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매경이코노미(1636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마르틴 부르크하르트의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의 철학>(알마, 2011)를 거리로 삼았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 들었지만 의외의 재미를 안겨준 유익한 책이다. 원제는 '위대한 사상의 사소한 역사'이고, '위대한 생각들의 소사전' 정도로 규모에 맞는 제목이다. 독립적인 항목들이 연대기적으로 배열돼 있는데, 쓰다 보니 첫 항목인 'A. B. C. D.' 소개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어떤 용도의 책인지는 말해줄 듯싶다.

 

 

 

매경이코노미(11. 12. 21)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꼭 필요한 나만의 철학

 

철학은 어떤 쓸모가 있을까? 프랑스 인기 만화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의 주인공 오벨릭스는 철학이라면 코웃음을 치는 캐릭터다. 로마군과 싸우는 갈리아족의 덩치 큰 장사인 그의 관심사는 맛있는 것 아니면 로마군에게 던질 바위 따위다. 한데 어느 날 연극 무대에 서게 됐다.

 


관객이 놀랄 만한 메시지를 던져보라는 감독 주문에 오벨릭스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생각나는 건 이 한마디뿐이었다. “로마, 이 허튼 개자식들아!” 이것이 말하자면 오벨릭스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고 그의 ‘철학’이다. 보통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개똥철학’이다. 사실 평소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연말에 오벨릭스처럼 갑자기 조명을 받는 자리에 서게 돼 뭔가 의미 있는 말을 해야 한다면, 이마에서 진땀이 흐르고 입술이 바짝 마를 지경이라면 어떨까.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의 철학’의 저자 마르틴 부르크하르트는 철학이 바로 그럴 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책은 딱 그런 도움을 주기 위한 용도로 읽힌다. 가볍지만은 않은 성찰을 담고 있으면서도 재미있고 유쾌하다. ‘위대한 사상의 사소한 역사’라는 원제가 비밀을 암시해주는 듯싶은데, 저자는 일단 사상가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접어두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위대한 사상’들은 사정이 좀 다르다.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어도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사상들의 목록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것을 저자는 ‘위대한 사상’이라 부른다. 이 사상들의 ‘사소한 역사’가 비록 ‘쓸모 있는 물건’들과 경쟁이 되진 않겠지만 ‘정신’과 ‘생각’이란 것이 얼마나 괜찮은 것인지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기대다.

위대한 사상에 대한 저자의 독창적인 ‘연대기’는 알파벳에서 시작한다. 알파벳이란 말 자체가 첫 두 글자인 알파(α)와 베타(β)에 따라 지어진 점에서 알 수 있듯 알파벳이란 사상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알파벳만큼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없다. 외계인이 인간에게 선물했다는 설도 있지만 저자가 밝혀주는 ‘사소한 역사’에 따르면, 알파벳의 A는 거꾸로 세워보면 알 수 있듯이 멍에를 쓰고 있는 황소를 그린 글자다. 그리고 B는 여성의 젖가슴을 모방한 글자다. C에 해당하는 감마(γ)는 남성과 여성의 결합, 곧 결혼(가미, Gamie)을 뜻한다. ‘기초’를 뜻하는 ABC는 곧 가정을 꾸미고픈 희망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8세기경에 알파벳이 널리 퍼졌는데, 그리스인들에게 알파벳 배우기 운동은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화 운동이었다. 24개의 알파벳으로 모든 것을 읽고 쓸 수 있게 됐기에 학식은 더 이상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알파벳은 그리스의 자연철학도 가능하게 했다. 몇 개의 철자가 모여 단어를 이루는 것처럼 자연도 더 근본이 되는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고 보게 된 것이다.

알파벳 원리를 자연에도 적용한 것인데 이것이 말하자면 ‘알파벳의 사상’이다. 서양철학의 기원이 그리스 자연철학에서 비롯됐다면 알파벳은 그런 기원을 가능하게 한 ‘기원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도 알파벳은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법이 성문화되면서 독재자라도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없게 됐다. 비록 소크라테스 같은 경우는 철자를 맹신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런 경고조차도 알파벳의 위력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말도 문장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철자로 고정된 기록으로서 철학은 영원이라는 환상마저 일깨워준다.

