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말씀을 하려는 건 아니고,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삼인, 2014)가 번역돼 나왔기에 적는 페이퍼이다. 보부아르의 많은 소설이 일찍이 소개됐다가 대부분 절판된 상태인데, <모든 인간은 죽는다>(1946)도 마찬가지다. 찾아보니 학원사판이 1985년에 나왔었다. 내 기억도 학원사판이고. 어떤 소설인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세 번째 소설.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과, 좌절을 거듭하는 인간의 이상주의를 치열하게 묘사하면서, 유한한 생명의 의미를 묻고, 쳇바퀴처럼 반복되면서도 아주 느리게 전진하는 역사를 되비치는 소설이다. 작가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삶, 우리의 삶, 대대로 목숨을 이어온 인류 역사의 의미를 격랑처럼 펼쳐 보인다.

고등학교 때 사르트르와 카뮈까지는 읽었지만 보부아르에는 손을 대지 못했고 덕분에 놓친 책들 가운데 하나가 <모든 인간은 죽는다>이다. 가장 아쉬운 건 1954년 콩쿠르상 수상작인 <레망다랭>(삼성출판사, 1983)이고. 다시 출간되길 꽤 오래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이다(도서관을 이용하면 물론 구해볼 수는 있다).

 

 

<제2의 성>(1949)이 대표작으로 돼 있지만 보부아르는 소설 외에 자서전, 연애편지 등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상당수가 국내에 번역됐었다. 하지만 현재 소설로는 <타인의 피>(1945), <편안한 죽음>(1964), <위기의 여자>(1967) 등이 남아 있는 듯. 첫 소설 <초대받은 여자>(1943)도 지금은 읽어볼 준비가 돼 있지만(고등학생 때는 관심이 없었기에), 마땅한 판본이 없다. 생각해보면 7편의 소설 가운데 5편은 번역돼 있었던 셈이다(혹 더 나와 있었을지도). 요컨대 <초대받은 여자>와 <레망다랭>이 다시 번역돼 나오길 기대한다.

 

독서도 '수구초심'인지 젊을 때 읽었던 책이나 놓친 책들로 자주 눈길이 간다. 새로운 저자들은 우리를 들뜨게 하고, 오래된 저자들은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가끔은 밀린 일들을 더 미뤄두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픈 휴일 오전도 있는 법이다...

 

14.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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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와 파트릭 모디아노 같은 프랑스문학 거장들에 대한 강의를 구상해보다가 차세대 거장들에는 누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르 클레지오나 모디아노가 1940년대생 작가들인 만큼 차세대라면 60년대생쯤 되겠다. 1970년생 이후라면 '젋은 피'에 속하겠고. 당장은 가늠해볼 능력이 없어서 그냥 최근에 나온 프랑스 작가들의 신간들 가운데 눈에 띄는 이름들을 골랐다. 1962년생인 필립 클로델과 1969년생 마리 다리외세크. 필립 클로델은 초면이고(폴 클로델과 같은 집안인지는 모르겠으나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듯하다), 마리 다리외세크는 구면이지만 오랜만에 접한다.  

 

 

필립 클로델은 산문집 <향기>(샘터사, 2014)가 최근에 나왔다. 초면이라고 적었지만 이미 여러 작품이 국내에 소개돼 있는데, 대표작은 첫 번역서이면서 2003년 르노도상 수상작인 <회색 영혼>(미디어2.0, 2005)이다. 이후 <무슈 린의 아기>(미디어2.0, 2006), <브로덱의 보고서>(미디어2.0, 2010) 등이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고, 잠시 뜸하다가 이번에 산문집이 출간된 것. <향기>는 2012년에 나온 것으로 번역본의 부제는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이다.

소설 <회색영혼>, <브로덱의 보고서>, <무슈 린의 아기>의 작가이자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차가운 장미><싸이런스 오브 러브>의 감독 필립 클로델이 쓴, 냄새와 추억에 대한 공감각적 산문집. '아카시아'로 시작해 '여행'까지, 알파벳 순서에 따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63편의 짧은 산문은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듯 생생한 문학적 체험을 선사한다.

