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고전'도 좀 밀렸다. 만회하기 위해서 주말 아침에 적자면, 19세기 고전 작가인 에밀 졸라와 찰스 디킨스부터다. 졸라의 <나나>(문학동네, 2014)와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창비, 2014) 새 번역본이 나왔다(<두 도시 이야기>는 다음주에 입고되는 듯).

 

 

졸라의 대표작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목로주점>이지만 내겐 <나나>도 같이 꼽히는 책인데, 아마도 예전 삼중당문고의 기억 때문인 듯하다(<목로주점>과 함께 <나나>가 포함돼 있었다). 그간에 절판돼 아쉽던 차에 얼마전 예문판으로 다시 나왔고 이번에는 문학동네판으로도 출간됐다(원로 불문학자들의 번역이다). 덩달아 절판됐던 <작품>(일빛, 2014)도 이달에 다시 나왔다. 이전에 구해두지 못했던 책이라 바로 장바구니에 넣었다. <나나>는 어떤 작품인가.

<목로주점>, <제르미날>, <인간 짐승>과 더불어 총서에서 가장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둔 4대 역작 중 하나인 <나나>는 「르 볼테르」지에 연재된 소설이다. 이 소설은 파리의 신인 여배우 '나나'가 타고난 육체적 매력으로 파리 상류사회 남자들을 유혹해 차례로 파멸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때 영화의 인기와 함께 꽤 많이 읽히던 <제르미날>도 절판된 지 오래 됐다. 출간본과 관련하여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나나>가 문학동네에서 나온 졸라의 세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목로주점>과 <인간 짐승>이 나왔기 때문이다. '작가당 두 작품 이내'만 전집 목록에 포함시킨다는 게 문학동네의 원칙이었는데, 졸라는 예외적인 작가가 됐다(아니면 원칙이 완화됐을 수도 있겠다).

 

 

영문학의 간판 작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도 창비판이 추가됨으로써 '정본 경합'에 불이 붙었다. 나는 펭귄클래식판으로 읽고 더클래식판도 갖고 있는데, 아무래도 좀더 기대가 되는 건 창비판이다(더 일찍 나왔다면 강의에서도 사용했을지 모른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하다. 

 

 

 

덧붙이자면, 디킨스의 대표작 <위대한 유산>도 올해 열린책들판이 추가돼 민음사판과 경합하고 있다. 수십 종의 중복 번역 사태만 아니라면, 이런 경합이야 독자인 나로선 언제든 환영이다... 

 

14.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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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지난달에 이사하고 이번 주부터야 인터넷이 개통되는 바람에 지난 몇주간 나온 책들에 대한 기억이 두서 없다(여전히 뒤죽박죽인 책장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한주 건너뛰기도 했었기에 '이주의 책'이라곤 하지만 지난 몇 주간 나온 책들 가운데서 다섯 권을 고르기로 한다(아마도 다음주까지는 그렇게 될 듯하다). 타이틀북은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이도스, 2014)다. "2013년 미국 국립학술원 선정 최고의 책,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후보작."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숲 관찰기다. "지은이는 한 뙈기 조각 숲을 관찰하면서 지의류와 이끼, 균류 등 미미한 생물에서부터 꽃과 식물, 나무 그리고 코요테나 사슴과 같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자연세계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의 삶과 진화를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다. 뛰어난 생물학자답게 자연세계의 비밀과 생물진화에 대한 과학적 사유를 펼쳐내면서도, 선승처럼 열린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시인의 언어로 그려낸다." 1년간의 관찰기록이지만, 아무래도 계절로는 여름에 읽을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두번째 책은 과학다큐 제작자이기도 한 칩 월터의 <사람의 아버지>(어마마마, 2014). '21세기 인간의 진화론'이 부제다. 인간 진화사에 대한 최신의 소개를 담고 있다.

