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택배로 받은 책의 하나는 샬럿 메리 브레임의 <여자보다 약한>(필맥)이다. 책은 작년말에 나왔는데, 며칠 전에야 존재를 알게 되어 주문했었다. 저자나 작품 제목은 생소하다. 샬럿 메리 브레임(1836-1884)는 19세기 영국 여성작가로 생계를 위해 다작의 작품을 쓴(200편 이상이라 한다) 대중소설가다. 빅토리아 시대 대중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한 읽을 일이 없을 작가인데, 문제는 조중환의 번안소설 <장한몽>의 원작 <금색야차>의 저본이 된 소설이라는 점. 
















<금색야차>(1897-1903)는 일본 메이지시대 소설가 오자키 고요(1868-1903)의 최고 히트작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로 번안하여 1913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것이 <장한몽>이다. <금색야차>와 <장한몽>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는데, 오자키 고요가 <여자보다 약한>의 영향을 받아 <금색야챠>를 썼다는 사실은 다소 늦게 밝혀졌다. 그건 오자키의 기억 착오 때문인데, 그가 <금색야챠>를 쓰면서 힌트를 얻은 작가와 작품을 대면서, 샬럿 브레임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미국 여류작가'로, <여자보다 약한>은 <백합>(미국 작가 앨리스 킹 해밀턴의 소설)이란 작품으로 적어놓았다. 짐작에 그 시기 미국에서 나온(<여자보다 약한>도 작가 사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고) 대중소설들을 뒤죽박죽으로 읽다가 착상한 게 아닌가 싶다.  


<여자보다 약한>이 <금색야차>의 유일한 저본은 아니지만 연관성은 가장 높은 작품이라 한다. 아무튼 한국적 신파(성)의 원형을 제공한 <장한몽>을 이해하기 위해서, <금색야차>를 읽을 필요가 있고, 또 <금색야챠>를 읽기 위해서는 <여자보다 약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 나로선 근대문학을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사례여서 관심을 두고 있다. 한데, 어렵사리 <여자보다 약한>을 읽어보게 되었지만, 정작 <금색야챠>와 <장한몽>은 절판된 상태다. 범우사판이 유일본이었던 <금색야챠>는 지난해말 '아시아 교양총서'의 하나로 다시 나왔는데, 분량상 현재는 상권만 선보인 상태. 게다가 연구소에서 펴내는 책이 책값도 비싼 편이다. 대중독자보다는 연구자를 위한 판본인 셈. '한국의 번안소설' 시리즈로 나왔던 <장한몽>도 마찬가지다. 
















한국근대소설사를 이해할 때 나는 번안소설의 의의가 과소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박진영 교수의 책들이 번역과 번안소설의 중요성에 대해서 예외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에서 이광수의 근대장편소설 <무정>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경로는 없다. 중간에 <장한몽> 같은 번안소설이 필수적인 매개로 끼어 있어서다. <장한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인데, 그러다보니 브레임의 <여자보다 약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상세히 살핀 책이 나오면 좋겠다...


20. 0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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