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의 시간정치‘라는 부제 때문에 주목하게 되는 책은 김학선의 <24시간 시대의 탄생>(창비)이다. 저자는 국제지역대학원의 한국학 전공자이고 책은 박사학위논문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 ‘시간정치‘라는 개념에 끌린 건 지난해 나온 엘리자베스 코헨의 <정치는 어떻게 시간을 통제하는가?>(마티)가 생각나서다. 여차하면 서평강의에서 다루려고 했던 책이다. 먼저 코헨의 책에 대한 소개.

˝이 책은 시간이 민주적 합의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정치 행위자들이 권리를 거래할 수 있게 해주는 대단히 중요한 ‘재화’라고 주장한다. 또한 국가가 시민들의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규범적 분석을 통해 국가가 일부 사람들의 시간을 남용하고 차별하는 경우, 시간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사람들이 겪는 시간적 불평등에 주목한다. 이 책은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시간이 가지는 의미를 새로이 생각해보게 해줄 것이다.˝

‘시간의 정치적 가치와 불평등에 관한 분석‘이라는 부제가 주제와 문제의식을 잘 집약하고 있다. <24시간 시대의 탄생>은 좀더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연구다.

˝1980년대의 시간정치를 분석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시간이 사회발전과 자기개발을 위한 대상이 되는 과정, 즉 신자유주의적 시간의 기원을 탐색하는 책이다. 저자 김학선은 1980년대에 하루 24시간이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자원으로 적극 개발되고 활용되는 점에 주목하며 통치규율, 자원으로서의 시간, 국민국가의 시간제도 등의 측면에서 1980년대의 시간정치를 고찰한다.˝

시간정치라는 개념과 문제틀이 1980년대(제5공화국 내지 전두환정권기)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줄지 궁금하다.

시간정치, 내지 ‘시간과 정치‘와 관련해서는 랑시에르의 <모던 타임스>(현실문화)도 참고도서다. ‘예술과 정치에서 시간성에 관한 시론‘이 부제. 이와는 별도로 랑시에르의 문학론 관련서들을 엊그제부터 찾는 중이다. 랑시에르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론을 포함하여 상당 분량의 문학론을 썼다. 그에 관한 연구서를 포함해 대부분의 책을 갖고 있는데 중구남방으로 흩어져 있다. 동원령을 발동하면 모여들까. 책을 제대로 부리지 못하는 것이 장서가의 고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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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쉬게 되었어도 피로감은 여전하고(관성적 피로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책탐은 늘었다. 이론적으로는 전보다 몇배 더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할 수 있지만 막상 실제 독서시간이 그만큼 늘어나지는 않았다. 효율이 떨어져서 그런지도. 다만 이렇게 페이퍼를 적는 일은 부쩍 늘었다. 유일한 변화인지도 모른다.

오늘 배송을 기다리는 책은 이언 뷰캐넌의 <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그린비)다. 말 그대로 <안티 오이디푸스> 가이드북. 원저를 확인해보니 존 휴즈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입문>(서광사)와 마찬가지로 ‘컨티뉴엄 리더스 가이드‘ 시리즈에 속한다(철학 고전 가이드북 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책 대부분이 서광사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번 <안티 오이디푸스>만은 그린비에서 나왔다. 일찌감치 계약을 진행했던 듯싶다.

들뢰즈 입문서는 상당히 많이 나와있는데 그중 일부는 개별 저작의 입문서다. <차이와 반복>에 대해서는 제임스 윌리엄스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라움)이 나와있기도 하다. <차이와 반복>에 대한 해설과 비판을 담고 있다.

이런 이차문헌이 여럿 나올 정도로 들뢰즈는 여전히 많이 읽히는 철학자인가.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를 기다리는 건 ‘오이디푸스‘가 중요한 문학적 테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주제와 관련한 작품도 부지기수이고. 견적이 어느 정도 잡히게 되면 오이디푸스 테마에 대한 강의 내지 <안티 오이디푸스>에 대한 강독을 기획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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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급진 민주평등주의로 가는 길

8년 전에 쓴 서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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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곧바로 릴케를 떠올렸다면 세계문학 독자로서 자격을 인정받을 만하다. 아울러 릴케와 로댕의 듀오그라피,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뮤진트리)까지 떠올렸다면 서평가로서 자격을 갖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책(나는 영어판을 갖고 있다)까지 갖고 있다면 내가 인정할 만한 장서가다.