 

소개에서도 알 수 있지만 영화감독으로서의 이력도 자랑하는데, 대표작이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2008)다(국내에서는 2010년초에 개봉했던 걸로 뜬다). 낭시대학의 문학교수이기도 하다니까 '쓰리잡'의 작가라고 할까. 아래 사진은 토론토영화제에서 주연배우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와 포즈를 취한 감독 필립 클로델.

 

 

한편 <암퇘지>(열린책들, 1999/2001)의 저자로 기억하는 다리외세크의 책도 오랜만에 출간됐다(고등사범 출신의 여성 작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사이에 <유령들의 탄생>(열린책들, 2002)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로부터도 무려 12년이 흘렀다.

 

 

이력을 보니 그 사이에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국내 출판사의 구미에는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춘기 성을 다룬 이번 소설은 2011년작. 2013년에 발표한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로 메디치상을 수상하면서 프랑스문단에서는 차세대 대표작가로 자리매김을 했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좋은 평판을 얻었다면 국내에도 소개되지 않을까 싶다. 아래 사진이 작가의 근황을 보여준다.

 

 

과연 누가 진정한 거장의 자리에 오르게 될지는, 다시 10년쯤 뒤면 알게 되리라...

 

14.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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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까 궁리를 좀 해보다가 중국과 중국사, 중국문화권에 대한 책들로 다섯 권을 골라보기로 했다. 계기는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잠 못 이루는 제국>(까치, 2014)다. '1750년 이후의 중국과 세계'가 부제이고, 18세기 청 제국의 전성기 이후 현재까지 중국의 외교관계사를 다루었다.

 

 

저자는 런던경제대학에서 세계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국제관계와 동아시아 현대사가 주 전공분야. 조너선 스펜스의 평으로 " 이 책은 지난 250년간 중국이 겪어온 외교관계의 격변을 소개한 탁월한 책"이다.

 

 

두번째 책은 중국 답사여행의 '왕초' 윤태옥 PD의 <길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책과함께, 2014)이다. <중국식객>(2012),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2013) 등에 이어지는 책으로 '왕초 PD와 1만 2800km 중국 인문기행을 떠나다'가 부제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치밀한 답사 준비를 통해 한국인으로는 대장정 답사를 최초로 완주했고, 함께한 여행 동반자들과 인문기행의 경험을 나누면서 길 위에서 만나는 현대 중국인의 모습도 따뜻하게 담아내었다."

 

 

세번째 책은 한국과 중국의 독재정치사를 다룬 박형기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알렙, 2014). "중국 혁명의 마오쩌둥, 개혁개방의 덩샤오핑, 유신의 박정희. 동북아시아 영웅 3인의 인생 역정을 탐험해 보는 시간 여행. 한중 독재 정치의 역사를 동아시아 독재자 3인의 평전을 비교 교차해 보며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중국통으로 살림지식총서의 <덩샤오핑>(살림, 2007)을 집필하기도 했다.   

 

 

네번째는 아시아총서의 하나로 나온 류영하의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산지니, 2014). '홍콩 역사박물관의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가 부제인데, "홍콩박물관이 말하는 홍콩의 정체성이 홍콩의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며, ‘민족’과 ‘본토’ 모두 특정한 주체에 의해 구현되어 국민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를 교육하는 공간으로서 역사박물관이 운영되고 있음을 밝힌 연구서이다." 국내에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살림지식총서의 <홍콩: 천 가지 표정의 도시>(살림, 2008)를 쓴 홍콩 전문가이다.

 

 

끝으로 다섯번째는 종보현의 <홍콩영화 100년사>(그린비, 2014). '홍콩 영화·TV 산업의 영광과 쇠락'이 부제다. 830쪽의 묵직한 분량이 강점인데, 말 그대로 홍콩 영화사의 모든 걸 정리해줄 듯싶다. 좀 가벼운 책으로 홍콩 영화와 함께 둘러보는 홍콩 여행기, 주성철 기자의 <홍콩에 두번째 가게 된다면>(달, 2010)과 함께 꽂아둘 만하다. 그러고 보니 홍콩에도 아직 가보지 못했군. 영화로 친숙하기에 안 가도 가본 듯한 도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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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제국- 1750년 이후의 중국과 세계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문명기 옮김 / 까치 / 2014년 11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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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 왕초 PD와 1만 2800km 중국 인문기행을 떠나다
윤태옥 글.사진 / 책과함께 / 2014년 11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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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 : 박정희 vs 마오쩌둥- 한국 중국 독재 정치의 역사
박형기 지음 / 알렙 / 2014년 10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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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홍콩 역사박물관의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류영하 지음 / 산지니 / 2014년 11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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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권의 대표적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와 게오르크 트라클(1887-1914)의 시집이 출간되었기에 '이주의 고전'으로 골라놓는다. 먼저 대표작의 제목으로 나온 릴케의 시선집 <두이노의 비가>(열린책들, 2014).