대략 이런 것이 알파벳의 ‘사소한 역사’다. ‘동전’과 ‘하느님 아버지’로 이어지는 저자의 성찰 목록이 30여가지의 주제를 탐색한 끝에 의도적으로 ‘DNA’를 마지막에 다루는 것은 ‘ABC(알파벳)’와 절묘한 상응을 이룬다. 저자는 DNA 또한 일종의 사상이며 ‘믿음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 허튼 개자식들아!”에서 좀 벗어나고픈 독자들의 상상을 한껏 활성화해준다.

 

11.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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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2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2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는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를 주제로 장기 강의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시즌1'은 '네트워크와 칵테일로서의 한국 문학사'란 제목으로 다섯 차례의 강의가 준비돼 있는데, 지난 28일 1강이 시작됐고 나도 마지막 주에 한 꼭지를 맡아 참여한다.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는 한국문학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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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11. 11. 30) '민족문학'의 궤도로 서술돼 온 문학사… 억압되거나 저평가된 작품은 없었나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되풀이 교육되는 한국 근현대 문학사는 김현, 김윤식, 조동일 등 4ㆍ19 세대가 정립한 문학사다. 이를 테면 1900년대 애국 계몽의 신소설, 1910년대 이광수와 최남선의 계몽주의를 거쳐 20년대는 동인지를 중심으로 낭만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등 여러 사조가 나오다 20년대 후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등장한다는 식. 해방 이후 50년대는 전쟁 체험에 가위 눌린 실존주의, 60년대는 소시민적 감각, 70, 80년대는 민중적 계급적 지향, 90년대는 개인화 경향 등으로 시대별 특징을 꼽고 각 시기 대표 작품을 정전화한다. 이런 문학사 서술 밑엔 민족의식이 시대적 역경 속에서 꾸준히 발전해왔다는 '자생적 근대화론'이 깔려 있다.

하지만 한국 문학이 민족문학이란 하나의 이름 아래서 필연적 궤도를 밟아 진화해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까. 이 서술 속에서 배제되고 억압되거나 저평가된 작가나 작품은 없을까. 이는 4ㆍ19 세대의 문학사를 극복하려는 소장 학자들이 지난 10여년간 끊임없이 던져 온 질문이다.

푸른역사아카데미가 소장 학자들의 이런 문제 제기를 망라한 한국 근현대 문학사 연속 강좌를 마련했다. 28일 첫 강의를 시작으로 매주 월요일 총 25회 진행되는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다. 권보드래 천정환 권명아 이혜령 소영현 정여울 이현우 임태훈 등 문학계 신진 학자들이 강사로 참여했다. 강좌를 기획한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1990년대 이후 탈 담론의 영향 아래서 문학을 풍속론이나 문화사적으로 접근하는 등 문학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지속돼 왔지만, 산발적으로 진행됐던 것도 사실이다"며 "그간의 연구 성과를 한자리에 모아서 새로운 문학과 문학사의 가능성을 탐색하자는 취지다"고 말했다.

28일 오후 서울 필운동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첫 강의에서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문제의식 전반을 짚었다. 그는 기존 문학사 서술에서 1910년대 번안소설에서 시작된 대중소설의 계보, 즉 최독견 김말봉 정비석 최인호 등은 무시되곤 했고, 식민지 시대 한문학이 활발하게 창작 유통되고 고전 소설이 최고의 판매부수를 올린 사실은 외면됐다고 지적했다. 일제 말기의 일본어 작품이나 시ㆍ소설ㆍ희곡 이외의 다양한 글쓰기 역시 배제돼왔다.

권 교수는 특히 1905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개화기 소설 '소경과 앉은뱅이의 문답'이 정말 기존 문학사 서술처럼 애국 의식을 고취시키는 민족주의 텍스트인지, 20년대 초 낭만주의 사조 또는 데카당스(퇴폐주의)가 정말 3ㆍ1운동 실패에 따른 좌절감의 소산인지 등 다양한 물음을 던지며 기존 문학사의 이면을 탐색했다. 그는 "1920년대 초 장발을 한 문학 청년들이 함께 몰려다니며 거나한 술판을 벌이는 낭만적 분위기는 10년대 조선인들의 자족적 성공 모델인 중절모의 '신사'를 거부하려는 의지로 봐야 한다"며 "현실 부정의 퇴폐적 세계로 함몰됐다기보다는 오히려 3ㆍ1운동을 통해서 세계와 맞장을 뜰 수 있다는 의식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4ㆍ19 세대의 문학론ㆍ역사론에 대해 문제제기가 많았으나 그에 비길 만한 문학사와 대안적 역사인식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며 새로운 문학사 서술이 진행형의 과제임을 강조했다.

