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의 영문학자이자 흥미로운 이론가 프랑코 모레티의 신작이 나왔다. <그래프, 지도, 나무>(문학동네). ‘문학사를 위한 추상적 모델‘이 부제인데, 그래프와 지도, 그리고 나무가 그 모델들이다.

˝프랑코 모레티는 문학사 연구 분야의 독보적인 학자다. 그는 19~20세기 세계문학사, 독서사, 소설과 내러티브 이론 분야에서 폭넓은 시야와 심도 있는 분석을 제시해왔다. 특히 모레티 연구의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점은 문학사 연구에 정량분석을 도입,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래프, 지도, 나무>에서 프랑코 모레티는 계량사학에서 그래프를 지리학에서 지도를, 진화론에서 계통도를 끌어와 방대한 문학사를 정리하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펼쳐 보인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판단 대신에 데이터에 대한 정량분석을 통해서 문학사를 구성해보겠다는 참신하면서도 파격적인 발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실제 사례가 충분한 설득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대인적 문학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구자들에겐 신선한 자극이 될 만하다.

‘신간‘이라고 적었지만 원저는 2005년에 나왔다. 기억에는 그 전후로 저자가 방한하기도 했었다. 강연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그래프, 지도, 나무‘였던 것 같다.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어렴풋한 기억이다. 근대소설론의 집성이라고 할 엔솔로지 <소설>(전2권)을 포함해서 모레티의 책은 대부분 갖고 있다. 번역도 이번 책을 포함하면 네권이 나와있는데 <세상의 이치>와 <근대의 서사시>는 절판된 상태. 그만큼 문학이론서의 독자층이 줄어들었다는 뜻인가.

이번 책을 옮긴 이재연 교수는 실제 모레티의 방법론을 한국근대문학사에 적용한 논문도 발표한 바 있다(어제 프린트아웃했다). 소위 디지털인문학 분야의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데 ˝디지털 인문학 이론과 사례연구에 관심이 있고, 매체를 통한 한국근대문학의 형성을 디지털 문학 방법론으로 살펴보는 저서를 집필중˝이라고 소개된다. 조만간 읽어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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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택배로 받은 책의 하나는 샬럿 메리 브레임의 <여자보다 약한>(필맥)이다. 책은 작년말에 나왔는데, 며칠 전에야 존재를 알게 되어 주문했었다. 저자나 작품 제목은 생소하다. 샬럿 메리 브레임(1836-1884)는 19세기 영국 여성작가로 생계를 위해 다작의 작품을 쓴(200편 이상이라 한다) 대중소설가다. 빅토리아 시대 대중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한 읽을 일이 없을 작가인데, 문제는 조중환의 번안소설 <장한몽>의 원작 <금색야차>의 저본이 된 소설이라는 점. 
















<금색야차>(1897-1903)는 일본 메이지시대 소설가 오자키 고요(1868-1903)의 최고 히트작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로 번안하여 1913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것이 <장한몽>이다. <금색야차>와 <장한몽>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는데, 오자키 고요가 <여자보다 약한>의 영향을 받아 <금색야챠>를 썼다는 사실은 다소 늦게 밝혀졌다. 그건 오자키의 기억 착오 때문인데, 그가 <금색야챠>를 쓰면서 힌트를 얻은 작가와 작품을 대면서, 샬럿 브레임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미국 여류작가'로, <여자보다 약한>은 <백합>(미국 작가 앨리스 킹 해밀턴의 소설)이란 작품으로 적어놓았다. 짐작에 그 시기 미국에서 나온(<여자보다 약한>도 작가 사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고) 대중소설들을 뒤죽박죽으로 읽다가 착상한 게 아닌가 싶다.  


<여자보다 약한>이 <금색야차>의 유일한 저본은 아니지만 연관성은 가장 높은 작품이라 한다. 아무튼 한국적 신파(성)의 원형을 제공한 <장한몽>을 이해하기 위해서, <금색야차>를 읽을 필요가 있고, 또 <금색야챠>를 읽기 위해서는 <여자보다 약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 나로선 근대문학을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사례여서 관심을 두고 있다. 한데, 어렵사리 <여자보다 약한>을 읽어보게 되었지만, 정작 <금색야챠>와 <장한몽>은 절판된 상태다. 범우사판이 유일본이었던 <금색야챠>는 지난해말 '아시아 교양총서'의 하나로 다시 나왔는데, 분량상 현재는 상권만 선보인 상태. 게다가 연구소에서 펴내는 책이 책값도 비싼 편이다. 대중독자보다는 연구자를 위한 판본인 셈. '한국의 번안소설' 시리즈로 나왔던 <장한몽>도 마찬가지다. 
















