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20세기초 러시아문학 고전이 출간됐다. 흔히 '일프와 페트로프'로 불리는 일리야 일프와 예브게니 페트로프의 <열두 개의 의자>(시공사, 2013). 과거 중앙일보사에서 나왔던 <소련동구 현대문학전집>(전30권, 1990)에 들어 있었던 책인데, 이번에 나온 건 새 번역본이다. 절판됐지만 이들의 작품으론 <금송아지1,2>(홍신문화사, 1997)도 번역된 적이 있다. 어떤 작가들이었나.

 

 

일리야 일프와 예브게니 페트로프는 각각 1987년과 1903년에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일프는 기술학교 졸업 후 전신국 기사, 잡지사 편집자 등 여러 직업을 거치다 1923년 작가가 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갔고, 페트로프 역시 고등학교 졸업 후 전신국 통신원, 잡지사 기자, 형사 등으로 일하다 1923년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1925년 모스크바의 철도 노동자 기관지 '기적'에서 유머 풍자 칼럼을 쓰면서 처음 만나게 된 두 사람은, 본인들 스스로 “분리되었던 분신이 드디어 만났다”고 표현한 것처럼 이후 독특한 문학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했다.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공동 집필’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해나간 이들은 1928년 ‘일프와 페트로프’라는 필명으로 첫 장편 <열두 개의 의자>를 발표해 단숨에 “소비에트 최고의 풍자 작가” 반열에 올랐다.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와 해학을 담은 이 작품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마야콥스키, 고리키 등 원로 작가들의 찬사를 얻으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는 중에도 ‘표도르 톨스토옙스키’(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합성한 이름)라는 필명으로 여러 잡지에 풍자 단편과 칼럼들을 기고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고, 3년 뒤 두 번째 장편 <황금 송아지>를 발표해 또 한 번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스탈린 독재가 강화되면서 소비에트 체제에 풍자와 비판을 가한 작품들은 모두 금서가 되고 이들의 작품 역시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1920년대 러시아문학이 풍자문학의 전성기이기도 한데, <열두 개의 의자> 역시 '세르반테스와 고골을 잇는 풍자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된다(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고골의 <죽은 혼>을 염두에 둔 것이다). 여러 차례 영화와 뮤지컬로 리메이크된 바 있는데, 영화는 1971년작, 1976년작 등이 유명하다. 아래는 1971년작의 포스터. 어떤 이야기인가.

 

몰락귀족인 보로뱌니노프와 ‘위대한 사기꾼’ 벤데르가 보석이 숨겨진 열두 개의 의자를 찾아 러시아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닌다는 모험소설 형식의 <열두 개의 의자>는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작가들의 뛰어난 재치와 유머로 인해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유쾌한 소설이다.

유쾌한 이야기이지만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어서 스탈린 시절에는 금지됐다가 스탈린 사후인 1956년에야 비로소 복간됐다고 하며 책은 나오자마자 일시에 품절이 되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우리에게도 그에 견줄 만한 풍자문학이 있는가. 얼른 떠오르는 게 없어서 아쉽다... 

 

13.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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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어도 원고노동자에겐 재택근무일일 뿐인데,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북은 정수복의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알마, 2013)다.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둥지 철학자 박이문을 만나다'란 부제가 어떤 책인지 말해준다. 사회학자에게 철학자가 들려주는 말이 이렇다.

 

“앎이란 내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였다. 여든이 된 지금도 나는 삶의 의미를 묻는다. 생은 허무하나 인생은, 허무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결단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자다.”

박이문의 둥지의 철학은 제목 그대로 <둥지의 철학>(소나무, 2013/2010)에 집약돼 있다. 이십 대 시절에 가장 많이 읽은 저자의 한 명이라 개인적인 감회가 없지 않다.

 

 

두번째는 사회학자라고 해야 할지 철학자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이진경의 <삶을 위한 철학수업>(문학동네, 2013). "우리 시대의 명강 시리즈 다섯번째 책으로, 저자가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매주 금요일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한 글을 엮은 결과물이다. 이 책은 ‘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 ‘능력과 자유’ ‘자유와 욕망’이라는 네 가지 영역에서 우리가 정말 자유로운지 반문한다." <철학의 모험>의 개정판으로 올봄에 나왔던 <히치하이커의 철학여행>(휴머니스트, 2013)과 더불어 이진경 철학 가이드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하다.

