 정도는 구비해 놓아야겠다. 언제 읽을지 몰라도 그렇게 해두는 게 낙관주의적 태도다. 아무튼 주문한 김에 리스트도 만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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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 철학 콩트
볼테르 지음, 고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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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무선)
볼테르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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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지음, 김용석 옮김 / 부북스 / 2010년 7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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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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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중이지만 점심을 먹고 막간을 이용해 페이퍼 하나를 적어둔다. 오전에 배송된 책 가운데 하나가 프랑수아 라뤼엘의 <철학이 끝난 시대의 투쟁과 유토피아>(2012, 불어본은 2004)인데, 주간경향에 실린 이택광 교수의 서평을 읽고 흥미가 생겨서 주문했던 책이다(서평은 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211271518391&pt=nv 참조). 서평에서는 저자 이름을 '프랑수아 라루엘'이라고 적었다. 영어권에 한창 소개/번역되고 있는 철학자인데, 핵심은 '비철학'이란 개념이다. 아예 라뤼엘은 '비철학 프로젝트'란 말을 쓴다.

 

 

비철학은 일반적으로 운위되는 반철학(anti-philosophy)과 다른 개념이다. 반철학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이론가는 자크 라캉이었고, 그 개념을 알랭 바디우가 받아서 발전시켰다. 라루엘이 말하는 비철학은 반철학과 다른 것이다. 반철학이 철학 자체에 내재한 체계화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비철학은 그것 자체도 일종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라루엘에 따르면, 모든 철학의 형식들은 선행하는 전제를 따를 수밖에 없고, 이런 까닭에 이 전제를 옹호하기 위한 논리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행하는 전제 자체에 대한 의심을 할 수가 없는 구조가 철학의 담론에 내재해 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선행하는 전제를 라루엘은 “변증법적으로 분할된 세계”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세계의 운동과 관계없이 철학의 논리는 자율적으로 자체의 변증법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철학의 바깥, 말하자면 비철학적인 사유를 하지 않는 한, 이런 철학의 구조 자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라루엘의 주장이다. 비철학의 범주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비철학의 범주는 단순하게 메타철학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이 브라시에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철학은 메타철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메타철학의 차원도 벗어나야 철학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비철학'적 작업인지는 나도 읽어봐야 알겠지만 여하튼 '종언 이후의 철학'이란 주제와 관련해서 흥미를 끄는 철학자다. 아쉬운 것은 그가 알랭 바디우와 동년배라는 점이다. '젊은 피'가 아니라는 애기다. 철학이 종언에 도달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철학자가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슬라보예 지젝도 이제 예순이 훌쩍 넘었다).

 

 

 

비철학은 다소 생소하지만 반철학이란 말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반철학으로서의 철학>(지성의샘, 1994)이란 앤솔로지도 나온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는 주제여서 바디우의 <비트겐슈타인의 반철학>, 그리고 보리스 그로이스의 <반철학 입문> 같은 책을 작년에 구입해놓았다. 그로이스는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 출신 철학자이자 미술비평가로 국내에서는 <아방가르드와 현대성>(문예마당, 1995)으로 처음 소개된 바 있다. <유토피아의 환영>(한울, 2010)에도 그의 글 '아방가르드 정신으로부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탄생'이 수록돼 있다. 짐작에 바디우의 책은 국내에도 조만간 소개되지 않을까 싶은데, 내친 김에 그로이스의 책도 번역되면 좋겠다...

 

13.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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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의 책들이 해마다 몇 권씩 출간되는데 정작 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없다. 촘스키 선집으로 <촘스키, 지의 향연>(시대의창, 2013)이 출간된 김에 '촘스키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책이 너무 많기에 먼저 나왔던 <촘스키, 사상의 향연>(시대의창, 2007) 이후의 책들 가운데서 골랐다. 선집인 만큼 두 권으로 카바가 된다면 아주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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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知의 향연
노엄 촘스키 지음, 앤서니 아노브 엮음, 이종인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1월
45,000원 → 40,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2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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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맞선 이성- 지식인은 왜 이성이라는 무기로 싸우지 않는가
노엄 촘스키 & 장 브릭몽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0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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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점령하라 시위를 말하다
노엄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수이북스 / 2012년 10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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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촘스키- 우리가 외면하지 않는 한 희망은 절망하지 않는다!
볼프강 B. 스펄리치 지음, 강주헌 옮김 / 시대의창 / 2012년 9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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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독서계획 중 하나는 프랑스 현대소설을 (다시) 읽는 것이다. 러시아문학에 대한 강의와는 별개로 교양강좌에서 프랑스 소설도 다루려고 기획중인데, 아마도 2학기쯤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당장 봄에는 카프카를 다시 읽을 예정이다). 그래서 주섬주섬 책을 모으면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데, 가이드로 삼은 책은 김화영 교수의 <프랑스 현대소설의 탄생>(돌베개, 2012)이다. 이전에 나온 <발자크와 플로베르>(고려대출판부, 2000)나 <마담 보바리>, <이방인> 등의 역자 해설 내용과 많은 부분 중복이 되기 때문에 기대만큼의 만족감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는 요긴하다. 물론 저자가 옮긴 <프랑스 현대소설사>(현대문학, 2007)도 같이 참조한다면 더 좋고(이 책도 얼마 전에 다시 구입했다).

 

 

프랑스 문학사의 시대구분은 우리와는 좀 다른데 '현대소설'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소설'을 가리킨다. 19-20세기 소설이 통째로 들어가는 것이다(우리의 기준으론 <무정>부터가 근대소설이고, 해방 이후의 소설이 '현대소설'이다). 김화영 교수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의 강연을 묶은 이 책에서 여섯 작가의 대표작 여섯 편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프랑스 현대소설'의 조감도를 그리려고 한다.

이 강의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현대소설'이 어떤 양상을 보이며 진화해 왔는지 <적과 흑>, <고리오 영감>, <마담 보바리>, <목로주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방인>이라는 여섯 편의 대표적인 작품을 통해 개관,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되었다.

나 또한 이 여섯 편에 대한 읽기에 일단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데(예외가 있다면 요즘 영화가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는 위고의 <레미제라블>도 독서목록에 포함시킨 것이다). 안 그래도 주문했던 스탕달의 <적과 흑> 영역본이 오늘 도착했다. <적과 흑>부터 <이방인>까지 읽을 만한 번역본들을 골라본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김희영 교수의 번역본이 나오고 있는데, 김화영 교수도 이 작품을 번역중이다). <마담 보바리>의 번역본이 상대적으로 적은 게 눈에 띈다...

 

스탕달, <적과 흑>(1830)

 

 

 

 

발자크, <고리오 영감>(1834)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1857)

 

 

에밀 졸라, <목로주점>(1877)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1927)

 

 

 

카뮈, <이방인>(1942)

 

 

 

 

13.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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