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는 상황주의자 기 드보르(1931-1994)의 영화전집 출간 소식을 몇달 전에 한 영화잡지에서 읽은 듯한데, 교수신문에 이에 관한 동향 기사가 게재되었기에 옮겨온다. 필자는 양창렬 특파원이며, 내용에 맞는 제목은 '기 드보르의 영화전집 DVD 세트와 저작집 발간의 의미'이다. 보통은 '의의'에 대해서 적게 마련이지만 필자는 그 '아포리아'에 대해서 짚어보고 있다. 제목은 그냥 평범하게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라고 달아놓는다(상황주의는 신좌파 아나키즘의 일종이다). 

교수신문(06. 07. 23) "하나의 유령이 문화를 배회하고 있다.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이." 이것은 68년 1월의 ‘마가진 리테레르’, "상황주의자" 특집호에서 장-피에르 조르쥬가 했던 말이다. 기 드보르의 ‘영화 전집’ DVD 세트와 ‘저작집Œuvres’이 잇따라 발간됨에 따라, 대중들 사이에 40년 전의 아방가르드 유령들이 또 다시 출몰하고 있다. ‘영화 전집’은 올리비에 아싸야스 감독이 기 드보르가 연출한 여섯 편의 영화와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복원하고(*아싸야스는 한때 아내이기도 했던 장만옥을 주연으로 영화 <이마베프>와 <클린> 등을 찍은 엘리트 비평가 출신의 감독이다), 서한집에서 영화 관련 구절들을 발췌한 책자를 끼워 넣음으로써 전집으로서의 구색을 갖추었다.

‘저작집’은 기 드보르에 대한 연구서를 출판한 바 있는 뱅상 카우프만의 책임 하에 간행되었으며, 1천9백 쪽에 이르는 이 책에는 연대기 순으로 정렬된 기 드보르의 저작, 발표문, 기사, 편지, 사진 등이 담겨 있다. 이 두 도구 덕분에 기 드보르 및 상황주의자들에 대한 연구는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싸야스와 카우프만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야한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이 작업들은 기 드보르의 전략의 아포리아를 제기한다(*물론 한국은 이러한 아포리아와 다소 무관하다. 기 드보르의 저작으론 <스펙타클의 사회>(현실문화연구, 1996)이 전부이기에. 이 책의 영역은 http://library.nothingness.org/articles/SI/en/pub_contents/4 참조. 국역본의 글 두 꼭지는 말미에 옮겨놓았다).

-오늘날 DVD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비 매체다. 상품이자 소유물이며, '사적 사용'에 제한된 자본주의 교환 법칙 및 소유권 이데올로기까지 고스란히 체화하고 있는 DVD(혹은 비디오)라는 매체는 스펙터클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극장(홈씨어터)으로 대변되는, 스펙터클의 일상생활 장악에 대한 고민 없는 복원은 반쪽에 불과하다.

-기 드보르가 <사드를 위한 울부짖음>(1952)에서 시도했던 실험들―백색 화면 위를 표류하는 화면 바깥의 목소리(voix off)와 검은 화면의 침묵의 교체, 그리고 영화 시작 3분 뒤에 들려오는 "영화는 없고, 시네마는 죽었다. 더 이상 영화는 있을 수 없다. 원한다면 토론으로 넘어가자"라는 도발적 선언―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목소리'와 '이미지'의 분리는 미학적 차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영화 바깥의 삶과 스펙터클의 대립을 표현하는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다. 바깥의 목소리, 꺼진 목소리―이 둘은 모두 voix off이다―는 스펙터클과 외양에 의해 박탈된 '언어 소통 가능성'을 되찾기 위한 봉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방가르드 영화 클럽'에서 그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쏟아졌던 관객들의 반발과 상영 중단 해프닝은 오히려 기 드보르의 反-영화, 영화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도구로서의 영화가 성공을 거둔 사례다. 화면 밖으로 나와 목소리를 키우고(voix on)―극장, 그리고 스펙터클 안에서는 떠들면 안 된다― 삶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상황을 구축"하기 위한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씨릴 네이라가 지적하듯이, 드보르에게 영화는 "다른 어떤 예술보다 스펙터클의 작동에 참여하므로, 영화는 스펙터클의 전복의 도구"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DVD에 담긴 매끈한 영상들은 이제 하나의 영화 '텍스트'이자, 이미지-표상으로서 분석 대상이 될 것이다.

-1984년에 친구, 편집자, 영화 제작자였던 제라르 레보비시가 암살된 이후, 기 드보르는 자기 영화의 배급과 상영을 금지했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만에 다시 개봉된, 소문만 무성했던 ‘In girum imus nocte et consumimur igni’에 씨네필들은 열광했고, 그들은 그 서정주의적 이야기 속에서 '모던 영화(cinema moderne)'의 기운을 찾아내고자 했다. 이 현상은 드보르의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미학을 발견하려는 시도이긴 하지만, 예술로서의 삶이나 삶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종말과 폐지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했던 드보르의 전망을 흐리게 만든다.

-동일한 현상이 ‘저작집’에서도 나타난다. 필립 솔레르스는 드보르에 대해 "읽기는 쉽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저자"라고 말했다. 드보르의 구문은 혼란스럽지도 않고, 특별히 새로운 단어들을 담고 있지도 않지만, 그의 논조 자체가 글 속에서 파괴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의 글 속에서 논리적인 '추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계에서 드보르를 연구 대상으로 '전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작집’은 드보르의 아포리즘들 사이의 공백을 메움으로써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반면, 독자들의 전용(detournement) 가능성을 줄인다.

 

 

 

 

-‘르 피가로’의 서평은 "‘저작집’이 드보르의 저작들을 하나의 '고전'으로 만든다"라면서, 이 상황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한 편으로, 이제 드보르가 학계의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드보르는 이제 아카데미에 포획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이미 드보르가 죽기 전에 가장 '스펙터클한' 케이블 채널인 카날 플뤼스(Canal+)에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도록 허락하고, 가장 '부르주아적인' 출판사인 갈리마르에 자신의 저작의 재간행을 맡긴 것에서 시작된다.

-장 보드리야르는 상황주의자들이 체계 바깥에 위치한 삶과 상황을 구축하려는 "관념적인 (그러나 이미 통속적인 것이 되어버린) 유토피아"를 추종한다고 비판하며 스펙터클 개념을 지양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말년의 기 드보르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은, 보드리야르의 평가와는 정반대로 드보르가 스펙터클 체계 내에서 그 체계 자체를 이용, 보다 정확히는 "전용"함으로써 그 체계를 해체하려 했음을 보여준다(*납득할 만한 행동이란 얘기인가? 한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면, 그리고 그러한 실패가 예견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면, 적어도 '현명한' 행동은 아니지 않을까? 나로선 보드리야르의 견해를 쉽게 기각하지 못하겠다).

-기 드보르의 마지막 내기에도 불구하고, 스펙터클이라는 "이미지가 되어버린 자본"은 (정치적) 급진성마저 스펙터클한 방식으로 "전유"하고 소비해버렸다. ‘영화 전집’과 ‘저작집’을 보면서, 우리가 한번쯤 아니 여러 번 고민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전략적' 질문들이다. 체계 안에서 체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06. 07. 25.

