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움판 <이방인> 번역으로 불거진 논란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역자나 출판사가 바라는 바였는지 모르겠지만(이 번역은 현재 알라딘의 고전분야에서 베스트셀러 1,2위를 다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좀 유감스럽다. 새움판의 역자는 김화영본의 오역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 자신의 번역은 오역에서 면제된 듯한 (위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무슨 '번역 무오류설'의 신자라도 되는가?), 모든 번역은 오류(오역)에 열려 있다(역설적이지만 원작보다 나은 번역본이 나오기도 하는 건 이런 개방성 때문이다). 자기 번역에 대한 자부와 독선은 별개의 문제다.

 

 

 

오역에 대한 논란과 함께 익명 비판이 갖는 문제도 따져볼 문제다. 한겨레의 최재봉 기자가 ‘이방인’ 번역 논란에 뒷북을 치면서 이렇게 적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32481.html).  

새움판 <이방인> 번역본은 ‘이정서’라는 필명 뒤에 번역자의 정체를 감추고 있다. 그가 역시 같은 필명으로 얼마 전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라는 소설을 낸 것 이외에 다른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계급장 떼고 붙어 보자’는 식의 도전 정신으로 이해되지만, 어쩐지 찜찜하다. 비판 대상은 벌거벗겨 광장에 내다놓고 비판의 주체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꼴이 공정해 보이지는 않는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국문학자 이명원이 원로 학자 김윤식의 표절 사실을 들춰냈다가 학교 사회에서 쫓겨난 일을 소재로 삼았다. 이명원은 어디까지나 제 이름을 걸고 원로를 비판했다. ‘이정서’ 역시 신분을 드러내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불필요한 익명 처리가 ‘노이즈마케팅’ 혐의를 자초하는 건 아닐까.

'다른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했지만 약간의 정보는 주어져 있다. <이방인>의 옮긴이 소개에 보면 "대학 시절 여러 문학상을 받고, 학보에 소설을 연재할 만큼 열정적인 문청이었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글쓰기를 접고 회사를 경영했다"고 돼 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이방인>의 오역 문제를 발견하고 뛰어들었다는 것. 그러면서 <이방인>과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새움, 2014)를 거의 동시에 출간하는데, 김윤식 교수의 표절 문제를 다룬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십수 년 전 일을 소재로 한 것이라 지금에야 출간된다는 게 다소 의문이었다(이제는 물론 눈치챌 수 있다. 김화영에 대한 이정서의 오역 시비를 김윤식에 대한 이명원의 표절 시비 연장선상에서 정당화하려는 프레임이었던 것. '권위에 대한 약자의 의로운 도전'으로 동일시하려 했던 것이다).

 

 

한데, 책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아무 언급이 없지만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개정판'이다(출판사 홈피에서는 이를 밝히고 있다). 2001년에 같은 제목의 책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2001년판에서는 '김지윤 교수'라고 가명으로 썼다가 이번에는 '김윤식 교수'라고 실명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 '이정서'의 해명은 이렇다.

이 소설에는 실명과 허구의 이름이 동시에 쓰였습니다. 소설에 실명을 등장시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나, 언론에 이미 발표된 이름들은 그것을 숨기는 것이 오히려 더 불필요한 상상을 초래할 수 있을 것 같아, 경우에 따라서는 실명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차이라면 2001년판의 저자는 '이환'으로 표기돼 있다는 점. "2000년 단편소설 <케네디를 찢다>(비평과전망 제2호)로 작품 발표 시작. 장편소설 <너를 부르마>가 있다. 현재 DESIGN NAMU를 운영하고 있다"가 당시 소개된 약력이다(<비평과 전망>이란 잡지도 새움에서 펴내던 것이다).

 

절판됐지만 <너를 부르마>(새움, 2000)는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보다 조금 앞서 나온 소설이다. 이환=이정서와 새움과의 긴밀한 관계가 눈에 띄는데, <이방인> 번역이 출판사 홈피에 파격적으로 연재됐던 것도 고려하면 이정서는 출판사 대표와 아주 막역한 사이이거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추정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새움출판사 대표와 편집부 직원들이 합작해서 쓴 <출판24시>(새움, 2013)의 첫 대목은 이렇다(여담으로 적자면 이 책은 작년에 출판사에서 보내온 것이다).