 

 

<두이노의 비가>는 댓 종의 번역본이 나왔었지만 현재 구할 수 있는 걸로는 이번에 나온 열린책들판과 책세상판이 유일한 듯싶다. 때문에 두 판본이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릴케 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건 릴케의 주요한 시들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하긴 책세상판은 '릴케 전집'이다).  

 

1899년부터 1922년까지 발표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 여덟 권(<기도 시집>, <형상 시집>, <신 시집>, <후기 시집>, <진혼가>, <마리아의 생애>,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두이노의 비가>)에 수록된 시 중 170편에 이르는 작품을 선정한 시 선집이다. 생전 다작가였던 릴케가 세상에 남기고 간 시적 대업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대조해서 읽어본다면, 릴케 시의 진의에 좀더 접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열린책들판의 역자 손재준 교수는 원로 독문학자로 현재 고대 명예교수이며 게오르크 트라클의 <귀향자의 노래>도 번역서로 갖고 있다. 책세상판의 역자의 김재혁 교수와는 사제지간이 아닌가 싶다.

 

 

지난봄에는 릴케 초기 시선집으로 <릴케 시집>(문예출판사, 2014)이 출간됐었는데, 이 역시 책세상판 전집과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릴케 가이드 북으로는 볼프강 레프만의 전기 <릴케>(책세상, 1997)과 조금 전문적일 수 있지만 김재혁 교수의 연구서 <복면을 한 운명>(고려대출판부, 2014)을 참고할 수 있다. 한국 시인들과의 비교문학적 연구로는 같은 저자의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고려대출판부, 2006)도 나와 있다. 릴케에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나 <말테의 수기>부터 손에 드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회가 닿으면 언젠가 <말테의 수기>도 강의에서 다뤄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릴케와 러시아'도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인데, 영어와 러시아어로 몇 권의 책이 나와 있다. 기억에 릴케는 러시아를 세번쯤 방문했고 레르몬토프 등의 러시아 시를 독어로 옮긴 바 있다. 파스테르나크도 릴케와 인연이 있는 시인이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시인 트라클의 시선집도 이번에 출간됐다. <꿈속의 제바스치안>(울력, 2014). 첫 번역은 아니지만 다른 판본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었기에 이번 시집은 기대가 된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약물과용으로 27세에 요절한 건 이번에 알았는데, 짧은 생을 마친 걸로는 레르몬토프와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겪은 고통과 전쟁의 경험을 작품에 표현해, 퇴락과 죽음을 노래한 오스트리아 최고의 애가() 작가가 되었다"는 소개다.

 

 

이번 늦가을엔 트라클과 만나보아도 좋겠다...

 

14.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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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433호)에 실은 '키워드로 읽는 인문학 서재'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멸종'을 골랐다. 대멸종과 관련한 책 몇 권이 눈에 띄어서였다. 주로 <멸종>(Mid, 2014)와 <여섯번째 대멸종>(처음북스, 2014)의 내용을 간추렸는데, '모든 멸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페름기 대멸종의 대해서는 특별히 마이클 벤턴의 <대멸종>(뿌리와이팔, 2007)을 참고할 수 있다. 어제 우연히 가판에서 30% 할인판매를 하길래 구입한 책이다.

 

 

 

책&(14년 11월호) 인간과 지구의 멸종

 

모든 일에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철칙이다. 생명의 진화도 마찬가지다. 아득한 옛날 지구상에서 시작된 생명도 언젠가는 모두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먼 훗날 벌어질 일이겠지만 그러한 종말에 대한 상상은 언제나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그 시작과 종말은 하나의 사이클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생명의 진화사는 여러 차례 발생한 대멸종과 회복의 반복을 보여준다. 진화사의 미스터리로 꼽히는 대멸종은 어째서 일어났으며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이달에는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잠시 벗어나 지질학적 시간여행을 떠나가 보자.