 

 

세번째 책은 아프리카 현대사를 다룬 마틴 메러디스의 <아프리카의 운명>(휴머니스트, 2014). "노련한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이며 역사가인 마틴 메러디스는 1964년부터 15년간 격동기의 아프리카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이후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책을 썼다. 특히 그는 독립의 시대에 등장했던 주요 인물과 사건,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지난 반세기 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아프리카를 괴롭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탐구하고 해명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작년말에 나온 책으로 리처드 리드의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삼천리, 2014)와 좋은 짝이 될 듯싶다.

 

 

네번째 책은 빌 브라이슨의 <여름, 1927, 미국>(까치, 2014)다. 제목 그대로 1927년의 여름을 다룬 책(정확하게는 5월부터 9월까지다). "빌 브라이슨은 1927년 미국의 특별한 여름을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생생하게 포착한다. 그해 여름은 베이브 루스라는 매력적인 야구 선수가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운 해이자, 경제 공황을 일으킨 잘못된 결정이 내려진 해이며, 대통령은 하루에 최대 4시간을 집무하며 국무를 돌보던 해이기도 하다." 재담꾼 저자와 함께하는 흥미로운 역사 여행이 되겠다.

 

다섯번째 책은 <경성기담>의 저자 전봉관의 <경성 고민삼당소>(민음사, 2014). 1930년대 신문 독자상담 코너에 주목하여 이 시대 생활사를 재조명한다. "근대와 전근대가 착종하던 1930년대는 ‘성 윤리의 아노미 시대’라 할 만큼 혼란했고, 마마보이, 폭력 남편, 바람둥이 등이 그 틈을 비집고 기승을 부렸다. 이 책은 뜨거웠던 청춘의 고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당대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분석하고, 근대인들의 일그러진 일상을 추적한다." 역시나 흥미로운 역사로의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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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6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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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버지- 21세기 인간의 진화론
칩 월터 지음, 이시은 옮김 / 어마마마 / 2014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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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프리카의 운명- 인류의 요람에 새겨진 상처와 오욕의 아프리카 현대사
마틴 메러디스 지음, 이순희 옮김, 김광수 감수 / 휴머니스트 / 2014년 7월
54,000원 → 48,600원(10%할인) / 마일리지 2,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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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름, 1927, 미국- 꿈과 황금시대
빌 브라이슨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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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뉴스레터 '독서인'의 '독서카페'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궁리, 2014)를 거리로 삼아 쓴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전에 겨우 써보낸 원고다.

 

 

 

독서인(14년 7월) 지그문트 바우만에게서 배우는 희망

 

현재 영국 리즈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리즈의 현인’이다. 결코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내에 소개된 책만도 20여 권에 이르고 주요 저작은 대부분 망라돼 있다. 독서 여건으로 보아도 우리시대 대표적 사회학자로 꼽을 만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한 사정이 인디고연구소에서 기획한 인터뷰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궁리)가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과의 인터뷰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에 뒤이어 나온 ‘공동선 총서’의 둘째 권이다.


지젝의 인터뷰도 그렇지만 바우만의 인터뷰도 인디고연구소의 청년 일꾼들이 직접 질문지를 만들고 현지에 찾아가서 얻어낸 대답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바우만의 핵심 사상과 현재적 고민을 생생한 육성을 통해 접하도록 해준다. 적절한 눈높이의 질문과 깊이 있는 답변이 어우러져 ‘바우만에게로 가는 길’에 가장 유력한 가이드 역할도 겸하고 있다.


사실 바우만에게로 가는 길이란 다시,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길이기도 하다. 바우만의 사색과 성찰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 시대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진단과 해명 말이다. 그 자신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듯이 무려 65년 동안 현역 사회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바우만은 사회학자의 소명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는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또 사회는 그 배후의 메커니즘과 어떤 연결 속에서 형성되었고 또 순환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전체적인 그림을 제공하는 일인데, 이것은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바쁜 보통 사람들로선 인식하거나 간파하기 어려운 것이다. 전체적인 조망을 갖기에는 다들 너무나 제한적인 시야와 사고 범위 안에 갇혀 있고 일상에 매몰돼 있는 게 현실이다. 학자로서의 특권은 그러한 일상에서 한 발작 물러나 생각하고, 읽고, 관찰하고, 추론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점이다. ‘더 넓은 지평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바우만의 미덕은 그러한 여유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 여유는 학자의 소명을 위한 여유이다.