한국근대소설사를 이해할 때 나는 번안소설의 의의가 과소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박진영 교수의 책들이 번역과 번안소설의 중요성에 대해서 예외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에서 이광수의 근대장편소설 <무정>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경로는 없다. 중간에 <장한몽> 같은 번안소설이 필수적인 매개로 끼어 있어서다. <장한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인데, 그러다보니 브레임의 <여자보다 약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상세히 살핀 책이 나오면 좋겠다...


20. 0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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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관련서는 거의 매주 출간되고 있기 때문에 뉴스가 되지는 않는데, 그래도 최근에 나온 책 두 권은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99% 페미니즘 선언>(움직씨)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 리인허의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아르테)이다. 페메니즘 관련서는 상당히 많이 갖고 있는 편이지만 한동안 읽게 되지 않았는데(너무 많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여성문학 강의와 관련한 필요도 있어서 다시 손에 들고 있다. 페이퍼를 쓰는 일도 잦아질지 모르겠다. 

















먼저, <99% 페미니즘 선언>. 작성자는 저명한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를 포함한 3인이다. 페미니즘 선언의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 <레즈비언 페니즘 선언>(현실문화)이나 급진 페미니즌 선언서들은 모은 <페미니즘 선언>(현실문화) 등이 앞서 나왔었다. <99% 페미니즘 선언>은 당연하게도 '99%'라는 말에 방점에 찍힌다. 그리고 차별점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99퍼센트의 페미니즘은 여성 혐오와 성 소수자 혐오의 양자택일 싸움을 거부한다. 평생을 일해도 가난한 99% 사람들, 집 안팎에서 자본에 이중 착취당하는 여성들과 생물학적 성에 불응하는 퀴어 LGBTQ+들의 당연한 권리를 위해 싸운다. 이 시의적절하고 불같은 선언으로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세계를 요구하는 페미니즘 혁명이 시작된다."


원서를 구하려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예상대로 전문이 공개돼 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숙독해볼 참이다. 
















그리고 리인허. 중국의 여성 사회학자이자 걸출한 페미니스트를 처음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해봄 중국문학 강의에서 왕샤오보의 <혁명시대의 연애>(창비)를 읽으면서인데, 요절한 천재작가 왕샤오보의 아내가 리인허였다. 왕샤오보와 사별한 이후에 리인허는 트랜스젠더 택시기사와 재혼하여 입양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한다. 그녀의 인생 자체가 '선언적'으로 보인다. 이번에 나온 책은 부제가 '검열의 나라에서 페미니즘-하기'다. '검열의 나라'는 물론 중국을 가리킨다. 


"전 세계 여성 결정권자의 60퍼센트가 중국인이며, 유리천장 문제에서 중국은 꽤나 주목받는 나라다. 그렇다면 중국은 정말 ‘여성우위사회’일까? 유교적 남존여비, 사회주의적 무성화, 개혁개방과 함께 밀어닥친 성 관념의 변화까지 우리와 다른 듯, 닮은 중국의 페미니즘은 어떤 모습일까?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를 통해 살펴본 중국 사회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만나게 된다.

중국 1세대 페미니스트이자 LGBT 운동가인 리인허의 페미니스트로서의 고민과 시선을 담은 책이다. 1950년대 태어난 저자는 전통적인 ‘남존여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소거된 ‘여성’과 사회를 지배한 ‘성 엄숙주의’, 개혁개방 이후 자유주의적 성 관념이 유입되기까지 전복의 전복을 거듭한 중국의 역사, 문화, 사회적 토양에서 지속적으로 여성과 성소수자의 삶을 고찰하며 목소리를 내 왔다. 언제나 시대와 불화했던 이 전위적 페미니스트의 에세이는 그 다양한 부침의 결과물들이 상존하는 중국의 사회의 정경을 포착한다."


지난해 강의시에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는데, 리인허의 책으론 <중국여성의 성과 사랑>(동방미디어)이 진작에 번역됐었다. 중국에서는 1996년에 나오고 번역본 출간은 1997년이다. 현재는 절판. 왕샤오보의 작품들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더 널리 알려져서 번역본이 더 나오면 좋겠다...


20. 0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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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세계음악계의 최대 이슈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 한다(각종 음악회도 예정돼 있을 텐데, 이 또한 코로나 사태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다). 출판계에서도 베토벤 도서가 연이어 나오고 있는데, 몇 권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최근에 나온 책들과 재작년에 나온 얀 카이에르스의 평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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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절망의 심연에서 불러낸 환희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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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

12년 전에 쓴 리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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