P.S. 아래는 <스펙터클의 사회>의 글 두 꼭지이다(인터넷상에 떠 있는 걸 퍼온 글인데, 더러 눈에 띄는 오탈자들은 국역본과 대조하여 교정했다. 원문의 출처는 국역본 참조).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자들(피터 마샬)

-상황주의자들은 다다, 초현실주의, 문자주의에 의해 영향받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및 지식인들의 소규모 모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시와 음악을 융합시키고 도시경관을 변형시키고자 했던 무자주의 인터네셔널은 1957년 잡지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을 창간했던 집단의 직접적인 선구자였다. 처음에 그들은 주로 "예술의 폐지"에 관심이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들 이전의 다다이스트들과 초현실주의자들처럼 분리된 활동으로서의 예술과 문화라는 범주를 대체하여 그것들을 일상적 삶의 부분들로 변형시키고 싶어했다.

-문자주의자들처럼 그들은 노동에 반대하고 완전한 여흥을 옹호했다(*사진이 문자주의 작품). 자본주의 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창조성은 엉뚱한 곳에 소모되고 억압받으며 사회는 배우들과 구경군들, 생산자들과 소비자들로 분할된다. 그리하여 상황주의자들은 다른 종류의 혁명을 원했다. 그들은 일단의 사람들이 아니라 상상력이 권력을 장악하기를 원했고 모든 이들이 시와 예술을 창작하기를 원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들은 선언했다. 노동과 권태따위는 지옥으로나 가라! 

-처음에 그 운동은 주로 예술가들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아스거 욘(*사진)은 가장 저명한 이였다. 1962년 이래, 상황주의자들은 점파 그들의 비판을 문화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측면에 적용했다. 기 드보르는 가장 중요한 인물로 등장했다. 그는 문자주의 인터네셔널에 참여해 왔었고 <사드를 위해 절규함>을 포함한 몇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었다. 상황주의자들은 해방 저널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에 고취되어 특히 1차 인터네셔널 시기동안의 아나키즘 운동의 역사를 재발견했으며 스페인 아나키스트들, 크론슈타트, 마크노주의자들Makhnovists(역주 : 마크노주의자는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자였던 네스터 마크노의 지도 하에 1차 대전의 종전을 전후로 해 활동했던 우크라이나의 혁명 반란군을 말한다. *'네스토르 마흐노'가 맞는 표기이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그들은 소련을 자본주의적 관료제로 묘사했으며 노동자평의회를 옹호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이지만은 않았으며 특히 일상적 삶의 소외에 대한 앙리 르페브르의 비판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요소들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의 혁명운동이 임금 노동자들의 대다수를 포함할 "확장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게다가 비록 추종자나 지도부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은 이견을 갖는 소수를 추방하는 것에 의해 차이를 다루었던 엘리트주의적 전위집단으로 남아있었다. 그들은 전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최대한의 쾌락을 산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1967년이 끝나갈 부렵, 기 드보르와 라울 바네이겜은 각각 <스펙타클의 사회>와 <일상적 삶의 혁명>에서 상황주의 이론의 가장 정교한 해설을 제시했는데, 그것들은 1968년 학생반란 동안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원저자주: <아나키 매거진>은 매 호 바게이넴의 책 각 장들을 실어왔다. 가장 최근호에는 16장 「시간의 매혹」이 실려있다. - 퍼온이 주; 언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책에서 소개한 웹문서 출처는 워낙 오래되어 들어갈 수 없었다.)

-파리의 담벼락에 휘갈겨졌던 가장 유명한 구호들 중 다수가 그들의 테제로부터 나왔는데, 이를테면, "열정을 해방하라" "노동하지 말라" "죽은 시간 없이 살라" 등등이 그것이들이다.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의 구성운들은 영구 모임에서 결성된 회의체인 소르본느 점거 위원회에서 낭테르 대학의 성난 젊은이들과 공동작업했다. 1968년 5월 17일, 그 위원회는 소련 공산당에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와들와들 떨며 기다려라 관료들 노동자 평의회의 국제적 힘이 곧 너희들을 쓸어낼 것이다 인류는 최후의 자본가의 창자로 최후의 관료의 목을 매달때까지 행복치 못할 것이다 트로츠키와 레닌에 대항한 크론슈타트 수병들과 마크노주의자들의 투쟁 만세 1956년 평의회주의자들의 부다페스트 봉기 만세 국가를 타도하라." 스트라스부르, 낭트 그리고 보르도에서의 성난 젊은이들의 집단들 또한 상황주의자들로부터 영감을 얻었으며 캠퍼스에 '혼돈을 조직' 하는 것을 시도했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결코 12명을 넘지 않았다.

-자신들의 분석을 통해 상황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모든 관계들을 상거래 관계들로 바꾸어 버렸으며, 그리하여 삶이 "스펙타클"로 환원되었다고 주장했다. 스펙타클은 그들의 이론의 핵심적 개념이다. 여러 면에서 그들은 마르크스의 초기저작에 개진되어있는 소외관을 개정했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물과 자신의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시회되어 자신이 소원한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노동자는 자신을 생산하지 않는다. 그는 독립적인 힘을 생산한다. 이 생산의 성공, 그것의 풍요는 생산자에게 박탈의 풍요로 되돌아온다. 그의 세계의 모든 시간과 공간의 그의 소외된 생산물의 축적과 함께 그에게 소원한 것이 된다..."

-점증하는 분업과 전문화는 노동을 무의미한 고역으로 바꾸어 놓았다. 바게이넴은 "컨베이어 벨트에서라면 창조성의 희화화를 기대하는 것 마저도 무익한 일이다" 라고 평한다. 그들이 마르크스게엑 덧붙인 것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소비를 증대시킬 사이비 욕구들을 창출한다는 인식이다. 의식이 생산의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말하는 대신 그들은 그것이 소비의 지점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자 사회, "스펙타클적" 상품 소비의 사회이다. 오랫동안 생산자로서 극심한 경멸을 받아왔지만 이제 노동자는 소비자로서 후한 대접을 받으며 유혹당한다.

-동시에 현대 과학기술이 자연적 소외(자연을 상대로 한 생존을 위한 투쟁)를 끝장내기는 했지만 주인들과 노예들의 위계라는 형태를 취한 사회적 소외는 지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능동적인 주체들이 아니라 수동적인 객체들인 양 취급된다. 존재를 소유로 퇴행시킨 후 더 나아가 스펙타클 사회는 소유를 한갓된 외양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로부터 결과하는 것은 경제적 부와 문화적 빈곤 간의 존재하는 것과 가능한 것간의 소름끼치는 대조이다. 바게이넴은 "누가 기아로 죽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권태로 죽을 위험을 수반하는 세계를 원하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상황주의자들의 탈출구는 먼 시간 저편의 혁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상적 삶을 재창안하는 것이었다. 세계에 대한 지각을 변형시키는 것과 세계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동일한 일이다. 사람들은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권력관계를 병화시킬 수 있고 그리하여 사회를 변형시킬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사람들을 습관적인 사고방식과 행위양식으로부터 떠밀어 내기 위해 일상적이고 통상적인 것을 뒤흔들어 놓을 상황들을 구성하고자 했다(독창적인 시도는 아니지만 화각제 복용에서 선禪 등에 이르기까지).

-화석화된 삶을 대신해서 그들은 행위들과 우연한 만남의 흐름인 표류와 사건들과 이미지들을 재배치하는 전용을 추구했다. 그들은 제조되는 스펙타클과 상품경제를 파괴하는 방법으로 반달리즘, 자의적 파업과 사보타주를 지지했다. 그러한 거부의 몸짓은 창조성의 징표들로 고려되었다.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의 역할은 대중들에게 그들이 이미 함축적으로 하고 있던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어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혁명과정 내에서 촉매로 작용하고자 했다. 일단 혁명이 도상에 오르면 하나의 집단으로서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소멸할 것이다.

