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라 '이주의 책'도 하루 먼저 고른다. 주로 역사 분야의 책들이다. 타이특북은 레너드 케스터, 사이먼 정의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31>(현암사, 2014)에서 가져왔다.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31>(현암사, 2012)의 속편 격. '법정에서 바라 본 세계사의 극적인 순간들과 숨은 이야기'가 부제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열린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에서부터 2011년 일본의 벤처 기업인 호리에 다카후미에 대한 판결에 이르기까지 총 31개의 ‘세계를 발칵 뒤집은 재판과 판결’을 다룬다."

 

 

우리의 관심은 '한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이지만('사법살인' 같은 부정적인 사례라면 꼽아볼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우니 나라 바깥의 사례라도 참고해볼 만하다.

 

 

두번째 책은 배우성의 <조선과 중화>(돌베개, 2014). '조선이 꿈꾸고 상상한 세계와 문명'이 부제다. 낯설지 않은 주제인데, "여말선초부터 한말에 이르는 긴 시간대 위에서 조선 지식인들이 추구한 세계관을 당대의 다양한 역사적 변수와 맥락 속에서 탐색한다." 오래된 주제에 대해서 어떤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지 궁금하다.

 

세번째 책은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을 다룬 신규환의 <북경 똥장수>(푸른역사, 2014)다. "중국혁명을 다룬 국내외의 저서들 대부분은 혁명의 주력으로서 노동자, 농민, 학생, 여성 등이 중국혁명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다루었다. 이와는 상반되게 저자는 도시사회의 평범한 하층민이자 소수자인 똥장수의 일상을 살핀다. 이를 통해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을 지배했던 담론은 개혁과 혁명이 아니라 생계와 복지였음 밝힌다." 매우 참신한 주제와 시각이 돋보인다.

 

 

네번째 책은 <와다 하루끼의 북한 현대사>(창비, 2014). 일본의 대표적 북한 연구자의 북한사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라고 하니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으로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사회주의화 과정을 거치며 북한 체제가 변화해온 궤적을 정치.군사.경제.문화.외교 영역에서 다각도로 조명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北朝鮮現代史>(이와나미출판사 2012)의 한국어판인 이 책에는 일본어판에는 없는 2년여의 '김정은 시대'를 정리해 보론으로 담았다. 단순한 번역본이 아니라 증보판인 셈"이라는 소개다. 국내 학자들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14)와 비교해가며 읽어봄직하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정치적 리더십에 관한 책이다. 가우탐 무쿤다의 <인디스펜서블>(을유문화사, 2014). 원제를 음역한 제목은 좀 못 마땅하지만(영화 제목도 아니고)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지 여러 모로 생각하게 되는 즈음이라 일독해볼 만하다. 어떤 책인가. "제퍼슨, 링컨, 처칠 등 정치적 인물뿐 아니라 금융 위기를 뚫고 은행을 살린 JP모건의 CEO 제이미 다이먼, 암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주다 포크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역사적인 인물을 소개하며 그들이 어떻게 권력을 획득했으며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으로 어떻게 조직을 구하거나 망쳤는지, 더 나아가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는지를 보여 준다." 특별히 스티븐 핑커의 추천사에 마음이 움직였는데, 이렇게 평했다. "<인디스펜서블>은 말 그대로 필요불가결한 책이다. 정치 지도자와 조직의 수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탁월한 시각으로 분석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탁월했던 인물들을 화려한 화법으로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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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 법정에서 바라 본 세계사의 극적인 순간들과 숨은 이야기
L. 레너드 케스터 외 지음 / 현암사 / 2014년 5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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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중화- 조선이 꿈꾸고 상상한 세계와 문명
배우성 지음 / 돌베개 / 2014년 5월
40,000원 → 36,0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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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똥장수-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
신규환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5월
17,500원 → 15,750원(10%할인) / 마일리지 87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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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끼의 북한 현대사
와다 하루키 지음, 남기정 옮김 / 창비 / 2014년 5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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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잡지 '라라'에서 비평을 주제로 교양강좌를 연다(http://www.lara.kr/?p=51447). 7월 2일부터 9월 3일까지 10주간 매주 수요일 저녁(19:00-21:00) 방배유스센터에서 진행되는데(나는 '서평'을 맡았다) 다양한 분야의 비평가들이 두루 망라돼 있다. 비평에 관심이 있는 분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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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 역시나 접전지역은 경합이라고 뜬다. 결과는 더 두고볼 일이지만 서울에서만큼은 좋은 결과가 예견되는 듯싶어 다행스럽다(나는 경기도민이지만). 저녁을 먹기 전 막간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지난 몇달에 비하면 부지런을 떠는 게 되겠지만 6월에 접어든 지도 며칠 됐다.