이정서 수비니겨 출판사 대표는 어제 신입사원이 치르고 간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험지는 곧 출간될 원고에 일부러 오자와 비문을 만들어 넣어 출제해둔 것인데, 응시자는 생각보다 문장을 매만지는 솜씨가 괜찮았다.(9쪽)

<이방인> 역자의 이름으로도 쓰인 '이정서'는 새움출판사의 거의 '간판' 같은 이름인 듯싶다. 이미 트위터상에 떠 있으므로(https://twitter.com/socoopbooks/status/455288254867054592) 에둘러 말하지 않도록 한다. 출판계에서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인데, <이방인>의 역자 이정서는 새움출판사의 이대식 대표다(그는 서울시립대 국문과 출신으로 이명원 평론가의 선배다). 아마도 본인이 밝히길 꺼려 하기에 (이미 알고 있을 법한) 기자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새움출판사 홈피에는 한겨레 고나무 기자의 인터뷰와 기사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역자의 글이 올라와 있는데(http://saeumbook.tistory.com/430) 모순적이게도 모두가 엉터리인 다른 <이방인> 번역에 대해 자신의 번역본이 완벽하게 옳은 번역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자신은 불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불어는 한마디도 못한다고 천연스레 적어놓고 있다(불어 원전만 보았지 다른 건 참고하지 않았다는 사람의 말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실제 번역자가 따로 있어서 이정서는 '편집자' 역할만 했거나 아니면 역자가 주장하듯 카뮈와 접신을 했거나...  

 

 

 

개인적으로 새움출판사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랬다면, 다시 나온 이명원의 <타는 혀>와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를 구입하지 않았을 테고, <이방인> 번역서와 함께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도 주문하지 않았을 것이다(출판사에서는 <이방인>을 내가 알라딘에서 구입한 다음주에 보내왔다). 하지만 이번 논란을 보면서 그들의 가면 놀이가 불쾌하고 위험하게 여겨진다. '노이즈마케팅'도 정도껏 하는 게 좋다. 알라딘의 닉네임을 빗대자면 그러다 '외롭고웃긴출판사' 된다. 오랜 경구대로 일부의 사람을 영원히 속이거나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을지라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14.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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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을 한권 적는다. 사실은 지난달의 발견이라고 해야 하는데, 책은 진즉 구해놓고 방치해놓았다가 책정리 중에 다시 발견했다. 제임스 V. 워치의 <보이스 오브 마인드>(학이시습, 2014)다. '매개된 행위에 대한 사회문화적 접근'이 부제.

 

 

 

제목이나 부제로는 어떤 책인지 알기 어려운데, 키워드가 '비고츠키'와 '바흐친'이라고 하면 좀 관심이 생길지 모르겠다. 내가 그런 경우다. 소개에 따르면, "북미의 대표적인 비고츠키 학파 중 한 명인 제임스 V. 워치의 국내 첫 번역서다. 사회문화심리학을 펼치기 위해 러시아의 언어철학자인 미하일 바흐친의 이론을 핵심 보조선으로 채용하고, 비고츠키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인간 정신(마음)의 사회문화역사적 접근의 심리학 이론 및 실천의 확장을 시도했다." 역자는 <비고츠키, 불협화음의 미학>(에듀니티, 2013)의 저자이기도 한 박동섭 교수. 교육학 쪽에는 비고츠키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좀 된다.

 

 

 

개인적으로는 비고츠키보다 바흐친에 관심이 있어서 원서까지 대출했지만 아직 펴보진 못하고 있다. 사실 비고츠키만 하더라도 엄두가 잘 안 날 정도로 읽을 책이 많고, 국내에도 대표 저작들이 소개돼 있는 형편이다. 올초에 <어린이의 상상과 창조>(살림터, 2014)까지 나온 '비고츠키 선집'이 대표적이다.

 

 

특히 주저인 <사고와 언어>의 경우는 번역본이 세 종이나 된다(선집판 제목은 <생각과 말>). 나 역시 (찾아보면) 영어와 러시아어판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번역본들을 대조해가며 읽어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그런 여유를 부린다는 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이런 페이퍼를 통해서 상기만 해둔다.

