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신작이 또 나왔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동녘, 2013). 올해 들어서만 다섯 번째 책이다(아무래도 작년에 나온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생각 밖으로 많이 읽힌 영향이 아닌가 싶다). 아무려나 일급의 학자 책이 자주 소개되는 게 불만스러울 리는 없다(게다가 바우만은 손꼽을 만한 다작의 사회학자다). 이번에 나온 책은 "전면적 경제개혁 없이 ‘경제 민주화’가 가능할까? 스티글리츠 <불평등의 대가>에 대한 바우만의 사회학적 대답"이라고 소개된다. 소개대로,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 2013)와 같이 읽어도 좋겠다. 올해 나온 바우만의 책들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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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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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행의 시대- 유동하는 현대사회의 문화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2013년 7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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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홍지수 옮김 / 봄아필 / 2013년 7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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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유럽 최고의 아말피 상 수상작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7월
43,000원 → 38,700원(10%할인) / 마일리지 2,1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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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350호) 특집 '출판전문지가 사는 길'의 한 꼭지를 청탁받아 쓴 글을 옮겨놓는다. 주제는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잡지를 받아보니 '나는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란 제목이 붙여졌는데, 머리글은 '책에 살고 책에 죽는 서평가'다. 아마 두 가지를 두고 왔다갔다 했던 듯싶다. 나대로는 '서평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붙여놓는다. 공식적으론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와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현암사, 2012), 두 권의 서평집을 냈지만, 특집의 다른 꼭지 글을 보니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0)도 서평도서로 분류돼 있다. '독서에세이'가 더 적당할 듯하다. 아무튼 터울로 봐서는 내년쯤에 세번째 서평집을 내게 될 것 같다...

 

 

 

기획회의(13. 08. 20) 나는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주제의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일단 떠넘기기가 어려웠다. 누구누구가 더 적임자라고 ‘대타’를 내세울 수 있었다면 빠져나가기가 용이했겠지만, 남들이 다 ‘현역’ 서평가로 알고 있는 처지라 둘러댈 수가 없었다. 물론 서평가로 살아가는 건 아니라고 정색할 수는 있었겠다. 엄밀히 말하면 내게 서평쓰기는 생계의 방편이 아니라 책값의 방편이니까. 게다가 ‘시인’처럼 명예를 드높여주는 직함도 아니기에 명함에 ‘서평가’라고 박아놓지도 않았다(그렇다고 명함에 다른 직함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자리에 이렇게 내몰리게 됐다. 하긴 '서평가'란 호명에 구시렁거리는 일도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일부인지 모를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고 책 얘기를 좋아했을 뿐이다. 전공은 러시아문학이었지만, 철학책을 취미로 읽었고 영화비평을 기웃거렸다. 인터넷이란 새로운 공간이 열리면서 책에 관한 이런저런 잡담과 촌평이 조금씩 눈길에 올랐다.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알라딘 블로그로 거점을 옮겼고 북매거진 <텍스트>에 서평류의 글을 싣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7년쯤 “인터넷상을 어슬렁거리는 책벌레들”을 가리켜 한겨레 고명섭 기자가 ‘인터넷 서평꾼’이라고 호명했고, ‘로쟈’는 그 대명사가 됐다(특이하게도 '인터넷 서평꾼'이란 호칭은 내게만 붙어 다닌다). 이후에 시사주간지와 일간지 등에 서평과 칼럼을 연재하는 생활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두 권의 서평집까지 출간했고, 서평가란 직함까지 얻게 됐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하다보면 어떤 직함이건 얻기 마련이다. 하지만 잘해서 오래 하는 게 아니라 마땅한 후임이 없어서 오래 하게 됐다고 가끔 투덜거린다(왜 없는지는 ‘책값의 방편’이란 대목에서 추측해보시길).


그래도 서평가라고 하면 제법 출세한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혹은 고작해야 자투리 서평을 쓰는 주제에 무슨 서평가 행세를 하느냐고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나로선 언제라도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용의가 있다. 서평가는 내게 어떤 역할이지, 결코 천직이 아니다. 부러워하는 이들은 나보다 열심히 할 사람들이고, 못마땅해 하는 이들은 나보다 잘할 사람들이다. 이들이 조금만 용기를 내거나 엉덩이의 무거움을 떨쳐낸다면, ‘서평계’의 앞날이 지금보다 훨씬 창창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나는 덕분에 책을 읽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를 한껏 누리면서 ‘서평가 이후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게 서평가로서 갖는 꿈이다.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  

 