-스펙타클의 사회 대신 상황주의자들은 화폐, 상품생산, 임금노동, 계급, 사적 소유, 그리고 국가가 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사이비 욕구들은 진정한 욕망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며, 이윤의 경제는 퇘락의 경제가 될 것이다. 노동과 적대 간의 분업과 적대는 극복될 것이다. 그것은 지도받고 희생하고 역할을 수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에 특징지어지는, 자유로운 유희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둔 사회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모든 개인이 적극적이고도 의식적으로 삶의 모든 계기들의 재건에 참여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들이 상황주의자들이라고 자칭한 것은 바로 모든 개인들이 그들 자신의 잠재력을 발현하고 그들 자신의 캐락을 획득할 수 있는 삶의 상황들을 구성해야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미래사회의 기본적 단위들에 관한 한 그들은 노동자평의회를 권고했는데, 그것들은 "기업과 이웃공동체에서의 최고 풀뿌리 회의체"를 의미했다.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의 코뮨과 마찬가지로, 그 평의회는 직접 민주주의의 한 형태를 실천할 것이며 일상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핵심적인 결정사항을 의결하고 집행할 것이다. 대의원들은 위임을 받은 것이며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다. 그 평의회들은 그리하여 지역적으로, 민족적으로, 국제적으로 연합할 것이다.

-국가와 모든 종류의 소외 공동체들의 구체적 초극을 요구하고 공산주의 사회를 전망한다는 점에서 상황주의자들은 무정부주의자들에 근접해있다. 그들은 권위주의적 구조들과 관료제를 공격하면서 바쿠닌에 준거했을 뿐 아니라 드보르 자신은 "1936년 무정부주의는 사실 하나의 사회혁명,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프롤레타리아적 권력의 모델을 지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주의자들은 배타적 집단으로서의 엘리트주의와 이론과 실천의 정합성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라는 양 면에서 전통적 무정부주의와 다르다. 협소하게 프롤레타리아트를 유일한 혁명 계급으로 강조하는가운데 그들은 다른 사회집단들, 특히 학생들의 혁명적 잠재력을 간과했다. 그들은 도한 그들이 3월 22일 운동을 이들과 같은 주의주의자들이 아님을 주장했으며 노동자들에게 또 하나의 제한적 이데올로기로 부과되었던 한에서 무정부주의의 이데올로기도 거부했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상황주의자들은 전후 프랑스에서의 일시적인 경제호황을 자본주의 사회들에서의 영구적인 경향으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했다. 경제적 풍요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이제 무모하리만큼 낙관적인 것으로 보인다. 선진 산업사회들에서는 과소생산뿐 아니라 과소소비 또한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의 많은 지역들, 특히 남반구에서는 사회적 소외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자연적 소외마저도 아직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상황주의자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현대문화에 대한 비판, 창조성에 대한 열망, 일상적 삶의 직접적 변형에 대한 강조를 통해 무정부주의 이론을 풍부화했다. 비록 상황주의 인터네셔널 집단은 1972년 전술을 둘러싼 격렬한 내부 논쟁 끝에 해체되었지만, 그들의 관념은 무정부주의 및 페미니즘 서클들에 지속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으며 때때로 거의 잠재의식적이다 싶을 정도로 펑크 록의 내용 및 스타일의 많은 부분에 영감을 주었다.

=한 상황주의자의 죽음(죠슈아 글렌) 

-아방가르드 영화 제작자이자 선동적인 지식인 기 드보르가 지난 1994년 11월 30일 62세의 나이로 권총자살했다. 마침 그가 드디어  - 그에게는 당황스럽게도 - 유명인사의 대열에 오르고 있을 때 쯤이었다. 1968년 파리에서의 학생봉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단적인 예술가들과 좌익 작가들의 범유럽적 연합체인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의 창립자이자 아마도 가장 널리 읽혀진 논쟁가였기 때뭉에 그는 오랫동안 집중적인 검토의 대상이었다(*아래는 만년의 드보르 부부).

-그러나 그런 자리에 있었던 많은 다른 예술가들, 활동가들, 혹은 지식인들이 그랬을 법한 것과는 달리 드보르는 매채의 조명을 회피했고 1968년 이후의 자신의 생애를 그림자 속에서 보냈다. 왜 그랬을까? 이는 그의 가장 저명한 에세이 선집인 <스펙타클의 사회>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거기서 그는 매체와 유명인사 숭배가 우리 모두를 최면상태와 수동적인 상태로 가둬 두라는 기존 질서의 명령을 실행하는 도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드보르는 그 도구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링구아 프랑카> 1995년 3/4월호는 자신이 "스펙타클" - 우리의 자유시간의 대부분을 흡수하고 우리를 우리 노동의 과실들, 동료들, 그리고 심지어 우리 자신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광고, 매체 이벤트, 오락, 그리고 의사소통 기술의 무한정한 분출 - 이라고 칭한 것에관한 드보르의 이론들 대부분이 술집 단골들, 범죄자들, 그리고 그 상당수가 어느땐가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감금된 적이 있는 유토피아적인 음모가들 등의 그늘진 이들의 세계 속에서 안출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범죄자들 및 광인들과 함께 사는 것을 택하면서 드보르는 필사적으로 매개되지 않는 현실을 추구했던 것이리라. 왜냐하면 그가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현대적인 생산조건들이 지배하는 사회들에서는 직접 삶에 속해있는 모든 것이 표상으로 물러나기" 때문이다. "삶"이 잡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고, "진실한 것"은 한 개비의 담배이며, "현실세계는 MTV 위에 펼쳐지는 끔찍하도록 매혹적인 무차별적인 다큐멘터리가 될 정도로 현실 자체는 스펙타클에 의해 전도되고 말았다.

-매개 그 자체가 - 단순히 쇼비지니스나 TV가 아니라 - 드보르가 진정으로 문제삼은 것이었다.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존재는 항상 도처에서 수동적인 소비를 고무하도록, 따라서 우리의 삶으로부터 직접적인 경험, 정서, 그리고 관계를 박탈하도록 디자인된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다. 우리는 스펙타클이 입 안에 넣어준 낱말들로 말하고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동작으로 제스츄어를 취한다. 한때 우리는 삶을 살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시청한다.

-드보르가 <스펙타클 사회에 대한 논평들>(Verso, 1990)에서 썼듯이 매체를, 가끔 과도하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을 촉진하기 때문에 어떤 내재적인 가치를 지닌 - 혹은 최소한 중립적인 - 공공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드보르에게 있어 매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전자메일과 인터넷을 예견하면서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드보르는 "이 사회의 모든 행정업무와 인간들간의 모든 접촉이 이 즉각적인 의사소통의 힘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면, 이는 이 의사소통이 본질적으로 일방적이기 때문이다"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국가로부터 우리 모두에게로의 일방적인 의사소통이다. 드보르에 따르면, 스펙타클은 대화를 허용치 않을뿐더러, 바로 대화의 대립물이다. 그것은 기존질서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행하는 자신에 대한 담화이다.

-<아나키 : 무장한 욕망을 위한 저널> 1994-95년 가을/겨울호의 사망 기사에 따르면, 드보르는 자서전 <찬사>(Verso, 1991)에 자신의 비명을 다음과 같이 지었다: " 생애 내내 나는 파란만장한 시대, 극단적인 사회적 분열, 그리고 거대한 파괴만을 보았다. 아무런 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성적이라거나 예술적이라고 통했던 서클들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철저히 회피했다." 