 

 

 

한편 마인드(마음)에 대한 최근 신간으로는 로저 펜로즈의 <마음의 그림자>(승산, 2014)도 빼놓을 수 없다. "<황제의 새 마음>의 저자 로저 펜로즈의 또 한 권의 명저. 물리학, 수학은 물론이고 괴델의 논리학과 튜링의 컴퓨팅 기술, 생물학, 그리고 서양 철학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까지 전방위 학문들을 어렵지 않게 거론하고 서술하면서 두뇌와 의식에 대한 탐구를 이끌어나간다."

 

욕심이 나는 책이긴 하지만, 동시에 욕심을 버려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고급 수준의 수학과 양자이론을 동원하고 있는지라 매우 '하드'한 책이기 때문이다. 모든 교양과학서가 소프트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경우는 따로 번역자나 중개자가 필요할 정도다. 우리로선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로저 펜로즈의 마음'을 읽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14.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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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독서인'에 실은 독서칼럼을 옮겨놓는다. 존 그레이의 <동물들의 침묵>(이후, 2014)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저자의 몇 가지 주장과 함께 적었다. 개인적으로 그레이의 책들을 애독하는 편인데, 칼럼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는 늘 생소한 저자와 책들을 다룸으로써 지적인 계몽과 자극을 제공한다. 매번 한 수 배운다고 할까. 그는 아주 성실한 독서가이기도 하다.  

 

 

 

독서인(14년 4월호) 휴머니즘과 동물들의 침묵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이반 카라마조프는 휴머니즘을 일컬어 ‘멀리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멀리 있는 인간이란 직접 눈으로 보거나 부대끼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다. 그런 추상적 인간이라면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지만 바로 옆에 있는 인간을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토로다. 아니 이반은 오히려 그런 사랑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반문한다. 이반의 태도는 거꾸로 서구식 휴머니즘의 한계에 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예리한 통찰과 비판을 반영한다. 그들은 휴머니즘을 외치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지만 정작 가까이에 있는 구체적인 인간에 대한 사랑은 외면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러한 외면 자체가 휴머니즘의 전제이자 성립조건이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폭로한다.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사상가 존 그레이의 <동물들의 침묵>을 읽으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떠올린 건 서구문명의 핵심적 가치로서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물론 차이도 분명하다. 러시아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비판이 ‘바깥으로부터의 비판’이라면 그레이의 비판은 ‘안으로부터의 비판’이다. 게다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 정교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고유한 정신이 서구 합리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반면에 그레이는 기독교적 휴머니즘 또한 무신론적 휴머니즘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신화이자 환상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말의 통상적인 의미에서 그레이는 허무주의자이고 염세주의자이다. 그는 인간이 동물과는 다른 존재이며, 우월한 존재라는 통념적 믿음을 부정하고 거부한다. 그에게 휴머니즘이란 오만한 환상에 불과하다.


무엇이 휴머니즘인가. 그레이에 따르면 휴머니즘은 세 가지 연속적인 믿음으로 구성돼 있다. 기본이 되는 믿음은 인간 동물이 ‘세상에서 유일한 가치를 담지하는 장소’라고 보는 견해다. 무엇이 특별한가. 인간은 여느 동물들에게는 없는 이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런 믿음을 전제로 하는 한, 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이자 인간우월주의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인간의 정신이 우주의 질서를 반영한다고 보는 또 다른 휴머니즘으로 이어진다. 이 두 가지 믿음이 고대 그리스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근대에 새롭게 등장한 휴머니즘은 거기에다 인간의 역사란 이성이 점점 증가하면서 진보해가는 이야기라는 믿음을 추가했다. 과학과 역사가 말해주는 바는 “인간은 부분적으로만, 그리고 가끔씩만 이성적이라는 사실”이지만, 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이 미래에는 틀림없이 더 이성적이 될 수 있다고 믿어버렸다. 하지만 그레이가 보기에 ‘진보에 대한 믿음’은 터무니없는 낙관이며 다른 어떤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맹신에 불과하다.