 


세번째는 사회학자 송호근의 <시민의 탄생>(민음사, 2013). '조선의 근대와 공론장의 지각 변동'이 부제로 '근대 한국인'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추적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지만 재작년에 나왔던 <인민의 탄생>(민음사, 2011)에 이어지는 책이다. 전체 삼부작의 마지막 권은 <현대 한국사회의 탄생>쯤이 될 거라고.  

 

 

네번째 책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칼럼집 <한기호의 다독다독>(북바이북, 2013)이다. "정치·사회·문화의 이슈를 책과 함께 풀어내는 <경향신문> 칼럼 ‘한기호의 다독다독’을 엮은 책"이다. 작년에 나온 <새로운 책의 시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2)와 함께, 오늘의 출판문화와 책의 미래를 들여다보고 조망하게 해주는 거울이자 전망대 격.

 

 

다섯번째 책은 건축가 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서해문집, 2013). '건축가 이일훈, 카메라로 세상을 읽다'가 부제다. 우리의 일상을 다시 들여다본 건축가의 사진 에세이. 건축가 이일훈에 대해 더 많이 말해주는 책은 국어선생 송승훈과 건축가와 건축주로서 주고받은 이메일을 엮은 <제가 살고 싶은 집은>(서해문집, 2011)이다. 흠, 이런 일로 건축가와 만나는 일이 내게도 생길지 궁금하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 (양장)-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둥지 철학자 박이문을 만나다
정수복 지음 / 알마 / 2013년 11월
19,500원 → 17,550원(10%할인) / 마일리지 9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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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을 위한 철학수업-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이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18,000원 → 17,100원(5%할인) / 마일리지 54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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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3년 11월 30일에 저장

시민의 탄생- 조선의 근대와 공론장의 지각 변동
송호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11월 30일에 저장

한기호의 다독다독- 책으로 펼치는 문화적 상상력
한기호 지음 / 북바이북 / 2013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11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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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마지막 주말을 앞두고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달력도 마지막 한장을 남겨놓게 돼 마음이 바쁘다. 페이퍼도 후딱 해치워야겠다.

 

 

먼저, 절필 10년만에 컴백한 작가 백민석의 신작 소설집 <혀끝의 남자>(문학과지성사, 2013)가 나왔다. <죽은 올빼미농장>(작가정신, 2003)과 <러셔>(문학동네, 2003) 이후 10년이 됐다는 얘기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백민석은 9년여 동안 활발한 창작을 계속하다가 돌연 2003년에 절필을 선언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 '자발적 실종자'는 시골마을에서 어부가 되었다는 식의 소문만 무성한 채 근황을 알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리고 2013년 겨울, 다시 돌아온 백민석이 소설집 <혀끝의 남자>를 출간하였다. 두 편의 신작과 일곱 편의 기발표작을 새로 고쳐 총 아홉 편의 소설을 묶어냈다." 곡절을 털어놓기 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건 아홉 편의 소설뿐이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한국계 미국 작가 수잔 최의 신작도 나왔다. <요주의 인물>(예담, 2013). 생소한 분들을 위해 작가소개를 옮기면 이렇다.

 

 

미국 인디애나에서 한국인 교수 아버지와 유대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텍사스에서 자랐으며 예일 대학교와 코넬 대학교를 졸업했다. 1998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외국인 학생The Foreign Student>으로 ‘아시아계 미국 문학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 <미국 여자American Woman>로는 퓰리처상 최종심에 오르는 등 미국 문단이 주목하는 문제적 작가로 떠올랐다.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요주의 인물A Person of Interest>은 폭탄테러의 관련된 사람으로 지목받게 된 동양인 수학박사 리Lee가 음모를 헤쳐 나가는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을 더함으로써, 3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 작가에게 수여되는 ‘펜/제발트상’을 수상하였다. 2013년 현재 뉴욕 브룩클린에 거주하며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계 작가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이는 이창래이지만, 수잔 최의 이름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세 권의 장편소설이 모두 우리말로 번역돼 있기도 하다(<외국인 학생>은 절판됐다). 실상이 궁금하다면 직접 손에 들어봐도 좋겠다.

 

 

 

끝으로 유홍준 선생의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강의3>(눌와, 2013)이 출간됐다. '조선 그림과 글씨'를 다룬다. 올해 펴낸 책으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1,2>(창비, 2013)과 <명작 순례>(눌와, 2013)에 이어지는 것인데, 새삼 놀라운 필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하튼 3권까지 나오고 보니 수집가로서의 욕심도 갖게 된다. 몇 권이 완간인 것인가?..