Beneath the Underground - Click Image to Close

-밥 블랙의 저서 <언더그라운드 밑에서>(Feral House, 1994)를 보면 드보르는 1961년 런던 현대 예술 연구소의 상황주의 전시회에서 "상황주의"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우리는 그따위 좆같은 질문에 답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라"라고 응답하고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나가버렸다고 한다. 자신들의 저작이 상품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황주의자들은 사포로 책을 재본했고(이렇게 하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같이 꽂혀 있는 다른 책들이 손상된다) 외화작품들은 자로 재서 판매했는데, 이후 이런 시도는 광범위하게 모방되었다. 물론 이것들이나 그들의 그 밖의 전략들 중 어떤 것도 오래도록 유효하지는 못했지만, 그것들 중 많은 것은  - 켄넵이 편집한 <상황주의 인터네셔널 선집>(1981)에 잘 나와있는 것처럼 - 매체에 대항하기 위해 매체를 활용하는 매혹적인 시도들이다.

-개입과 비판의 지점으로서 (미술관이나 화랑 따위가 아니라) 일상적 삶의 상황을 더 중시하는 태도를 예증이라도 하듯 상황주의자들은 1966년 스프라스부르 대학에서 프랑스 학생 엽합에 침투했고 그것의 기금을 2년 후의 사건에 한 몫을 했다고 믿어지는 풍자적인 소책자인 <학생의 삶의 빈곤에 대하여>를 인쇄하고 배부하는데 지출했다. 1968년의 봉기는 세계를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실로,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에 대한 논평들>에 따르면, 그것은 단지 스펙타클로 하여금 새로운 방어기술을 습득하게 했을 분이다(재니스 조플린의 반물질주의적 노래 '메르세데스 벤츠'가 메르세데스사의 광고에 이용되는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1968년 5월은 상황주의자들이 세간의 이목을 받게 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그들은 바로 자신의 그 점증하는 인기에 1972년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을 해체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드보르는 그후 죽 은거를 해 왔는데, 1984년 그의 후원자이자 친구인 제라르 르보비치가 살해된 후에는 자신의 영화들이 상영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드보르가 무엇보다도 유명해지지 않길 바랬다면, 그는 도대체 왜 영화를 만들고 책을 썼던 것일까? 확시리 매혹하거나 쾌락을 주기 위해서는 아니다. 대부분의 검은색 화면에, 흐릿하고 되풀이되는 사운드 트랙의 드보르의 첫 영화 <사드를 위해 절규함>(1952)을 실제로 본 사람이라면, 혹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쫒아내는 데 목적을 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면을 넘길수록 불투명성이 증대되는 <스펙타클의 사회>를 읽으려고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드보르의 작품이 항상 극도로 반스펙타클적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드보르가 <스펙타클의 사회> 말미에서 썼던 것처럼, 현대 통신기술에 의해 통일된 세계에서 우리는 추방자가 될 수 없다. 1990년대 초, 그는 자신의 책들의 재출판을 허용했고(이 책들은 - 슬프게도!  - 대성공을 거두었다.), 1994년에는, <아나키 : 무장한 욕망를 위한 저널>에 따르면, 심지어 그의 삶과 시대에 관한 기록영화에 참여하는 것까지 동의했다. 스펙타클은 마침내 그를 손아귀에 넣은 것일까?

-<린구아 프랑카>는, "자신의 작품이 이미 하나의 고전이 되었다는 고통스러운 깨달음"이 드보르를 자살로 내몰았으리라고 추정하며,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드보르는 자신이 그토록 정밀하게 기술한 세계 혹은 자신의 이론들이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식자들에게만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뿐 스펙타클의 사회의 증대하는 권력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참애낼 수 없었던, 한 명의 회한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고 보는 편이 더 그럴 듯 할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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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7-2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에 대해서는 저도 소시쩍?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죠..^^ 특히 그들의 일상적 삶을 혁명화하는 방식의 참신함과 아나키즘과의 만남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지금 다시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에 대한 글을 읽어봐도 그들의 주장에는 아직도 유효한 점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통찰들이 대단히 급진적이면서도 너무 앞서나간 탓에 몇몇 소수의 전복적인 엘리트들에 의해서만 전유되었다는 문제점을 노출하긴 했지만요. 근데 사실 그게 문제점인지는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자본주의사회내에서 얼마나 일상의 차원에서 전복적일수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어보니 인용문에 로쟈님의 코멘트는 별로 없으신 것 같은데.. 님은 문자주의나 상황주의식의 변혁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로쟈 2006-07-26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메트로 맑스주의>에서 기 드보르 장을 읽고 있습니다. 다른 일들이 많아서 진득하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지만. 물론 저도 공감하는 바가 있고 번뜩이는 통찰력에도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한데, 기본적으론 일종의 '예술운동'이 아닌가라는 것이죠. 새로운 예술운동을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전화시켜보려고 했던. 하지만, 모든 아방가르드들의 운명과 전철을 되밟게 되는(펑크 록으로의 귀결!). 소위 '들뢰즈 맑스주의'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는데, 정치적 전위주의, 혹은 정치적 엘리트주의에 대해 저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멋있는 것과 믿을 만한 것은 좀 다른 것이죠...

yoonta 2006-07-2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과적으론 예술운동이었죠..^^ 예술을 일상화하기 혹은 삶을 예술화하기..본문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었던것 같네요. 하지만 그의 예술작품?에 대해 그의 추종자(혹은 배신자?)들이 열광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드보르의 노선에 역행하는 현상..이런 현상은 모든 사람들이 드보르만큼 통찰력과 감수성이 뛰어날수 없다는 어쩔수없는 현실에서 오는 결과죠. 그렇지만 그들의 실천들은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포획되어버린 일상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포획이 매체나 매개 혹은 대리등을 통한 방식이라는 것을 밝혔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계속 그들의 이야기를 참조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특히 예술과 일상의 삶이 만나는 지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요. 단 그것이 정치운동에서의 전위주의나 엘리트주의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한에서요. ^^
 

북매거진 <텍스트>에 기고한 글을 옮겨놓는다. 늑장을 부린 탓에 급조한 것이지만 몇 가지 추억거리를 담고 있어서 버리기엔 아깝다. 창고에 넣어둔다.

르네 지라르(1923- )의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문학과지성사, 2004)에 대해서 몇 자 적어내는 것이 내게 떨어진 몫이었다(이하에서는 <사탄이 번개처럼>으로 줄임). 하지만 일은 콩구워 먹듯이 되진 않았고, 이래저래 미뤄지는 사이에 아마도 가장 요긴한 지라르 입문서가 될 <문화의 기원>(기파랑, 2006)이 장마가 시작될 무렵에 ‘번개처럼’ 출간됐다(한국어판은 전세계에서 네 번째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재작년에 불어본이 나온 이 대담집은 문학과 종교학, 문화인류학 등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이 예외적인 사상가의 ‘지적 자서전’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모자람이 없는 책인데,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사들면서도 부담감을 다 떨쳐낼 수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견적이 너무 나오는 거 아니야?’라고 속으로 툴툴댔던 것이다.


사실 지라르에 대해서 말한다는 건 아주 단순하면서도 단순하지 않다. <문화의 기원>의 서문에서 대담자들은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단 하나의 대단한 것을 알고 있다”는 이사야 벌린의 인용구를 재인용하면서(벌린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각각 이 ‘여우’와 ‘고슴도치’에 비유했다) 이 고슴도치-지라르의 그 대단한 것이 ‘모방적 욕망’과 ‘희생양’이라는 걸 미리 일러주고 있다. “이 두 가지 가설에서 출발한 지라르는 40년 이상을, 찰스 다윈의 말대로 ‘하나의 주제에 대한 기나긴 논증’을 해오고 있다.”(10쪽)


지라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단순한 것은 그 두 가지 가설만을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고, 동시에 단순하지 않은 것은 그 ‘기나긴 논증’에 대해서 되짚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지적대로 단순성과 명료성은 지라르의 특장이면서 비판의 빌미이다. 나는 이 익숙한 양면성에 대해서 몇 자 거들기보다는 지라르에 대한 사적인 기억 몇 가지를 나열함으로써 내게 떨어진 발등의 불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지라르 자신보다 지라르에 대해서 더 잘 말할 자신이 없는 나로선 ‘지라르와 나’ 정도가 감당할 수 있는 주제이긴 하다.

