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을 먹으며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맘먹고 시인들만 골랐으니 '이주의 시인'이다. 주로 고전 소설들에 대한 강의를 하다 보니 시를 읽을 기회가 뜸해졌는데, 연휴는 잠깐이라도 시간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시집 읽기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기에. 젊은 시인들의 시집을 고르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세 시인의 연배가 모두 50대다. 이른바 중견들. 이재무, 김경미 시인과는 구면이고 윤희상 시인과는 초면.

 

 

먼저 이재무 시인의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실천문학사, 2014)가 출간됐다. 개인적으론 초기 시집인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문학과지성사, 1995)로 기억하고 있으니 꽤 오래 전이다. 2012년에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수상 시인 시선집으로 <길위의 식사>(문학사상사, 2012)가 나와 있다.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는 1983년에 등단하여 30년 넘게 시를 써온 시인의 열번째 시집. 여전히 평이하면서도 미더운 시세계를 보여주는 듯싶다.

"아내는 비정규직인 나의/밥을 잘 챙겨주지 않는다/아들이 군에 입대한 후로는 더욱 그렇다/이런 날 나는 물그릇에 밥을 말아먹는다/흰 대접 속 희멀쑥한 얼굴이 떠 있다/나는 나를 떠먹는다/질통처럼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없어진 얼굴로 현관을 나선다/발 벌러 간다"('나는 나를 떠먹는다')   

 

이어서 <밤의 입국 심사>(문학과지성사, 2014)를 펴낸 김경미 시인. 내가 기억하는 건 첫시집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실천문학사, 1989)이니까 꽤 오래 전이다.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창비, 1995)와 <쉿,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 2006)까지는 시집의 제목을 기억하지만 <고통을 달래는 순서>(창비, 2008)는 기억에 없다. 아마도 2000년대 중반부터 시집을 챙겨 읽지 않은 모양이다. 1983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한 손가락에 꼽을 만한 시집을 펴냈으니 과작인 편.

"내가 있는 곳은 내가 있기에 혹은 내가 있어서/항상 적당치 않다/어젯밤에는 괴팍한 사람의 글을 읽었다/그 사람처럼 괴팍하지 못한 게 부끄러워/밤 내내 뒤척였지만/(중략) 오늘도 목이 부러진다"('오늘의 괴팍' 중)

"내가 있는 곳은 내가 있기에 혹은 내가 있어서/항상 적당치 않다"고 토로하는 '괴팍한' 시인이라면 여전히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윤희상 시인. 세번째 시집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문학동네, 2014)이 출간됐다. 1989년에 등단했으니 올해가 25년차. 첫 시집 <고인들과 함께 놀았다>(문학동네, 2000)를 제목만 기억하기에 시로는 초면이지만, 지난 인터뷰 기사를 보니 여러 학회에서 만난 인연이 있는 분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해설에서 "우리시대에 읽기 쉬운 언어로 가장 많은 비밀을 끌어안고 있는 시집"이라고 평했는데, 시인의 가족사를 알려주는 시 '일본 여자가 사는 집'부터가 그렇다.

내가 동네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을 때

동네 밖에서 찾아온 낯선 사람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일본 여자가 사는 집이 어디냐고

아이들은 저기 기와집이라고 말했다

일본 여자는 우리 동네에서 사는 무면허 안과 의사였다

그렇다고 돌팔이 의사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멀리까지 소문난 일본 여자는 본래 간호사였다

일본 여자는 동네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을 받았다

돈은 받지 않았다

일본 여자는 조선 남자를 사랑했다

일본 여자가 사는 집은 우리집이고

일본 여자는 나의 엄마였다

괴팍하지는 않지만 담담하면서 속이 깊은 언어들을 부리는 시인이다. 이만한 시집들이면, 한가위 음식을 좀 덜 먹어도 되겠다...

 

14. 0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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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자 추석 연휴 첫날 '이주의 책'을 고른다. 자연스레 고른 책은 박흥갑의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산처럼, 2014)인데, 타이틀은 '우리에게 족보란 무엇인가'로 잡았다. 부제는 '족보를 통해 본 한국인의 정체성'. "족보가 만들어지는 초기 족보의 형태부터 그 이후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족보들이 진화해가는 모습, 족보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 문화 현상, 족보의 허상과 실재들을 살펴보며, 족보가 단순한 생물학적 계보를 추적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현상을 반영한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짚어본다."

 

 

한마디로 교양 수준에서 '족보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 책. 역사 분야에서 학술적인 내용을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는 일을 일컬어 '역사 대중화'라고 하는데, 저자 역시 공저로 펴낸 <승정원 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산처럼, 2009) 등을 통해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두번째 책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 2014). 부제도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다. 문창극 사태를 통해서도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한 터라('기독교 식민사관'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의 논쟁적인 문제제기에 눈길을 주게 된다. "그동안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고, 그 관점을 강단에 서서 전파해온 식민사학자, 예를 들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김현구 등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내며 대담하게 문제를 제기한 논쟁적인 책이다." 황순종의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만권당, 2014)도 나란히 나왔다.

