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주말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이번 주에도 국외 저자로만 골랐다. 미국 소설가에서 러시아 기자까지다.

 

 

 

먼저, 토머스 핀천. 연보를 다시 확인해봤는데, 1937년생이고 생존 작가다. 요즘 핫하게 나오고 있는 필립 로스, 그리고 코맥 맥카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로 해럴르 블룸이 꼽은 뒤로는 곧잘 같이 거명되는데, 이 가운데 국내 독자들에게는 가장 덜 읽히는 작가였다. 이유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제49호 품목의 경매>(민음사, 2007)밖에 읽을 작품도 없었기에. 대표작 <중력의 무지개>(새물결, 2012)도 번역이 됐지만 '악명 높은' 책값 때문에(원가로는 9900원이다) 도서관에서 대출하지 않고서야 실제로 구입해서 읽은 독자는 희소할 것이다(촐판사에서는 1쇄를 700부 찍었다고 했다).

 

이번에 창비 세계문학의 하나로 나온 <느리게 배우는 사람>(창비, 2014)는 핀천의 초기작들로 접근성이나 가격 면에서 핀천 입문에 적격이지 않을까 싶다. 소개는 이렇다.

핀천은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통찰하는 특유의 상상력과 과학소설에 끼친 영향으로 싸이버펑크 SF문학의 선조로 인정받는 소설가로서,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초기에 쓴 다섯편의 단편을 모아 작품을 쓴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84년에 출간한 것이다. 데뷔 장편이 나온 이듬해에 발표된 '은밀한 통합'(1964)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모두 핀천이 대학생 시절에 쓴 작품들이며 소설집에 실린 초기 다섯편의 작품을 보면 핀천이 이후에 발전시킬 주제와 스타일, 취향 등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학시절에 쓴 작품이라고 하니까 기억이 나는 건 코네대학 시절에 나보코프의 강의를 직접 들은 바 있다. 나보코프의 아내 베라가 핀천의 글씨체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리포트가 깔끔했다고. 나보코프의 강의 중에서는 국내에 <러시아문학 강의>(을유문화사, 2012)만 소개됐고, <서양문학 강의>(원제는 그냥 <문학 강의>)와 <돈키호테 강의>는 번역되지 않았다. 핀천이 들은 강의는 <서양문학 강의>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우리도 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두번째로 릭 게코스키. '희귀본 사냥꾼'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저자로 국내에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르네상스, 2007)와 <게코스키의 독서 편력>(뮤진트리, 2011)으로 소개된 바 있다(<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원제가 <나보코프의 나비>다). 이번에 나온 건 '처칠의 초상화부터 바이런의 회고록까지 사라진 걸작들의 수난사'를 다룬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르네상스, 2014). 분야가 미술로도 더 확장돼 독자층도 더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따져보니 게코스키의 책은 대부분 번역되는 듯싶다. 다작이 아닐 따름이고, 나 같은 애독자도 아주 없진 않다는 뜻이겠다.

 

 

 

세번째는 러시아의 여성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다. 2006년 암살 당시 부고 기사를 스크랩해놓은 기억이 나는데, 어느새 8년 전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책들이 번역되고 있어서 반갑고 고맙다. 저자의 삶에 대해서는 한번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1996년부터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 탐사보도팀에서 격주 칼럼을 연재하며 체첸 분쟁과 푸틴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는 많은 기사를 썼다. 안나는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기자로, 수많은 살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푸틴 정권하에 추진되는 반테러 정책의 추악함과 정권의 부조리, 민주주의 분쇄 작전을 낱낱이 고발했다. 2006년 10월 괴한의 총격을 받고 자신의 집 아파트 계단에서 사망했다. 2008년 <국제기자협회(API)>와 유럽의회는 의회 브리핑 실에 고인의 이름을 붙여 추모의 뜻을 밝혔고, 분쟁 지역 여성 활동가를 지원하는 단체인 <전장에 선 여성들>은 ‘안나 폴릿콥스카야 상’을 제정했다. 

체젠전쟁을 다룬 <더러운 전쟁>(이후, 2013)에 이어서 이번에 <러시아 다이어리>(이후, 2014)가 출간됐다. 2007년에 나온 책으로 '러시아 민주주의의 실패와 냉소, 무기력에 관한 보고'다. "푸틴의 재선을 위한 한낱 쇼로 전락한 2003년 12월의 의회 선거로부터 재선에 성공한 푸틴이 인권 운동과 민주주의 세력을 철저히 무력화시켜 나가는 2005년 8월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두브롭카 극장 인질극,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극 등 러시아에서 발생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꿰뚫으면서 저항할 의지도, 수단도 빼앗긴 국민들과 사망 직전에 몰린 러시아 민주주의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 준다." 이 두 권의 책보다 먼저 나왔던 <푸틴의 러시아>까지 포함하면 '푸틴 시대의 비망록'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시대의 양심이었던 그녀의 죽음을 다시금 애도한다...

 

 

14. 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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