 

 

1. 문학예술 

 

정이현 작가가 추천한 책은 <그 길 끝에 다시>(바람, 2014)다. "함정임, 한창훈, 이기호, 손홍규, 백영옥, 김미월, 윤고은 등 21세기 대한민국 문단을 이끌고 있는 대표 작가들이 대한민국 도시를 배경으로 쓴 단편소설 7편을 모은 소설집".

 

내가 고른 예술분야의 책은 이일수의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시공아트, 2014)다. <즐겁게 미친 큐레이터>(생각의나무, 2013)의 저자가 쓴 것으로 '조선시대의 문화·예술은 정말 고리타분할까?'란 질문을 던지고, 그렇지 않다는 점을 실증한다. 조선시대 그림에 대한 입문서 격의 책으로 유용하다.

 

 

 

여름은 한국 독자들에게 소설 읽기의 계절이기도 한 만큼 몇 권의 국내소설을 더 얹는 게 무리는 아니겠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창비, 2014), 박형서의 <끄라비>(문학과지성사, 2014), 엄창석의 <빨간 염소들의 거리>(민음사, 2014) 등이 지난 계절에 나온 주목할 만한 소설들이다.

 

 

 

외국소설도 보태자면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다산책방, 2014),  다시 번역돼 나온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연암서가, 2014), 그리고 로맹 가리의 <밤은 고요하리라>(마음산책, 2014) 등 눈길을 끄는 책들이 적잖다(반스의 책은 죽은 아내를 추억하는 회고록이다). 취향대로 읽어보면 되겠다.

 

 

 

흠, 장르소설 독자들을 위해서도 뭔가 골라두어야 할 것 같다. 가이드북의 하나로 국내 필자들이 쓴 <탐정사전>(프로파간다, 2014)이 나와서이기도 한데(장르소설을 잘 안 읽는 편이어서 이런 책은 욕심이 난다), '앨러리 퀸 컬렉션'의 두 권도 같이 보탠다. 앨러리 퀸도 '역사상 중요한 탐정' 목록에 포함돼 있다.

 

 

 

2. 인문학

 

인문학 분야의 추천도서는 이경수의 <숙종, 강화를 품다>(역사공간, 2014)와 곽철환의 <불교의 모든 것>(행성B잎새, 2014)이다. 불교 길라잡이로는 같은 저자의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불광출판사, 2014)도 나란히 나왔는데, 둘다 불교 입문서이자 사전으로 참고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총서로 나온 책들을 이달에 훑어보려고 한다. 흥미로운 주제의 학술대회 발표문을 모은 책들이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분야의 추천도서로는 찰스 몽고메리의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미디어윌, 2014)와 중국 CCTV다큐 제작팀의 <기업의 시대>(다산북스, 2014)가 올라왔다. 전자는 도시를 주제로 한 책으로 벤자민 <뜨는 도시 지는 국가>(21세기북스, 2014)와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경제분야의 책을 좀 보강하면,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의 신작 <당신이 경제학자라면>(웅진지식하우스, 2014), 미국의 두 젊은 경제학자가 쓴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김영사, 2014), 그리고 '전 세계 100억 인류가 만들어낼 위협과 가능성'을 다룬 대니 돌링의 <100억 명>(알키, 2014) 등이 흥미를 끄는 책들이다. 이런 정도는 똑똑한 고등학생들도 읽어볼 만하다. 

 

 

4. 자연과학

 

자연과학 쪽에서는 정부희의 <곤충의 빨간 옷>(상상의숲, 2014)이 추천도서다. <곤충의 밥상>(상상의숲, 2010)부터 시작된 '정부희 곤충기'의 다섯번째 책. 몇 권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완간된다면 한국판 파브르 곤충기를 갖게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평들이 좋다. 아, 파브르 곤충기는 10권짜리로 완역돼 있다.

 

 

관찰 대상으로 곤충과 맞먹을 만한 게 별들이 아닐까 싶은데, 과학 내지 천문학 관련서도 몇 권 더 얹는다. 이준호의 <과학이 빛나는 밤에>(추수밭, 2014)는 '천체물리학부터 최신 뇌 과학까지, 우주의 역사부터 과학의 역사까지' 다룬 통합형 과학 입문서. 저자는 과학분야의 인기 팟캐스트 '과학이 빛나는 밤에' 지기라고 한다. 청소년들에게도 권장해볼 만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천문학자 이석영 교수의 인생과 우주 이야기' <초신성의 후예>(사이언스북스, 2014), 국립과천과학관 지기 이강환의 <우주의 끝을 찾아서>(현암사, 2014)도 밤하늘에 대한 상상력을 한껏 키워줄 만한 책들이다. 