이어지는 강좌에서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1990년대 장정일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풍기문란의 문학사'를 돌아본다. 또 인터넷 필명 '로쟈'로 잘 알려진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는 지젝이란 프리즘으로 1990년대 한국문학을 탐색하는 등 다양한 담론으로 문학사를 가로지르고 '한국문학사의 저주받은 걸작'이란 이름으로 구체적인 작품도 재발견한다는 계획이다. 문의 070-7539-4822. www.bluehistory.net (송용창기자)

 

11. 12. 11.

 

 

P.S. '지젝이라는 프리즘으로 본 1990년대 한국문학'이란 주제는 주최측의 제안에 따른 것인데,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을 다시 읽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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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에 세명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와 '서평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속강을 한 적이 있다. 이중 '교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내용이 먼저 기사화돼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1).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에 실린 '교양이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풀어주는 형식의 강의였다.

 

 

단비뉴스(11. 12. 10) 당신이 몰랐던 ‘교양’의 비밀

 

모든 질문이 누구에게나 중요한 건 아니다

“어우, 저 사람 교양 없어.” “나, 교양 있는 여자에요.” 우리는 누군가와 개인적인 친분을 맺을 때 ‘교양’의 유무를 중요한 잣대로 사용한다. ‘교양’은 한 사람의 지적 취향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익숙하게 사용하는 개념인 ‘교양’이란 과연 무엇일까? ‘로쟈’라는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자체에 의문을 던지며 강의를 시작했다.

 

“모든 질문이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건 아닙니다. 보통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넘어가기 쉬운데, 질문 자체에 머물러서 숙고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혹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질문은 아닙니다. 어떤 물음에는 그것이 던져지는 맥락이 있고, 장소성이 있기 때문이죠.”

 

‘교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명료한 답변을 구하려는 심리를 꼬집는 말이었다. 특히 인문학이 일종의 ‘교양’으로 자리잡고 있는 최근 한국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 교수는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소와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모든 질문에 보편성이 있다고 여기는 학자들의 버릇 혹은 관례를 지적하는 말이다.

 

“가령 칸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질문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왜 여기에 관심 없어’라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모두에게 절실한 물음은 아닙니다.”

    
그는 아예 ‘What is X?(무엇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형식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했다. 희랍어적 기원을 갖고 있는 이러한 질문형식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사용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플라톤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이러한 형식의 질문을 빈번하게 던지지만, 이는 어떤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을 ‘일반화’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여기에는 비약이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나’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중요한 질문이지만, ‘사람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물론 몇몇 철학자는 일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겠지만.”

 

 

"책 안 읽고 살아도 문제없지만……"

강의는 ‘책의 속임수’를 들춰내는 쪽으로 이어졌다. 서평을 전문으로 하는 그가 “책 안 읽고 살아도 문제없다”는 말을 할 때는 의아하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책은 읽은 사람은 소수지만, 쓴 사람은 더 소수지요. 책에는 책 읽은 사람 사이에 전수되어온 고정된 편견 같은 게 있습니다. 의미 없는 삶, 성찰 없는 삶에 대해서는 격하하고, 직접적인 삶에 대해 거리를 두는 ‘theoria’ (‘이론’의 어원)를 더 높이 치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너는 어떻게 생각 없이 인생을 사냐’ 같은 질문이 나오지만, 솔직히 안 될 건 없어요. 책 안 읽고 살아도 문제없습니다.”

 

이 말은 책을 읽고 교양을 쌓는 일이 누구에게나 중요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학에 개설된 수많은 ‘교양과목’들은 다 무엇인가? 그는 이 문제를 교양과목 교수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시대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교양이란 게 정말 보편적이고 중요하다면 변화하지 않아야 하는데, 왜 달라질까요? 담당교수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세력판도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힘 있는 학과의 교양과목, 예를 들면 중국이 잘 나가면 중국 관련 교양과목이 늘어나는 거죠. 이런 면에서 ‘보편성’이란 허울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니체 책을 필수도서로 여기는 ‘교양주의’

그렇다면 한국에 ‘교양’이란 개념이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 저자는 그 시작을 일본의 '다이쇼오 교양주의'에서 찾는다. 다이쇼오 시대(1912~1926년)에 등장한 ‘교양주의'는, 일본 동경제국대학이나 제1고교 등 최고 엘리트 학생들이 공유했던 일련의 ‘서양 고전’ 리스트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이런 엘리트 중심적 뿌리가 한국에 전해져 지금까지도 우리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필수 도서로 여긴다. 하지만 이 책은 니체의 저작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책으로, 이는 ‘교양’이라기보다 ‘교양주의’가 만들어낸 거품이라 볼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동경제대 학생들은 엄청난 사회적 프리미엄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 근거가 ‘우리는 이런 교양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양주의가 만들어낸 기능이지요.”