 

 

세번째 책은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워터게이트>(오래된생각, 2014).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란 원제로 1974년에 나온 책이다(영화로도 제작됐다). "워싱턴포스트의 풋내기 기자들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사건의 전모를 밝힌 탐사보도의 고전이 된 책이다. 워터게이트 불법침입으로 시작해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끝난 세기의 특종을 보도한 장본인들이자 그 결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기자의 진실을 향한 치열한 취재 기록이며 드라마틱한 미국의 역사이다."

 

이 참에 찾아보니 <워터게이트>란 표제로 나온 책이 없어서 놀랍다. 찾아보니 <대통령의 사람들>(학일출판사, 1977)이라고 한번 나온 적이 있지만 그간에 묻혔던 책이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두 기자에 관한 책으론 알리샤 셰퍼드의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프레시안북, 2009)이라고 나온 적이 있다. 절판돼 유감인데, 우리 주변에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이 점점 드물어진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듯싶다.

 

 

네번째 책은 영국 일간지의 중동 특파원 로버트 피스크의 <전사의 시대>(경계, 2014). 부제는 '테러와의 전쟁, 그 10년의 기록'이다. 최근 이라크에서 이슬람 테러단체에 의해 서방 기자들이 연이어 참수 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는 터라 관심을 갖게 된다. 출간은 뜻밖이면서도 반가운데, 다만 심심한 표지가 좀 아쉽다. 소개는 이렇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중동문제 전문기자’라 일컬어지는 영국 인디펜던트의 로버트 피스크가 써내려간 ‘테러’와의 전쟁 10년. 베이루트를 기반으로 38년간 중동 이곳저곳을 취재하며 수없이 많은 전쟁과 학살을 지켜봐 온 그는 <전사의 시대>를 통해 중동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온 고통과 비극, 그리고 그것을 야기한 서구의 거짓과 위선, 그로 인해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에 일상적으로 죄어드는 공포를 고발한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연휴의 읽을 거리 중 하나로 고른 이언 샌섬의 <페이퍼 엘레지>(반비, 2014)다.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가 부제. 종이의 역사를 다룬 책들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저자의 다른 책으론 코믹 미스터리 <도서관 책 도난사건>(뜨인돌, 2012)가 번역돼 있다. 책과 도서관에 관해서 일가견이 있는 작가/비평가라는 걸 이 두 권의 책만으로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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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족보를 통해 본 한국인의 정체성
박홍갑 지음 / 산처럼 / 2014년 8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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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식민사관-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만권당 / 2014년 9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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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워터게이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밥 우드워드 & 칼 번스타인 지음, 양상모 옮김 / 오래된생각 / 2014년 9월
17,500원 → 15,750원(10%할인) / 마일리지 8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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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사의 시대- 테러와의 전쟁, 그 10년의 기록
로버트 피스크 지음, 최재훈 옮김 / 경계(도서출판) / 2014년 9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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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독서인'에 실은 독서카페 칼럼을 옮겨놓는다. 최근에 나온 과학분야의 화제작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 2014)를 읽고 적었다. 방대한 분량의 책인지라 궁금한 대목들만 우선 읽었다. 올해의 과학서의 하나로 손색이 없는 책이다.

 

 

 

독서인(14년 9월) 우리는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왔는가’란 부제로 흥미를 끄는 책은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다.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자 인지과학자라는 평판에 걸맞게 깊이 있는 교양과학서들을 저술해온 저자에 대한 신뢰가 한편에 있고, 본문만 120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을 폭력이란 단일 주제에 할애한 저작의 무게감이 흥미의 또 다른 배경이다. 압도적인 분량 때문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간명하게 핵심 요지를 간추려주고 있는 서문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책 한권을 읽은 효과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무엇이 핵심 요지인가. 핑커는 인류 역사의 기나긴 세월 동안 “폭력이 감소해왔고, 어쩌면 현재 우리는 종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편다. 그 자신이 예견하고, 또 실제로 독자들 대부분의 반응이 그렇듯이 못 믿을 얘기다. 폭력은 인류 역사의 모든 갈피마다 만연했던 듯 보이고, 세계대전의 그림자에서 겨우 벗어난 듯 보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 없는 평화’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설사 전쟁과 같은 대규모 군사적 충돌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손 치더라도 대량살상무기의 발달로 인하여 사소한 충돌조차도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게다가 핵전쟁의 공포로부터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폭력의 경향적 감소’는 선뜻 와 닿지 않는 주장이다.