 

 

5. 실용일반

 

실용일반의 추천서로 올라온 건 한복희의 동화 가이드북 <독이 되는 동화책 약이 되는 동화책>(을유문화사, 2014)이다. 이젠 동화책을 읽힐 아이가 없어서 글쓰기 관련서를 실용서로 더 고르면 상반기 베스트셀러인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 2014), 그리고 요즘 '핫'한 <고종석의 문장>(알마, 2014)을 읽어봐도 좋겠다. 남들이 어떤 책을 읽는 것인가 염탐도 할 겸. 글쓰기는 절필했다지만 고종석의 '한국어 글쓰기 강좌'는 성황리에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0. 영화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오랜만에 영화로 잡았다. 관련서가 몇 권 눈에 띄기 때문인데, 주성철 '씨네21' 기자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70가지>(소울메이트, 2014)는 일반적인 가이드북이 될 만하고 김호영의 <영화이미지학>(문학동네, 2014)은 영화학의 현단계를 가늠하게 해줄 듯싶다. 덧붙여, 증보판으로 다시 나온 김서영의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은행나무, 2014)은 이론과 비평의 실제에 대한 한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14. 06. 04.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고른다. 19세기 영국의 대표 작가의 대표작.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의 중산계급에 널리 퍼졌던 사회적 욕망을 충실히 반영한 작품이다. 가난에서 벗어나, 일정한 수입이 있으며 적당한 교육을 받은 교양 있는 사람, 즉 신사가 되려는 주인공 핍의 정신적 사회적 성장을 그린다."

 

 

여러 차례 영화화된 작품이기도 한데, 이번 기회에 BBC에서 만든 3부작 버전으로 감상해볼 참이다. 번역본은 민음사판 외에도 최근에 나온 열린책들판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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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351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최근에 번역돼 나온 프리모 레비의 마지막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돌베개, 2014)를 읽고 적은 것이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의 마지막 저작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마음을 적잖이 무겁게 만드는 책이다. 그럼에도 시선을 돌릴 수 없는 건 그러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 때문이다. 레비의 바람도 그런 것이었다고 믿는다.

 

 

시사IN(14. 06. 07) '생존자' 레비 당신의 유서

 

우리에겐 따로 연상되는 바가 있어서 제목부터 마음을 무겁게 하는 책이 출간됐다.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이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레비가 1987년 자살하기 한 해 전에 발표한 것이니 그가 남긴 유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1947년 <이것이 인간인가>를 발표한 이래 나치 절멸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낱낱이 해부하고 성찰해온 그의 증언을 압축하고 있다.

 

애초에 레비는 첫 책의 제목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고 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인가>의 편집자의 제안에 따라 제목이 바뀌었고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한 장의 제목으로만 들어갔다(<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라고 옮겨진 장이다). 레비와 인터뷰한 한 비평가의 표현을 빌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는 최초의 제목은 표지 위로 올라오기까지 39년을 기다리게 되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리도 고통스러운 경험의 증언을 40년 동안이나 하게끔 만들었을까.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집단적‧근본적으로 중요하고 예기치 못한 사건의 증인”이라는 자각이다. ‘우리’는 물론 나치 수용소의 생존자를 가리킨다. 인류사에서 강제수용소나 대량학살은 적잖이 존재했지만 “나치 수용소의 체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유일무이한 것”이라는 판단이 거기에는 깔려 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자행됐기에 생존자들의 증언은 믿기지 않을 위험이 있다.

 