 

13.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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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두 작가에 대해 적는다. 맥스 비어봄과 앰브로즈 비어스. 이름만 들어서는 둘다 초면인데(실제로 맥스 비어봄에 대해선 처음 알았다) 맥스 비어봄의 <일곱 명의 남자>(아모르문디, 2013)이 이번에 나왔고, 앰브로즈 비어스의 <내가 샤일로에서 본 것>(아모르문디, 2013)이 지난 여름에 나왔다. 열띠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아모르문디 세계문학' 총서의 두번째, 세번째 책이다(<루키아노스의 진실한 이야기>가 첫 책이었다).

 

 

 

맥스 비어봄은 처음 소개됐나 했는데, 그건 아니고 <행복한 위선자>(바람, 2007)란 먼저 나왔었다(현재는 절판). 어떤 작가인가. "1872년에 태어났다. 옥스퍼드대의 머튼칼리지 재학시절에 재기 넘치는 수필들을 유명한 문예지「옐로북」에 발표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898년에는 버나드 쇼의 뒤를 이어 「새터데이 리뷰」의 연극평론을 맡아,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문체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1910년 여배우 플로렌스 칸과 결혼하여 이탈리아의 라팔로에 정착했으며, 제1.2차 세계대전 때 영국에 귀국한 기간을 빼고는 1956년 운명할 때까지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버나드 쇼와의 관계가 눈에 띄는데, "세기말 영국 문단을 풍미했던 위트와 풍자의 대가"라는 평판은 그와 연관시켜보면 이해가 간다. 이번에 나온 <일곱 명의 남자>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일곱 명의 남자>는 비어봄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작가들이 사랑한 작가이자 그 누구보다도 작가들을 깊이 이해한 작가인 비어봄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일종의 회고록 또는 에세이의 형식을 취한 단편 소설 6편을 모아 놓은 이 작품집은, 1919년 5편이 실린 <일곱 명의 남자>로 발표되었다가 1950년 1편이 추가되어 <일곱 명의 남자와 다른 두 남자>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이 6편의 작품을 모두 실었다.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재사(才士)의 작품이라 하니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읽고 나면 '맥스 비어봄'이란 이름이 입에 익을지도 모르겠다.

 

 

앰브로즈 비어스는 어떤 작가인가. "1842년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났다. 미국 남북 전쟁에 참전한 뒤 샌프란시스코, 런던, 워싱턴에서 기자와 비평가로 활동했다. 미국 생활에 싫증을 느낀 그는 1913년에 당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멕시코로 갔다가 1914년 1월 11일 멕시코에서 실종되었으며 정확한 사망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불안, 죽음의 공포 등 영혼의 극한적인 상태를 에드거 앨런 포의 전통에 따라 표현해 한때 포와 비견되기도 했으나, 주로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을 주로 쓴 탓에 인기에 비해 문학성은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 50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조명되었다. 특히 1906년에 재출간된 단어 풍자 사전 <악마의 사전>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그 <악마의 사전>(이름아침, 2005)이 나왔을 때 구입했던 터라(번역본만 몇 종이 나왔었다) 구면인 작가인데, 그 이상은 아는 게 없었다. 남북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집 <내가 샤일로에서 본 것>이 '작가'로서 새롭게 보게 해주었는데, 번역서로는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더 스타일, 2013; 생각의나무, 2010)이 더 출간돼 있다. "1800년대 중반 이후의 미국을 배경으로 쓴 17편의 환상소설"이라고.  

 

소위 메이저 작가들에는 속하지 않지만, 영국문학과 미국문학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두 작가의 작품집이 소개된 거라고 보면 되겠다...

 

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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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문학동네가 창사 이십 주년을 맞는다. 이번에 나온 <문학동네>(겨울호)에는 이를 기념하여 '문학동네와 나'와 '내가 읽은 문학동네의 책'이란 특집이 마련됐는데, '내가 읽은 문학동네의 책'의 한 꼭지를 맡아 쓴 글을 옮겨놓는다. 문학동네 산문집 몇권을 떠올리고 그 소감을 적었다.