하지만 핑커의 주장이 분명 ‘나쁜 소식’은 아니다. 그것이 입증될 수만 있다면 인류의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장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낙관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저자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폭력의 역사적 궤적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뿐만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폭력의 추이 앞에 플러스 부호가 붙느냐 마이너스 부호가 붙느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직결된다. 만약 폭력의 추이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인간의 파괴적 본성에 대해서 우리는 별다른 구제책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돼먹은 존재라는 인식만 확인하면 된다. 한술 더 떠서 플러스 부호가 붙는다면, 상황은 설상가상이다. 폭력적 본성이 갈수록 격화하는 만큼 강제적인 억지력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역사가 파국적 결말에 이르는 건 시간문제가 된다. 반면에 마이너스 부호가 붙는다면, 그래서 폭력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인류의 역사가 전개돼왔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폭력이 사라진 더 나은 미래를 예견해볼 수 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은 다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전망하도록 해준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과연 적절한 근거로 뒷받침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인간 본성의 ‘선한 천사’를 신뢰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핑커가 제시하는 건 과학자답게 아름다운 문학적 공상이나 멋진 철학적 통찰이 아니라 ‘숫자’다.


많은 데이터에서 입수한 숫자들과 이를 표현한 그래프를 통해서 핑커가 발견한 사실은 온갖 차원에서 진행된 ‘폭력 감소 현상’이고 이것이 뚜렷한 경향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책의 많은 분량이 이러한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는데, 가장 궁금한 문제에 대한 저자의 답변부터 확인해보자. 그건 20세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세기’, ‘최악의 세기’였다는 것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과했던 20세기에 대한 우리의 통념이다. 하지만 핑커는 그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두 가지 이유에서 심지어 ‘망상’에 가깝다고 말한다. 첫째는 분명 20세기에 폭력으로 인한 희생자 수가 엄청났지만 20세기의 인구 자체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현재와 가까운 시대일수록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기 때문에 빚어지는 ‘역사적 근시안’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지난 세기들에 벌어진 전쟁들보다 최근 세기들에 벌어진 전쟁을 더 많이 기억하고 이에 대해서 가중치를 부여한다.

 


20세기 인구 폭발을 고려하고 역사적 근시안으로 인한 편향을 바로잡는다면 ‘인간이 서로에게 행한 나쁜 짓 중 최악의 21가지’ 목록 순위는 우리의 예상과는 좀 다르게 나타난다. 단순하게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하면, 역사상 최악의 사건은 5500만 명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이다. 뒤이어 마오쩌둥 시대 중국정부가 야기한 대기근이 폭력적인 참사로 기록되는데, 이로 인해 4000만 명이 아사한 걸로 추정된다. 그밖에 스탈린의 대숙청이나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 내전, 중국 내전 등 20세기의 굵직한 사건들이 ‘최악의 21가지’ 목록에 포함된다. 하지만 인구비를 고려하면 양상이 달라진다. 지금은 70억을 웃돌고 있지만 1950년의 세계 인구가 25억 명이었고, 이것은 1800년의 약2.5배, 1600년의 4.5배, 1300년의 7배, 기원후 1년의 15배에 해당한다. 역사적 사건들의 피해를 동등하게 비교하려면 이러한 인구비에 따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즉 1600년의 전쟁과 20세기 중반의 전쟁을 비교하려면 1600년의 사망자 수에 4.5를 곱해야 한다는 것이 핑커의 환산법이다.


이러한 조정을 거치게 되면 20세기의 잔악행위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만이 ‘상위 10건’에 들어간다. 뜻밖에도 역사상 최악의 참사는 8세기 당나라에서 8년 동안 벌어졌던 안녹산의 난과 그로 인한 내전이다. 당시 중국의 총 인구의 3분의 2가 희생됐고, 그것은 당시 세계 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20세기 중반의 인구로 조정하면 무려 4억 2900만이 희생된 사건이다. 주동자인 안녹산과 그의 부장 사사명의 이름을 따서 ‘안사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이 반란으로 인하여 중국 전역이 초토화되고 번영을 구가하던 당나라 왕조는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중국 역사에 있어서도 결정적 전환점이었던 셈이다. 안녹산의 난에 뒤이어서는 13세기 몽골의 정복이 조정된 수치로 2억 7800만의 사망자를 낳아 최악의 사건 2위를 차지하며,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중동의 노예무역이 7-19세기에 1억 3200만 명을 희생시켜 3위에 랭크된다.


