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베스트셀러가 아님에도 여러 번 출간되는 책이 있다. 따로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걸 또 여러 권 갖고 있는 독자로서는 별도의 주목을 하게 된다. 이번주에 나온 책 가운데는 폴 존슨의 <지식인의 두 얼굴>(을유문화사)과 앨런 재닉의 <비트겐슈타인과 세기말 빈>(필로소픽)이 그에 해당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저술가 폴 존슨의 <지식인>은 을유문화사에서만 세번째다. 제목은 <벌거벗은 지식인들>에서 <지식인의 두 얼굴>로 바뀌었고 이번에 다시 표지가 바뀌었다. 내가 제일 처음 읽은 건 한언출판사에서 상, 하 두권의 <지식인들>로 1993년에 나왔었다. 이게 몇 년인가. 27년 전이다. 이 번역본은 <위대한 지식인들에 관한 끔찍한 보고서>(1999)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더 나왔다가 절판되었고, 같은 해에 을유문화사판 <벌거벗은 지식인들>이 나왔다. 아마 판권이 옮겨간 듯싶다. 이 을유판도 개정 번역판으로 지닌 2005년에 <지식인의 두 얼굴>로 나왔다가 이번에 15년만에 다시 개정판이 나온 것. 원저는 1988년에 나온 책이다. 


"‘지식인의 탄생과 기원’을 살피며 시작하는 이 책은 근대적 지식인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사상과 위배되는 도덕적 모순을 보여 왔는지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탐사한다. 그 사례로 등장하는 루소, 셸리, 마르크스, 입센, 톨스토이, 헤밍웨이, 러셀, 브레히트, 사르트르, 촘스키 등은 단순히 '지식을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거대한 관념 체계를 형성하고 교조와 명령, 권유로 일반인들을 한쪽으로 몰아가며 세상을 움직이고자 한 사람들이다. 지식인의 위대한 성취와 함께 실제 삶에서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측면을 낱낱이 파헤친 이 책은 이들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전면 재검토하면서 그들의 사상이 인류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는 일각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한다."
















저자는 루소부터 다루고 있지만, '지식인'이란 개념이 탄생한 계기는 드레퓌스 사건이므로 원조 지식인은 에밀 졸라여야 한다(그리고 러시아 인텔리겐치야까지 포함하면 19세기 러시아 사상가들도 다룰 수 있다). 졸라를 제쳐놓은 것은 특이한 점인데, 아무리 훑어도 흠잡을 만한 구석이 없었던 것일까. 지식인의 이면을 다루기 전에 그 공도 함께 언급하는 것이 공정했을 듯싶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졸라의 <전진하는 진실>(은행나무)도 같이 보는 게 좋겠다.
















앨런 재닉과 스티븐 툴민 공저의 <비트겐슈타인>도 처음 나왔을 때 제목은 달랐다.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이제이북스)이었다가 2013년에 출판사를 옮기며 <비트겐슈타인과 세기말 빈>이 되었고, 이번에 7년만에 다시 리커버판이 나왔다. 결코 베스트셀러가 될 책은 아닌데, 그래도 꾸준히 찾는 독자가 있는 듯싶다. 
















비트겐슈타인이 관련서로 그렇게 여러 번 나온 책으로는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필로소픽) 정도가 기억난다. 거의 다른 사례는 없지 않을까 싶다.


어찌하다 보니 나는 이 책들을 모두 갖고 있다. 세 번씩 나오는 것도 특이하지만, 그걸 다 갖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은 아닐 듯하다...


20.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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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20-01-2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인과 관련한 수업도 해봤으면 좋겠네요^^공부하고 싶은 것은 많고 세월은 너무 잘 가고~

로쟈 2020-01-23 19:58   좋아요 0 | URL
네, 책은 무한한데, 인생 짧네요.~

2023-04-17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루소냐 볼테르냐

14년 전에 쓴 글이다. 루소에 대해서는 최근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읽으려 하기에 다시금 참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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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6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지난주 강의에서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다시 읽은 김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비교해서 적었다...
















주간경향(20. 02. 03) 결혼이란 속임수에 불과, 결말은 결국 파국 


<오만과 편견>(1813)의 작가 제인 오스틴은 열렬한 소설 독자이기도 했다. 비록 오스틴이 사망하고 반세기 뒤에나 나오기 때문에 불가능했던 일이지만 근대 서구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두 작가의 독자로서 궁금하다.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대작뿐 아니라 특히 결혼을 주제로 다룬 문제적 중편 <크로이체르 소나타>(1889)를 오스틴은 어떻게 읽었을까. 더 나아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후에 오스틴 소설은 연애와 결혼이란 주제를 어떻게 다루게 될까. 


