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이번 주에는 국내서만으로 다섯 권을 꼽았다(기타 주목할 만한 책들은 따로 다룰 수밖에 없겠고). 먼저 타이틀북은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의 이원재 저자가 포착한 2014년 세계 혁신가들의 미래 기획서", <소셜픽션 지금 세계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어크로스, 2014)에서 가져왔다. "세계가 지금 어떤 사회를 상상하는지에 대한 안내서"인데 "장기적 미래를 생각하는 이들이 꿈꾸는 미래 사회의 모습과 현재 진행 중인 가장 앞선 실험을 소개하는 게 목적"이라고. "책에서는 참여, 자립, 달라지는 정부, 알고리즘 사회라는 4개 분야로 나누어진 11개의 혁신적인 기획들로 미래를 바꿀 오늘의 상상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가장 앞선 실험'이라면 지난해에 나온 <나우토피아>(아름다운사람들, 2012)도 참고할 수 있겠다. 11개의 다양한 유토피아 커뮤니티를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두번째는 노정태의 <논객시대>(반비, 2014)다. 주로 1990-2000년대의 대표 논객 아홉 명의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다.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가 부제. 친숙한 이름들 때문에, 이주의 '어필북'이라고 해도 되겠다. 목차는 이렇다.  

1. 강준만 | 태초에 강준만이 있었다
2. 진중권 |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3. 유시민 | 돌아온 지식소매상, 부도 난 정치도매상
4. 박노자 | 어디에도 없는 남자
5. 우석훈 | 청년들에겐 꼰대, 386에겐 광대
6. 김규항 | 예수.건달.지식인
7. 김어준 | 늑대소년은 이탈리아에서 무엇을 보았나
8. 홍세화 | 혁명 투사가 된 '빠리의 택시운전사'
9. 고종석 | JS를 이해하기 위하여 

세번째 책은 '언더그라운드 인문학자' 고병권의 <언더그라운드 니체>(천년의상상, 2014)다. '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서광>을 읽다'가 부제. 소개에 따르면, "아포리즘으로 이뤄진 니체의 <서광>을 한 조각 한 조각 해체하여 다시 재구성했다. 한국의 니체 연구자 중 인문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고병권. 그가 니체의 <서광>을 ‘긍정의 정신, 시작하는 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책"이다.

 

 

네번째 책은 신학자 김근수의 <행동하는 예수>(메디치미디어, 2014). '마태오 복음' 해설서인데 지난해에 나온 <슬픈 예수>(21세기북스, 2013)와 같이 읽어도 좋겠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하느님나라의 소식을 들고 다가온 예수, 불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서 고난 받은 예수’다. 더불어 저자는 '마태오 복음'의 핵심이 실천임을 강조한다. "입으로만 믿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몸으로 자비와 정의를 실천하여 세상을 빛으로 밝히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마태오복음이 역설하는 메시지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끝으로 <인문 내공>(웅진지식하우스, 2012)의 저자 박민영의 <낭만의 소멸>(인물과사상사, 2014).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산다는 것'이 부제다.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비안간적으로 변했는가'에 대한 탐색과 성찰을 담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저자가 도달한 결론이 낭만의 실종 혹은 소멸이다.

우리 시대 이전의 삶도 그리 녹록지는 않았다. 그래도 예전에는 낭만적인 부분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낭만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텔레비전·영화·소설에서나 발견될 정도로 희소해졌다. 그것은 억지로 만들어진 낭만, 조작된 낭만, 가짜 낭만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낭만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낭만이 없으면 인생은 비참한 것이 되고 만다. 심지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그렇다. 낭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간다는 것은 위험한 사회적 징후다.

'낭만이 사라진 사회에 사는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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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픽션 지금 세계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
이원재 외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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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시대-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노정태 지음 / 반비 / 2014년 2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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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니체- 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서광>을 읽다
고병권 지음, 노순택 사진 / 천년의상상 / 2014년 2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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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예수- 불의에 저항한 예수 '마태오 복음' 해설
김근수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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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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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혜강 최한기의 <운화측험>(한길사, 2014)을 고른다. '운화'라는 말은 접해보았지만 <운화측험>은 처음 듣는다. 관련서를 읽어본 적이 있으니 책명을 보긴 보았을 테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은 모양이다. 소개는 이렇다.

