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4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영국문학 강의에서 읽은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기이한 사례>를 다루었다. 스코틀랜드의 부유한 집안 출신인 스티븐슨의 영국관과 동성애관이 궁금해서 그의 평전도 주문해놓은 상태다. 간략한 사랑 이야기는 최근에 나온 <미친 사랑의 서>(문학동네)를 참고할 수 있다(스티븐슨 장의 제목이 '빌어먹을 사랑'이다)...


 














주간경향(19. 09. 02) 인간의 이중성과 남성 중심사회의 이중성


작품이 작가보다 유명한 경우가 종종 있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고딕 중편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기이한 사례>(1886)도 그에 해당한다. 이 소설은 남성들만 등장한다는 점이 특이성이다.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탐구한 작품이라는 평판에 덧붙여서 남성 중심사회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으로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선과 악이라는 인간 본성의 이중성은 소설의 결말에 배치된 ‘헨리 지킬의 진상고백서’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 영국 상류사회의 명사인 지킬 박사가 어떻게 하이드로 변신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해명하는 내용이다. 부유한 집안 출생으로 지킬에게는 명예롭고 성공적인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고 그 자신도 그러한 지위와 사회적 존경을 좋아했다. 하지만 동시에 쾌락에 대해 취약하다는 약점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기 내면의 선과 악을 들여다보다가 이 두 가지 본성을 분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다. 그는 연구 끝에 약제를 고안하여 음용하고 자기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자아(하이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지킬은 하이드로 변신하여 마음껏 쾌락을 추구하고 다시 아무런 가책 없이 점잖은 지킬로 되돌아온다.

지킬이 변신한 하이드의 외양은 기형으로 묘사된다. 그는 50대인 지킬보다 훨씬 젊지만 키가 작고 추악한 모습이다. 흥미로운 건 거울에 비친 하이드의 모습을 본 지킬의 반응이다. 그는 추악한 모습에도 하이드에게 혐오감 대신에 기쁨을 느낀다. 지킬과 하이드의 대립과 충돌은 적어도 하이드를 처음 대면한 지킬의 의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하이드를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인물로 보는 사람들은 지킬의 지인으로 등장하는 다른 남성들이다.

소설의 서두에서 지킬의 법률대리인이기도 한 변호사 어터슨은 먼 친척 엔필드와 산책을 하다가 런던 번화가의 뒷골목 어느 문앞에 이르러 기이한 사건 이야기를 듣는다. 한밤중에 키가 작은 한 사내가 어린 여자아이와 길모퉁이에서 부딪치자 아이의 몸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는 것이다. 엔필드는 사내를 뒤쫓아가 붙잡아서는 보상금을 물게 했는데 그가 골목의 문으로 들어가서 들고 온 수표에는 예의범절의 모범으로 유명한 명사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바로 지킬의 서명이었고 사내는 하이드였다. 이 얘기를 꺼내며 엔필드는 하이드에 대해 아주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뭔가 기형이거나 불구인 게 틀림없어”라고 단정짓는다. 이런 식의 혐오감은 지킬을 제외하고 소설에 등장하는 상류사회 중년 남성들이 공유하는 느낌이다. 그들은 지킬 박사를 동료로서 존경하지만 하이드는 배척한다.

스티븐슨의 이 ‘기이한 사례’에는 두 가지 대립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물론 지킬과 하이드의 대립이다. 그리고 또 다른 대립은 하이드를 보는 시선의 대립이다. 이 두 번째 대립에서 지킬은 남성들의 연대로 구축된 동성사회에서 다른 남성들과 대립하며 배제된다. 영국에서는 1885년 수정형법을 통해서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한다(실제로 1895년 오스카 와일드는 이 법의 적용을 받아 처벌된다). 그 직후에 발표된 이 소설에서 동성애에 대한 영국 상류사회의 공포와 혐오를 읽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니다. 동성애를 남성들의 동성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된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의 모습이 스티븐슨의 이 문제작에는 투영되어 있다.