사회학자의 소명이 제공해주는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어떤 쓸모가 있는가. 바우만은 “아마도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학적 인식 자체에서 쓸모를 찾지 않고, 더 나은 삶,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는 점에서 바우만을 실천적 사회학자로 분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실천은 ‘아마도’라는 단서와 함께한다. “최종적으로 이러한 실천의 문제는 각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각자’란 우리들 각자를 말하는 것이니 바우만을 경유해서 다시 우리에게로 되돌아온 셈이다. 우리에겐 어떤 선택이 있는가.


바우만은 두 가지 태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대로 ‘좋은 삶이란 좋은 사회에서 사는 삶’이라고 여기는 태도다. 이에 따르면 좋은 삶은 나쁜 사회에서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공자의 생각이기도 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부유하고 귀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논어>의 구절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공자가 말하는 ‘나라’를 ‘사회’로 바꿔놓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 같은 취지를 갖는 걸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삶은 좋은 사회에서 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각자가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복과 공동선을 도모해야 한다. 곧 나라에 도가 있도록 애써야 한다.


그럼 또 다른 태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의 행복이나 공동선이 나의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다. 즉 “내가 감히 손댈 수 없는 사회는 제쳐두고, 절대적인 개인의 영역만 더 좋게 만들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사회를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만 편하고 안락한 삶이 가능하도록 애쓰는 게 전부라고 믿는다. 더 극단적으로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처럼 “사회 같은 건 없다”고 선언할 수도 있겠다. 개인들의 총합이 있을 뿐 사회라는 별개의 실체는 없다는 주장이니, 그 경우에는 따로 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물론 사회학자로서 바우만은 동의하지 않지만, 사회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회학이나 사회학자도 존재 근거가 없어질 것이다. 혹은 형이상학의 일종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의 존재 유무에 관해 대처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래서 사회라는 게 존재하며 각자의 좋은 삶은 좋은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선택의 여지도 없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공동선이 실현된 사회라고 말해보자. 그런 좋은 사회를 상상하는 건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바우만은 그런 상상보다 더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은 누가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궁색하다면, 그것은 결정적으로 권력과 정치의 분리 때문이라고 바우만은 말한다. 그의 예리한 통찰에 따르면,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행하는 능력’이고, 정치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흔히 이 둘은 결합돼 있었지만 세계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따로 분리되었다. 권력은 초국가적이고 전 지구적인 공간으로 확산된 반면에 정치는 지역적 경계 안에 머물게 되면서부터다.

 


이것은 국민국가에 한정된 정치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분명 국민이 ‘주권자’이고 국민국가의 기관들이 그 대행자이긴 하지만, 시장 자본주의의 힘은 이미 주권적 역량과 범위 너머에 군림하고 있다.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는 이러한 힘에 맞서야 하지만 현재로선 미약하다. 굳이 바우만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부자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지고, 빈자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고통은 문제적인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견딜 만한 것으로 간주된다. 도가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할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해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삶에 대한 열망이 우리에게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을 희망이라고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 희망이 바우만의 비유대로 병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라 하더라도 우리가 수신한 그의 메시지를 다시 더 많은 병속에 넣어 띄워보낸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가 어느 순간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바우만을 읽으며 다시 정비하게 된 희망이다.

 

14. 07. 10.