 

 

 

문학동네(13년 겨울호) 문학동네 산문집을 떠올리다

 

내가 읽은 문학동네의 책이 분명 적지 않으련만 막상 한두 권의 책을 꼽으려고 하니 처음엔 얼른 떠오르는 게 없었다.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뭔가 대표할 만한 책을 속으로 찾았던 것인데, 결국 떠올린 건 김훈의 『풍경과 상처』를 비롯한 몇 권의 산문집이다. 가령 김화영의 『바람을 담는 집』과 이성복의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까지 거기에 속한다. 명백히 오랜만에 상기한 일이지만, 나는 이 책들을 여러 차례, 여러 권 구입해서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준 바 있다. 언제든 다시 구입할 용의가 있어서 이 글을 쓰기 위해서도 한번 더 구입했다. 좋은 책이 대개 그렇듯이 이번에도 제값을 치르지 않고 뭔가 거저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작은 『풍경과 상처』였다. 이 ‘기행산문집’에 실린 글들을 나는 대부분 다른 지면에서 먼저 읽었다. 지금 기억으론 『현대시세계』 같은 잡지에 연재됐던 글들도 포함됐기에. 첫머리에 실린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조차도 한 작품집의 발문 격으로 실린 걸로 먼저 읽었다. 확인이 어려워 기억이 말해주는 바대로만 적자면 ‘내 마음속 호롱불 한 점’ 비슷한 제목이었다. 그게 어느 해 가을인지, 겨울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 지방 도시의 서점에서 책을 손에 들고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집으로 향하는 버스 칸에서 읽은 기억이 또렷하다. 마치 호롱불을 켜놓은 듯 환하게 상기되는 순간이다.


지금 판권면을 보니 저자는 1993년 가을에 서문을 적었고, 책은 1994년 1월에 나왔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거의 첫 책이 아닐까. 혹 출간으로는 첫 책이 아니더라도 분명 내가 구입한 걸로는 첫 책임에 틀림없다. 진작부터 김훈의 애독자였으니 책은 나오자마자 구입했을 터이다. 그리고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난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에 쩔쩔맨다”로 시작하는 글을 다시 읽었다. 나는 아예 복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녔다. 어떤 용도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추 이십 년 전이니 기억이 흐릿한 건 이해가 되고 용서도 된다. 맘에 드는 시들도 복사해서 다녔던 걸 고려하면 별다른 용도는 없었을 것이다. 때론 그렇게 넣고 다니던 글들을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읽히기도 했던 듯싶다. 좋지 않느냐고. 아, 너무도 오래전 일이다. 이십 년은 청년이 중년으로 늙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다시 구한 『풍경과 상처』는 2009년에 나온 개정판이다. 나는 개정판으로도 두어 번 구입했던 듯싶다. 저자는 “나는 이제 이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는 내가 경배하는 만큼 자신의 문장을 경배하지 않는다. “만유의 혼음으로 세계와 들러붙으려는 욕망이, 어떻게 인간이라는 종과 속 안으로 수렴되어 마침내 보편적인 여자, 그리고 더욱 마침내, 살아 있는 한 구체적인 여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리되어오는 것인지에 관하여 나는 아직도 잘 말할 수가 없다”는 고백의 뒷얘기를 이젠 들을 수 없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그가 기자를 그만두고 기사를 쓰지 않게 된 것이 에세이를 그만 쓰게 된 것과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게 나의 짐작이다). 때로 전설은 그 자신이 전설임을 알지 못한다.

 

 


『바람을 담는 집』도 정말 오랜만에 떠올린 책이다. 책은 1996년 여름에 나왔다. 저자의 책은 여러 번역서들과 함께 『행복의 충격』 『프랑스문학 산책』 같은 걸 읽어둔 터였다. 지금 다시 펴보니 다양한 제재의 글들을 모은 이 산문집에서 특별히 어떤 대목에 꽂혔던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지방에 있던 어떤 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강력하게 추천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이도 나에게 호응했던 듯싶다. 돌이켜보면 저자의 번역보다도 산문이나 평론을 나는 더 좋아했다. 문학동네에서 ‘김화영 문학선’의 다른 책이 나오기 전이라 독서는 다른 곳에서 나온 『한눈팔기와 글쓰기』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적어도 산문집이라면 나는 ‘김화영의 모든 책’을 읽는다. ‘김훈의 모든 책’을 읽듯이.