 

 

운화측험(雲化測驗)이란 운화를 관측·측정하여 검증한다는 뜻으로, 자연 속에 존재하는 기의 운동과 변화를 관측·측정하여 증험함을 일컫는다. 조선 후기 철학자 최한기가 이탈리아 선교사인 알폰소 바뇨니의 저서 <공제격치>를 비판하고 수용하면서 저술된 것이다. <공제격치>를 접한 최한기가 <운화측험>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자연에 대한 4원소의 불합리한 기계적인 적용과 지구 우주중심설과 정지설, 비합리적인 과학이론, 그리고 신학적 목적론 등이다. 이로써 최한기는 서양의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과학에도 불합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래서 동아시아 전통학문인 주자성리학과 서양의 기독교를 비판·극복하고 새로운 보편적인 학문을 세우고자 하였는데, 그것이 그의 만년에 완성한 기학(氣學)이다. <운화측험>은 이러한 기학의 세계관을 이루는 자연철학적 저술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만년 저작 <기학>이 주로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이 책은 그 철학의 존재론적 기반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순서상 알폰소 바뇨니의 <공제격치>(1633)가 먼저 나와주어야 할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역자가 그 일을 이미 해놓았다. <공제격치>(한길사, 2012)를 먼저 번역하고 <운화측험>을 마저 옮긴 것이다. 역자의 성실한 학문적 태도가 인상적이다(역자는 혜강의 주요 저작 중 <기측제의>도 옮겼다). 

 

 

 

다산 정약용과 함께 조선 후기 학문을 대표하는 혜강 최한기의 그의 기학에 대해서 처음 접한 건 김용옥의 <독기학설>(통나무, 2009/2004)을 통해서였다. 이후에 나온 <혜강 최한기와 유교>(통나무, 2004), 손병욱 역주의 <기학>(통나무, 2004)에까지 손이 갔으나 대략 어림만 할 뿐 독파하진 못했다. 

 

 

그러다 국문학자 박희병 교수의 <운화와 근대>(돌베개, 2003) 덕분에 최한기를 다시 상기하게 됐다. 2003년이 혜강의 탄생 200주년 되는 해였고, "이 책은 혜강의 탄신 200주년을 맞이하여 최한기의 사회사상과 정치학을 중심으로 사상사적 음미를 시도한 책"이었다. 이 두 저자의 이름 옆에 이제 이종란 박사의 이름도 적어두어야겠다. 성균관대학에서 최한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공자인데, <최한기의 운화와 윤리>(문사철, 2008)이란 연구서를 갖고 있다(아마도 학위논문을 보완해서 펴낸 듯싶다).

 

 

 

최한기에 입문하려는 독자라면 <독기학설>이나 <정약용 & 최한기>(김영사, 2007) 등으로 워밍업을 하고서 <운화측험>과 <기학>의 세계로 넘어가면 좋을 듯싶다. 나부터도 그런 독서계획을 꾸려본다. 혜강에 관한 연구서는 몇 권 더 나와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산과 연암을 다룬 고미숙의 라이벌 평전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북드라망, 2013)처럼, 다산과 혜강의 철학을 비교하는 좀더 묵직한 책도 기대해본다...

 