 

 

P.S. 참고로 인터뷰의 이탈리아어본이 작년에 먼저 나왔다. 영어본도 근간인 걸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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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시리즈의 하나로 <정신의학의 권력>(난장, 2014)이 출간됐다. 1973-74년 강의를 엮은 책으로 "이듬해 강의 <비정상인들>과 더불어 푸코의 또 다른 걸작 <감시와 처벌>(1975)을 예고하고 준비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도 흥미를 끄는데, 얼추 이 강의 시리즈도 다섯 권 이상 출간됐다. 몇 권이 더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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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권력-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3~74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4년 7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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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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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1년 8월
31,000원 → 27,9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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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의 해석학- 1981-1982,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
미셸 푸코 지음, 심세광 옮김 / 동문선 / 2007년 3월
29,000원 → 26,1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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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429호)에 실은 '인문학 크로스'를 옮겨놓는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주제로 삼아 몇 권의 책을 읽은 독후감이다. 분량상 충분히 다루지 못한 대목은 나중에 따로 기회를 마련해볼 생각이다.

 

 

책&(14년 7월호) 진화론과 창조론 끊이지 않는 논쟁

 

이번 주제의 길라잡이가 된 책은 신학자 신재식 교수의 <예수와 다윈의 동행>(사이언스북스)이다. 제목에서부터 암시되지만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모색하는 게 저자의 의도이다. 이미 종교학자 김윤성 교수, 과학자 장대익 교수와 공저한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에 참여하여 종교와 과학의 공존가능성을 모색한 바 있는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좀더 본격적으로 전개한 책이다. ‘종교’와 ‘과학’이라고 뭉뚱그렸지만 구체적으론 기독교(예수)와 진화론(다윈)이다.


보통은 서로 무시하거나 기피하는 게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와 진화론이 보여주는 관계의 양상인데, 때로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2년의 고등학교 과학교과서 논란이 대표적이다. 한 근본주의 개신교 성향의 단체에서 시조새에 관한 기술과 말의 진화에 관한 기술 일부를 삭제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청원했고 이를 몇 곳의 교과서 출판사가 수용하자 과학계가 반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과학학술지 <네이처>에서까지 “한국, 창조론의 요구에 항복”이란 기사를 실으면서 국제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떠들썩한 진행과정과는 달리 한국 개신교 교계는 이 사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교회에서 진화론은 여전히 거론조차 해서도 안 될 ‘금기’이며 기피 대상”이어서다. 그는 이런 금기를 넘어서는 첫 걸음을 떼고자 한다.    


일단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온 혁명을 소개하고 그것이 갖는 함축을 해명한다. 다윈의 진화론이란 무엇인가. 자연선택을 핵심개념으로 하는 그 메커니즘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자연계에서는 기하급수적인 증가의 원리에 따라서 생존 가능한 개체의 수보다 더 많은 개체가 항상 탄생한다. 둘째, 대부분의 자연적인 개체군에는 변이가 존재하며 변이 중 어떤 것은 유전된다. 셋째, 개체들 사이에서 생존 투쟁이 벌어지고 각 생물들은 서로서로 경쟁하게 된다. 넷째, 이러한 생존투쟁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로운 특성은 계속 누적되어 새로운 종이 생겨나도록 작용한다. 그리고 여기에 전제가 되는 명제는 지구가 수십 억 년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생물은 그러한 조건에서 발생해 간단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진화해왔고 인간 역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진화론이 함축하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이라고 한다면, 당장 이 세계를 창조주가 계획하고 설계했으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기독교의 세계관과 충돌한다. 흔히 창조-진화 논쟁으로 불리는 이 충돌을 가리키는 이름이 ‘종교전쟁’이다.