 

이것이 교양이 가진 두 가지 기능 중 국가 엘리트에 대한 차별적 보상을 정당화하는 기능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교양은 부르주아의 사회적 부와 지위를 정당화하는 기능도 갖는다. 이러한 기능은 경제불황에도 미술품 시장이 초호황을 누리는 경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등장한 ‘초고가 서가’ 또한 같은 맥락에 속한다.

 

“최고급 서가 컬렉션을 짜주는 전문 플래너가 있다고 합니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싸다는 게 중요합니다. 미술품의 최대 메리트이기도 하죠. 보통 사람들은 가질 수 없다는 것. 과거에는 교양이 그런 기능을 했습니다. 예술이나 문학에 대한 조예가 있으면 ‘저 사람 잘 살아’라고 생각했지요.”

 

 

 

‘교양전쟁’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지만 교양은 변화한다. 일본에서는 70년대에 지식과 교양이 대중화하는 일명 ‘대중사회’로 진입한 뒤 더 이상 교양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진학률이 높아지면서 교양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는 교양이 대학에서 어떻게 교육되어 왔는가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교양주의’ 등장 이후 거의 6,70년 간 지속된 형태다.

 

“<서양음악의 이해> 라는 과목을 들었다면 시험을 어떻게 봤죠? 음악 짧게 들려주고 누구의 무슨 곡인지 알아맞히는 식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교양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딱 제시간에, 1분 안에 제목과 작곡가를 알아 맞히는 게 교양이라면 자기 자신을 위한 교양이 아니라 상대방의 질문에 응답하기 위한 교양이지요.”

 

대학 내에서도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이 90년대에 일어났다. ‘문학연구’에서 ‘문화연구’로 전환한 것이다. 이를 서구에서는 ‘교양전쟁(culture war)’이라 불렀다. 이는 대학에서 무엇을 교양으로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서양문명사, 서양문학사를 강의할 때 어떤 작품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였다. 정전(canon), 곧 문학의 필수 작품 리스트에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와 같은 사조들이 비판적으로 ‘도전’하면서, 기존 정전 리스트에 지속적으로 개편이 일어난다. ‘교양’에 대한 패권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곁다리 인문학’의 균형감각

“교양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역동적인 장입니다. 권력 엘리트와 부르주아의 부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고전 텍스트를 읽더라도 이런 것을 인식하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교수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인문교양 강의, 서평쓰기 활동 등을 '곁다리 인문학’이라 표현했다. 인문학 옆에 있으되 어깃장을 놓고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인문학 전도사지만 인문학을 욕하기도 하는 그는 교양에 대해서도 비슷한 균형감을 강조했다.

 

“교양을 알고 습득하는 것은 좋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 가져온 부정적 기능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11.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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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1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1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꾸때리다 2011-12-1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왜 저렇게 잘생기신 걸까....
 

지난주에 다시 나온 책 중의 하나는 '다윈의 대답' 시리즈이다. 전체 8권 가운데, 4권은 새로운 타이틀이니 '다시' 나왔다는 말은 절반만 옳긴 하다. 원래는 피터 싱어의 <다윈주의 좌파>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이음, 2007)란 제목으로 시리즈의 첫 권이었지만, 이번에는 최재천 교수의 <호모 심비우스: 이기적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이음, 2011)에 자리를 내주었다. 새로 나온 타이틀들에 관심이 가기에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11. 12. 10) 다윈 가라사대 ‘불평등이 현대인 죽음 앞당긴다’

 

자연 하면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떠올린다. 텔레비전에서 사자가 영양을 사냥하는 장면을 너무나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초원에 가본 이들은 그런 장면을 볼 수 없어 실망하기 마련이다. 사자들은 대부분 시간을 낮잠이나 빈둥거림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하면 다윈이다. 이 등식은 다윈의 이론을 전파하기 위해 그의 ‘성전’을 끼고 세상으로 뛰쳐나간 ‘전도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다윈은 그런 용어를 즐겨 쓰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생태학자들, 특히 남성 생태학자들은 95%가 자연계의 치열한 경쟁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오늘날 추세는 무척 달라졌다. 자연계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무조건 남을 제거하는 것만이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8권으로 된 ‘다윈의 대답’ 시리즈는 인간의 본성, 직장 내의 남녀 차이, 건강 불평등 문제 등 우리 사회의 현안에 대해 21세기 다윈주의자들이 보내온 답이다. “다윈이 살아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했을 것이다”라는 가정에서다. 내용은 차분하고 설득적이다. 런던정경대 세미나를 바탕으로 만든 7권에 한국 최재천 교수의 책을 보탰다.