 


 

 

 

 

 

 

 

 

지라르의 출세작은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1961)이다. 파리 고문서학교 출신인 그가 미국의 대학에서 소설을 강의하기 시작한 건 그 자신에 따르면 ‘첫 지적 모험’이었는데, 30대 중반에 스탕달과 플로베르의 소설들을 읽어나가면서 그는 대단한 걸 발견한다: “그 무렵 저는 <적과 흑> <마담 보바리>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연달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영원한 남편>을 읽던 때가 정말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35쪽)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세르반테스와 완전히 동일한 것을 발견하며 이로써 ‘모방의 리얼리스트’로의 길로 접어든다.

 

지라르의 이 출세작은 비교적 일찍 우리말로 번역됐는데, 전체 12장 중에서 8장이 문학평론가 김윤식에 의해 영역본에서 중역돼 나온 <소설의 이론>(삼영사, 1977)이 그것이다(<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의 완역본이 나온 것은 2001년의 일이다). ‘소설의 이론’이란 표제는 막바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데(물론 역자의 의도였을 것이다), 역자는 소설이론가 루시앵 골드만이 이 저작들을 ‘소설의 이론’이라 할 만한 단 두 권의 책으로 꼽고 있음을 소개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맞은 첫 여름방학에 내가 이 두 권의 책을 손에 든 것은 지극한 당연한 일. 루카치의 책은 난해했지만 지라르의 책은 읽을 만했고 특히 도스토예프스키론은 흥미로웠다(<영원한 남편>에 대한 그의 분석은 소설보다도 재미있었다!).  

 

 

 

 

 

 

 

 


다행히도 지라르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질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문학평론가 김현의 노고 덕분이었다. 지라르 이론의 전모를 다루고 있는 최초이자 유일한 연구서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나남, 1987)가 바로 출간되었던 것이다. 240여 쪽의 비교적 얇은 분량이지만 실제 지라르론은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 절반은 지라르의 도스토예프스키론과 카뮈론으로 채워져 있는 이 책은 그럼에도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나 출간된 <문화의 기원> 이전에 르네 지라르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감할 수 있도록 해준 유일한 책이었다.


제목에서도 암시되듯이 김현이 파악한 지라르 이론의 핵심은 ‘폭력’이고 ‘폭력의 구조’였다. ‘모방욕망’과 ‘희생양’이라는 두 키워드를 그는 ‘폭력의 구조’로 묶었던 것(김현은 지라르의 <희생양>을 그의 가장 좋은 책으로 꼽는다). 폭력에 대한 관심은 사실 80년대 중반 김현 비평의 화두이기도 했다. “억압적 세계의 기본적 욕망에 대한 분석․해석”을 시도한 비평집 <분석과 해석>(문학과지성사, 1988)은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며 거기엔 ‘증오와 폭력’ ‘폭력과 왜곡’이라는 두 중요한 평론이 실려 있다.


<폭력의 구조>에도 ‘지라르의 눈으로 한국의 신화 읽기’가 몇 대목 포함돼 있지만 그러한 평론들이 지라르에 대한 관심과 읽기에 힘입은 것이라는 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 <폭력의 구조>의 글 머리에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적어놓았었다. “욕망은 폭력을 낳고, 폭력은 종교를 낳는다! 그 수태․분만의 과정이 지라르에겐 너무나 자명하고 투명하다. 그 투명성과 자명성이 지라르 이론의 검증 결과를 불안 속에 기다리게 만들지만, 거기에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래서 지라르의 이론을 처음부터 자세히 검토해 보기로 작정하였다. 거기에는 더구나, 1980년 초의 폭력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밑에 자리잡고 있었다.”(17쪽, 강조는 나의 것) 그는 그 폭력의 의미를 철저하게 질문한 아주 드문 비평가였다.

 


한 비평가에게는 ‘소설의 이론’을, 또 다른 비평가에게는 ‘폭력의 구조’를 의미했던 지라르가 내게 의미했던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였다. 그의 <도스토예프스키: 이중성에서 단일성으로>(1963)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묵시록’을 마지막 장으로 갖고 있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의 보유편이라고 할 만하다. 이것은 ‘새로운 전망으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이란 절로 <소설의 이론>을 마무리한 젊은 루카치가 이후에 쓴 도스토예프스키론에 비교될 만한 것이었다. 두 걸출한 이론가에게서 소설론의 끝은 도스토예프스키였던 것이다.

 

 

 

 

 

 

 

 


‘소설의 이론’ 이후에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1923)으로 나아가며 ‘소설의 진실’을 발견한 지라르는 <폭력과 성스러움>(1972)으로 넘어간다(나는 두 사람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을 참조한 졸업논문을 쓰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모방이론의 관점에서 지라르는 문학비평에서 문화인류학으로 넘어간 자신의 작업이 연속적인 것으로 간주했지만 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분야에 손을 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는 우려를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그의 본류는 ‘모방욕망의 인류학’ ‘종교적인 것의 인류학’이었고, 그러한 작업의 영감을 문학비평에서 가져왔다는 점이 특이할 따름이다.


우리에게도 소개돼 있는 <폭력과 성스러움>(민음사, 1997)은 아직 소개되지 않은 <세상 설립 이래 감추어져온 것들>(1978)과 짝패를 이루는 책이다. “제가 <폭력과 성스러움>을 쓸 때 처음에는 2부의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1부는 고대문화, 2부는 기독교에 관한 내용으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자료는 다 모아놓고도 기독교 부분은 제쳐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문화의 기원>, 52쪽)


이 2부는 두 사람의 동료/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대담의 형식으로 출간된다. 말 그대로 기독교에 관한 부분인데, <희생양>(1982, 국역본1998)이 1부의 보유라면, <사탄이 번개처럼(1999)은 2부의 보유쯤 된다. 후자의 경우엔 <세상 설립 이래 감추어져온 것들>의 두어 가지 실수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지라르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실수란 건 기독교와 연관된 것에 대하여 ‘희생’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자백하는데, 실상 <사탄이 번개처럼>에는 ‘희생’이란 말이 낙석처럼 널려 있다.


여느 저작에서처럼 이 책에서도 지라르가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그는 신화와 기독교를 구별하면서 그 둘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신화가 가해자의 편인 데 반해 기독교는 희생양의 편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신화의 해석은 집단 폭력의 희생물을 죄인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해석은 완전히 잘못이고 환상이며 그러므로 거짓이다. 반면에 성경의 해석은 이 희생물을 무고한 존재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해석은 본질적으로 정확하고 믿을 만하며 그러므로 참이다.”(14쪽)


이러한 단언은 어떤 기시감으로 우리를 안내하지 않는지? 이를테면, ‘신화의 거짓과 성경의 진실’이 책의 알파요 오메가인 것이다. 이 ‘하나의 주제에 대한 기나긴 논증’이 <사탄이 번개처럼>을 구성한다. 모방적 경쟁관계로 빨려 들어감으로써, 즉 스캔들에 불가피하게 말려들어감으로써 ‘모방의 회오리’, 혹은 무차별적 폭력에 도달하게 되는 메커니즘 자체가 바로 사탄이다(예수 가라사대,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의 스캔들이다.”). 반면에 기독교는 예수를 통하여, 폭력에 휩싸인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무고한 희생양을 살해하는 이 메커니즘의 정체를 폭로한다.