이번에 나온 <당신은 당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에디투스)는 릴케의 글모음으로 ‘삶을 위한 일곱 개의 주석‘이 부제다. 릴케의 글 일곱 편을 모은 것도 아니다. 흥미롭게도 모두 편자가 골라서 엮고 제목까지 붙였다. 릴케의 글을 재료로 한권의 책을 창조해낸 것. 보통 ‘초역‘이라고 나온 책들이 이런 방식으로 엮은 것이기에 생소한 건 아니다(가장 많이 나와있는 건 니체의 책이다). 릴케의 산문집으로는 보통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나란히 꽂아둘 만하다.

˝1900년부터 릴케의 작품들을 출간해 온 유서 깊은 인젤 출판사에서, ‘삶’이라는 주제에 대한 그의 문장들을 선별하여 재구성한 산문집이다. 단순한 잠언집이 아니며, 오랫동안 릴케의 문학에 깊이 천착해 왔던 엮은이의 편집이 개입된, 엄연한 하나의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이라는 커다란 주제에 대한 시인의 무수한 답변의 시도들을 한데 엮어, 새로이 일곱 개의 짧은 글로 간추려 낸 일종의 비평적 꼴라주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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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으로 착각할 수 있는 사회학책, 이라고 적으려니 또 마땅찮다. 감정사회학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프시케의숲). 부제가 ‘어느 내향적인 사회학도의 섬세한 감정 읽기‘다. 소개는 이렇다.

˝비평가 김신식 작가의 ‘심정 3부작’ 출간 프로젝트의 첫 번째 책으로, 사회 현실 속에서 ‘감정’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한 기록이다. 모두 5부에 걸쳐 단어 55개를 선별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감정’을 자세히 살펴본다. 탄탄한 감정사회학 연구에 기반을 둔 그의 생각들이 지적인 에세이 형식으로 제시된다.˝

부제만 봐도 사회‘학‘ 책은 아니다. 제목은 몰라도 부제는 보통 출판사에서 붙일텐데, 나 같은 독자는 ‘다소 곤란한 감정‘을 갖게 한다. ‘내향적인‘이란 수식어가 사회학도에게 필요한 것인지 싶어서다. 설사 내향적인 성격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성격이란 학문과 무관하거나 참고사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섬세한 감정 읽기‘라는 표현도 생각하면 군더더기인데, ‘투박한 감정 읽기‘의 사례가 있어야 의미를 가질 터이다. 목차만 보면 책은 55개의 항목의 감정사전에 가까운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같이 떠올리게 되는 책은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마음산책)과 고종석의 <어루만지다>(마음산책) 등이다(아, 강신주나 아들러의 <감정수업>도 있었구나!). 뒤늦게 발견했는데 책에는 김소연 시인도 (문화연구자 엄기호와 함께) 추천사를 얹었다.

˝그 누구도 나를 목적 없는 선의로 대할 리 없으며, 나의 순수한 선의는 자주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 것. 언제나 속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포커페이스를 할 것. 속지 않고 살기 위해 타인에겐 되도록 의구심을 품을 것. 언젠가부터 내가 장착하게 된 모토이다. 이 몹쓸 모토 덕분에 내 자신을 나는 더 잘 보호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래봤자 아주 미미하게 나아졌을 뿐이다. 그에 비해 감정노동의 강도는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이뿐이면 좋으련만, 하루하루 온갖 말들로 도처에서 받는 상처는 쌓여간다. 받은 상처의 반대편에는 나도 모르게 내가 준 상처 또한 수북할 것이 분명하다. 타인에게 상처를 줬을까봐 내가 한 말들을 뒤늦게 복기하는 괴로움. 당신은 어떠신가. 만약, 당신도 나와 비슷한 피로감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을 읽어보길 권한다.˝

아무래도 이 책은 내향적인 독자들을 위한 것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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