세미나 좌장 격인 피터 싱어는 우선 다윈한테 덧씌워진 우파의 허울을 벗긴다. 그는 우파들이 다윈의 학설에서 무한경쟁 논리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끌어내었고 좌파는 그러한 측면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말한다. 그는 다윈주의에는 좌우가 없으며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인간 본성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대안은 ‘다윈주의 좌파’다.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되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을 무시하지 않는 것. 나아가 인간 본성의 또다른 측면인 협동적이고 이타적인 본성에 대해 통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정치적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고 싱어는 역설한다.

 


영국의 생물학자 콜린 터지는 농경이 위대한 문명을 낳은 기초가 되었다는 발전론적 역사관에 토를 단다. ‘농경 확대→인구 증가’가 맞물리면서 터져 나온 여러 문제를 다윈이 목격한다면 농경이 “고된 노동과 환경파괴의 시작”이라고 규정했을 거라고 본다. 그는 수렵·채취인이 농경을 하면서 환경을 바꾸고 통제하게 되면서 인간은 파괴적인 포식자가 될 수 있었고 홍적세의 대량살육과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기하급수적 인구증가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의심해봐야 하며 사자처럼 게을렀던 우리의 수렵인 선조들한테서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역학 분야 선구자인 리처드 윌킨슨은 지금 현실에 눈을 돌린다. “기대수명이 가장 긴 나라는 가장 평등한 나라이지 가장 부유한 나라는 아니다.” 불평등과 소득격차가 크면 스트레스와 불안감, 자존감 상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죽음을 앞당긴다는 것이다. 그는 또 불평등을 줄이면 경제성장이 느려진다는 견해는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라면, 정부는 건강과 사회적 자본을 증진시키고 통합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불평등 감소를 핵심 목표로 삼아야 한다.

최재천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는 결코 그 어원처럼 영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연을 잘 이용해 만물의 영장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무차별적인 세계화, 국가간 빈부격차, 환경 오염 등으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류는 이제 ‘호모 심비우스’ 즉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한테서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자연계가 수차례 멸절 위기를 겪었음에도 다양성을 회복한 것은 ‘니치’, 곧 자기만의 독특한 공간을 갖고 공존해왔기 때문이라 말한다. 지구의 생물 중량 중 으뜸인 것은 식물, 개체수에서 가장 성공한 것은 곤충인데,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을 대신해 곤충이 꽃가루를 날라주고 그 대가로 꿀을 얻으며 공생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기에 따라 다소 불편한 내용도 있다.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신데렐라>, <콩쥐팥쥐> 등 전세계에 분포하는 아동학대 설화가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고 말한다. 의붓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학대받거나 죽임을 당할 확률이 친부모와 사는 경우보다 백배 이상 높은 통계를 들고 이는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확산시키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지은이들은 현실이 그러함에도 사회적 통합을 구실로 진실이 숨겨지고 있다면서 이혼과 재혼율이 높아지는 상황을 고려해 이제는 문제를 직시해 해결책을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임종업 선임기자)

 

11.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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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게이의 평전 <프로이트>(교양인, 2011)에 대해선 이미 기사를 스크랩해놓았지만, <찰스 다윈 평전> 묶어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우리의 생각을 바꿔놓은 걸출한 사상가들이긴 하지만, <프로이트>에서 <찰스 다윈 평전>을 떠올린 건 표지 때문이다. 어차피 다윈주의 좌파와 라캉주의 좌파에 대해 공부할 계획도 갖고 있었던 만큼 이번 겨울에 이 평전들부터라도 일독을 해봐야겠다. 그런 의미의 리스트이다.