‘전쟁’이라고 해서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등하게 맞서는 것은 아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래 150년이 지나는 동안 발견된 진화의 증거들이 압도적이기에 비록 진화론도 진화해왔다고는 하지만 진화 자체는 자명한 사실로 간주된다. 마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의 사실성이다. 신학(theologia)을 신(theos)에 대한 합리적 학문(logos)으로 규정하는 저자는 기독교가 합리주의 정신을 배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종교와 과학이 전쟁 상태에 놓여있다는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이며 신학적 합리주의와 과학적 합리주의는 상통할 수 있다고 본다. 과학사가 로버트 머튼을 인용하면, 오히려 “청교도 윤리를 잉태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결합은 근대 과학 정신의 본질을 형성한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반드시 전쟁으로만 치달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종교전쟁이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무관심과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비난하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종의 기원>을 읽었거나 생물학 입문서라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드물다는 지적이다. 그와 함께 주목할 만한 것은 다윈주의에 대한 거부와 반진화론 운동이 미국의 개신교 교단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는 점이다. 반진화론이야말로 참된 신앙을 지키는 것이며 미국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그들은 믿는데, 이것은 미국적 특징인 동시에 특히 미국 남부 지역의 특징이다. 창조-진화 논쟁은 철저하게 미국 기독교 역사의 경험과 관련된 논쟁이며, 따라서 보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상당히 국지적인 문제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 유독 강한 거부감을 보인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주로 미국인의 종교적 성향 때문이다.

 

<과학전쟁>에서 장대익 교수가 소개한 2004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62퍼센트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고 응답했고, 55퍼센트의 미국인은 신이 인간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했다고 굳건히 믿는다. 이러한 신앙적 보수주의를 토대로 나온 것이 창조과학운동과 지적 설계론이다. 창조과학운동은 성서의 창조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운동이고, 지적 설계론은 진화론의 빈틈을 창조주의 ‘지적 설계’에 대한 반증으로 삼으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운동과 입장이 모두 과학으로서 자격미달이며 고작해야 사이비과학에 불과하다는 게 장 교수의 평가다.

 

한국에서도 창조-진화 논쟁이 부각된 것은 한국 기독교계가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1970년대 들어서 미국에서 창조과학운동이 일어나자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이공계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된다. 그리고 창조론 진영은 1990년대에는 미국의 지적 설계론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주력해왔다. 미국의 창조론 ‘직수입 대리점’인 셈인데, 아직까지 이 문제와 관련한 법정 투쟁까지는 벌어지지 않은 것이 미국과의 차이라면 차이다. 1925년 미국 테네시 주에서 열렸던 스콥스 재판(일명 ‘원숭이 재판’)과 1981년 미국 아칸소 주에서 열렸던 동등시간 교육법(진화론을 가르치는 것과 동등한 시간 동안 창조론도 가르치도록 요구한 법) 재판 등이 미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법정 투쟁들이다.


이 중 스콥스 재판에 대해서는 김윤성 교수가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발단은 1925년 테네시 주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미국의 진보진영은 즉각 이에 반발했는데, 특히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쪽에서는 법정 투쟁을 통해서 진화론 교육 금지법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고자 했다. 존 토머스 스콥스가 자원자로 나서서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다가 기소되었고, 이 재판에서 당대의 명사였던 윌리엄 제임스 브라이언과 클래런스 대로가 정부 측과 미국시민자유연맹 측을 대변해 유명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이 재판은 영화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재판은 진화론 교육 금지법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스콥스는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교육계와 출판계에서는 논란을 두려워해 오히려 진화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학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라슨의 <신들을 위한 여름>(글항아리)는 바로 스콥스 재판의 진행과정과 문제의 발단에서부터 뒷이야기까지 자세히 다룬 논픽션이다. 저자는 이 재판의 교훈을 “이성의 힘이 종교적 반계몽주의를 내몰았다는 것”에서 찾지만 역설적으로 반진화론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보수 기독교 하위문화 내부에서는 계속 성장해나간 추세다. ‘원숭이 재판’ 이후 80년도 훨씬 더 지난 시점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그래서 ‘예수와 다윈의 동행’도 요원한 것은 변함없는 종교적 성향 때문이다. 1950년대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에도 미국의 10명 중 9명이 신의 존재를 믿으며, 그 중 상당수가 창조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저자의 전망의 부정적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역사가 미래를 예측하는 지표라면 한동안은 악천후가 이어질 것이다.”

 

14. 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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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4-2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