19. 08. 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밀리를 위한 꽃이 필요해
장미가 아닌 야생초
절벽 위에 핀 야생초 헤더꽃
그게 히스클리프
캐서린을 위한 히스클리프는
에밀리를 위한 꽃이기도 해
에밀리에게 바치는 꽃이어야 해
오빠의 장례식에서 비를 맞고
폐결핵으로 죽은 에밀리
서른에 죽은 에밀리
에밀리가 세상을 떠나던 날
살럿이 에밀리에게 건넨 꽃
히스클리프
절벽에서 꺾은 야생초 헤더꽃
히스클리프를 창조해낸
에밀리에게 어울리는 꽃
헤더꽃이 만발한 황야에 가볼 수 있을까
폭풍이 휘몰아치는 언덕에 서볼 수 있을까
에밀리를 위한 꽃을 들고서
에밀리를 기억하기 위해서
에밀리가 사랑한 개 키퍼처럼
에밀리를 애도하며 울부짖은 키퍼처럼
수주간 울부짖은 키퍼처럼
에밀리를 위하여
에밀리만을 위하여
잠시 절벽에 서볼 수 있을까
절벽 위에 핀 헤더꽃처럼
히스클리프
에밀리를 위한 히스클리프처럼
에밀리만을 위한 야생초처럼
에밀리 브론테를 위하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9-22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너는 라스콜니코프다
전당포에 가는 게 너의 일과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는 게 
너의 주특기
너는시베리아로 가야 하지
너는 소냐와 함께
그런데 시베리아의 아침은 왜
이리 더딘가
라스콜니코프는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아침은 아직 준비가 안된 표정이다
더 멀리 가야 했던가
블라디 블라디보스토크
오늘의 너는 어제의
너가 아니다
너는 라스콜니코프가 아니다
너는 대학생이 아니다
도끼를 언제 손에 쥐어봤던가
도낏자루가 썩는 줄 몰랐던가
블라디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의 어둠은 끝나지 않았다
너는 전당포에 가지 않았다
너는 도끼를 들지 않았다
너는 그러고도 소냐와
너는 시베리아로 가지 않았다
더 멀리 가야 했던가
라스콜니코프는 왜 이리
늦는가 너는
누구인가
너의 여권은 어디에
도끼는 반입할 수 없다
도끼는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다
너는 시베리아로 가야 한다
더 멀리 가야 했던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모맘 2019-08-2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도 같습니다!!!
로쟈쌤은 어제의 로쟈가 되고 싶으셨던(싶으신)거죠?ㅎㅎ
(쌤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건지
제 멋대로 까불어봅니다ㅎㅎ)

로쟈 2019-08-27 22:52   좋아요 0 | URL
대학생 때 읽고, 이젠 더이상 대학생이 아닌 나이.^^
 

강의 공지다. 이번 가을에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고전순례: 헤르만 헤세 다시 읽기'를 진행한다. 몇년 전 고전강의를 진행한 바 있어서 이번이 두번째다. 헤세를 주제로 고른 건 <데미안> 출간 100주년을 고려해서다. 일정은 10월 15일부터 11월 26일까지 격주 화요일(오후4시30분-6시30분)이다(신청은 오늘부터 가능하다. https://www.acc.go.kr/board/schedule/citizen/3115).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헤르만 헤세 다시 읽기


1강 10월 15일_ 헤세, <페터 카멘친트>



2강 10월 29일_ 헤세, <데미안>



3강 11월 12일_ 헤세, <황야의 이리>



4강 11월 26일_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19. 08. 2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니다 2019-08-2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뵈요...

로쟈 2019-08-28 19:01   좋아요 0 | URL
네.^^
 

제목을 적고 보니 ‘페이퍼‘보다는 ‘마이리스트‘에 적합해 보인다. 평전 시리즈인데 이번에 데리다 평전이 나왔다. 브누아 페터스의 <데리다, 해체의 철학자>(그린비). 헤아려보니 이번 가을에 15주기가 된다. 번역본으로는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아마도 프랑스에서도 이 이상의 평전은 없지 않을까 싶다. 책의 의의는 이렇게 소개된다.

˝인종, 출신, 기질 등과 같은 이유로, 또 지나치게 총명하다는 이유로 프랑스 대학가는 물론, 지성계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데리다의 삶의 모든 편린들이 저자 브누아 페터스의 기념비적인 노력으로 이 책에서 오롯이 재현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데리다의 사상에 중점을 둔 ‘지적 평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자 그대로의 ‘평전’, 즉 그의 ‘삶의 기록’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프랑스 지성계의 높은 장벽을 무너뜨리려는 데리다의 비장하고도 처절한 투쟁의 숨결과 흔적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자연스레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도 눈길이 가게 하는데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가 첫 권이었다. <데리다>를 포함하여 현재까지 일곱 권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역시 압권은 <마르셀 모스>와 <데리다>이지 않을까 싶다. <모스>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데리다>는 바로 손에 들고 싶다. 강의가 가능한 데리다의 책(혹은 비평)이 어떤 게 있을지도 생각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