 

 

한국일보(11. 12. 10) 프로이트 이론으로 들춰 본 프로이트의 내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나온 것은 1899년 11월이지만, 이 책의 속표지에는 1900년 1월에 출간된 것으로 찍혔다. 이 책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책이 될 거라 확신한 프로이트가 책 출간 날짜를 일부러 늦추어 찍었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상담과 기록, 연구만 할 것 같은 프로이트에게도 이런 면모가 있었던가 싶지만, 사실 그는 탁월한 학자인 동시에 노련한 조직가였고 기민한 정치가였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과 더불어 서구 지성사에 가장 심대한 변화를 일으킨 지적 혁명으로 꼽히는데, 사실 '3대 혁명'을 정의한 사람이 프로이트 자신이었다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피터 게이의 <프로이트 ⅠㆍⅡ>는 이렇게 프로이트의 삶을 다층적으로 재구성한 평전이다. 프로이트처럼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에 정착한 저자는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다시 10년 간 프로이트를 연구했고, 정신분석을 역사 연구에 도입한 신선한 연구 방식으로 주목 받았다. 이 특기를 살려 그는 정신분석학을 통해 프로이트의 내면을 분석한다. 이를테면 프로이트가 자신의 환자를 분석한 것처럼 프로이트의 실언이나 실수, 농담에서 프로이트의 내면을 포착해낸다. 평전은 이렇게 분석한 프로이트의 내면과 생활사, 정신분석학의 발전사를 엮은 것이다.

1권은 1865년 프로이트의 출생부터 의학도의 길을 선택한 청년시절, 뛰어난 신경학자에서 심리학자로 변신하는 과정, 1890년대 말 정신분석의 탄생 과정과 1910년 정신분석이론이 정교화되는 시기를 다룬다. 다시 저 유명한 <꿈의 해석>으로 돌아가자. 독일어 원제는 'Die Traumdeutung'. 우리말로 해몽이란 뜻인데, 무의식에 자리한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의학 용어 트라우마의 어원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의식-전의식-무의식'의 영역으로 이뤄진 3차원적 구조로 설명했다. 인간 정신의 심층에 있는 무의식은 의식이 억압하고 배제해 의식 너머 어두운 곳에 묻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인간 내면에 자리한 이 무의식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주장이었다. 이 획기적 주장은 출간 당시는 물론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2권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부터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8년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이듬해 죽음을 맞기까지를 다룬다. <쾌락 원칙을 넘어서>, <자아와 이드>, <문명 속의 불만> 등 초기 이론의 대대적인 수정 과정과 정신분석학이 종교, 예술, 문화의 분석 도구로 확장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위신과 체면을 중시하는 19세기 빈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성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에게서 히스테리와 신경증이 자주 발병한다는 사실을 임상경험으로 확인했고, 이 강박이 인간의 공통된 숙명이자 문명의 딜레마로 이어진다는 통찰을 얻게 된다. 그가 보기에 계약으로 출현한 모든 사회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욕망을 철저히 간섭하고 제어하는 바탕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로 인한 불만이 언제든 표출될 수 있다. 양차 세계대전은 이런 생각을 더 확신시켜 주었고, 프로이트는 인간이 사회, 문화 안에서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2권에는 이런 인식의 변화상이 프로이트의 삶과 함께 소개된다.

1988년 출간된 이 책은 2006년 프로이트 탄생 150주년을 맞아 개정됐다. 국내에는 2006년 개정판을 번역해 이번에 처음 나왔다. 인문학과 정신분석에 정통한 저자의 약력과 균형 잡힌 시각이 책의 신뢰성을 높인다.(이윤주기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프로이트Ⅰ- 정신의 지도를 그리다 1856~1915
피터 게이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11년 12월
36,000원 → 32,400원(10%할인) / 마일리지 1,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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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Ⅱ- 문명의 수수께끼를 풀다 1915~1939
피터 게이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11년 12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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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 평전 : 종의 수수께끼를 찾아 위대한 항해를 시작하다- 1809~1858 출생에서 비글호 항해까지
재닛 브라운 지음, 임종기 옮김, 최재천 감수 / 김영사 / 2010년 8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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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 평전 :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1859~1882 <종의 기원> 출간에서 말년까지
재닛 브라운 지음, 임종기 옮김, 최재천 감수 / 김영사 / 2010년 9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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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o 2011-12-11 09:41   좋아요 0 | URL
trauma는 `뚫다(titrosko)`라는 그리스어 동사에서 파생된 `상처trauma`라는 그리스 어원을 갖고 있고, 독일어로 꿈을 의미하는 Traum은 영어의 dream과 함께 고대게르만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독일어 truegen(기만하다)의 단어군에 속하는 단어입니다. 기자분이 어떤 근거로 trauma의 어원이 Traum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군요.

로쟈 2011-12-11 10:06   좋아요 0 | URL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