 


근대 계몽주의 이후 신화에 대한 비판은 단골 메뉴다. 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이 신화 없이 살 수 있으며 이를 부인하는 것은 염세주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염세주의자’로서 그레이가 보기에 그것은 착각이다. 언어를 가진 존재로서 인간이 가진 가장 독특한 점이 바로 신화를 만든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휴머니스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이 신화를 대체하려고 하는 건 또 다른 신화일 따름이다. 즉 우리의 선택지는 신화들 가운데 놓여 있지, 신화냐 과학이냐는 이분법에 놓여 있지 않다. 그레이가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나 <추악한 동맹>, <불멸화위원회> 등의 전작들을 통해서 줄곧 비판해온 것은 과학과 진보에 대한 휴머니스트들의 오만한 맹신이다. 그들이 간과하는 건 진보의 신화조차도 ‘이성’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신화와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신화를 합쳐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근대 과학은 신화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과학을 통한 구원’이라는 신화를 새로 만들어냈을 따름이다.


인간의 역사는 과연 진보해왔는가. 그레이는 부정적이다. 가깝게는 21세기 초 미국의 불평등이 노예제 사회였던 2세기 로마제국보다 심하다는 역사학자들의 견해도 참고할 수 있다. 이미 경제위기는 세계경제가 더 발전할 것이라는 장기적인 전망에 회의를 갖게 한다.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노동자계급은 할 노동이 없어지고 중산층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가 되고 있다. 호황이 가져온 최종 결과는 저축 고갈과 전문직 중산층의 몰락이었다.” 그레이는 이쯤에서 우리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고 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호황기에는 경제가 영원히 팽창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팽배했고, 불황으로 접어들자 다시금 성장신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진다. “진짜 부는 유한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행복이나 자아실현의 허구성도 마찬가지다. 그가 보기에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길일 따름이고, 그것을 견뎌내기 위해 인간은 많은 허구를 동원한다. 행복 추구라는 신화도 그런 허구 가운데 하나다. 프로이트의 충고에 따르면, 행복을 추구하는 건 삶에서 곁길로 새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는 게 훨씬 더 낫다. 무엇이 ‘충족’돼야지만 행복하다는 환상은 만성적인 비참함으로 우리를 이끌기 십상이다. 자아실현의 신화도 마찬가지다. 19세기 낭만주의 운동에 많은 걸 빚지고 있는 이 신화는 우리에게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으라고 말하지만 그런 자아는 없다. 자기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그 자아대로 되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건 말 그대로 믿음일 뿐이다. 그레이의 제안은 이런 것이다.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살아갈 방법을 더 잘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행복을 간접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예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게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일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레이는 우리가 진보의 신화, 행복의 신화에서 벗어나길 권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화가 아닌 진짜 현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레이가 도저한 허무주의자인 것은 그 때문이다. 다만 그와 함께 아무런 가감 없이 우리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무의미하지 않다. 바로 동물들의 침묵에 대해서. “동물에게는 침묵이 자연적인 휴식의 상태이지만 인간에게는 내면의 소동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라고 그는 말한다. 휴머니즘이 이 침묵보다 대단한 것인지 숙고해볼 일이다.

 

14.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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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전 막간에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고른 타이틀북은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국가를 되찾자>(이매진, 2014)다. '대중 민주주의의 실험실을 찾아가는 현장 탐사기'가 부제.

 

웨인라이트는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 영국의 루튼, 뉴캐슬, 이스트맨체스터, 노르웨이의 트론헤임, 이탈리아의 그로타마레, 스페인의 세비야까지 여러 지역을 찾아가 민중이 시장 경제에 맞서 공공성을 자기 손으로 지켜낸 실험을 기록했다. 낡은 제도가 실패할 때 민중이 창조하고 재발명한 ‘참여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웨인라이트는 다양한 실험 속에서 대중 민주주의의 작동 원칙을 배우고 함께 건설하자고 제안한다.

 