14. 0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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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돈 카를로스>(1787)가 문학동네 세계문학판으로 출간됐다. 대산 세계문학총서로도 이미 나온 타이틀인데, 이번에 나온 건 실러 전공자이기도 안인희 박사의 번역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큰 영향을 준 작가여서(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늘 관심에 두고 있으면서도 정작 작품을 정색하고 읽을 기회가 없었다. <도적떼>(<군도>)(1781)와 <간계와 사랑>(1784), <빌헬름 텔>(1804) 등 번역된 주요 작품들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실러는 일생 동안 9편의 희곡을 썼다). 참고로, 알라딘에는 저자명이 '프리드리히 실러'와 '프리드리히 폰 실러' 두 가지로 잡혀 있다. 실러냐 쉴러냐 갖고도 의견이 갈라지는데, '폰'이 들어갔느냐 안 들어갔느냐로 또 구분되는 건 너무 소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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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를로스 (무선)
프리드리히 실러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14,500원 → 13,050원(10%할인) / 마일리지 7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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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를로스- 희곡
프리드리히 폰 실러 지음, 장상용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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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를로스
프리드리히 실러 지음, 윤도중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7월
18,000원 → 17,100원(5%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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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적 떼
프리드리히 폰 실러 지음, 이경미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9년 12월
8,000원 → 8,000원(0%할인) / 마일리지 24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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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기흥의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스물셋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황유미 씨와 딸의 죽음이 산재임을 밝히기 위해 삼성을 상대로 한 오랜 법정 투쟁에 나섰던 아버지 황상기 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지난주에 개봉됐다. 당초 예정됐던 상영관이 대폭 축소돼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는데, 다행히 집 근처 CGV에서는 이번주에 개봉했기에 주말쯤에 볼 수 있을 듯싶다. 영화 개봉에 맞추어 '프레시안 books'의 '이주의 리스트'에서는 삼성 관련서를 꼽았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3835). 리스트로 만들어놓는다(두 권을 더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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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김성희 글.그림 / 보리 / 2012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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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김수박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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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희정 지음, 반올림 기획 / 아카이브 / 2011년 11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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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와 백혈병-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박일환, 반올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1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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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진흥원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독서인'의 독서에세이 코너 '독서카페'를 1년간 맡게 됐다. 이달에는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옥당, 2014)를 읽은 소감을 적었다. 드라마 <정도전>이 방영되고 있지만(시청한 일은 없어서 조재현이 정도전 역을 맡았다는 것만 안다), 이덕일의 이 '역사특강' 자체가 드라마의 제작진과 출연진을 위한 특강이었다.

 

 

 

독서인(14년 2월호) 정도전과 그의 시대

 

역사란 무엇인가. <정도전과 그의 시대>(옥당)에서 역사저술가 이덕일은 ‘반성의 도구’라고 말한다. 새로운 말은 아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잘 살피기 위함이다. 물론 과거와 현재가 판이하게 다르다면 과거를 거울로 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란 반문도 가능하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새로운 문제를 사고하거나 해결하는 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역사는 언제, 어떻게 소용이 되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새롭고도 새롭지 않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시간이고 새로운 날들이지만, 또 한편으론 어제와 같은 일상의 반복이기도 하다. 반복은 교훈을 낳는다. 앞서 간 수레바퀴 자국을 가리키는 전철(前轍)은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된다. 잘못된 길을 가다 엎어진 수레의 흔적은 우리에게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게 반복적인 경험과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현명함이다. 반대로 똑같이 잘못된 길을 가다가 또다시 엎어짐으로써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이런 현명함과 어리석음도 역사 속에서 반복돼 왔던가.


이솝 우화에 전하는 얘기가 떠오른다. 전갈과 개구리 얘기다. 어느 날 전갈이 개구리에게 강을 건널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개구리는 전갈이 독침으로 자기를 찌를까봐 두려워하는데, 전갈은 만약 내가 널 찌르면 나도 물에 빠져 죽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킨다. 설마 자살과 같은 행위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믿고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운다. 하지만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전갈은 개구리를 찌르고 결국 둘 다 죽게 된다. 죽어가던 개구리가 왜 찔렀느냐고 묻자 전갈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갈이야. 그게 내 본성이라고.”


이 우화의 교훈은 무엇인가. ‘타고난 본성은 어쩔 수 없다’ 정도로 정리될 수 있겠지만, 전갈의 ‘인지 부조화’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명 전갈의 이성은 개구리를 찌르는 행위가 자신의 죽음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문제는 그의 이성이 본성을 통제할 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개구리뿐만 아니라 전갈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했으므로 이 부조화는 극복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성의 힘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본성의 힘을 직시했다면 애초에 전갈은 개구리에게 강을 건너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선 기대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성의 힘을 더 키우는 것이다. 가령 본성을 제어하기 어렵다면 필요한 경우 독침에 보호대라도 씌워서 파국을 막는 것도 방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쪽인가. 