 

길잡이로 삼을 만한 책은 EBS의 다큐프라임 ‘생명, 40억 년의 비밀’을 단행본으로 엮은 <멸종>이다. 대멸종이라는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최대한 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주고 있어서다. 먼저 대멸종이란 무엇인지 개념부터 정리해야겠다.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진 멸종, 곧 전체 생물 종의 70% 이상이 사라진 대멸종은 그간에 다섯 차례 있었다. 고생대 오르도비스기(4억 4천만 년 전), 데본기(3억 6천5백만 년 전), 페름기(2억 2천5백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2억 1천만 년 전), 그리고 백악기(6천5백만 년 전)에 일어났는데, 지구 상에 눈에 보이는 생명체 거의 전부가 사라진 사건들이기 때문에 대멸종은 생명의 역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확연하게 갈라놓는다. 이 과정에서 겨우 살아남은 소수의 종들이 달라진 환경 속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다시 만들어 나가게 된다. 마치 화재로 다 타버린 산림지대에서 몇몇 생명의 씨앗을 통해 생명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궁금한 건 이러한 대멸종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대멸종의 원인은 그 소재에 따라 천문학적 원인과 지구 내부적인 원인으로 나뉜다. 천문학적 원인으로는 외계 천체와의 충돌이나 초신성의 폭발 등이 거론되는데, 여러 가지 사례와 가설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대멸종의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불확실하다. 지구 내부구조의 원인으로는 맨틀의 대류를 꼽는다. 지구 중심의 핵과 표층의 지각 사이에 위치한 맨틀이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지질 현상이 만들어지는데,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이 대표적이다.


화산 폭발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약 3,600년 전에 폭발한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테라 화산을 들 수 있다. 고대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이 이 폭발로 멸망하게 되었으니 문명사를 좌우한 사건이라 할 만하다. 또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의 폭발은 유럽에서도 감지되어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의 붉게 물든 배경 하늘로도 나타났다고 하니 그 규모를 어림하게 해준다.


이러한 대규모 화산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거기서 분출된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성층권에까지 올라가 햇빛을 차단하여 지구 전체의 기온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로써 화산겨울 혹은 핵겨울이 닥치게 되며 이것은 대멸종을 가져올 수 있다. 지구온난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파괴적인 결과는 우리 가까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1970년에 약 16도였던 동해의 평균수온이 2000년에는 약 17도가 되었다. 1도 가량 상승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 결과는 명태와 같은 한류성 어종의 실종을 야기했다. 대신에 난류성인 오징어가 잡힌다. 약간의 수온 변화가 바다 생태계를 완전히 바꾸어놓은 것이다.


지구 안팎의 원인을 그렇게 꼽아볼 수 있다면, 다섯 차례 대멸종의 원인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때그때 다르다. 오르도비스기의 대멸종은 최소 5번은 되풀이된 빙하기와 태양의 자외선 등이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하며, 데본기의 대멸종은 아직 그 원인이 불분명하다. 지구 역사상 최악의 멸종이기에 ‘모든 멸종의 어머니’라고도 불리는 페름기 대멸종은 지구 내부적 원인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보이며, 해양 생물의 대규모 멸종을 가져온 트라이아스기 멸종도 지구 온난화와 지구 냉각화, 그리고 그에 따른 산소 농도의 급속한 감소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소행성과의 충돌가설을 제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리고 공룡시대의 종말을 가져온 백악기 대멸종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소행성이 충돌하면서 일어난 핵겨울 탓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지름이 약 10~15km 정도였던 소행성이 초속 20~70km의 속도로 떨어져 충돌했는데, 그 효과가 TNT 1억 메가톤에 이른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약 5,000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렇지만 과연 ‘칙슬루브 운석’이 백악기 멸종 원인의 전부일까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충돌이론을 지지하는 지구과학자들과는 달리 생물학자들은 운석 충돌이 이미 진행 중이던 멸종 과정에 대미를 장식한 사건 정도로 보기도 한다. 아무튼 백악기 대멸종으로 파충류 전성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지구는 신생대로 넘어가면서 포유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다.