두번째 책은 이인우 기자의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길, 2014). 국가기관에 의한 간첩 조작 사건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폭로하고 있는 책인데, 함주명 사건은 이런 식이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1931년생의 함주명이 1983년 겨울, 나이 쉰둘에 낯선 남자들에 이끌려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으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한 뒤에 간첩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다음 해 5월 29일에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16년간 감옥 생활을 한다. 1998년 8.15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함주명은 단 하나의 목표, 즉 오직 재심(再審)을 통해 무죄를 밝히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2005년 7월 15일 재심 선고 공판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라는 소리를 그제서야 들었다. 이 책은 평범했던 우리 이웃이 어떻게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에 의해 평탄했던 삶이 무서울 정도로 파괴되는지를 속살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간접(증거)조작사건의 귀결도 과연 얼마나 다를지 의심스럽다. 아마도 수년 뒤에는 또 다른 고발서가 나오지 않을까. '어느 조작간첩의 보안사 근무기', 김병진의 <보안사>(이매진, 2013)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세번째 책은 <가난의 시대>(동녘, 2012)의 저자 최인기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동녘, 2014). "그의 전작 <가난의 시대>가 도시빈민들이 살아온 긴 역사를 사료 중심으로 정리한 책이라면, 이 책에서는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는 데 더 집중했다." 부제는 '무엇이 그들을 도시의 유령으로 만드는가?'.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클, 2014)과 같이 읽어도 좋겠다.

 

 

네번째 책은 태비스 스마일리와 코넬 웨스트가 공저한 <1퍼센트의 부자들과 99퍼센트의 우리들>(소담출판사, 2014)이다. 원서의 부제는 '빈곤 선언'이고 번역본 부제는 '빈곤 퇴치를 위한 12가지 제안'이다.

철학자와 방송인인 코넬 웨스트와 태비스 스마일리는 빈곤 문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끝에, 오늘날의 빈곤을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18개 도시를 돌며 ‘빈곤층 순방: 양심에 외치다’를 시작한다. 미국 전역을 돌며 참전 용사를 비롯해서 공장 노동자, 판매원, 공사장 인부,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가난한 이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은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수십 년간 계속된 소득 불균형의 원인과 빈곤에 관해 보다 근본적인 진실을 들려준다. 개인들이 겪고 있는 빈곤 문제를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시민들이 ‘1퍼센트의 부자들’ 쪽으로 치우쳐 있는 현재의 사회구조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 '1퍼센트'란 말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데, 좀더 정확하게는 '0.1퍼센트'다. 현재의 자본주의가 '0.1%를 위한 자본주의'로 급속하게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른 다섯번째 책은 한스 위르켄 크뤼스만스키의 <0.1% 억만장자 제국>(새로운제안, 2014)이다. 독일에서 나온 책이고, 작년에 나온 크리스티아 프릴랜드의 <플루토크라트>(열린책들, 2013)와 짝이 될 만하다. 저자가 말하는 '거대한 불평등의 근원'은 무엇인가(이것은 동시에 오늘날 국가가 망가지고 있는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한스 위르겐 크뤼스만스키의 전 세계 0.1% 부자들의 이야기. 이들 0.1%에 포함되는 사람과 그 가족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에 불과하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자본주의가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돈이 마치 블랙홀에 빠져들 듯 점점 더 그들의 세계에 집중되고, 그 나머지 99%의 영역에서는 실업이 증가하고 중산층이 사라지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부의 집중과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있는 0.1% 슈퍼부자 집단의 실체를 여러 매체와 연구자료, 사회과학적 분석방법 등을 이용해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또한 그들이 가진 돈의 권력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ㆍ정치ㆍ문화ㆍ교육제도가 점점 더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익경쟁과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부패와 부조리한 현상 등을 파헤친다.

저자는 슈퍼부자들이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불평등한 자본주의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서는 99% 스스로 0.1% 억만장자 제국의 실체를 똑바로 바라보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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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되찾자- 대중 민주주의의 실험실을 찾아가는 현장 탐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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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무엇이 그들을 도시의 유령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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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퍼센트의 부자들과 99퍼센트의 우리들- 빈곤 퇴치를 위한 12가지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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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주말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이번 주에도 국외 저자로만 골랐다. 미국 소설가에서 러시아 기자까지다.

 

 

 

먼저, 토머스 핀천. 연보를 다시 확인해봤는데, 1937년생이고 생존 작가다. 요즘 핫하게 나오고 있는 필립 로스, 그리고 코맥 맥카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로 해럴르 블룸이 꼽은 뒤로는 곧잘 같이 거명되는데, 이 가운데 국내 독자들에게는 가장 덜 읽히는 작가였다. 이유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제49호 품목의 경매>(민음사, 2007)밖에 읽을 작품도 없었기에. 대표작 <중력의 무지개>(새물결, 2012)도 번역이 됐지만 '악명 높은' 책값 때문에(원가로는 9900원이다) 도서관에서 대출하지 않고서야 실제로 구입해서 읽은 독자는 희소할 것이다(촐판사에서는 1쇄를 700부 찍었다고 했다).