 


전갈과 개구리의 우화를 우리의 역사인식과 성찰에도 적용해봄직하다. 과거에 대한 인식과 성찰로서의 역사의식은 과연 우리의 타성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그와는 반대로 역사의식조차도 결국 반복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아야 할까. <정도전과 그의 시대>를 읽으며 줄곧 머릿속으로 헤아려보았다. 저자가 보기에 ‘왕도정치를 꿈꾼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과 그가 살았던 쉰여섯 해는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그렇다. 외적으로 고려말은 대륙의 주인이 원에서 명으로 교체되던 시기였고, 내적으로 고려사회는 극심한 빈부격차, 즉 사회적 양극화로 백성의 삶이 파탄에 이르고 있었다. 소수의 권문세족이 나라의 모든 재화를 독차지하고 있었기에 토지개혁 상소문에서 조준은 “불쌍한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개천과 구덩이에 빠져 죽는다”고 적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려왕들의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선왕과 충숙왕이 시도한 개혁정치가 실패하자 사정은 더 악화된다.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개혁군주 공민왕이 등장해 망해가는 고려를 되살리기 위한 최후의 시도를 모색한다. 그는 ‘농토문제와 백성들의 억울함을 분별해 잘못을 바로잡는 기관’이라는 뜻의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지만, 개혁대상인 친원파의 반발로 실패한다. 이후 공민왕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신돈을 앞세우게 되는데, 신돈은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도록 하는 혁신적인 개혁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며 민심을 얻는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민심이 오히려 신돈의 앞을 가로막는다. 신돈은 권문세족과 신흥사대부,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았고, 그가 백성들로부터 ‘성인’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자 기분이 틀어진 공민왕은 신돈을 내친다. 저자는 공민왕이 신돈을 제거한 것이 가장 큰 과오이며, 이로써 고려는 멸망으로 치닫게 된다고 평한다. 신돈의 실패는 고려왕들이 중심이 돼 시도한 ‘위로부터의 개혁’이 끝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개혁이 실패한다면 무엇이 남는가. 혁명이다. 신흥사대부는 고려 왕실의 처리와 토지개혁 방법론을 두고 온건개혁파와 역성혁명파로 나뉘게 되는데, 온건개혁파의 거두가 이색이었다면 정도전과 조준이 역성혁명파의 대표적 인물들이었다. 조선이라는 새 왕조의 건국 과정은 혁명적인 개혁사상을 품고 있던 정도전이 변방의 무장 이성계를 찾아가 의기투합함으로써 첫발을 내딛게 된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결합, 그것을 저자는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던 고려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진 지식인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무장의 만남”으로 규정한다. 정도전의 혁명사상이 이성계의 군사력과 만나게 된 셈인데, 이때가 1383년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10년 뒤 고려는 패망하고 조선이 들어선다.


고려말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극심한 양극화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있어서 빚어진다. 고려말의 권문세족은 정치권력을 독점하면서 이를 등에 업고 사익 추구에 몰입하여 경제권력 또한 장악한다. 소수의 권문세족이 정치, 경제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이에 따라 자영농의 대부분이 몰락해간 것이 고려사회를 붕괴로 내몬 당시 상황이었다. 저자는 “한 사회가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정도전의 일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메시지라고 말한다. 이것이 전철이다. 우리는 우리가 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못된 길에서 제때 돌릴 수 있을까.

 

14. 02. 13.

 

 

P.S. 정도전 관련서가 여럿 나오고 있는데, 조유식 알라딘 대표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휴머니스트, 2014; 푸른역사, 1997)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고, 김탁환 작가도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전2권, 민음사, 2014)을 선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조선 건국 내지 개창 과정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최근에 구해서 본 건 김당택 교수의 <조선왕조 개창>(전남대출판부, 2012)이다. 학계의 주류적 시각과는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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