한 독자의 호사가적 흥미만은 아니다. 서로 분리되어 있던 ‘연애’와 ‘결혼’을 소설적 서사로 결합한 공로가 오스틴에게 있다면 톨스토이는 이를 다시금 시빗거리로 만들고 있어서다. 오스틴부터 톨스토이까지가 연애(결혼)소설의 한 사이클이라고 할까. 이야기는 러시아 횡단열차에서 합석한 한 인물이 결혼을 화제로 한 다른 승객들의 대화에 끼어들면서 시작된다. 사랑이 결혼을 신성하게 만든다는 한 부인의 말에 냉소하면서 그는 이렇게 대꾸한다. “평생을 한 여자 또는 한 남자만 사랑한다는 것은 양초 하나가 평생 탄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는 결혼이란 그저 속임수에 불과할 뿐이어서 파국적 결말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실례가 ‘아내를 살해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서 그 자신이다.


이어서 펼쳐지는 것은 주인공 포즈드니셰프가 털어놓는 자기 인생과 결혼생활의 전모다. 지주이자 귀족 계급에 속한 인물로서 그는 젊은 시절 방탕을 일삼았다. 하지만 그것이 부도덕하거나 개인적인 일탈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적당한 방종과 방탕은 상류 사교계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상류층의 한 여성과 만나서 결혼한다. 그는 결혼이 상류사회의 결혼시장에서 벌어지는 거래로서 매매춘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유곽의 여성과 사교계의 여성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믿어서다. “엄밀히 말해서 짧은 기간의 창녀는 경멸을 당하고, 긴 기간의 창녀는 존경을 받는 거지요.” 

작품을 쓸 무렵 톨스토이는 예순에 접어든 나이였고, 선한 삶이라는 인생의 목적에 욕망이 가장 큰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포즈드니셰프의 말을 빌리자면, 귀족들은 농부들과 달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음식을 과잉 섭취한다. 과도하게 섭취된 열량은 정욕을 부추기게 되고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계급적 생활조건 때문에 상류계급의 결혼생활은 불가피하게 무절제한 방종과 서로 간의 반목으로 치닫는다. 

적대적인 감정이 쌓여가던 중 포즈드니셰프는 아내와 바이올린 연주자의 관계를 의심하고 급기야는 질투심에 아내를 칼로 찔러서 살해한다. 그 자신의 토로에 따르면 칼로 아내를 찌르기 훨씬 이전에 그는 아내를 죽였다. 욕망의 대상으로만 간주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을 포함해 인류는 진리와 선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협력자가 되어야 하지만 남성은 쾌락을 얻을 궁리를 하고 여성은 그런 남성의 욕망을 부추겨서 이용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포즈드니셰프의 살인은 우발적이지만 동시에 필연적이다. 두 주인공이 서로의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의 입구에 들어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세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인가!

20.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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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셰익스피어 학자 스티븐 그린블랫의 책이 한권 더 나왔다. <폭군>(비잉). ‘셰익스피어에게 배우는 권력의 원리‘가 부제. 대략 내용이 어림되는 책이다.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홀베르그상 수상자이자 저명한 셰익스피어 연구자 스티븐 그린블랫은 셰익스피어가 독재가 만연한 혼란스러운 시대를 간접적으로 묘사한 희곡들을 탐구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독재 체제의 사회적 원인과 심리적 요인을 탐구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겨난 결과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리처드 3세, 맥베스, 리어 왕, 코리올라누스와 같은 인물들의 심상과 그들이 다스린 국가를 분석하고, 셰익스피어가 절대 권력을 탐했던 독재자들의 욕망과 이로 인해 벌어진 비극을 묘사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지난가을 영국문학기행 때 기억에는 스트랫퍼드의 셰익스피어문학관에서 구입한 책이다. 번역돼 나오면 좋겠다 싶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 그린블랫의 다른 책으론 평전 <세계를 향한 의지>(민음사)가 먼저 나왔었다. 이런 수준 학자의 책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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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ia 2020-07-01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www.facebook.com/groups/jolggu/permalink/650590558865206/
문제가 많은 책이자 출판사로 보입니다.
 

생전에 수천 쪽의 에세이를 남겼다고 하므로 전체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는 않는데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이 5권까지 출간되었기에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2018년 3월에 1-3권이 나왔고, 지난 연말에 4, 5권이 나왔다. 픽션보다 논픽션이 장관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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