 


그러한 폭로를 주제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전범적이다. 그의 소설들은 나폴레옹 모방에서 그리스도 모방으로의 이행, 곧 신화(변증법)에서 복음서로의 이행을 표시하고 있는 이정표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르네 지라르와 도스토예프스키, 이 두 ‘두더지’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결점도 비슷하고. 지라르에게서 맹목적인 서구 및 기독교 우월주의의 냄새가 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사실 도스토예프스키 또한 맹목적인 러시아 및 정교 우월주의의 냄새를 다 가리지는 못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이 '인문학의 다윈'은 '인류학의 도스토예프스키'라 할 만하다(나의 졸업논문은 ‘인류학자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것이었다)!    

 

06. 07. 24.

 

P.S. 물론 투명성과 자명성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미덕이 아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미덕이 아니다. '인류학의 도스토예프스키'라고 할 때 내가 염두에 둔 것은 두 사람의 '두더지적 성향'과 종교적 지향이다. 더 파고들어가면 두더지도 여러 종류가 있다(독백적 두더지, 대화적 두더지 하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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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7-25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르네 지라르에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를 알수있는 글이네요.."인류학의 도스토예프스키"라..일단 <사탄이 번개처럼..>하고 <문화의 기원>을 보관함에 넣어 봅니다. 근데 지라르에 대해서 가장 유용한 입문서로는 어떤 책이 좋은가요?..
아 그리고 한가지 질문더..본문에서 지라르의 신화와 기독교의 구분이 무슨 말인지 그리고 지라르는 왜 신화에서 기독교로 이행하는지 이해하기 힘들군요. 좀더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

로쟈 2006-07-25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 적은 대로입니다.<문화의 기원>이 가장 좋은 입문서일 텐데, 사실은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같은 책을 재미있게 읽어본 경험이 있어야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거 같네요. 신화와 기독교의 구별은 본문에서 적은 바대로이고, <사탄>에서 지라르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모방욕망과 그 결과로서 발생하는 희생양 제의의 메카니즘을 기독교는 폭로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지라르는 호교론적인 입장까지 보이는데, 아주 단호하고 확고합니다. 아마 이들 책들에 대한 리뷰들을 참조하신다면 좀 나으실 것 같네요...

푸른괭이 2006-07-25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상 <영원한 남편>은 지라르의 '발견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토에서도 정말 연구 안 된 작품이거든요.(키르포친조차도 내용 훑기 정도 밖에 못했으니까요. 발표도 한 번 한 적 있지만, 참 뛰어난 작품인데 말이죠.) 전체적으로, 지라르는 본원적 의미에서의 도-키 연구자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여하튼 바흐친 급입니다. 개념틀을 선물해주기란 어려운 일이니까요. (개인적으로 루카치가 도-키에 대해 조금만 더 많이 써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지금 읽으니 더더욱 좋더군요.

로쟈 2006-07-25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보다 지라르를 먼저 읽었는데, 아무래도 그의 시각으로 읽게 되더군요. 그러한 '발견'이 비평가의 진정한 몫이 아닐까 싶고...

로쟈 2006-07-25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얼마전에 전해듣긴 했습니다. '독자들의 힘'에 한몫하셨군요.^^
 

지난 금요일 문화일보의 북리뷰에서 주목한 책은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열린책들, 2006)이었다. 저자의 이름에도 (귀족 출신임을 표시하는) '폰'이 들어가 있고, 제목에도 '우아하게'가 들어 있는지라 '가난해지는'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일단을 눈길을 주게 되는 책. 알고 보니 2005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3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굳이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대열에 합류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독일 사회의 한 트렌드 정도는 읽게 해줄 만한 책이므로 우아한 손길마저 가져가도 무방하겠다. 문화일보와 국민일보의 자세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6. 07. 21) '돈' 없이도 가능한 풍요로운 삶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돈이 많다는 건 단순한 풍요를 넘어 여유와 자유와 멋과 아름다움 등을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부자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는커녕, 세계 곳곳에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는 신호가 번쩍인다. 이렇게 물질적인 풍요가 사라지면, 우리는 품위를 잃고 초라해 져야 하는가.



-몰락한 명문 귀족의 후손으로, 독일 유력지의 칼럼니스트로 일하다 구조조정을 당해 현재 프리랜서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자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겪어본 결과, 여유와 멋과 자유와 만족과 아름다움과 우아함에서 부자보다는 가난한 것이 훨씬 나았다는 것이다(*저자에게 '가난'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일단 모르겠다. 이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면 그의 '가난'은 물건너 간 건 아닐까?).

-책에 따르면 인간은 돈이 없어도, 아니면 최소한의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생활양식’과 ‘마음가짐’의 변화일 뿐이다. 진실로 부유해지고 싶은 사람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보다 황폐하게 만들 뿐인 것들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일’에 대한 생각이다. 종교개혁 이후 루터와 캘빈에 의해 ‘일’은 도덕적인 지위를 부여받고, 직업과 동의어가 됐지만 실은 여기에 문제가 많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근사한 주택과 자동차를 마련하나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돈을 위해 일에 묻혀 지내는 사이 아이는 훌쩍 커 버리고, 시간은 사라지며 스트레스와 심근경색으로 건강과 목숨을 잃기까지 하는데….

-집의 가치와 자동차, 휴가 여행 등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욕설이 튀어 나오게 되고, 과속을 유발하는 자동차는 실용적인 이유뿐 아니라 비용을 따져도 말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관광이라 불리는 것도, 겉보기엔 고상해 보이지만 사실은 기괴했던 속물들의 여행이 발전한 결과일 뿐이다(*이건 마음에 드는 멘트이군).

-외식, 매스미디어, 아이 키우기, 쇼핑 등등에서 가난뱅이가 부자보다 유리할 수 있는 이유를 설득력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풀어가던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경험한 부자의 사례를 중심으로 돈이 왜 행복의 걸림돌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를 진정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책을 끝맺는다.

-“삶을 보람있게 해주는 것들은 수중의 돈이 감소한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의 내적인 자주성은 결코 수입의 문제가 아니다. 박식함이나 예의범절도 마찬가지다. …정중함, 친절함, 다정함, 도와주려는 마음, 삶을 쾌적하게 해주는 모든 것은 무한할 수 있으며, 물질적인 여건과는 완전히 무관하다(*요컨대, 그가 말하는 바는 '가난하지만 우아한 귀족이 되는 방법'인 듯싶다). (김종락 기자)


국민일보(06. 07. 22) 가난,두려워 말고 즐겨라...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사는데 생활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 좀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벌어도 벌어도 돈은 늘 부족하다. 시간도 마찬가지.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잠드는데도 도무지 여유가 없다. 그뿐인가. 언제 해고될지 언제 파산할지 모른다. 실수를 하면,혹은 재수가 없으면 바로 추락이다. 풍요의 뒤에 가려진 위태로운 삶. 대량실업과 중산층 붕괴의 긴 그림자. 식은땀이 난다.

-우리는 지금 빈민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경쟁은 갈수록 치열한데 복지는 거꾸로 후퇴한다. 조만간 20%의 상류층에 들지 못하면 80%의 하류층이 되고 말 거라고 한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책,부자에 대한 책이 넘쳐난다. 가난은 수치이고 하류층이 되는 건 재앙이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은 가난을 견딜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가난해진 삶에 깃든 행복을 발견하게 한다(*슈마허의 <자발적 가난>과 같이 묶일 만하다). 책은 200쪽 정도로 얇지만 신선하고 전복적인 관점,소비와 취향에 대한 근본주의적 태도,그리고 우아한 문체가 빛나고 있어 페이지마다 밑줄을 쳐야 하는 책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풍요로운 시대는 이제 완전히 지나갔다… 오늘날 가난해지는 사람은 자신만이 실패자라고 느낄 필요가 없다. 훨씬 더 포괄적인 과정의 일부로 가난해지는 것이며,따라서 그의 운명은 역사적인 차원을 가진다.”

