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40호)에 실을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최근에 나온 북한 관련서 가운데 황재옥의 답사기 <국경을 걷다>(서해문집, 2013)을 골라서 읽고 적었다. 북한학 전공인 저자의 책으론 번역서로 <북한의 기아>(다할미디어, 2002)와 저서로 <북한 인권 문제, 원인과 해법>(도서출판선인, 2012)가 더 있는데, 기아 문제에 관심이 생겨 <북한의 기아>는 주문해놓은 상태다. 저자는 국제구호기관인 월드비전의 부의장과 미국 평화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낸 나초스로 1995년~1999년에 발생한 북한 기아에 대해 쓴 것이다. 

 

 

 

주간경향(13. 08. 27) 북·중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며칠 전 여름양복 상의의 품질표시를 무심코 꺼내보고 놀랐다. 제조사는 한국 업체인데, 제조연월이 ‘2010년 5월’, 제조국명은 ‘Made in DPRK’로 찍혀 있었다.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북한산’이었던 것이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나라 북한의 존재를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 놀람이라고 할까. 안 그래도 가동이 중단된 지 넉 달여 만에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합의가 최근 남북 당국간에 이루어진 터여서 새삼스레 북한을 다룬 책에 눈길이 갔다. 북한 연구자 황재옥의 북한 국경 답사기 <국경을 걷다>(서해문집)이다.

저자는 2012년 8월, 전임 통일부 장관 및 동료 학자들과 함께 8박 9일 동안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압록강 하류에서 상류를 거쳐 백두산까지, 그리고 백두산 정상에서 두만강 상류를 거쳐 하류까지 전장 1376.5㎞에 이르는 북·중 국경선을 종주하는 여정이었다. 실제 이동거리는 2800㎞, 곧 7000리나 됐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교착된 상황에서 북·중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지, 변방이긴 하지만 북한 지역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감지해보는 게 답사의 목적이었다.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세 가지 핵심을 미리 간추리면, 첫째, 중국 변방, 특히 그동안 낙후된 동북 3성에 대한 중국 쪽의 투자가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투자의 목적은 물론 북한과의 교역·교류를 확대하는 것이다. 둘째, 중국의 ‘동북공정’이 학문적 단계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기획이 동북공정인데, 2012년 7월에 지안에서 발견된 ‘제2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조사·연구에 동북공정 참여학자를 대거 투입한 사실에서도 중국의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셋째, 중국의 경제발전과 맞물려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도 예전보다 나아진 것으로 보였다.

물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만큼 북·중관계는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막중한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최근의 북·중관계는 과거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양상을 보여준다. 그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곳으로 저자는 황금평 특구를 지목한다. 위화도와 함께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섬이 황금평인데, 이 지역이 경제특구로 지정돼 2011년 말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공개된 공동개발 총계획에 따르면 중국은 여의도 면적의 약 1.5배에 달하는 황금평을 북한으로부터 100년간 임차하고 매년 5억 달러의 임대료를 건네기로 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국의 대북진출 행보도 가속화하고 있는 양상인데, 이러한 현실이 우리와는 무관한 ‘남의 나라’ 일로만 볼 수 있는지 저자는 우려한다.

북·중간의 이런 긴밀한 교류·협력 분위기 때문에 환기하게 되는 것은 중국의 ‘항미원조’(抗美援朝), 곧 한국전쟁 참전이다. 1950년 10월, 중국은 총사령관 펑더화이의 지휘하에 세 차례에 걸쳐 무려 180만명을 참전시켰다. 특히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이 펑더화이의 비서로 참전했다가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전사했는데, 그 유해가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묘에 안장돼 있다고 한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장남이 북한을 도우러 왔다가 전사해 북한 땅에 묻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북한은 중국에 크게 빚을 진 거”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상기시키려는 듯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 60주년을 기념한다며 접경의 단둥에는 펑더화이 동상을 세우고, 허커우에는 마오안잉 동상을 세웠다. 북·중 경제협력을 재개하는 시점에서 중국이 양국의 혈맹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 의도를 품은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는 막혀 있는 상황에서 중국인들의 대북사업은 활기를 띠며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저자는 북한 경제가 중국에 점점 예속돼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표한다. 비단 저자만의 우려는 아닐 듯싶다.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더 넓어져야 한다는 점을 이 답사기는 깨닫게 해준다.

 

13.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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