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지젝과 데리다 사이

16년 전에 올린 글이다. 때마침 몇년 적조했던 지젝을 다시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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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시장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베스트셀러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저자 정재찬 교수의 신작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인플루엔셜)을 보다가 아주 오랜만에 김종삼 시와 만났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출전이 시집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여서 확인해보니 정말 오래 전에 서점에서 본 적이 있는 시집(대학 구내서점에서였을 것이다).

나는 시선집 <북치는 소년>(민음사)과 <김종삼 전집>(청하)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사이에 두 종의 전집이 더 나왔다. 한권은 무려 1000쪽이 넘는 ‘정집‘이다. 2018년에 나온 <김종삼 정집>(북치는소년). 출판사 이름이 아예 북치는소년이다! 당장은 구입할 여유가 없지만 현대시 강의에서 김종삼 시도 다룰 기회를 한번 만들어야겠다.

내가 최초로 만난 김종삼의 시는 ‘서시‘다. 학부 1학년때 기숙사 동기 가운데 국어교육과 학생이 있었는데 방인가 사물함인가에 복사용지로 프린트한 ‘서시‘를 붙여놓았었다.

헬리콥터가 지나자
밭이랑이랑
들꽃들이랑
하늬바람을 일으킨다
상쾌하다
이곳도 전쟁이 스치어 갔으리라

흔히 ‘여백과 잔상의 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김종삼의 시세계를 잘 응축해서 보여준다. 그에 비하면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는 평범한 시다. 표제작으로도 삼았던 건 시에 대한 그의 자세나 태도를 잘 대변해서였을 것이다. 내게 김종삼은 그보다 더 상쾌한 시를 쓴 시인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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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대작가 옌롄커의 소설이 한권 더 번역돼 나왔다. 2013년작 <작렬지>(자음과모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필두로 한 그의 작품은 대략 7-8편 가량 번역되었고 나는 강의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 더하여 <딩씨 마을의 꿈>과 <사서>를 읽었다. <작렬지>를 포함해 아직 서너 권의 ‘여유분‘이 있는 셈.

˝해마다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호명되는 옌롄커의 신작 소설. 작가가 직접 역사지리서의 편찬을 맡아 작성한 것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자례’라는 허구의 마을이 점차 대도시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딩씨 마을의 꿈>이 에이즈에 점령당한 지독한 현실을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열두 살 소년의 시선으로 그려낸 리얼리즘과 판타지가 결합된 작품이라면, <작렬지>는 작가 옌롄커가 자신의 고향 땅인 ‘자례’의 역사지리서를 맡아 쓰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의 작품이다. 이처럼 허구를 가장한 사실(중국의 현실)을 통해 작품과 현실을 더욱 단단히 밀착시킨다.˝

중국의 현실을 소설적 서사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물음 혹은 과제와 관련하여 나로선 가장 주목하는 작가가 옌롄커다(위화와 쑤퉁의 소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 모든 시도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더 낫게 실패하는 사례를 옌롄커는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작렬지>에도 기대를 갖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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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마다 루틴으로 하는 일로 책들을 가방에(요즘은 백팩이다) 챙겨서 카페로 나왔다. 동네에서 자주 다니는 카페는 네댓 군데. 그중 음악이 작게 나오는 카페를 요즘 선호하고 있다(아무래도 소리가 독서에는 방해가 되기에).

챙겨온 대여섯 권 가운데 먼저 꺼내든 건 알랭 바디우의 <행복의 형이상학>(민음사)이다. 2016년말에 나온 책으로 그때 손에 들었다가(지금 보니 서론까지는 밑줄이 그어져 있다) 보류했었다. 이유는 영어본이 없었기 때문인데(번역본을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영어본을 참고해야 얼마간 해결할 수 있어서 바디우를 읽을 때는 필히 챙겨놓는다. 까다로운 철학서들을 읽을 때의 대처법이다) 그 영어본이 지난해에야 나왔고 나는 지난주에 배송받았다. 지연된 독서이지만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 영어본 제목은 그냥 <행복>이다.

바디우의 전작들을 접해본 독자라면 얼마간 예상할 수 있을 테지만 통상적으로 기대할 만한 행복론과는 다른 얘기가 나온다. 친절하게 제목을 붙였다면 ˝철학은 행복의 형이상학이다˝와 ˝행복이란 유한성의 중단이다˝라는 두 가지 명제를 적당히 떠올리게끔 했을 터인데, 생각해보니 쉽지 않아 보인다. 영어판 제목이 그냥 ‘행복‘으로 정해진 이유일지도. 바디우의 요지는 무엇인가. 서론의 단언을 발췌 인용한다.

˝우리 철학자들은 참된 삶을 옹호하며, 그런 것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 모든 회의주의와 견유주의와 상대주의 그리고 무익한 빈정거림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 책은 이러한 확신에 관한 나 자신의 해설이다.˝

바디우 책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사랑 예찬>(길)을 언젠가 강의에서 다룬 적이 있다. <행복의 형이상학>도 독파한다면 바디우 입문서로 강의에서 읽을 수 있겠다. 또다른 책으로는 <오늘의 포르노그래피>(북노마드)가 <행복의 형이상학>과 마찬가지로 보류도서였다. 역시나 영어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종종 한국어판이 먼저 나온다) 사정이 달라졌는지 확인해봐야겠다...

P.S. 확인해보니 <오늘의 포르노그래피>은 지난 1월에 나왔고 나는 바로 주문했다. 군말을 덧붙이는 김에 ˝철학은 행복의 형이상학˝이라는 정의를 보완하고자 한다. 그에 덧붙여서 바디우는 이렇게 정의한다. ˝철학이란 혁명의 욕망 그리고 합리성에 대한 요구의 결합이다.˝ 다시 강조하면 바디우에게 철학은 (1)혁명의 욕망과 (2)합리성에 대한 요구, 두 가지의 결합이다. 이러한 철학에 의해서 우리는 유한성과 단절하게 되며 실재적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바디우가 말하는 ‘행복의 형이상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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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개인‘과 함께 근대사회뿐 아니라 근대문학 이해의 핵심 주제다. 자연스레 대중의 등장과 그 형상화에 대해서 강의에서 빈번하게 강조하는 편이다. 대중과 관련한 역사서나 사회학적 분석에도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데 독일 학자들의 신작 <새로운 대중의 탄생>(21세기북스)은 그런 면에서 관심도서일 수밖에 없다.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는가‘가 책의 화두.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대중에 관한 고전적 이론, 곧 귀스타브 르봉이나 가브리엘 타르드의 대중론에 맞지 않는 ‘새로운 대중‘이 등장했고 이에 대한 이론적 해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이 주제의 선구적인 책이 르봉의 <군중심리>(1895)다). ‘새로운 대중‘과 대비하여 전통적인 대중을 저자들은 ‘포퓰리즘적 대중‘이라고 부르고 그것이 현재는 새로운 대중과 공존한다고 본다. 차이점은 새로운 대중에서는 개인이 집단적 주체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존된다는 것(물 속의 물방울처럼?). 이러한 새로운 현상을 포착하기 위한 이론과 관점을 모색해보려는 게 저자들의 의도다. 동시에 독자로서도 그 결론에 관심을 갖게 된다.

원저는 바로 지난해에 나왔다. 대중이론에 관해서라면 ‘전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서평거리가 될 만한 책을 찾다가 후보 중의 하나로 고른다. 혹은 서평강의에서 다룸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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