 

이번에 창비 세계문학의 하나로 나온 <느리게 배우는 사람>(창비, 2014)는 핀천의 초기작들로 접근성이나 가격 면에서 핀천 입문에 적격이지 않을까 싶다. 소개는 이렇다.

핀천은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통찰하는 특유의 상상력과 과학소설에 끼친 영향으로 싸이버펑크 SF문학의 선조로 인정받는 소설가로서,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초기에 쓴 다섯편의 단편을 모아 작품을 쓴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84년에 출간한 것이다. 데뷔 장편이 나온 이듬해에 발표된 '은밀한 통합'(1964)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모두 핀천이 대학생 시절에 쓴 작품들이며 소설집에 실린 초기 다섯편의 작품을 보면 핀천이 이후에 발전시킬 주제와 스타일, 취향 등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학시절에 쓴 작품이라고 하니까 기억이 나는 건 코네대학 시절에 나보코프의 강의를 직접 들은 바 있다. 나보코프의 아내 베라가 핀천의 글씨체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리포트가 깔끔했다고. 나보코프의 강의 중에서는 국내에 <러시아문학 강의>(을유문화사, 2012)만 소개됐고, <서양문학 강의>(원제는 그냥 <문학 강의>)와 <돈키호테 강의>는 번역되지 않았다. 핀천이 들은 강의는 <서양문학 강의>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우리도 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두번째로 릭 게코스키. '희귀본 사냥꾼'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저자로 국내에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르네상스, 2007)와 <게코스키의 독서 편력>(뮤진트리, 2011)으로 소개된 바 있다(<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원제가 <나보코프의 나비>다). 이번에 나온 건 '처칠의 초상화부터 바이런의 회고록까지 사라진 걸작들의 수난사'를 다룬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르네상스, 2014). 분야가 미술로도 더 확장돼 독자층도 더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따져보니 게코스키의 책은 대부분 번역되는 듯싶다. 다작이 아닐 따름이고, 나 같은 애독자도 아주 없진 않다는 뜻이겠다.

 

 

 

세번째는 러시아의 여성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다. 2006년 암살 당시 부고 기사를 스크랩해놓은 기억이 나는데, 어느새 8년 전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책들이 번역되고 있어서 반갑고 고맙다. 저자의 삶에 대해서는 한번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1996년부터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 탐사보도팀에서 격주 칼럼을 연재하며 체첸 분쟁과 푸틴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는 많은 기사를 썼다. 안나는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기자로, 수많은 살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푸틴 정권하에 추진되는 반테러 정책의 추악함과 정권의 부조리, 민주주의 분쇄 작전을 낱낱이 고발했다. 2006년 10월 괴한의 총격을 받고 자신의 집 아파트 계단에서 사망했다. 2008년 <국제기자협회(API)>와 유럽의회는 의회 브리핑 실에 고인의 이름을 붙여 추모의 뜻을 밝혔고, 분쟁 지역 여성 활동가를 지원하는 단체인 <전장에 선 여성들>은 ‘안나 폴릿콥스카야 상’을 제정했다. 

체젠전쟁을 다룬 <더러운 전쟁>(이후, 2013)에 이어서 이번에 <러시아 다이어리>(이후, 2014)가 출간됐다. 2007년에 나온 책으로 '러시아 민주주의의 실패와 냉소, 무기력에 관한 보고'다. "푸틴의 재선을 위한 한낱 쇼로 전락한 2003년 12월의 의회 선거로부터 재선에 성공한 푸틴이 인권 운동과 민주주의 세력을 철저히 무력화시켜 나가는 2005년 8월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두브롭카 극장 인질극,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극 등 러시아에서 발생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꿰뚫으면서 저항할 의지도, 수단도 빼앗긴 국민들과 사망 직전에 몰린 러시아 민주주의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 준다." 이 두 권의 책보다 먼저 나왔던 <푸틴의 러시아>까지 포함하면 '푸틴 시대의 비망록'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시대의 양심이었던 그녀의 죽음을 다시금 애도한다...

 

 

14. 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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