심지어 SS(나치 친위대)의 군인들은 이 점을 미리 예견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포로들을 향해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지 간에, 너희와의 전쟁은 우리가 이긴 거야. 너희 중 아무도 살아남아 증언하지 못할 테니까. 혹시 누군가 살아 나간다 하더라도 세상이 그를 믿어주지 않을 걸.”이라고 말하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레비의 증언은 이러한 냉소에 대한 저항이다. 이와 같은 사건이 또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경고이기도 하다. “산발적이고 사적인 일화들에서, 또는 국가가 저지르는 불법의 형태로”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온갖 폭력들이 그에겐 불길한 전조로 여겨진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을 쓴 동기 중에 하나가 아우슈비츠에 대한 극단적인 단순화라고 밝혔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은 독자들이 문제를 박해자(괴물)와 희생자(무구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걸로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용소의 신입 수감자들에게 먼저 가해졌던 것은 같은 동료라고 생각한 다른 수감자들의 폭력이었다. 수용소에는 0.5리터의 죽을 더 받기 위해, 혹은 얼마간의 생존을 더 보장받기 위해서 포로이면서 하위 관리자로 부역한 포로들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아우슈비츠의 특수부대(존더코만도스)였다. ‘화장터의 까마귀’라 불린 그들은 대부분 유대인이었고 가스실 희생자들의 뒤처리를 담당했다. 유대인을 가스실로 집어넣고 시체를 빼내는 일도 유대인이 떠맡았던 것이다. 레비가 보기에 특수부대의 조직은 나치의 가장 악마적인 범죄였다. 그것은 자신들의 악행을 희생자들에게 떠넘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희생자들은 가스실로 가기 전에 인간적 존엄성은 물론 영혼마저도 파괴됐다.


저항도 없지는 않았다. 작업을 거부한 특수부대원 전체가 독가스에 살해당하기도 했고, 반란을 일으켜 화장터를 폭파하고 SS와 교전을 벌이다 죽임을 당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러한 저항 대신에 학살과정에 협조한 ‘비참한 학살 실행자들’을 쉽게 단죄할 수 없다고 레비는 말한다. 자살은 동물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이지만, 수용소에서의 삶은 인간 이하의 동물적 삶이었기 때문이다. 레비의 경우도 그렇지만 자살은 생존자로서 인간적 삶을 되찾은 이후에나 가능했다.

 

14.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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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의 칼럼 '한기호의 책통'을 읽다가 <고전은 나의 힘>(창비, 2014) 시리즈를 알게 됐다. 더 이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회, 역사, 철학 읽기, 세 권으로 돼 있다.

 

마침 청소년이 읽어야 할 인문고전 81편의 정수를 모아 사회, 역사, 철학 분야의 세 권으로 구성된 '고전은 나의 힘' 시리즈(창비)가 출간됐다. 고전은 요약본이나 해설서를 읽어서는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맛볼 수 없다. 이 시리즈는 세부 주제를 잘 나눈 다음 그에 적절한 책을 제대로 골라서 소개하고 있었다. 책마다의 핵심을 잘 포착해서 발췌한 글들은 문장을 잘 다음어서인지 쉽게 읽혔다. 각 장에 담긴 글들은 서로의 연결고리가 확실해 고전에 담긴 지혜와 통찰을 이해하기가 좋았다. 한 권 한 권이 수준 높은 교양서인 이 책들은 고전이 어렵고 딱딱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한기호)

성인을 위한 고전 읽기 강의는 많이 하고 있지만(거의 매일!) '청소년을 위한 고전'이라고 하면 뭔가 암담한 느낌부터 든다.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고전 회의론 이전에 독서 회의론까지 드는 게 현실이어서다. 간혹 예외적인 사례들을 접해 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대세적 회의론'이 꺾일 성싶지 않다. 

 

중학교 때부터 헤세나 카뮈 같은 작가들, 스탕달과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들을 으레 읽어야 하는 걸로 생각하고 실제로 읽었던 경험에 비추어 요즘 청소년들의 고전에 대한 '해맑은' 무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하긴 내 세대라 하더라도 모두가 나 같은 고전 독자는 아니었으니 무리한 대조일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고전의 힘'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이 여전히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면, 무지와 무관심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여기까지 합의가 가능하다면, 문제는 어떻게 읽힐 것이냐다. <고전은 나의 힘>이 그 타개책의 하나를 보여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는다.

 

 

한편 만화로 보면 쉬울까 싶어서 눈길이 가는 책들도 있는데, <철학이 된 엉뚱한 생각들>(원더박스, 2014)이나 <과학이 된 무모한 도전들>(원더박스, 2014) 같은 시리즈가 그런 경우다. 두 권만 나오고 아직 더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분량도 얇고 만화로 돼 있긴 하지만, 서양철학사를 개관하고 있기에 내용까지 얄팍한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만화로 설명한다고 해도 '실재' 같은 개념들을 아이들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염려될 정도다(심지어 내게도 생소한 철학자들까지 등장한다!).

 

나의 지론은 '길은 여러 가지다'이다. 어떤 경로, 어떤 루트를 통해서건 고전의 매력과 사유의 힘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사다리는 무엇이건 좋다. 부디 고전이 너의 힘이 되기를!..

 

14.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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