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테러방지(빙자)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목으로는 '이주의 책'에 딱 부합하는 책이 나왔다.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문학동네, 2016).

 

"저자 스르자 포포비치는 뭔가 사소한 것, 적절한 것, 그러면서도 성공적일 수 있는 것, 그것 때문에 죽거나 심한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크게 꿈꾸고 작게 시작하기, 미래에 대한 비전 갖기, 웃음행동주의 실천하기, 탄압에 역풍 불러일으키기가 비폭력 운동의 토대라면, 이를 견고하게 쌓아올릴 비폭력 투쟁의 기본 원칙이 운동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 스르자 포포비치는 세르비아 출신의 사회운동가. 그리고 책은 만화다, 라고 착각했지만 아니다. 알고 보니 굽시니스트의 웹툰이 책소개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저자의 새로운 혁명론은 직접적인 경험에서 나왔다.

"1990년대 중반, ‘인종 청소’라는 말로 유명한 독재자 밀로셰비치의 폭압하에 있던 세르비아의 한 기타리스트는 새로운 전략을 제안한다. 바로 ‘비폭력 행동주의’였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하는 ‘비폭력주의’는 간디나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 없었던 한 가지, ‘유머’를 핵심전략으로 삼았다. 포포비치는 상투적이고 반복적이어서 그 누구의 관심도 더이상 쉽게 끌어내지 못하는 집회 방식에서 벗어나, 록 콘서트처럼 역동적이고, 누구나 원할 만큼 ‘힙’하며,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넘치는 시위 방법을 제안한다. 너무나 잔혹해서 아무도 그를 쓰러뜨릴 수 없다고 여겨졌던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오트포르! 운동의 시작이었다."

 

만화가 굽시니스트의 추천사가 핵심을 짚고 있다. 

"독재 타도에 있어서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인들 앞에서 세르비아인들이 감히 뭔가 아는 척할 거리가 있다고? 가소로운 기분이 들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한국인들의 영광은 이미 옛것이 되었고, 독재 타도의 최신 트렌드는 세르비아인들이 선도해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재 타도 시장에 한류 열풍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도 한때는 독재를 무너뜨린 전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젯적이란 말인가. 아, 옛날이여...

 

16. 02.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토피아를 제목으로 단 두 권의 책을 같이 묶는다. 인류학자이자 사회운동가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메디치미디어, 2016)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오월의봄, 2016)다. 의미가 같지는 않다. 바우만의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지속적인 탐험과 지향점을 뜻한다면,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원제는 '규칙의 유토피아')는 반어적인 명명이다.

 

 

<관료제 유토피아>의 요지는 책소개를 통해서 대략 어림해볼 수 있다. '관료제 유토피아'란 말은 '전면적 관료화'의 의미로 이해해도 좋겠다.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현대 사회가 '전면적 관료화'가 된 현상에 주목한다. 정부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 금융, 학교에도 관료주의가 널리 퍼져있다. 권력 기관은 제도와 규제처럼 당연해 보이는 규칙을 통해 개인들을 손쉽게 통제한다. 절대왕정 시대와 비교하면 세상은 훨씬 더 관료제화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유'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이다.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와 관료제 사이의 끈끈한 밀월관계와 이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또한 우리가 불만 속에서도 관료주의 체제에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는 온갖 종류의 속임수나 덫들에 관해 조명하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다."

 

그레이버의 책은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그린비,2009)이 처음 소개된 이후, <부채>(부글북스, 2011),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이책, 2015) 등이 출간되었다. 추세를 보아 마샬 살린스와 공저한 <왕들에 대하여>(2016)도 번역되지 않을까 싶고, 이 역시 기대되는 타이틀이다.

 

 

사회주의란 말은 역사적으로나 의미가 너무 확장되어 그 자체로는 심지어 모호해 보인다. '어떤 사회주의?'라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바우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우만의 사회주의란 어떤 사회주의인가를 먼저 물어야겠다. '생동하는 유토피아'라고 답할까?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원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였고, 열렬한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런 바우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며, 또한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바우만의 현대성 분석과 소비사회 비판이 왜 시작되었고,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대사회에 사회주의라는 '생동하는 유토피아'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탐험한다. 현대사회의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의 역할을 분석하고,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문화로 제시하면서 오늘날의 사회주의가 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원저는 2010년작. 이제껏 그래왔듯이 올해도 바우만의 책은 여러 권 소개될 듯싶다.