 

지구의 역사에서 대멸종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면 현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남겨놓고 있는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바이다. 하지만 그것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이라면? 미국의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도 그런 관점을 견지한다. “지금은 새로운 멸종이 5대 멸종에 견줄 수 있을지 확신을 하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곧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알려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그런데 여섯 번째 대멸종은 그 원인에 있어서 앞서의 대멸종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 바로 인간을 그 멸종의 원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서 독일의 화학자 폴 크뤼천은 현시대를 ‘인류세’라고 부른다. 지질학적으로 새로운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한 명명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영향을 끼친 지질학적 규모의 변화들 때문이다.


인간의 활동은 지구 육지의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을 변형시키고 있으며, 세계 주요 강들 대부분을 댐으로 막거나 방향을 틀어 놓았다. 비료공장들이 질소를 뿜어대고 있고, 바다 연안의 생산물 가운데 3분 1 이상의 양을 포획하고 있다. 게다가 인간은 마실 수 있는 지하수의 절반 이상을 소비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인간이 화석연료의 소비를 통해서 대기의 구성요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화석연료의 연소와 열대우림의 파괴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지난 2세기 동안 40%가 올라갔고 메탄의 농도는 두 배가 증가했다. 인간이 퍼뜨린 이산화탄소의 약 3분의 1은 바다가 흡수하는데, 이로 인한 바다의 산성화는 지구온난화와 함께 역대 대멸종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징후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벌들이 사라지고 있고 파나마 황금개구리와 큰바다쇠오리, 수마트라코뿔소 등이 멸종의 길로 접어들었다. 원인을 따지자면 인간이 가져온 생태계의 변형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인간이 대멸종의 가해자만 되는 건 아니다. 최종 포식자로서 인간도 그 멸종의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낙관론을 펼치는 과학자들이 없는 건 아니다. 지구를 다 망쳐 놓더라도 다른 행성에 새로 도시를 건설하면 된다고 조언한다. 화성이나 토성의 위성 티탄, 목성의 위성 유로파 등이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한다. 물론 하던 대로라면 새로운 행성에서도 인간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할 듯싶지만.

 

공정하게 보자면, 여섯 번째 멸종이 일어난다고 해도 지구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의 대멸종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라진 생물종들의 자리는 다른 종들에 의해 채워질 것이다. 인간세의 뒤를 이어서 거대 쥐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대멸종에 대한 숙고는 한 번 더 인간이란 종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겸허한 성찰로 이끈다.

 

14. 11. 08.

 

 

P.S. '뉴요커'의 전속기자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번째 대멸종>은 원저가 올해 나온 신간이다. 발빠르게 번역된 게 반가운데, 그만큼 영어권에서 좋은 평판을 얻은 책. 하지만 역시나 국내 독자들에겐 좀 생소한 주제인 듯싶고 반응도 미온적이다. 게다가 번역서의 경우에 참고문헌이 다 빠져 있어서 좀더 진지한 관심을 가진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번역도 미더운 것인지는 의문인데, 일례로 톨스토이가 언급된 대목을 전혀 엉뚱하게 옮겼다.

만약 25년 전 이 모든 대멸종들이 궁극적으로 같은 이유로 야기된 것처럼 보였었다면 지금은 그 반대가 맞는 것처럼 보인다. 톨스토이가 쓴 책에서 모든 멸종은 불행하고 치명적인 것으로 보인다.(136쪽)

이 대목의 원문은 이렇다.

"If twenty-five years ago it seemed that all mass extinctions would ultimately be traced to the same cause, now the reverse seems true. As in Tolstoy, every extinction event appears to be unhappy—and fatally so—in its own way." 

여기서 "톨스토이가 쓴 책"이라고 옮긴 건 너무 유명해서 저자가 굳이 제목을 적지 않은 <안나 카레니나>이고 "행복은 가정은 모두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작품의 서두를 가리킨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대멸종도 제각각의 이유로 그런 치명적인 불행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 초점은 "모든 멸종은 불행하고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제각각의 이유로"(in its own way)에 놓인다. 톨스토이가 멸종에 관해 썼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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