서평과 비평의 차이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고 해도 그런 직함으로 활동하는 이상 나름대로의 서평관이 없을 리 없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자의식은 갖고 있어야 하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서평은 비평의 한 갈래에 속할 터이지만 언제부턴가 과거와는 다른 위상을 갖게 됐다. 달라진 배경으로는 두 가지를 짚어볼 수 있다. 일단 어느 때보다도 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 누구도 더 이상 모든 책의 독자를 자임할 수 없게 됐다. 어떤 책에 대한 독서는 동시에 다른 책에 대한 비독서를 뜻하는 게 오늘의 독서 현실이다. 어떤 타개책이 있는가. 필독할 만한 책을 서로가 걸러주고, 동시에 미처 읽지 못하는 책에 대해선 핵심이라도 챙겨놓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서평의 역할이다.  


서평은 어떤 책이 읽을 만한가를 식별해주는 데 일차적인 의의가 있다. 반면에 비평은 어떤 작품을 재발견하고 재평가한다. 서평은 일독의 권유이지만 비평은 재독의 제안이다. 서평이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염두에 둔다면, 원칙적으로 비평은 한번 읽은 독자를 상대한다. 만약 한번 읽은 독자가 많지 않다면, 즉 독서 경험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비평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바로 오늘의 상황이 그렇다. 독서량이 현저하게 부족한 마당에 독서 경험의 공유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 결과 한국에는 비평 독자보다 비평가 수가 더 많다는 웃지 못 할 얘기까지 나온다. 한마디로 그렇게 비평의 역할이 쇠퇴하는 가운데 서평의 역할은 증대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한편 서평의 역할 증대는 온라인서점에 독자 리뷰 공간이 마련된 것에도 힘입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는 활동이 독서활동의 자연스런 일부가 되면서 서평쓰기도 대중화되었다. 아무래도 진입장벽을 가질 수밖에 없는 비평과 달리, 서평은 누구나 자기 수준에서 제 몫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각자 자기가 선호하거나 일반 독자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에서 책을 읽고 그 정보나 판단을 공유하는 ‘품앗이 서평’이 가능한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서평은 분량 부담에서 자유롭다. 어떤 책이 일독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발 빠르게 일별해주는 것이 서평의 핵심적인 기능이기에, 40자평, 100자평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분량의 글을 누구도 비평이라고 부르지는 않겠지만 서평이라 부르는 건 결코 억지가 아니다. 오히려 서평은 너무 길어질 경우 그 의미가 반감된다. 적은 분량을 통해서 책에 대한 평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서평으로선 최적이다.


자격불문, 분량불문이라면, 그래서 누구나 서평을 쓸 수 있다면 굳이 서평가가 필요할까? 그렇다, 온라인에서라면 필요하지 않다. 전문가와 대중의 구분조차도 무의미해진 지 오래인 게 인터넷이라는 집단지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저 인터넷 서평꾼들의 지치지 않는 활발한 활동만이 기대될 뿐이다. ‘로쟈’는 좀 유명한 인터넷 서평꾼 정도이지 그 대명사일 수 없다. 하지만 오프라인은 사정이 좀 다르다. 그 영향력이 점차 줄어가는 추세라지만, 일간지와 주간지 등의 서평란에는 출판담당 기자 외에도 서평가나 북칼럼리스트, 출판평론가 등 유사 직함의 필진이 아직 필요한 상황이다. 나로선 그러한 수요에 부응하는 활동을 6-7년째 해오고 있는데,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자칫 10년도 넘어갈 기세다.

 

 

서평가, 책만큼 대단하고 책만큼 하찮다
소위 서평가는 어떤 일을 하는가? 현재 내가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 등에 쓰고 있는 서평은 대략 원고지 8-12매 정도의 분량이며 보통은 신간으로 나온 책 한권을 다룬다. 그런 서평이나 북칼럼을 평균적으로는 1주일에 한두 편, 마감이 몰릴 때는 서너 편 정도 쓴다(지면에 쓴 글을 옮겨놓는 경우도 많지만, 온라인에서 인터넷 서평꾼으로 활동하는 건 별도의 일이다). 지정된 책에 대한 서평을 청탁받기도 하지만 보통 서평도서는 스스로 선택한다. 서너 권의 후보도서를 미리 골라서 중복여부를 확인한 후에 최종적으로 그중 한권을 골라 쓴다. 1주일에 두 편을 쓴다면 산술적으로는 6-8권 정도를 일단 손에 들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으로는 다 읽을 수 없지만 적어도 책의 실물은 확인하려고 한다.