 

 

그 전에 밀려 있는 바우만도 몇 권 빨리 해치워야겠다. 읽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못 따라가다니...

 

16. 02. 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랜만에(라고 적었지만 주관적인 느낌에 그렇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어에 관한 책이 출간됐기에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키에르케고어의 이름 표기는 아직도 고정이 안 된 듯하다. '키에르케고르'와 '키에르케고어' 외에도 '키르케고르'와 '키아케고어'까지 쓰인다. 애초에 통용되던 키에르케고르를 현지 발음을 이유로 흔든 게 문제였고, 학계나 출판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게 그 다음 문제다). 아르네 그뤤의 <불안과 함께 살아가기>(도서출판b, 2016). '키에르케고어의 인간학'이 부제다.

 

"저자 아르네 그뤤은 <불안의 개념>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해명으로 시작해, 불안의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키에르케고어 인간학의 다른 핵심적인 주제들로 나아간다. 불안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실존', '자유', '절망', '역사', '윤리', '믿음', '시대비판' 등을 나머지 9개의 장에서 하나하나씩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불안이라는 실존적 '근원현상'에서 출발하여 키에르케고어 사상 전반에 관한 균형 잡힌 조망을 획득할 뿐 아니라, 그의 인간학의 중심 모티브와 주제들에 대한 적확한 해석, 나아가 이들 사이의 복합적인 연관성에 대한 명료한 이해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덴마크 철학자로 코펜하겐대학 교수이며 '키에르케고어 총서'의 공동편집자. 곧 키에르케고어 전문가다. 말의 좋은 의미에서 교과서적인 책이라고 해야겠다.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같은 주제를 다룬 국내서로는 안상혁의 <불안, 키에르케고어의 실험적 심리학>(성균관대출판부, 2015)이 나와 있다. 미학 전공자의 책이란 점이 특이하다.

 

 

키에르케고어의 <불안의 개념>은 국내에 3-4종의 번역본이 있다. 나는 세 권을 갖고 있는데, 막상 찾으려고 하니 한권만 책장에 꽂혀 있다. 마땅한 가이드북이 나온 김에 오래 미뤄둔 독서에 나서도 좋겠다, 싶지만, 흠, 강의와 원고 일정을 생각하면 무리겠다. 더 불안해지면 읽어보는 걸로 해야겠다...

 

16. 02. 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깥에 나가지 않아서 날씨가 어떤지도 모르겠지만 방에서 느끼기엔 여전히 겨울이다. 방바닥이 차서 양말을 신고 오전에 덥석 집어든 파리 리뷰 인터뷰집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수전 손택 인터뷰를 좀더 보다가 책상 가까이에 있는 은은한 표지에 눈길이 갔다. 고형렬 시인의 '연어 이야기', <은빛 물고기>(최측의농간, 2016)다.

 

 

통상 '연어 이야기'라면 안도현 시인의 <연어>를 떠올리게 되지만, 고형렬 시인의 연어 이야기도 숨어 있었다, 는 걸 알았다. 최측의농간판으로('최측의농간'이란 출판사명의 뜻은 오리무중이다) 나온 게 세번째다. 알라딘에서도 아직 표지를 구경할 수 있는데, 1999년에 한울판으로 처음 나왔고, 2003년에는 바다출판사판으로 나왔다 절판된 것이 이번에 다시 나왔다.  

"우리에게 장자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고형렬 시인은 장장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어에 관한 이 장엄한 기록을 완성했다. 그는 느린 호흡으로 연어의 삶을 추적하여 연어의 삶의 과정을 밀도 높게 탐구했지만 그것에만 그치지는 않았다. 그는 단순한 탐구를 넘어 연어와 연어의 일생과 연어의 일생을 가능케 하는 자연, 그 자연에 보시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연어의 최후, 그 모든 스스로 그러함의 고리가 얼마나 잔혹하면서도 숭고한지 기록하였고 그의 기록은 오랜 시간 동안 깎이고 스러지다 살려지는 과정을 통해 높은 수준의 경지에 도달하여 우리 곁에 도착했다."

이 '도착'에 대해서 작가 김훈이 붙인 추천사는 이렇다.  