-가난은 수치가 아니며 자신의 잘못도 아니다. 그것은 저자 쇤부르크의 경우만 봐도 명확하다. 쇤부르크는 독일의 권위있는 신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기자로 일하다가 2002년 정리해고를 당했다. 경제 불황 때문에 베를린에서만 1만명의 언론인이 일자리를 잃은 시절이었다. 중산층이었던 그의 삶은 하루아침에 하류층으로 떨어졌다. 집에 들어앉아 소위 ‘자유 저널리스트’가 된 그는 경제적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그리고 인간의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은 그가 가난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한 기록이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존재의 불안에 억눌리지 않고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고 집세를 지불하고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을 할 수 있는 한, 얼마든지 행복하고 우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삶의 목표가 돈이 아니라 행복이나 아름다움, 품위 같은 것이라면 가난은 그 목표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아니라 사다리가 된다. 가난이 우리 삶에서 비본질적인 것, 의미없는 것, 저속하고 해로운 것 등을 제거하기 때문이다(*비루하고 저속한 부자들이 많은 동네에선 더욱 그렇겠다).

-예컨대 집 문제를 보자. 크고 좋은 집들은 손님을 불편하게 한다. 작고 소박한 집에서 손님들을 불러놓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집은 얼마나 멋진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의 꼭대기 층에 산다고 기 죽을 것 없다. 계단 오르기는 심장 질환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자동차는 어떤가. 대도시에서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사람들은 자동차를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기차와 지하철, 버스 등을 이용하면 더 많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모른다.

-직업을 잃었다고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피할 이유는 없다. 외식 대신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 된다. 식사는 대화를 나누기 위한 사건이며, 그 사건의 중심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아닌가. 가난하다고 운동을 즐기지 못하란 법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스포츠는 자연 속에서 빠르게 걷는 것이다. 러닝머신에서 두 발을 놀리며 멍청하게 화면을 응시하는 것보단 백 배 낫다.

-이런 질문도 해보자. 왜 휴가때는 반드시 해외여행을 떠나야 하는가? 소문난 영화라고 나도 봐야 하는가? 쇼핑한 물건 중 꼭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되나? 혹시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가난은 이런 습관들과 결별하는 계기가 된다. 이 결별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이유는 없다. 찬찬히 짚어보면 별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치우고 난 빈 자리에서 자기 취향이 살아나고 자기 주도적 생활이 시작된다. 우아하게 가난한 삶은 그렇게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이 아름답고 다른 사람들의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마치 해방된 것 같았다. 부는 욕구의 문제이다. 이른바 우리의 욕구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심지어는 우리 본래의 욕구를 가로막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누구나 부를 누릴 수 있다. ”

-이 책이 가난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낭만화하는 건 아니다. 대다수가 가난해지는 빈민화가 현실이라면 가난한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고, 가난한 생활방식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가난을 공포와 수치의 상태에서 윤리적인 미학적인 상태로 재규정했다. ‘우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가난의 심리학을 발견한 건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쇤부르크는 가난의 미학을 개척하고자 하는 것).

-“넘치는 풍요의 시대에서 조금 유행에 뒤떨어졌던 많은 미덕들이 이제 결핍의 시대에서 다시 르네상스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자원 고갈,복지의 후퇴가 꼭 분배의 싸움으로 끝나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그것은 오히려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의 재탄생.”

-우리는 과연 가난을 긍정하게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가난 속에서도 우아하고 품위있는 삶이 가능한 것일까? 나아가 지금의 욕구를 돌아보고 스스로 포기할 수 있을까? 이 사회에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충분하다.(김남중 기자)

06. 07. 23.

P.S. '자발적 가난' 혹은 '우아한 가난'이 정치적 구매력을 가질 수 있을까? 즉, 그러한 방향으로의 사회개혁을 위한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가난은 진보의 '역설적인' 화두가 될 수 있을까?(요즘 '진보의 대안'이라는 요구가 많이 제기되므로.) 개인적 차원에서 몇 사람이 우아를 떠는 일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것이 사회적인 흐름, 혹은 운동이 될 수 있느냐이다. 즉, '가난해지기 경쟁'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느냐. 우리가 탐욕이란 제 버릇을 남줄 수 있느냐 하는 것. 손쉽게 '예스'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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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7-24 00:35   좋아요 0 | URL
저도 코멘트를 달긴 했는데, 아무래도 선진국의 '가난'이란 게 중진국, 후진국과는 차이가 좀 나겠죠... 사실은, 저도 조용조용한 성격입니다(^^;)...

가을산 2006-07-24 12:39   좋아요 0 | URL
역시 사회보장이 잘 되어야 우아하게 가난해질 수 있는것 같습니다.

로쟈 2006-07-24 12:58   좋아요 0 | URL
우리에게 가난을 보장하라!..

瑚璉 2006-07-24 14:55   좋아요 0 | URL
로쟈 님, 책은 주문했는데 그래24에서 주문하는 통에 thanks to를 못했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요(-.-;).

로쟈 2006-07-24 14:58   좋아요 0 | URL
그런 말씀은 안 하시는 게 예의에 맞는 겁니다요(^^)...

瑚璉 2006-07-24 16:46   좋아요 0 | URL
그 대신이라기는 무엇하지만 페이퍼에 추천을 했습니다요(^.^;).

릴케 현상 2006-07-25 11:28   좋아요 0 | URL
선진국의 '가난'이란 게 중진국, 후진국과는 차이가 좀 나겠죠... <---선진국에서 나온 글을 읽으며 늘 느끼는 거예요^^
 

캐나다의 작가 얀 마텔(1963- )은 내게 생소한 작가이지만 저명한 부커상 수상작가(2002년)라고 하니까 '가락'이 없지 않겠다(우리 나이로 마흔에 부커상 작가가 된 셈인데, 앞으로 더 많은 활동이 기대되는 작가이겠다). <파이 이야기>(작가정신, 2004)에 이어서 장편 <셀프>(작가정신, 2006)가 국내에는 두번째로 소개된 모양이다('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최근 서구문학의 트렌드인가?).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는 의미에서 신작에 대한 리뷰를 옮겨온다.

동아일보(06. 07. 22) 내 몸이 여자로 변했다…‘셀프’

-작가 얀 마텔의 부커상 수상작 <파이 이야기>가 국내에서 조용한 인기몰이를 하면서 그의 마니아 독자층이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그런 만큼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 <셀프>의 출간 소식에 환호할 사람이 많을 듯싶다(*그러니까 <파이 이야기>보다 먼저 씌어진 작품이며, <파이 이야기>의 힙입어 마저 번역/소개되는 듯싶다) . <셀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문장이 까다로운 편이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건 아니다. 오히려 한 문장 한 문장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그만큼 의미 있게 짜인 작품이다.

 

 

 

 

-이야기는 한 젊은 소설가가 써 내려간 자서전 형식이다. 언뜻 보기에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좀 황당하다. 외교관 부모를 따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유년 시절을 보낸 소년 화자가 열여덟 살 때 느닷없이 여자가 된다는 것. 그러잖아도 ‘나’는 사내애인 친구 노아와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일찌감치 절망했고 지렁이가 암수한몸이라는 데 감탄했던 터다.