그렇게 고른 책을 4-5시간 안에 읽고, 3-4시간 안에 원고를 작성한다. 급하게 쓸 경우에는 2시간 안에 원고를 완성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3시간가량이 소요된다. 그러면 평균적으로 원고지 매당 1만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전체적으로 읽고 쓰는 데 8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원고 노동자로서 서평가의 일당은 10만원 정도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일당은 통상 도서구입비로 쓰인다. 서평이 ‘책값의 방편’이란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외국에는 전업 서평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서평가가 직업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적절한 명칭은 ‘서평 알바’다).  


그렇다면 서평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명감으로 산다고 적으려다가 어쭙잖아서 자기만족으로 산다고 고친다. 책에 파묻혀 지내는 게 소원인 분이라면 서평가는 최적의 소임이다. 좋은 책을 읽고 널리 알리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서평가로서 적격이다. 요컨대 책에 살고 책에 죽고 하는 것이 서평가다. 그게 대단하다면 딱 책이 대단한 만큼이고, 하찮다면 딱 책이 하찮은 만큼이다. 국가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묻는다면 적어도 해를 끼치는 건 아니잖은가, 정도로만 답하겠다. 조금 범위를 좁혀서 출판계에는 얼마만큼 도움이 되느냐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글쎄’다. 나대로는 ‘독서 전도사’ 역할도 꽤 오랫동안 해왔다고 자임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한국인의 평균독서량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출판시장도 지속적으로 하향세다. 그런 고민을 떠안느니 그래, 그냥 ‘자기만족’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13.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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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40호)에 실을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최근에 나온 북한 관련서 가운데 황재옥의 답사기 <국경을 걷다>(서해문집, 2013)을 골라서 읽고 적었다. 북한학 전공인 저자의 책으론 번역서로 <북한의 기아>(다할미디어, 2002)와 저서로 <북한 인권 문제, 원인과 해법>(도서출판선인, 2012)가 더 있는데, 기아 문제에 관심이 생겨 <북한의 기아>는 주문해놓은 상태다. 저자는 국제구호기관인 월드비전의 부의장과 미국 평화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낸 나초스로 1995년~1999년에 발생한 북한 기아에 대해 쓴 것이다. 

 

 

 

주간경향(13. 08. 27) 북·중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며칠 전 여름양복 상의의 품질표시를 무심코 꺼내보고 놀랐다. 제조사는 한국 업체인데, 제조연월이 ‘2010년 5월’, 제조국명은 ‘Made in DPRK’로 찍혀 있었다.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북한산’이었던 것이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나라 북한의 존재를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 놀람이라고 할까. 안 그래도 가동이 중단된 지 넉 달여 만에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합의가 최근 남북 당국간에 이루어진 터여서 새삼스레 북한을 다룬 책에 눈길이 갔다. 북한 연구자 황재옥의 북한 국경 답사기 <국경을 걷다>(서해문집)이다.

저자는 2012년 8월, 전임 통일부 장관 및 동료 학자들과 함께 8박 9일 동안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압록강 하류에서 상류를 거쳐 백두산까지, 그리고 백두산 정상에서 두만강 상류를 거쳐 하류까지 전장 1376.5㎞에 이르는 북·중 국경선을 종주하는 여정이었다. 실제 이동거리는 2800㎞, 곧 7000리나 됐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교착된 상황에서 북·중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지, 변방이긴 하지만 북한 지역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감지해보는 게 답사의 목적이었다.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세 가지 핵심을 미리 간추리면, 첫째, 중국 변방, 특히 그동안 낙후된 동북 3성에 대한 중국 쪽의 투자가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투자의 목적은 물론 북한과의 교역·교류를 확대하는 것이다. 둘째, 중국의 ‘동북공정’이 학문적 단계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기획이 동북공정인데, 2012년 7월에 지안에서 발견된 ‘제2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조사·연구에 동북공정 참여학자를 대거 투입한 사실에서도 중국의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셋째, 중국의 경제발전과 맞물려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도 예전보다 나아진 것으로 보였다.

물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만큼 북·중관계는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막중한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최근의 북·중관계는 과거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양상을 보여준다. 그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곳으로 저자는 황금평 특구를 지목한다. 위화도와 함께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섬이 황금평인데, 이 지역이 경제특구로 지정돼 2011년 말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공개된 공동개발 총계획에 따르면 중국은 여의도 면적의 약 1.5배에 달하는 황금평을 북한으로부터 100년간 임차하고 매년 5억 달러의 임대료를 건네기로 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국의 대북진출 행보도 가속화하고 있는 양상인데, 이러한 현실이 우리와는 무관한 ‘남의 나라’ 일로만 볼 수 있는지 저자는 우려한다.