"저절로 되어지는 것들은 무섭다. 한줄기 조국 하천의 모성은 태평양을 건너간 내 자식들을 기어이 불러들여서 그 물냄새 속에서 죽고 또 태어나게 한다. 연어들은 그 하천의 모성에 투항하고 귀순한다. 과학의 지식을 녹여내고 또 넘어서서, 운명에 투항함으로써 운명을 완성하는 업業의 두려움과 아름다움, 그 허무와 환희를 말할 때 고형렬의 글은 비통한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연어 이야기'의 원조라면 아무래도 안도현 시인이라고 해야겠다. 기록적인 베스트셀러 <연어>(문학동네, 1996)가 먼저 나왔으니까. 지금은 <연어 이야기>(문학동네, 2010)까지 더 얹어서 한국문학전집에도 안도현의 동화로 포함되었다. <연어, 연어 이야기>(문학동네, 2014). 이러다 안도현 시인은 시인보다 <연어>의 작가로 기억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안도현의 연어 이야기가 동화라면 고형렬의 연어 이야기는 에세이다. 장르상의 차이가 독자들의 반응과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연어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다 싶어서 같이 묶는다. 나는 다시 손택의 인터뷰로 넘어가야겠다...

 

16. 02. 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먼저 2009년에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전기가 나왔다. 이충렬의 <아, 김수환 추기경>(김영사, 2016).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영성을 총체적으로 그려낸 공인 전기. 김수환 추기경 개인 일기에서부터 미사 강론, 묵상, 서간, 저술 등 각종 기록을 비롯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자료, 추기경과 함께했던 선후배 신부들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찾아가 사실을 확인하고 육성을 담았다.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에 대한 질문과 답으로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공인 전기라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지만, 감수의 글을 쓴 조광 교수의 말대로 '김수환 추기경을 통해서 본 한국 현대사와 천주교사'로서도 읽을 수 있다.

 

 

재미 저술가인 저자는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전기를 연이어 내놓고 있는데,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김환기 화백 등이 김수환 추기경 이전에 그가 다룬 인물들이다.

 

 

'철학, 사회학 분야의 연구자이자 작가'로 소개되는 우석영도 '한국 도시 인문학'을 표방하며 <철학이 있는 도시>(궁리, 2016)를 펴냈다. "저자는 개개인의 인간적 삶이 처참히 무너져내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주목하면서, 대다수의 한국인이 오늘날 도시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왜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이 시대의 집합적 삶을 그 근원에서 네비게이팅하는 정신성과 그 뿌리는 무엇인지 등을 탐구한다."

 

소개만으로는 어떤 책인지 가늠하기 어려운데, 그런 면으로는 저자의 전작인 <낱말의 우주>(궁리, 2011)나 <수목인간>(책세상, 2013)도 마찬가지다. '환경철학, 문명론, 평화학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인문사회과학과 과학의 융복합 글쓰기를 추구한다"라는 소개가 힌트가 될까. '융복합 글쓰기'의 새로운 시도가 새로운 전범이 될지는 더 두고봐야겠다.

 

 

작가 장정일의 새로운 책이라면 요즘은 서평집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번에는 인터뷰집이다. '43인의 나를 만나다'를 부제로 한 <장정일, 작가>(한빛비즈, 2016). 서문 제목이 '굿바이 인터뷰'이고 "남은 평생 동안, 이런 일과는 영영 이별이다"는 토로를 고려하면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집일 듯싶다.

"저자 장정일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작가다. 시인으로 문학계에 등장해 희곡과 소설을 쓰며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을 하는 작가다. 그의 책 읽기도 생존을 위해 먹이를 찾는 야생을 닮았다. 저자는 작가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이나 술자리 에피소드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기준으로 선정한 작가들을 만나 텍스트 너머에 실존하는 그들의 정신세계를 파헤치는 것이 오롯이 그의 목표가 된다."

 

장정일의 인터뷰 연재가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까 '젊은 장정일'을 떠올리게 되는데, 독서일기와 서평집을 제외하면 내가 좋아하는 장정일은 <햄버거에 대한 명상><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보트하우스>의 장정일이다. 시집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절판된 상태(김영사에서 나왔던 6권짜리 문학선집도 지금은 절판된 걸로 보인다)라 과거지사가 되었다. <공부> 이전의 장정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즐거운 마음으로 회고하게 되는 것은 그 시절의 장정일이다...

 

16. 02. 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