『바람을 담는 집』을 오랜만에 뒤적이며 무엇이 나를 잡아끌었던가 생각해본다.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중학교 시절 이래 나는 용돈 중 가장 많은 몫을 책을 사는 데 써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책은 나의 삶 자체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 나 역시 그래 왔던 것이니, 마치 내가 쓴 책처럼 읽었으리라. 더불어 저자의 바람은 나의 바람이기도 했다. 저자가 “나는 가끔 책이 없는 곳에 있을 때 기이한 해방감, 홀가분한 자유를 맛본다”고 적을 때도 완전 공감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공간만 하더라도 겨우 드나들 수 있는 통로만을 제외하곤 사방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책에 파묻히다’란 말이 언제부턴가 비유도 과장도 아니게 됐다. 저자의 표현으론 ‘책의 요새’고 ‘책의 감옥’이다. 분명 책이 없다면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줄 알면서도 나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책이 없는 방’을 꿈꿀 때가 있다. 책으로 가득찬 방과 책이 없는 텅 빈 방. 『바람을 담는 집』 이후로 내가 마음에 담는 집이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는 2001년에 나온 책이다. 이성복과 문학동네는 바로 연상하기 어려운 결합인데, 그의 산문집도 역시 문학동네에서 나온 게 됐다. 사실 책은 도서출판 살림에서 나온 『꽃핀 나무들의 괴로움』과 웅진출판사에서 나온 『이성복 문학앨범』에 실렸던 글들을 다시 묶고 거기에다 이후에 발표한 글들을 추가한 것이다. 추가된 글로 대표적인 게 바로 표제글로, 나는 책으로 나오기 전에 발표지면에서 읽었다. 역시나 복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녔고. 아니 그 정도로 그친 게 아니고 학부 일학년 문학개설 시간에 나눠주고 읽히기까지 했다. 그것도 러시아문학 전공 학생들에게. 지금이라면 그런 ‘열성’이 뭔가 과장되게 느껴질 것 같은데, 조금 젊었던 탓인지 개의치 않았다. 나눠준 다음에 일장 강의까지 한 것은 물론이다.


시인은 무엇을 말했던가. 아니 무엇을 말할 수 없었던가. 어느 비가 오던 날 주차했던 창유리 안쪽에 비에 젖어 들러붙은 석류 꽃잎을 바라본다. 당연한 일이지만 다시 시동을 걸면서는 와이퍼를 몇 번 움직여서 길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그날 그때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나는 비에 젖은 그 작은 석류 꽃잎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시인의 고백이다. 짐짓 고통의 고백이다. 그는 “그날 내 차의 창유리에 혼곤히 잠들어 있다가 한순간 와이퍼의 거센 몸짓에 휩쓸려나간 바알간 석류 꽃잎을 생각해”보지만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 비트겐슈타인류의 철학 정신이라면, 이성복의 시 정신은 대상의 영역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는 사물과 그 이미지를 언어의 영역으로 끌어내지 못하는 무능력을 그 자체로 진술한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날 비에 젖은 석류 꽃잎이 던지는 시각 언어는 이해 가능한 청각 언어로 번역되지 못할 것이다.” 흠, 그런 불가능성에 대해 열띠게 강의했던가. 문학에 대해서 제대로 강의할 수 없는 강사의 무능력을 말이다.


문학동네 창립 이십 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초대돼 짤막한 연설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이 글을 적어나가려고 했지만, 어렴풋한 기억의 언저리에서 몇 권의 책을 끄집어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내가 받은 감동과 내가 느낀 공감의 극히 일부밖에 말할 수 없어서 유감이다. 유감으로 끝내는 건 멋쩍기에 내게 ‘문학동네’가 떠올려주는 이미지를 끝으로 보탠다. 아마도 1996년쯤일 듯한데, 나는 두 동생과 같이 거주할 전셋집을 여러 곳 보러 다녔다. 비온 날도 있었던 걸로 보아 여름이었지 싶은데, 벼룩시장에 올라온 광고들에 뜬 전화번호를 통해 몇 집 찾아보다가 결국 마땅한 집을 고르게 됐다. 산동네 빌라 삼층이었고, 방이 세 칸짜리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 집이 문학동네와 무슨 관계가 있나? 집을 보러간 날 내가 쓰게 될 큰방의 이전 입주자는 국문학 전공의 여학생이었는데, 놀랍게도 책장에 계간 『문학동네』가 창간호부터 쭉 꽂혀 있었다. 나대로는 당시에도 꽤 많은 책을 갖고 있는 편이었지만 계간지는 드문드문 구입했기에 아연 긴장할 만한 장면이었다. 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던 다른 계간지들 대신에 『문학동네』가 눈에 띄게 진열돼 있는 걸 보고, ‘세상이 바뀌었구나’라고 느꼈다면 과장일까. 오늘의 문학동네를 생각하면 예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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