북·중간의 이런 긴밀한 교류·협력 분위기 때문에 환기하게 되는 것은 중국의 ‘항미원조’(抗美援朝), 곧 한국전쟁 참전이다. 1950년 10월, 중국은 총사령관 펑더화이의 지휘하에 세 차례에 걸쳐 무려 180만명을 참전시켰다. 특히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이 펑더화이의 비서로 참전했다가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전사했는데, 그 유해가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묘에 안장돼 있다고 한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장남이 북한을 도우러 왔다가 전사해 북한 땅에 묻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북한은 중국에 크게 빚을 진 거”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상기시키려는 듯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 60주년을 기념한다며 접경의 단둥에는 펑더화이 동상을 세우고, 허커우에는 마오안잉 동상을 세웠다. 북·중 경제협력을 재개하는 시점에서 중국이 양국의 혈맹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 의도를 품은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는 막혀 있는 상황에서 중국인들의 대북사업은 활기를 띠며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저자는 북한 경제가 중국에 점점 예속돼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표한다. 비단 저자만의 우려는 아닐 듯싶다.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더 넓어져야 한다는 점을 이 답사기는 깨닫게 해준다.

 

13.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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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쓰는 일이 드문 편이어서 파스를 붙일 일이 거의 없지만, 어쩌다 목을 잘못 뉘고 자는 바람에 어제오늘 목에다 파스를 뭍이는 신세다. 어디가 아프거나 고장나야 존재를 인지하는 게 생리인지라 어제오늘은 '목'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확실히 알겠다. 고개를 뻣뻣히 세우고 있자니 무슨 로봇 같기도 하다. 아직 개발이 덜 돼 뒤로 젖히는 기능은 빠져 있는 로봇. 그런 자세로 오늘 배송받은 책 하나를 책상맡에 놓고 페이퍼를 적는다. <영화이론이란 무엇인가>(명인문화사, 2013)란 책이다.

 

 

 

영화학 관련서를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형식 교수의 번역인데, 따져보니 저서인 <무대와 스크린의 만남>(명인문화사, 2013)을 제외하고는(보관함에 넣었다) 꽤 많은 책을 구입했다.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명인문화사, 2009)를 비롯해서, 벨라 발라즈(발라슈)의 <영화의 이론>(동문선, 2003), 로버트 리처드슨의 <영화와 문학>(동문선, 2000), 몰리 해스캘의 <숭배에서 강간까지>( 나남, 2008) 등이다.

 

 

이번에 나온 건 리처드 러쉬톤과 게리 베팅슨 공저인데, 원자가 200쪽 남짓의 얇은, 그러니까 적당한 분량이라는 게 강점이다. 게다가 현대 영화이론의 다양한 갈래와 전개를 가장 최근의 이론까지 압축적으로 정리해놓고 있다(원저도 장바구니에 넣어놓았다). 구조주의와 기호학에서 시작하여 들뢰즈와 함께 스탠리 카벨을 다루고 신형식주의와 인지주의까지 망라하는 영화이론서는 드물지 않나 싶다.

 

 

지난해에도 로버트 스탬의 <영화이론>(경문사, 2012), 토마스 앨새서와 말테 하게너의 <영화이론>(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그리고 프란체스코 카세티의 <현대 영화이론>(한국문화사, 2012) 등이 소개됐지만 그 압축성에 있어서는 <영화이론이란 무엇인가>가 단연 돋보인다(영화이론 강의를 위한 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겠다).

 

아무튼 적당한 분량의 미덕을 환기시켜주는 책이 나왔기에 반가움을 간단히 적었다. 영화이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종류의 책이 더 나왔으면 싶다...

 

13. 08. 20.

 

 

P.S. 스탠리 카벨은 하버드대학의 미학 교수인데, 영화와 문학비평 쪽에도 상당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찾아보니 그의 영화론에 관한 연구서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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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노르웨이의 숲>(민음사, 2013)이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다시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강의차 <상실의 시대>(문학사상사)로 읽었는데, 문학사상사에서도 <노르웨이의 숲>이란 제목으로(일어본과 같이 빨간색, 초록색 장정의 두 권짜리다) 펴낸 바 있다. 게다가 절판되긴 했지만 두 종의 <노르웨이의 숲>이 더 있다(오히려 희귀본 취급을 받고 있다). 번역본의 비교는 도서관본을 대출해서 한번 시도해봐야겠다. 겸사겸사 여러 판본을 한데 모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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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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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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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사미디어 / 2008년 4월
24,000원 → 21,6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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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허호 옮김 / 열림원 / 1997년 9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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