-하루아침에 성별이 뒤바뀐 대목은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를 떠올리게 한다. 1900년대 초반의 여성 작가 울프가 여성이 된 남성의 목소리를 통해 성 차별을 작품화했던 것과 달리, 21세기 남성 작가인 마텔은 같은 사건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사랑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가슴의 털이 다 빠지고 월경을 치르게 된 ‘나’. 남성이었을 때의 습관처럼 여성과 연애했지만 주변에서 보기엔 동성애다. ‘나’는 자연스럽게 신체에 맞는 짝, ‘남성’을 찾아 나서게 된다.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 누구를 현재의 그로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다. 남성이 여성이 돼 버린 판타지 같은 일로 인해 20대에 가깝도록 지켜왔던 남성이라는 성 정체성이 바뀔 정도로, 인간은 유약한 존재다. 방황 끝에 화자가 안착하게 된 것은 운명 같은 남자를 만나면서다.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나’는 행복감에 젖는다. 변한 것은 육체일 뿐이며 자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또 상대가 어떤 성(性)이든, 중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달한다(*메시지 자체도 변한 건 없는 모양이군).

-성 묘사가 포르노에 가까울 정도로 적나라하다. 수음, 동성애, 강간 등 온갖 행위를 노골적으로 그려놓는데, 흥미롭거나 민망한 게 아니라 이상하게 쓸쓸하다. 가까워지기 위해 몸을 섞지만 그럴수록 고독해지는 현대인의 풍경이다. 마텔은 소설 곳곳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동시 배치해 두 언어의 유사성을 보여 주려 했는데, 한국어판에선 그런 맛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몇몇 쪽을 두 단으로 만들고 곳곳에 여백을 두는 등 기존 소설에선 보기 어려운 독특한 구성을 도입한 것만으로도 그의 실험정신을 짐작할 수 있다. 원제 ‘Self’(1996년).(김지영 기자)

06.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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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06. 07. 23)에서 학술동향 기사 하나를 옮겨온다. 타이틀은 '미국의 유교 연구현황'인데, 다소 생소한 테마인 만큼 얼마간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한 학술저널의 논문을 소개하고 있는 기사로 필자는 강성민 기자이다. '프래그머티즘과 유교의 대화'는 "프래그머티즘과 儒敎의 대화 … 토착화 멀지 않아"라는 부제에 들어 있는 것이다.

-‘동양철학연구’ 제46집에 실린 장원석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의 ‘미국학계의 유교연구 현황’은 최근 5년간 미국에서 이뤄진 유교연구를 총괄해서 검토하고 유형별로 잘 정리해서 보여줌으로써 연구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듯하다.

-장 연구원은 최근 미국의 유교연구를 ‘고전의 번역과 재인식’, ‘세계철학으로서의 유교연구’로 특징짓고 있다. 그는 “전근대문명의 파편을 확인하는 태도로 시작된” 영미권 유학 연구가 세대교체를 이루고 나이가 젊어지면서 진지해지고 깊어졌다고 말한다. 고전 다시읽기가 일종의 붐을 이루고 있는데, ‘주역’, ‘중용’, ‘맹자’, ‘논어’에 대한 번역과 연구서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는 철저한 고고학적, 역사문헌적 지식을 근거로 기존 장들의 순서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과정에서 안이한 개념번역에 대한 비평도 이뤄진다. 로저 에임즈(Roger T. Ames)는 제수이트 선교사들로부터 시작해 제임스 레그(James Legge)에 의해 일단락된 1세대의 해석학적 선입견을 들춰낸다. 天을 단수형 Heaven으로 번역할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서양인들이 그것이 조상과 문명의 축적을 의미하는 동양의 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道를 습관적으로 Way로 번역하는 건 어떤가. 도라는 개념을 명사로 이해하는 이런 태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의 속성’과 ‘행위의 양식’이라는 존재구분에 근거한 것 아닌가. 사실 道는 동명사적인 ‘길 만들기’로 읽거나, 주관적 느낌의 형용사로 읽어야 할 때가 많다는 게 에임즈의 지적이다. 이런 난숙해진 연구를 바탕으로 2003년과 2005년에 1천페이지가 넘는 유교백과사전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우리에게 이런 사전이 있는가?). 미국에서 유교의 토착화가 이제 멀지 않았다는 징후일까(*우리의 유교 연구 현황은 어떻게 되나? 재작년에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교육 연구단에서 몇 권의 연구논문집을 출간한 바는 있다).

 

 

 

 

-그 다음은 세계철학으로서의 유교의 부활이다. 이는 뚜 웨이밍 하버드대 교수가 제1의 물결(유교의 태동기), 제2의 물결(송, 원, 명, 청의 부흥기)에 이어 현대에 유교의 제3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뚜웨이밍 교수는 국내에 가장 널리 알려진/소개된 철학자/연구자이다).

 

 

 

 

-이런 흐름과 관련하여 로버트 네빌(Robert C. Neville)의 ‘Boston Confucianism; portable Tradition in the Late-Modern World’(2000)는 미국에서의 유교연구가 ‘타자’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자기’에 대한 연구로 전환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그리스인이 아니면서 플라톤주의자가 되는 것에는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인이 아니면서 儒家가 되는 것은 어떤가”라고 그는 말한다. 네빌은 20세기 초의 유교 소외현상은 유럽대학 모델을 전세계로 이식하면서 유교를 커리큘럼에서 배제시킨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 인도철학 전통이 삭제됐다가 나중에 일부만 복원된 것이 그 예다.

-그래서 네빌의 핵심적 주장 중의 하나는 유교 경전을 미국 대학교육에서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미국인들이 “인간들이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적 관습을 형성하고, 개인이 커다란 가족적·공적 네트워크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데 유가의 철학이 큰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이런 인식 속에서 미국 학자들은 유교전통의 풍부함을 강조하는데, 주로 프래그머티즘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런 작업은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 프래그머티즘을 대표하는 철학자인 존 스미스(John Smith)가 왕양명과 프래그머티즘을 비교한다든지, 프래그머티즘의 관점에서 왕양명의 인식론을 재정초하는 워렌 프리시나(Warren Frisina)의 ‘The Unity of Knowledge and Action’(2002)은 대표적인 저술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서양철학사 속에서도 비교적 새로운 흐름인 프래그머티즘이나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정도만이 유일하게 동양철학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며, 이 둘을 같이 읽을 때 서양인들의 ‘과정적 사유’가 폭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는 조셉 그랜지(Joseph Grange)의 ‘John Dewey, Confucius, and Global Philosophy’(2004)가 있고, ‘창조성’(Creativity)을 중심으로 주희와 그 후계자들의 개념을 분석한 존 버쓰롱(John H. Berthrong)의 ‘Concerning Creativity’도 이런 맥락에 서 있다.

-그 외에 유교를 통해 인권을 탐구하는 흐름이 있다. 스테판 에인절과, 콩 로이 순 등이 이끄는 이런 흐름은 중국철학과 인권의 주제를 현대 중국정치와 연결하여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철학’이란 잡지의 편집자인 Cheng Chung-ying은 현대의 해석학적 전통, 하이데거, 화이트헤드를 원용하면서 주역을 중심으로 하는 존재-해석학을 창출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주역의 ‘觀’ 괘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그의 저작이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모종삼의 칸트연구가 일면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칸트, 볼프, 라이프니츠의 계몽주의 철학전통이 실제적으로 주자학과 대화했고 그 영향이 어떻게 칸트 철학에 나타나고 있는지를 모종삼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화이트헤드의 주저 몇 권과 연구서를 나열해 본다).

 

 

 


 

-장 연구원은 이런 주요한 흐름들을 요령껏 요약해 보여주면서,  아시아에서 발원한 유교가 현대에 들어 서양 국가에 퍼져 나가면서 그들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동시에 유교가 어떻게 다양한 형태로 토착화되어 그들의 내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는가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06.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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