무엇을 말해주는가. 인구와 역사적 근시안을 조정할 경우 20세기가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세기였다는 주장은 지지되기 어렵다는 점. 그럼에도 우리가 폭력의 감소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역사적 착시와 함께 더 높아진 도덕적 기준 때문이기도 하다. 폭력과 싸워오면서 폭력의 범위 또한 확장해온 것이 문명의 역사이고 도덕의 역사가 아니던가. 거꾸로 그렇게 높아진 기준은 다시 폭력을 억제하는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듯싶고, 이것은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여전히 ‘가장 폭력적인 시대’로 느끼게끔 한다. 핑커의 주장대로 “우리가 오늘날 이런 평화를 누리는 까닭은 옛 세대들이 당대의 폭력에 진저리치면서 그것을 줄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핑커는 남은 폭력을 더 줄이기 위해서 폭력의 역사적 감소에 대한 깨우침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자칫 폭력에 대한 관용을 가져올 수 있는 그런 깨우침보다는 모든 폭력에 대한 끝없는 진저리침이 아닐까 싶다.

 

14. 0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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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이주의 저자'를 고를 때 세 명의 이름을 나란히 적곤 하는데, 이번 주에는 '이주의 고전' 역시 그렇게 적는다. 고전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기에 나름대로 고안해낸 방도다.

 

 

먼저, 칸트. 백종현 교수의 단독 번역으로 출간되고 있는 '칸트 전집'의 16권으로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아카넷, 2014)이 출간됐다. 전집 번호로는 16권이지만 열번째로 출간된 책이고, 종수로는 아홉번째 책이다(<순수이성비판>이 두 권짜리다). 3대 비판서를 제외하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나 <영원한 평화> 이상으로 중요한 저작이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이다. 푸코의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문학과지성사, 2012)가 다루고 있는 저작이기도 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올해 다른 번역본으로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울산대출판부, 2014)이 재출간된 데 이어서 '정본' 번역을 자임하는 새 번역판까지 출간돼 이제 한국어로 읽어볼 만한 여건은 충분해졌다. 바로 그런 생각으로 책상 한쪽에 책들을 모아놓았다.

 

 

이어서 '신칸트학파'의 대표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 그의 대표 대작 <상징형식의 철학>(전3권) 가운데 '신화적 사유'를 다룬 2권이 출간됐다. '언어'를 주제로 한 1권이 2011년에 나왔고, '인식의 현상학'을 다룬 3권이 더 남았다. 2권은 <상징형식의 철학2>(도서출판b, 2012)으로 나온 바 있으니 두 종을 번역본을 갖게 된 셈.

 

 

카시러의 가장 유명한 저작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사실 <상징형식의 철학>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간추린 책이었다. 국내 소개된 또 다른 저작 <상징 신화 문화>(아카넷, 2012)은 에세이와 강의록인데, 역시나 그가 필생에 걸쳐 다룬 주제가 어떤 것이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인상적인 독자라면 그의 주저들에도 도전해봄직하다. 1,2권을 천천히 읽다보면 3권도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여권운동가로서 '근대 페미니즘의 어머니'로도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의 대표작 <여권의 옹호>(연암서가, 2014)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한길사판은 절판됐고, 그밖에 <여성의 권리옹호>(책세상, 2011)라는 제목의 발췌본이 나와 있던 책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1797년 진보적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과 결혼하여 그해 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을 낳고서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는데,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다(셸리는 그녀가 저명한 낭만주의 시인 P. B. 셸리와 결혼하면서 갖게 된 성이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생애에 관해선 자넷 토드의 <세상을 뒤바꾼 열정>(한길사, 2003)을 참고할 수 있다. '위대한 페미니스트 울스턴 크래프트의 혁명적 생애'가 부제인 방대한 분량의 전기다. 더불어 최근에 나온 박의경의 <여성의 정치사상>(책세상, 2014)은 국내서로는 울스턴크래프트의 정치사상에 관한 가장 자세한 안내서다. <여권의 옹호>(1792)는 울스턴크래프트가 33살에 발표한 책. 여성주의 고전인 만큼 페미니즘 관련서에서 빠짐없이 언급된다. 멜빈 브래그는 <세상을 바꾼 12권의 책>(랜덤하우스코리아, 2007)의 하나로 꼽기도 했다(영국인 저자가 영국인이 쓴 책들 가운데서 고른 12권이다)...

 

14.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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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사에서 출간되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차분 네 권이 출간됐다. 1차분 네 권까지 포함하면 현재까지 전체 여덟 권이다(이제 절반은 넘어선 셈이지 싶다). <산시로>와 <그 후> 같은 대표작도 들어 있지만 2차분에서 관심을 끄는 작품은 <갱부>. 특히 <해변의 카프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주인공 소년의 입을 빌려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기도 했다. 한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전집판으로 읽고 싶어서 기다렸던 작품이기도 하다. 무탈하게 완간되길 기대하면서 리스트로 만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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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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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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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부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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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인초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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